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으로 중산층 인구가 늘면서 외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2017년 8월21일 중국 관광객들이 미국 뉴욕의 증권거래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트럼프 슬럼프.’
2016년 11월8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으로 향하는 외국 관광객이 갑작스레 큰 폭으로 줄면서 생긴 말이다. 취임 일주일 남짓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른바 ‘무슬림 금지령’이라는 외국 테러범 미국 입국 방지를 위한 대통령 행정명령 13769호에 서명하면서 사태가 더욱 심각해졌다. 영국 일간지 은 지난해 2월28일치 기사에서 국제출장여행협회(GBTA) 자료의 내용을 따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 관광업계가 입은 직간접적 손실은 1억8500만달러(약 2100억원)에 이른다”고 전했다.
외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2009년 꾸려진 반관반민 단체인 ‘브랜드 유에스에이’가 지난해 3월 내놓은 여론조사에서도 ‘트럼프 슬럼프’는 여실히 드러났다. 이 단체가 캐나다·독일·영국·프랑스 등 미국 방문자가 많은 11개국에 한 설문조사 결과,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앞으로 1년 안에 미국을 방문할 생각이 없다’는 응답이 10개국에서 높게 나타났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장벽’을 설치하겠다고 을러댄 멕시코에서 반감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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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거나 ‘더 가고 싶어졌다’는 응답이 높게 나온 나라가 있다. 바로 중국이다. 이유가 뭘까? 미국외교협회(CFR)는 지난해 4월19일 낸 자료에서 “미국의 대통령이 누구냐와 관계없이 중국 관광객의 미국 선호도는 지속적으로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2015년 미국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은 전년 대비 18% 늘어난 260만 명에 이른다”며 “이어 2016년이 ‘미-중 관광의 해’로 지정돼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한 대대적인 홍보행사가 마련돼 관광객 증가세를 이어갔다”고 전했다.
실제 중국에서 발행하는 영자 일간지 가 2017년 8월15일 미 상무부 보고서 내용을 따 전한 내용을 보면, 2016년 미국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은 297만여 명, 이들이 소비한 금액은 330억달러에 이른다. 관광객 규모는 전년 대비 15%, 소비한 금액은 9% 늘었다. 미 상무부는 보고서에서 “중국 관광객 규모는 13년 연속 성장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12차례는 두 자릿수 성장세를 유지했다”며 “폭발적 성장세란 표현도 과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런 성장세가 이어지면, 2022년께 미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이 454만 명에 이를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미국을 향하는 중국 관광객의 급격한 증가세는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은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맞물려 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가처분소득이 많은 중산층 인구가 늘면서 소비재와 관광 등 여가생활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보고서를 보면, 1999년까지만 해도 중국 인구의 단 3%(약 2900만 명) 정도가 중산층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가파른 경제성장세가 이어지면서, 2015년을 기준으로 중국의 중산층 규모(1억900만 명)는 미국(9200만 명)을 뛰어넘었다.
해외관광 통제로 무역 보복상승세는 가파르게 이어졌다. 홍콩의 일간지 는 2016년 11월3일치에서 “2030년까지 중국 인구의 3분의 1가량이 중산층에 진입할 것”이라며 “이들은 현재 유럽연합 수준의 소비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산운용사 ‘크레디스위스’는 지난해 말 내놓은 보고서에서 “전세계 중산층 인구(약 10억500만 명) 가운데 35%가량이 중국인”이라고 전했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 기관지 도 지난 1월9일치에서 “중국 중산층 인구가 3억 명을 돌파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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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기이한 무기-관광객’. 미국 외교·안보 전문 정보분석업체 ‘스트랫포’가 지난 7월9일 펴낸 보고서 제목이다.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자국 관광객에 대한 규제·통제가 중국 당국의 중요한 국정운영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사드 보복’으로 우리도 익히 경험한 바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중국이 미국에 대한 경제 보복의 하나로 ‘관광객’ 카드를 휘두를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 도입 이후에도 해외관광은 한동안 평범한 중국인에겐 ‘남의 떡’이었다. 정부 관료와 기업인, 유학생 등 소수만이 외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하지만 꾸준한 경제성장과 함께 점차 외국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 중국 정부는 1995년 중국관광청(CNTA) 주도로 이른바 ‘도착 허용국 지위’(ADS) 정책을 도입했다. 당국이 선정한 관광업체가, 당국이 허용한 국가를 대상으로 관광객을 모집해 단체 패키지 관광을 갈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중국인 해외관광의 약 44%가 이런 방식으로 이뤄진다.
관광업은 미국 전체 고용의 5%현재 중국에는 2만5천여 곳의 여행업체가 있지만, 이 가운데 해외관광 판매 허가를 받은 업체는 2천여 곳에 그친다. 중국 관광객에게 해외여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국계 업체는 없다. 특히 5대 중국 관광업체 가운데 3곳이 국영기업이다. ‘스트랫포’는 보고서에서 “2017년 말 현재 모두 146개국 관광이 허용됐다”며 “중국 정부가 특정 국가의 단체관광을 허용하지 않으면 해당 국가로 향하는 중국 관광객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업체는 “현재 중국에서 여권을 발급받고 해외여행에 나서는 인구는 전체의 10%(약 1억3790만 명) 남짓에 불과하다”며 “2025년에는 적어도 연간 2억2천만 명가량의 중국인이 해외여행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 무역대표부(USTR)의 자료를 보면, 2016년 기준 미-중 교역 규모는 6485억달러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상품 교역에선 수출이 1156억달러, 수입이 4626억달러다. 미국의 적자 규모가 3470억달러에 이른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전쟁’을 불사할 만도 하다. 반면 서비스 교역에선 수출이 542억달러, 수입이 161억달러다. 미국이 381억달러 흑자다. 서비스 교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로 관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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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역기구(WTO) 자료를 보면, 2005년 268억달러 규모였던 중국 해외관광 시장은 2016년 2611억달러 규모로 10배가량 커졌다. 관광업계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로, 전체 고용의 5%를 차지한다. 전반적인 관광 약세 속에 중국 관광객이 급감하면 미국 경제에 상당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인터넷 매체 가 지난 4월12일 일찌감치 “대중 무역 보복으로 미국 방문을 원하는 중국인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무역 적자 폭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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