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우크라 침공 역풍…‘부메랑’ 된 푸틴의 노림수

위기감 고조에 핀란드·스웨덴 나토 가입 신청…‘친러’ 터키가 변수
5~6월 유럽 각지에서 나토 군사훈련 잇달아…6월말 정상회의 눈길
등록 2022-06-11 12:33 수정 2022-06-12 08:45
나토(NATO)의 합동 해상 군사훈련 ‘발톱스 2022’ 시작을 하루 앞둔 2022년 6월4일 스웨덴의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총리(왼쪽)와 미국의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 입항한 미군 수륙양용 전함 키어사지호에 승선해 걷고 있다. EPA 연합뉴스

나토(NATO)의 합동 해상 군사훈련 ‘발톱스 2022’ 시작을 하루 앞둔 2022년 6월4일 스웨덴의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총리(왼쪽)와 미국의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 입항한 미군 수륙양용 전함 키어사지호에 승선해 걷고 있다. EPA 연합뉴스

2022년 6월7일(현지시각), 북유럽 발트해 한가운데 있는 스웨덴의 섬 고틀란드에서 수십 척의 군함과 군용기가 상륙훈련을 벌였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합동 군사훈련 ‘발톱스(BALTOPS·발트해 작전) 2022’의 하나였다. 발톱스는 1972년 시작돼 올해로 반세기를 넘긴 연례 해상훈련으로, 위기 발생 때 신속대응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 6월5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훈련에는 14개 회원국과 2개 협력국(스웨덴·핀란드)에서 45척 이상의 군함, 75대 이상의 군용기, 약 7천 명의 병력이 참여했다. 나토는 “‘발톱스 2022’는 올해로 창군 500주년을 맞은 스웨덴 해군이 훈련을 주최하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밝혔다.

신냉전의 최전선이 된 유럽… 무력분쟁 확대 경계

2022년 발톱스 훈련이 주목받는 이유가 사상 최대 규모라는 것만은 아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의 구실로 ‘나토 확대에 따른 안보 위협’을 내세운 점, 우크라이나 전쟁이 6월3일로 100일을 넘기며 교착 국면이 장기화할 조짐, 스웨덴과 핀란드가 오랜 중립국 노선을 포기하고 나토 가입을 요청한 점, 나토 회원국인 터키가 러시아와 우호관계를 유지하며 스웨덴·핀란드의 나토 가입에 반대하는 현실 등이 복잡하게 맞물렸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유럽 전역을 신냉전의 최전선으로 몰아가고 있다. 서방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명백한 침략전쟁으로 비난하면서도, 직접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최신 무기 제공으로 측면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에 반발하며 전술 핵무기 사용을 맞불 카드로 만지작거린다. 이는 다른 나라들의 핵무장을 부추길 우려를 낳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본격화한 신냉전이 자칫 무력분쟁 확대로 비화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나토는 “이번 훈련이 지난 50년간 지속해온 연례적 훈련이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직접 관련이 없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나 나토의 군사훈련이 발톱스만 있는 건 아니다. 2022년 5~6월 나토는 유럽 각지에서 8건의 크고 작은 합동 군사훈련을 했거나 진행 중이다. 6월6~10일 옛소련 연방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과 폴란드에서 열린 유럽 최대의 통합 방공 및 미사일방어 훈련 ‘람슈타인의 유산’에는 나토 가입을 희망하는 스웨덴과 핀란드를 포함한 17개국이 참여했다.

노르딕 모델 위기 속 군사동맹 기웃

앞서 5월에는 북마케도니아에서 지상-공중 합동 ‘유럽의 수호자’ 훈련이,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에선 각각 ‘고슴도치’ 훈련과 ‘아이언 울프’(강철 늑대) 지상 군사훈련이 열렸다. 지중해와 발트해에선 19개국이 참여한 육해공 합동훈련 ‘넵튠의 방패 22’가 2주 동안(5월14~31일) 열렸는데, 미국 항공모함 해리트루먼호를 기함으로 한 항모 전단이 가세했다. 미국의 항모 전단이 나토 훈련에 참여한 것은 1991년 냉전 종식 이후 처음으로 올해 들어서만 두 번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애초 의도와 정반대로 부메랑이 됐다. 전쟁 명분으로 내세운 ‘나토 확장’을 억제하기는커녕 유럽 전역에 안보 위기감을 키우면서 중립국이던 스웨덴과 핀란드까지 나토의 품으로 몰아넣은 셈이 됐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 시절 껄끄러웠던 미국과 나토는 냉전 종식 이후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공동의 이해관계로 결속하는 모양새다.

6월7일 미국 시사주간 <네이션>은 “핀란드와 스웨덴은 ‘노르딕 모델이 나토 회원국 지위와 양립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상황을 바꿔놨다”고 짚었다. 노르딕 모델은 20세기 냉전 시기 북유럽 국가들이 사회민주주의에 기반한 공공부문 강화, 다양한 분야의 진보적 의제 정책화 등 포괄적 복지국가를 추구하고 미국-소련 양 진영의 대결과 군사주의와 거리를 둔 사회·경제 시스템이다.

그러나 소련 붕괴와 냉전 종식에 이은 신자유주의의 격류로 노르딕 모델은 위기를 맞았다. 감세·민영화·외주 같은 자본 논리가 득세했고, 노르딕 국가들이 ‘서방’으로 재정의되면서 ‘핀란디제이션’ 노선도 흔들린다. 핀란드와 스웨덴에서도 ‘나토 가입’ 목소리가 커지던 참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군사동맹의 결정적 명분을 제공했다.

이런 가운데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친러시아 성향을 보여온 터키가 유럽의 안보 지형을 좌우할 중대 변수로 떠올랐다. 터키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에 반대하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중재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앞서 5월 초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위한 모든 요구사항을 충족한다”며 강력한 지지 의사를 밝힌 것과 엇박자 행보다. 나토의 신규 회원국 가입은 기존 회원국들의 만장일치 승인을 얻어야 한다.

터키, “스웨덴 의회에 테러단체 포진” 일갈

터키가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국의 최대 골칫거리인 쿠르드족 문제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쿠르드족에 우호적이다. 반면 터키는 두 나라의 나토 가입 조건으로 쿠르드족의 정치적 대표 조직인 쿠르드노동자당(PKK)과의 관계 단절을 요구한다. 쿠르드족은 세계 최대 소수민족(약 3200만 명 추정)으로, 터키 동남부와 그 접경국인 이란·이라크·시리아의 산악지대에 거주하면서 자치권 확대와 독립국가 건설을 꿈꾼다. 앞서 5월13일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테러단체(쿠르드족)의 게스트하우스 같다. 특히 스웨덴 의회에는 쿠르드노동자당 같은 테러단체들이 포진해 있다”고 일갈했다. 현재 스웨덴 의회에는 쿠르드계 의원 6명이 활동 중이다.

나토는 6월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정상회의를 열어 “동맹이 직면한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고 “향후 10년과 그 이후의 전략적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6월 들어서만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와 잇달아 만나고,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과 통화하는 등 스웨덴·핀란드의 나토 가입 문제를 조율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6월 말 나토 정상회의는 나토의 확대 여부,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과 평화협상 재개 가능성, 나아가 신냉전 시대 유럽의 안보 지형을 내다볼 수 있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