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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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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은 평화로 가는 ‘킹핀’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이 말하는 남북관계와 북-미 협상의 전망…

“종전선언은 비핵화와 체제 보장의 핵심 고리”
등록 2018-09-11 13:07 수정 2020-05-03 04:29
“종전선언은 본격적인 비핵화 프로세스를 추동시킬 수 있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한겨레21>과 만나 비핵화의 첫걸음과 종전선언을 맞교환해 북-미 협상의 동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승화 기자

“종전선언은 본격적인 비핵화 프로세스를 추동시킬 수 있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한겨레21>과 만나 비핵화의 첫걸음과 종전선언을 맞교환해 북-미 협상의 동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승화 기자

4·27 남북 정상회담과 6·12 북-미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역동적인 정세가 주춤한 상태다. 최고지도자 사이에 합의한 원칙을 이행하기 위한 실무협상이 출발부터 삐걱거린 탓이다. 70년 세월 켜켜이 쌓인 불신을 넘어야, 새로운 관계의 문이 열린다.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대북 특별사절단 카드를 꺼내든 이유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9월6일 브리핑에서 밝힌 방북 결과를 보면, ‘운명의 9월’을 향한 첫 단추는 일단 잘 끼워진 것으로 보인다.

은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을 만나, 남북관계와 북-미 협상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인 김 원장은 참여정부 시절 통일부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내는 등 학계와 정책 현장의 경험을 두루 갖춘 대표적인 남북관계 전문가다. 인터뷰는 9월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집무실에서 1시간 남짓 이뤄졌으며, 특별사절단 방북 결과가 나온 9월6일 오후 전화 인터뷰를 추가로 했다.

 

다시 시작된 남·북·미 3각 정상 논의특사단 방북 결과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교착 국면을 대화 국면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특사단 방북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통화를 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전한 메시지를 정의용 실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전달했다. 김 위원장의 답신은 미국 쪽에 전달된다. 상반기 역동적 정세를 촉발한 남·북·미 3각 정상 논의가 다시 시작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지난 3월5일 특사단 방북과 닮은꼴로 보이는데.

특사단 구성은 같지만, 정세가 많이 달라졌다. 3월엔 만남 자체가 중요했다. 하지만 남북과 북-미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원칙에 합의했고, 개별 의제로 논의가 넘어온 상황이다. 북한과 미국 사이 우선순위에 차이가 생겼고, 이를 좁혀야 한다는 점에서 3월보다 어려운 상황이었다. 협상 속도도 너무 떨어져 있었다. 정상들의 의사소통이 다시 필요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정 실장을 단장으로 한 대북 특사단의 과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9월 중’ 열기로 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세 번째 정상회담 일정과 의제를 확정해야 했다. 특사단 방북을 통해 남과 북은 정상회담을 9월18~20일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정 실장은 의제와 관련해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 및 공동번영을 위한 문제, 특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실천적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까지 부른 북-미 사이 난기류를 돌파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특사단에 부여된 임무였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정 실장 일행에게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시험장 폐기는 비핵화를 위한 진정 어린 조처였다고 새삼 강조했다.

특사단 방북으로 북-미 협상이 재개될 수 있을까.

6·12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최고지도자 사이에는 비핵화와 체제 안전 보장을 맞바꾼다는 원칙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를 실무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협상 과정에서 상대방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교착상태가 길어지면 대화의 동력이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특사단을 통해 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를 본인 입으로 재확인했다. 종전선언도 한-미 동맹과 분리시켰다.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 쪽 거부감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의 문을 열기 위해 실무적으로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중요하다. 협상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북-미 간 ‘톱다운 방식’이 가진 한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이 9월5일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사절 자격으로 방북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귀엣말을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청와대 제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이 9월5일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사절 자격으로 방북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귀엣말을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다. 청와대 제공

북-미 협상이 지지부진했던 이유를 따져보자.

세 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이른바 ‘톱다운 방식’이 가진 한계다. 정상 간 논의에서 실무협상으로 전환하면서 쟁점에 대한 차이가 생겨났다. 오래되고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둘째, 북-미 간 오해와 불신이 깊다. 비핵화와 체제 안전 보장을 맞바꾸는 과정에서 기술적 쟁점에 대한 차이 때문에 어려움이 생겼는데, 교착상태가 지속되다보니 상대방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북한 처지에선 제재를 계속 당하는데, 미국이 과연 ‘적대시 정책’을 포기할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미국은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조처를 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서로 믿지 못하니, 신뢰 구축을 위한 초기 단계 이행 조처조차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 포기 의지에 근본적 의문을 다시 던지게 된 게다.

가장 중요한 건, 트럼프 정부의 정책 결정 구조가 갖는 한계다. 정상적 방식으로 정책 결정을 하면, 그 판단에 따른 정책의 우선순위와 파급효과를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자기모순이 많아 보인다. 신뢰 구축과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는데, 제재를 유지·강화하면 충돌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진행하겠다는 건데, 이는 자기모순이어서 상대방을 설득하기 어렵다. 지금은 힘으로 하는 국면이 아니다. 협상 국면으로 넘어왔다. 협상은 줄 것은 주고, 받을 건 받는 것이다. 받을 거만 요구하고, 줄 건 주지 않으면 협상이 안 된다. 새로운 관계, 새로운 출발을 하기로 했으면 과거 관성에서 탈피해야 한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전격 취소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차례 중국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현했다. 미-중 무역갈등 속에 중국이 북한에 압력을 넣어 북-미 협상판을 흔들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다자주의적 접근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비호감’도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어왔다.

이와 관련해 정의용 실장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신뢰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최근 북-미 간 협상이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며 “이러한 신뢰 기반하에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북한과 미국 간에 70년간의 적대 역사를 청산하고 북-미 관계를 개선해나가면서 비핵화를 실현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고 정 실장은 전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협상의 파트너는 트럼프 대통령과 자신이란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미 간 양자 담판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이다. 이는 예상과 달리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일(9월9일)을 맞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대신 당 서열 3위이자 시 주석의 측근인 리잔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방북하기로 한 것과 맞물려, 미국 쪽 우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가장 크게 우려를 표해온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과 ‘속도’ 문제를 특정해, 김 위원장이 직접 자신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는 점도 눈길을 끌 만하다.

 

미-중 갈등 한반도 문제와 분리해야‘중국 변수’에 대한 미국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6·12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중국이 개입해서 북한의 태도가 소극적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오해를 털어내는 게 필요하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반도 문제에 연계되면 출구를 마련하기 어렵다. 북핵 문제에서도 중국의 역할이 있고, 한반도 평화체제에서도 중국을 배제할 수 없다. 미-중 협력이 이뤄지면 제일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미-중 갈등과 한반도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미국이 얻는 것도 있지만, 잃는 것도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미-중 간 일종의 상호의존도라는 것이 쉽게 대체 가능한지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당장 미국 내부적으로 소비재 가격 인상 등의 현상이 나타날 것이고, 언젠가는 일자리에도 악영향을 끼치는 시점이 올 것이다.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중간선거(11월6일) 이후까지 내다보는 폭넓은 시각과 판단이 필요하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의 시한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안에’라고 밝힌 것은, 그만큼 북한이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상황에선 북한이 일정한 조건을 내걸더라도, 최소한 국제사회가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비핵화 방법론에 대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미국도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내 여론을 설득할 수 있다. 설득의 명분을 북한이 어떻게 제공하느냐가 중요하다.

정의용 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유엔 총회 참석 가능성에 대해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9월 이후 정세를 어떻게 전망하나.

정치학에 ‘킹핀 이론’이란 게 있다. 정세를 볼 때, 복잡한 내용 가운데 핵심적인 고리를 쓰러뜨리고 나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해결된다는 얘기다. 돌이켜보면, 평창 프로세스를 가져온 ‘킹핀’은 지난해 문 대통령이 강조한 ‘올림픽 휴전’이었다. 북이 변화할 수 있는 명분과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대북 특사가 갔을 때 북-미 대화를 성사시킬 수 있었던 핵심 고리이기도 하다.

지금 시점에서 ‘킹핀’은 종전선언이다. 종전선언은 비핵화와 체제 안전보장의 교환 구도에서 핵심 연결고리다. 안전보장을 북-미 관계 정상화와 평화 프로세스 둘로 나눴을 때, 양쪽 모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은 평화로 가는 잠정 조처이자, 적대관계 종식이란 폭넓은 성격까지 띤다.

종전선언을 하면, 관계 정상화와 함께 제재 완화 조처도 이어져야 한다. 미국의 대북제재 자체가 적대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전선언은 본격적인 비핵화 프로세스를 추동할 수 있다. 비핵화의 첫걸음과 종전선언을 교환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교환이 늦어지면서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관계, 새로운 출발에 대한 상호 이해를 다시 확인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말부터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했다. 풍계리·동창리 핵·미사일 시설도 폐기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제재 결의로 요구한 사항을 이행한 셈인데.

안보리 결의 내용에는 북한의 행동에 따라 제재를 강화 또는 완화할 수 있다고 돼 있다. 6·12 북-미 정상회담 때, 중국 외교부는 ‘대북제재 잠정 중단 또는 해제’를 언급하면서 이 조항을 언급한 바 있다. 안보리 결의에 대한 국제법적 해석에 따르면, 대북제재 조정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8월 초 중국을 방문해 한반도 전문가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중국이 대북제재 조정과 관련해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게 가능할 때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반응을 보이더라. 결국 미국의 결정에 달렸는데, ‘미국이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국이 노력해달라’는 얘기였다. 미국의 독자적 대북제재가 여전히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긴 하지만, 안보리 차원에선 대북제재 조정을 논의할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특사단 방북으로 남과 북은 4·27 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정상회담 전에 열기로 했다. 또 현재 남북 사이에 진행 중인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대화를 계속 진전시켜나가고, 정상회담을 계기로 상호 신뢰 구축과 무력 충돌 방지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에 합의하기로 했다. 8월 말 유엔사령부가 가로막고 나서면서 무산됐던 남북 철도 공동점검을 비롯해 산적한 남북관계 현안도 정상회담에서 다뤄야 할 의제다. 남북이 앞서나가며, 북-미 교착 국면을 풀어내야 한다.

연락사무소 설치 대북제제 대상 아냐남북관계 진전에 대해 미국 쪽의 우려가 있는 것 같다.

연락사무소 문제는 대북제재 대상이 아니다. 정상회담 전에 열기로 했으니, 그렇게 되리라 본다. 남북 철도 공동점검을 유엔사가 가로막은 건 심각한 사태다. 유엔사가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미국 정부가 유엔사란 형식을 통해 막은 것이다. 유엔사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문제제기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심각하고 우려할 만한 사태다. 분쟁을 겪고 있는 나라 가운데 유엔 평화유지군이 주둔하는 나라는 많다. 유엔군이 분쟁 당사자 사이의 접촉이나 협상, 교류를 막는 경우는 없다. 권한을 벗어나는 일이다. 미국이 문제가 있다고 느낀다면, 공식 통로를 거쳐 우리 정부에 양해를 구해야지, 유엔사를 통해 남북교류에 개입한 건 심각한 문제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엄중하게 유감을 표명해야 할 사태다. 앞으로 이런 문제가 재발하면 안 된다. 자칫 한-미 관계를 악화할 수도 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세 번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북핵 문제는 단판의 승부가 아니다. 한번에 끝날 협상이 아니다. 왜? 관계가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계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우선순위를 둘러싼 북-미 협상은 너무나 소모적이었다. 신뢰를 쌓아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정세도 하루아침에 좋아지지 않는다. 오랜 대립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등 한두 번의 계기를 거친다고 한번에 바뀌지 않는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북-미 관계 진전은 북한에도, 미국에도 필요하다.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미국 내부적으로 보면, 성과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다보니 새로운 정책보다는 과거의 관성에 머무르려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 차원에서 다가오는 정상회담이 중요하다. 우리가 다시 한번 김 위원장의 발언을 통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미국 쪽에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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