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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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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총기규제 강화, 30년 만에 변곡점?

하원에서 규제강화법 통과, 상원도 민주-공화 개혁안 합의
필리버스터 넘어서려면 공화당 10표 필요해
등록 2022-06-21 13:00 수정 2022-06-22 02:53
2022년 6월11일, 미국 수도 워싱턴의 내셔널몰 광장에서 시민들이 총기폭력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민집회 ‘우리 삶을 위한 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5월 텍사스주 유밸디의 한 고등학교에서 10대 퇴학생의 총기 난사로 21명이 숨진 참극이 벌어진 뒤 미국 사회에선 총기규제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2년 6월11일, 미국 수도 워싱턴의 내셔널몰 광장에서 시민들이 총기폭력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민집회 ‘우리 삶을 위한 행진’에 참여하고 있다. 5월 텍사스주 유밸디의 한 고등학교에서 10대 퇴학생의 총기 난사로 21명이 숨진 참극이 벌어진 뒤 미국 사회에선 총기규제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에서 총기규제 법제화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2022년 5월24일(현지시각)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로 어린이 19명을 포함해 21명이 숨지는 참사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미국에선 2022년 1~5월에만 총기 난사 사건이 232건이나 벌어졌다.

6월12일 연방의회 상원의 민주-공화 양당에서 의원 10명씩 참여한 협상단은 총기규제를 강화하는 입법안의 기본 틀에 합의했다. 합의안에는 △21살 이하 총기 구매 희망자의 전과 조회, 폭력 성향 등 신원조사 강화 △학교 안전 보강을 위한 재정 지원 △총기 대리구매 행위 처벌 △주 차원에서 총기 소유를 제한하는 ‘레드플래그법’(Red Flag Laws, 빨간깃발법) 장려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 등이 담겼다. 신원조사 항목에는 사상 처음 구매 희망자의 청소년기 기록과 정신건강 기록 조회가 포함됐다. 가정폭력 기소 전력자들의 총기 소유 금지는 배우자에게 폭력을 저지른 이에게만 적용되던 데서 데이트폭력 가해자까지 범위를 넓혔다.

공화당 사령탑도 “합의안에 만족한다”

이번 합의에 총기 구매 연령 상향 조정(18살→21살)과 공격용 소총 판매 금지 등 민주당의 핵심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총기 보유 자체를 규제하기보다 총기폭력 가능성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총기 보유 권리에 정반대 입장을 보여온 민주-공화 양당이 현실적으로 찾을 수 있는 최대공약수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합의가 민주당이 원하는 수준에는 못 미쳤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는 더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척 슈머 의원은 “이번 합의가 민주당이 바라는 모든 걸 담은 건 아니지만 최근 수십 년 새 총기 안전법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개혁”이라고 말했다. 6월14일엔 공화당의 상원 원내 사령탑인 미치 매코널 의원도 기자회견을 열어 “합의안에 만족한다. 만일 새 총기 개혁법안이 합의 내용을 반영한다면 나는 지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앞서 6월8일, 하원은 새 총기규제법안을 찬성 223, 반대 204로 가결했다. 반자동 소총 구매 연령 하한을 18살에서 21살로 높이고 대용량 탄창 판매를 금지하는 게 뼈대다. 하원은 전체 435석 중 민주당이 220석으로 다수다. 그러나 민주당이 주도한 이 법안이 원안대로 입법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에서 연방 법률이 시행되려면 상·하원을 모두 통과한 뒤 대통령이 서명해야 한다.

현재 미국 상원은 전체 100석 중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50석씩 양분하고 있다. 당연직 상원 의장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민주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긴 하다. 그러나 민주당이 공화당의 필리버스터(표결을 지연하기 위한 무제한 토론)를 극복하려면 의사 규정상 60표가 필요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상원의 50:50 의석은 대통령(이나 다름없는 의원)이 50명이라는 의미”라며 “상원에서 뭐든 되게 하려면 최소 10명의 공화당 의원이 필요하다”고 말한 이유다.

민주당으로선 8월 의회의 여름 휴회 이전에 여야가 합의한 수정법안이 상·하 양원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상원의 다른 공화당 의원들도 새 규제법에 찬성표를 던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기대감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6월12일 미국 의회 전문지 <더 힐>은 “공화당 의원 다수는 총기 권리의 강력한 지지자이자 미국총기협회(NRA)의 정치적 동맹자”라면서도 “공화당 의원 10명의 지지에 힘입어, 초당적인 총기규제법안이 상원에서 필리버스터를 회피하기 위한 60표의 문턱을 넘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합의안, ‘레드플래그법’에 인센티브 포함해

양당 협상단이 레드플래그법을 시행하는 주에 연방정부의 인센티브를 주기로 합의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레드플래그법은 경찰이나 시민이 자기 자신 또는 다른 사람에게 위험하다고 보이는 이들이 총기를 가질 수 없도록 법원에 청원하게 한 주 법들의 통칭이다. 청원의 타당성을 판단한 법원 명령을 집행하는 방식으로 민간인 총기 소유를 일정 정도 제한할 수 있다.

공익 법률 지원단체 ‘총기폭력 예방을 위한 기퍼즈 법률센터’에 따르면, 미국 50개 주와 수도 워싱턴 중 레드플래그법이 있는 곳은 워싱턴과 19개 주이다. 대량살상이 가능한 공격용 소총의 판매·소유·사용을 금지하는 법이 시행 중인 곳은 워싱턴을 비롯해 캘리포니아·코네티컷·메릴랜드·매사추세츠·뉴욕·뉴저지·하와이 등 8곳뿐이다.

총기규제 논란은 2022년 11월에 치를 미국 중간선거에서도 첨예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번 중간선거에선 임기 2년인 하원 전체 435석과 임기 6년인 상원 의석 3분의 1(34석), 36개 주지사 자리를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격돌한다. 최근 온라인매체 <데일리 비스트>는 “주요 주(Key States, 민주-공화 경합 주)들에서 총기규제 논쟁이 격렬해진 가운데, 민주당의 주지사 후보들은 ‘상식적인’ 규제 추진이 유권자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움직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보도했다. 연방국가인 미국에서 주지사는 행정명령으로 총기에 대한 접근을 확대 또는 축소할 수 있다. 의회에서 힘겨운 입법 투쟁을 벌여야 하는 의원들과 구별되는 독특하고도 강력한 권한이다. 민주당의 선거전략가 재러드 레오폴드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의회는 아무것도 안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주지사는 뭔가 하려고 한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공화당 지지자 50%도 총기규제 강화 찬성

6월7일 미국 유일의 전국 일간지 <유에스에이 투데이>와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69%가 총기규제 강화에 ‘찬성’한 반면, ‘반대’ 의견은 10%에 그쳤다. 특히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도 50%가 총기규제 강화에 찬성해, 2021년 35%보다 두 자릿수 이상 급등했다. 민주당 지지자는 압도적 다수인 86%가 총기규제 강화를 지지했다.

미국에서 총기규제에 대한 새 연방법이 마지막으로 발효된 것은 거의 30년 전이다. 1993년 총기 구매 희망자의 신원조사를 의무화했고, 1994년엔 군용 화기 방식의 반자동 소총과 권총의 민간인 판매·소유·휴대를 금지한 한시법이 발효됐다. 그러나 반자동 화기 금지법은 10년 뒤인 2004년 일몰 규정으로 자동 폐지된 뒤 제·개정이 되지 않았다. 끊이지 않는 총기폭력과 인명 피해에 진저리를 치는 미국인들이 이번엔 값비싼 희생의 보상을 얻을 수 있을까?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공화주의자 대법관의 유언 “폐지하라”
총기 보유권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2조 논쟁
2022년 6월8일 미국 의회 상원의 민주당 원내대표 척 슈머 의원(가운데)이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정치권에 총기 규제 법제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나흘 뒤인 6월14일 상원의 민주-공화 양당은 총기 규제 강화법안의 기본 틀에 합의했다. AP 연합뉴스

2022년 6월8일 미국 의회 상원의 민주당 원내대표 척 슈머 의원(가운데)이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정치권에 총기 규제 법제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집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나흘 뒤인 6월14일 상원의 민주-공화 양당은 총기 규제 강화법안의 기본 틀에 합의했다. AP 연합뉴스


2022년 6월 현재, 자국민이 총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권리를 헌법으로 보장한 나라는 미국, 멕시코, 과테말라 3곳뿐이다. 이 중에서도 미국은 총기 보유권(수정헌법 제2조)만 있을 뿐 제약에 관한 아무런 규정이 없는 유일한 나라다. 미국 독립 초기인 1791년 제정된 수정헌법 제2조는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지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명시했다. 건국 초기의 어수선한 상황을 반영한 조항이었지만, 총기 권리 옹호론자들은 230년이 지난 지금도 수정헌법 제2조를 금과옥조처럼 소중하게 여긴다. 

미국에서 수정헌법 제2조의 폐지를 둘러싼 논쟁은 꾸준히 있었다. 2018년 3월27일에는 미국 연방대법관을 지낸 존 폴 스티븐스가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수정헌법 제2조는 18세기 구시대의 유물”이라며 “총기 범죄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정헌법 제2조가 근래 수십년간 본디 취지를 넘어 잘못 해석됐다”며 “이 조항이 폐지되면 훨씬 더 지속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했다. 공화당 지지자인 스티븐스 전 대법관이 향년 99로 타계하기 1년 전 세상에 남긴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고언이었다. 앞서 2월 플로리다주 파클랜드의 한 고등학교에서 이 학교 퇴학생(당시 19살)의 총기 난사로 17명이 숨진 비극이 일어난 직후였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민주당이 이런 일이 일어나길 원하지만, 수정헌법 제2조는 절대 폐지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2018년 (중간선거에서) 더 많은 공화당 의원들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곧이어 미국총기협회도 스티븐스 전 대법관을 향해 “당신의 말과 소망 리스트는 미국의 수치이며, 우리가 소중하게 지켜온 가치에 먹칠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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