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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본능을 자극하라

9·18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 요건…

트럼프가 워싱턴 주류를 무시할 수 있을까
등록 2018-09-15 14:50 수정 2020-05-03 04:29
’북-미가 삐걱거리면, 남북이 나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정됐던 북-미 정상회담 전격 취소를 발표한 직후인 지난 5월26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두 번째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북-미가 삐걱거리면, 남북이 나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정됐던 북-미 정상회담 전격 취소를 발표한 직후인 지난 5월26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두 번째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세 번째 정상회담에 나선다. 회담에 앞서 9월14일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개성에서 문을 열었다. 남북의 당국자가 같은 공간에서 하루 24시간 함께 머리를 맞대는 ‘상시회담 체제’는 분단 이후 처음이다. 때맞춰 삐걱거리던 북-미 협상도 다시 탄력받는 모양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높아졌다. 2018년 9월, 잠시 주춤했던 한반도 정세가 다시 용솟음치고 있다.

“18일부터 2박3일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립니다. 올해 3번째 열리는 정상회담입니다. 남북관계가 새로운 시대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제 남북 간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공동선언이 아니라, 남북관계를 내실 있게 발전시켜나가는 것입니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남·북·미 간의 군사적 긴장과 적대관계 해소에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그래야만 남북 경제협력과 한반도 신경제 지도의 추진이 본격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9월1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입을 뗐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기본적으로 북-미 간의 협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며 “그러나 북-미 간의 대화와 소통이 원활해질 때까지는 우리가 가운데서 중재하고 촉진하는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도 제게 그러한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4·27 남북 정상회담으로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의 물꼬가 틔었다. 지난 5월24일 늦은 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전격 발표하자, 문 대통령은 이틀 뒤인 5월26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두 번째 정상회담을 열었다. ‘정면 돌파’였다. 이어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미국으로 날아가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그렇게 성사됐다.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지금, 남과 북의 정상이 다시 만난다. 이번에도, 미국에서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보름 만에 확 바뀐 북-미 관계 </font></font>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서한을 받았다. 매우 따뜻하고 긍정적인 내용이었다. …서한의 1차적 목적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시 한번 정상회담을 하자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우리 쪽도 열려 있으며, 이미 그와 관련된 조율을 하고 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9월10일 언론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4차 방북 계획을 발표한 게 지난 8월24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전격 취소한 게 이튿날인 8월25일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충분한 진전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방북 취소 이유를 밝혔다. 불과 보름 남짓 만에 무엇이 바뀐 걸까? 샌더스 대변인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북한의 군사 퍼레이드에서 핵무기가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정책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엄청난 성공을 거둬왔으며, 김 위원장의 서한이 이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그간 몇 가지 일이 있었다. 미군 유해가 송환됐고, 억류됐던 미국인이 귀환했다.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으며….”

샌더스 대변인이 언급한 내용은 대부분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추진 이전에 이미 이뤄진 일이다. 이 밖에 북한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 실험장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쇄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충분한 진전’이 없다며,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전격 취소했다. ‘따뜻하고 긍정적인’ 편지와 정권 수립 70주년(9월9일)을 기념해 열린 군사 퍼레이드에서 핵미사일이 등장하지 않은 것을 빼곤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달라진 것은 ‘정세 판단’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10일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북한이 건국 70주년을 기념하는 군사 퍼레이드를 했다. 그간 군사 퍼레이드 때마다 선보였던 핵미사일은 없었다. 행사의 주제는 평화와 경제개발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핵미사일을 등장시키지 않은 것이라고 본다.’(미국 뉴스 채널 ) 이건 아주 크고 대단히 긍정적인 입장이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감사한다. 우리 두 사람이 (우리를 비판하는) 모든 사람이 잘못됐다는 점을 증명할 것이다. 서로에게 호감을 가진 두 사람의 좋은 대화보다 나은 것은 없다! 내가 취임하기 전보다 훨씬 상황이 나아졌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전보다 한반도 상황은 분명 나아졌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첫해인 지난해와 견줘보면, 상황은 더욱 극적으로 나아졌다. 지난해 9월3일 북한은 6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9월9일엔 김정은 위원장 주재로 이를 자축하는 대규모 연회를 열었다. 9월11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추가 대북제재 결의(2375호)를 채택하기에 앞서 북한 외무성은 성명을 내어 “세계는 우리가 미국이 생각조차 못하는 강력한 행동 조치를 연속적으로 취하여 미국을 어떻게 다스리는가를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어떤 최후 수단도 불사할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을러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트럼프의 본능이 대화 분위기 만들다 </font></font>

실제 북한은 지난해 9월15일 미국령 괌을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 12형’ 시험발사에 나섰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9월19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 완전 파괴’ 발언을 내놨고, 김 위원장은 이틀 뒤인 9월21일 국무위원장 명의의 성명에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 조치’를 경고했다. 미국은 23일 밤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B-1B 공중폭격기와 F-15C 전투기를 사상 처음 북한 쪽 동해 공역까지 출동시키는 무력시위를 벌였다. 일촉즉발의 나날이었다.

“북한에 대해선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본능이 대체로 맞아떨어졌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보좌진이다.”

모턴 핼퍼린 전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은 9월11일 한반도 전문매체 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지난해 위기 국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위협과 비아냥으로 일관했다. 무분별했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엔 ‘북한의 핵 위협이 사라졌다’고 선언했다. 성급했다. 그럼에도 핼퍼린 전 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협을 낮추고 비핵화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그간 사려 깊은 움직임을 보여왔다”며 “더욱 중요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변 보좌진과 의회의 공화·민주 양당, 워싱턴의 외교정책 전문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렇게 행동해왔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주류 외교·안보 전문가 그룹에서 나온 보기 드문 긍정적 반응이다. 핼퍼린 전 실장은 린든 존슨 행정부 시절인 1967년 최연소(당시 29살) 국방부 국제안보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뒤, 리처드 닉슨·빌 클린턴·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두루 요직을 거쳤다. 그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북-미 협상이) 현재의 교착상태에서 빠져나오려면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정가에 만연한 회의적 시선을 계속해서 무시할 필요가 있다. 지난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했다는 조건 없는 종전선언을 재확인하고, 북한이 핵·미사일 시험 유예를 지속하는 한 대규모 군사훈련 중단 조처를 유지해야 한다. …대규모 군사훈련 중단 조처는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중단 조처에 대한 합리적인 양해 조처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가 제안했던 이른바 ‘동결 대 동결’(쌍중단) 조처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간 회의론자들은 북한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일부 비판이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은 근본적인 문제를 풀고, 오랜 기간이 걸릴 진지한 협상을 촉발할 좋은 방안이었다. (6·12 정상회담 이후) 실제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북-미는 ‘쌍중단’에 합의했다. 협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밝혔고,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북-미 관계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지속가능한 평화체제와 체제 안전 보장도 약속했다. 무엇보다 “새로운 북-미 관계가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임을 확신하는 동시에 상호 간 신뢰 구축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점에 인식을 함께했다. 비핵화가 이뤄져야 평화가 올 수 있다던 기존 틀에서 벗어나, 평화로 핵무장의 필요성을 없애면 비핵화를 이룰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에 합의한 셈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실무협상이 시작되자 미국 쪽 태도가 바뀌었다. 핼퍼린 전 실장은 “정상회담 결과를 바탕으로 북-미 양국 외교관들은 두 지도자가 합의한 광범위한 원칙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협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보좌진이 대통령의 입장을 근본적으로 뒤바꿔, 평화 논의에 앞서 비핵화를 요구했다”고 짚었다. 지난 석 달여 북-미 협상이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이유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또다시 구원 등판한 문 대통령</font></font>
’김정은 위원장이 내 임기 안에 비핵화를 원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6일 몬태나주 빌링스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위원장이 내 임기 안에 비핵화를 원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6일 몬태나주 빌링스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미가 삐걱거리자, 이번에도 남북이 나섰다. 9월5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끄는 남쪽 특별사절단을 만난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크게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 위험과 전쟁의 공포를 완전히 들어내자고 했다. 둘째, 이 땅을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나가자고 했다. 셋째, 비핵화 실현을 위해 북과 남이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나가자고 했다.

비핵화를 위한 남북의 노력은 이미 진행 중이다. ‘무력 충돌 위험’과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실질적 군축이 전제돼야 한다. 이미 일정한 합의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정의용 실장은 9월13일 열린 서울안보대화 기조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특사단 방북 계기에 남북은 또 하나의 중요한 합의를 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군사 분야에서의 포괄적 협력 방안에 관한 협의를 다음주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종결짓고 상호 군사적 신뢰 구축과 무력 충돌 방지에 관한 합의를 도출하도록 적극 추진하기로 한 것입니다. …남과 북은 전세계에서 가장 화력이 집중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우발적인 무력 충돌로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는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4·27 판문점선언에서도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나갈 것”(선언문 2항)이라고 밝혀 적었다. 군사적 긴장이 낮아지면, 남도 북도 중무장할 필요가 없어진다. 북한이 핵무장을 시작한 게 남북 간 재래식 군비경쟁에서 밀린 시점과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북한의 비핵화를 앞당기는 촉매가 될 수도 있다. 남은 건 ‘평화의 터전’을 만드는 일이다. 북한의 핵무기도, 미국의 핵 위협도 없어야 한다. 결국 북-미 협상에 달렸다.

9월5일 남쪽 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 첫 임기 안에 북-미 간 오랜 적대적 역사를 청산하고 비핵화를 실현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비핵화의 시한을 못 박은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6일 몬태나주 빌링스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연단에 올라오기 직전에 김정은 위원장이 나에 대해 대단히 좋은 발언을 했다고 들었다. 김 위원장이 내 임기 안에 비핵화를 하기 원한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아주 좋은 말”이라고 반겼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9월 말엔 뉴욕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그 너머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기다리고 있다. 다시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주춤했던 ‘한반도 냉전 해체 프로젝트’에 새로운 동력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미 ‘선 비핵화, 후 평화협상’ 고수할까 </font></font>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게 협상이다. 줄 것은 주지 않으면서, 받을 것만 요구하면 협상은 깨지기 마련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9월10일 등과 한 인터뷰에서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당연히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열어놓은 문을 통과하는 건 북한이 스스로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 조처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과 달리, 여전히 ‘선 비핵화, 후 평화협상’론을 고수하는 셈이다. 핼퍼린 전 실장의 조언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적 보좌진’을 무시하고 ‘본능’에 충실할 수 있을까? 향후 미국 정국을 가를 분수령이 될 중간선거(11월6일)는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9월11일 국무회의 머리발언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과 6월 북-미 정상회담에서 남·북·미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적대관계 종식에 합의했습니다. …이제 북한이 보유 중인 핵을 폐기하는, 한 차원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려면 다시 한번 북-미 양 정상 간의 통 큰 구상과 대담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북한은 핵 폐기를 실행해야 하고 미국은 상응 조치로 여건을 갖춰줘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양국은 70년의 적대관계에서 비롯된 깊은 불신을 거둬내야 합니다. 북-미 간의 진정성 있는 대화가 조속히 재개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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