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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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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인이다” 대 “중국인이다”

중국을 휩쓴 ‘애국주의 열풍’…

홍콩 시위에 살 떨리는 댓글, 교수를 고발하는 학생, 외국인은 “지금은 보따리 쌀 때”
등록 2019-09-30 12:24 수정 2020-05-03 04:29
9월14일 오성홍기를 든 홍콩 시민들이 라이언록에 올라 ‘나는 중국인이다’라고 외치는 모습을 <차이나데일리>가 보도했다. 차이나데일리 웨이보 갈무리

9월14일 오성홍기를 든 홍콩 시민들이 라이언록에 올라 ‘나는 중국인이다’라고 외치는 모습을 <차이나데일리>가 보도했다. 차이나데일리 웨이보 갈무리

“나는 중국인입니다. 나는 중국인입니다.

(중간 생략)

위대한 민족! 위대한 민족!

우리는 동방문화의 비조입니다.

나는 중국인입니다. 나는 중국인입니다.”

스타들도 낭송 동영상 올려

9월 신학기 개학한 중국 내 모든 초·중등학교에서 울려퍼지는 낭송문이다. 건국 70주년을 앞두고 중국 내 모든 학교에서는 중국의 근대 애국주의 개혁가라는 량치차오와 원이둬가 각기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시기의 반봉건·반식민지 사회 시대에 지은 ‘소년이 중국을 말한다’(小年中国说)와 ‘나는 중국인입니다’(我是中国人)를 암송하게 하고 있다.

중국 대중오락 스타들도 인터넷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 등에 이 문장들을 외워서 낭송하는 동영상을 앞다퉈 올리고 있다. 또한 ‘나와 조국’이라는 주제로 강도 높은 애국주의 사상교육이 실시되며, ‘국기와 국가, 애국가’에 대한 존중 교육도 집중적으로 하고 있다. 애국주의 교육에 이어, 인터넷과 언론에 대한 사상 통제와 검열도 유례없는 강도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 인터넷에서는 애국주의 ‘키보드 워리어’(댓글 전사)들의 맹활약이 펼쳐지고 있다. 이들은 여러 ‘살 떨리는’ 댓글을 실시간으로 올린다.

“홍콩은 피를 봐야 정신 차린다.” “홍콩을 어지럽히는 영국과 미국의 주구들, 현대판 매국노들을 쓸어버리자!”

이들에 대한 반론 댓글이나 정부에 비판적인 댓글은 미처 올라가기도 전에 “본 댓글은 심사 검열 중입니다”라는 ‘경고문’이 뜨면서 아예 반대 여론 자체를 봉쇄해버린다. 10월1일 건국 70주년 국경절을 앞둔 중국 거리는 온통 붉은 애국주의 구호로 뒤덮여 있다. 이와는 반대로, 석 달여 동안 격렬한 반중국 시위가 계속되는 홍콩에서는 갈수록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다, 우리는 홍콩인이다”라는 반중국적 구호가 퍼지고 있다.

지난 9월16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 화춘잉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홍콩 민주화 활동가인 조슈아 웡(중국명 황즈펑)이 최근 미국을 향해, 미국은 중-미 무역협상 의제로 인권 조항을 추가해야 하며 홍콩 민주화 활동을 지지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한 중국 쪽 입장은 무엇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당신이 말한 그 사람은, 중국인 신분으로, 사방팔방 다니면서 외국에 중국 내정 문제 간섭을 구걸하고 다니는 자다. 홍콩 문제는 중국 내정에 속하는 일로 어떤 외국 정부와 외국 조직, 어떤 개인도 간섭할 권리가 없다. 반중란항(反中亂港·중국을 반대하고 홍콩을 어지럽히는 것)을 꾀하고 외국 세력을 등에 업고 날뛰는 자들의 언행과 음모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9월21일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자들이 위안랑역에서 ‘홍콩에 영광을’을 함께 부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9월21일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자들이 위안랑역에서 ‘홍콩에 영광을’을 함께 부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홍콩 시위 참가자, 정해진 명칭 ‘폭도’

화춘잉 대변인 ‘입’에서 ‘반중란항’을 꾀하는 자들로 표현된 홍콩 시위 참가자들은 중국 내 모든 언론매체에서 ‘폭도’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홍콩 ‘폭도’들의 중심에 서 있는 조슈아 웡은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 ‘바이두’의 인물 검색창에 이렇게 소개됐다.

“조슈아 웡(黄之锋. 1996년 10월~). 남자. ‘반중란항’ 분자. 2012년, 국민교육 반대시위 과정에서 ‘벼락스타’가 됨. 당시 만 18세 미만인 조슈아 웡은 홍콩 내 반중파의 ‘급선봉’이 됨.”

9월3일치 잡지 ( 산하 잡지로, 중국 내외 주요 인물들의 인터뷰와 심층 분석 기사를 주로 다룸)은 ‘세 부류의 독청(獨靑·홍콩 독립을 요구하는 청년 세력)이 홍콩에 재앙과 혼란을 야기한다’는 제목으로 조슈아 웡과, 네이선 로, 아그네스 초우 등 현재 홍콩 시위에서 핵심적인 청년 활동가들을 심층 분석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은 기사에서 이들을 ‘미국과 영국 등 외부 세력이 중국을 분열시키기 위해 심어놓은 바둑알 같은 존재’로 묘사했다.

“지금 시위를 주도하는 홍콩 청년들은 크게 세 부류의 인간형이 있다. 모두 외부 세력이 심어놓은 자들이다. 첫째, 조슈아 웡이나 네이선 로 같은 정치 스타형이다. 둘째, 대학 내 학생대표 등을 한 아그네스 초우 등 청년 대표형이다. 셋째, 오성홍기를 바다에 던지는 등 폭력적 행동을 일삼는 용감무식한 폭도형이다. 조슈아 웡은 끊임없이 폭력적인 선동을 일삼으며 홍콩을 파괴하고 있다. 네이선 로 역시 2014년 홍콩 링난대학 학생회장 신분으로 학생들을 선동해 각종 불법시위에 참여하며 정치적 두각을 드러낸 인물이다. 아그네스 초우는 젊은 여성인데 폭력적 언행은 조슈아 웡과 네이선 로 같은 부류에 절대 뒤떨어지지 않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야심을 가졌다.”

그러면서 이 기사는 “가장 문명적이라고 불렸던 홍콩이 어쩌다 갑자기 이렇게 폭도들이 날뛰는 세상이 되었는가?”라고 되묻는다. 이 기사에 따르면 지금 홍콩은 무수한 정치 폭력배와 폭도가 날뛰는 지옥 같은 곳이다. 더 나아가 홍콩이 지금처럼 ‘반중국 폭도들의 세상’이 된 가장 깊은 원인은 교육 문제에 있다고 진단하며 당장 홍콩 교육체계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홍콩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사용하는 교재는 영국 식민지 통치 시절 교재로, 젊은이들에게 인식의 혼란을 야기한다. 중국 공산당을 비방하고 일국양제를 공격하는 내용이 많다. 이는 결국 조국에 대한 원한과 왜곡된 증오를 마음속에 심는 것과 같다.”

중국 내 어떤 매체에서도 최근 홍콩에서 ‘송환법’ 추진 이후 벌어진 일련의 시위를 ‘홍콩인 시각’으로 분석한 기사가 없다. ‘인권과 민주화’의 문제는 ‘외부 세력의 조종과 농간’이며 ‘영국 식민지 세력이 하나의 중국을 파괴하기 위해 늘어놓는 사탕발림 소리’라고 깎아내린다. 그리고 이 모든 행위의 배후에 ‘외부 검은 세력’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불법시위’와 ‘폭도’를 진압하는 홍콩 경찰들을 향해 ‘인민 영웅’이라는 칭호를 붙이며 ‘홍콩 경찰 지지하기’ 운동도 독려하고 있다.

2019년 6월18일 네이선 로, 조슈아 웡, 아그네스 초우(왼쪽부터)가 송환법 반대 팻말을 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019년 6월18일 네이선 로, 조슈아 웡, 아그네스 초우(왼쪽부터)가 송환법 반대 팻말을 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왜 중국 지식인은 침묵하는가

베이징의 한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한 중년 교수는 “송환법 문제로 시위가 격화되는 홍콩 사태에 중국 지식인들은 왜 침묵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 대신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한참 뒤, 그는 누가 들을까봐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중국에서 시진핑을 좋아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적어도 지식인 사회에서는 그렇다. 기업인들도 그를 아주 싫어하는 것으로 안다. 시진핑이 집권한 뒤, 도대체 중국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게 뭐 있는가? 정치, 사회, 외교, 문화예술, 학계 등 모든 분야가 시진핑의 간신과 충복으로 넘쳐나고 있다. 그들 앞에서 말 한번 잘못하면 문화혁명 때처럼 ‘사상교육’을 받아야 한다. 지식인 사회가 왜 숨죽이고 있겠는가. 학생들이 스승을 고발하고 있다. 이건 문화혁명 악몽이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강의실마다 ‘제자 스파이’들이 앉아서 교수들의 언행과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감시한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선 함부로 농담도 못한다. 홍콩에서 시위하는 건 알지만 대다수 사람은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있다. 홍콩이 폭도들의 세상이 되어 오성홍기가 짓밟힌다고 연일 방송에서 떠들어대는 일방적인 ‘정부 정보’만 들을 뿐이다. 다른 정보 창구는 모두 차단돼 있다. 우리는 지금 ‘중국 악몽’을 꾸고 있다.”

2014년 홍콩에서 ‘우산혁명’이 일어나고 최근 다시 ‘송환법’ 문제로 홍콩이 들끓자 중국 정부는 내부적으로는 애국주의 교육 강화와 인터넷 ‘철의 장막’, 대학가 단속 등을 하며 ‘내부 모순’이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지식인이 많이 모인 대학가는 중국 정부가 가장 공들여 통제하는 곳이다. 중국 전역의 대학가에서는 ‘언행이 불순하다’는 이유로 학생이 스승을 당국에 고발하는 일이 많이 생기고, 학교 당국에서 해직과 출당 처분을 받는 교수가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산둥대학과 베이징사범대학, 충칭사범대학, 중난재경대학, 샤먼대학, 베이징건축대학, 산둥공상대학 등에서는 소속 대학교수들이 ‘인터넷에서 잘못된 정치 의견을 발표하고, 강의 시간에 ‘정확한 노선’을 벗어나 잘못된 편견과 논리를 강의했다’는 등의 ‘언행 불순’을 이유로 해당 교수를 해직하거나 징벌에 처했다. 이 중 샤먼대학의 한 교수는 수업 시간에 “주석 임기제를 폐지하고 (시진핑의) 장기 집권 체제를 마련한 것은 정치적 비극”이라는 발언을 했다가 학생들에게 고발당해 해직됐다. 베이징건축대학의 한 교수는 수업 시간에 휴대전화를 하는 학생들을 비판하며 “이러다 언젠가는 일본이 우리보다 더 우수한 민족이 된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행정처분을 당했다.

‘학생 교학 정보원 모집’ 공고문

현재 중국 대학가에서는 학생들에게 교수들의 언행을 학교 당국에 제보하거나 고발하는 행위를 은연중에 독려한다고 한다. 실제 후베이과학기술대학에서는 지난해 학교 누리집을 통해 ‘학생 교학 정보원 모집’ 공고문을 내기도 했다. ‘학생 정보원’의 임무는 각 학과 교수의 강의를 듣고 그 내용과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많은 대학에서 강의실마다 교수들의 언행을 감시하기 위해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다.

홍콩 문제가 갈수록 꼬이면서, 중국 정부는 모든 외부 정보를 차단하며 애국주의 교육과 사상 통제를 강화하고 ‘불순분자를 적발하라’는 내부고발자 운동을 암암리에 펴고 있다. 중국 내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보따리 싸서 중국을 떠나야 할 때’라는 개탄이 흘러나오고 있다.

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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