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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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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밀레니얼 사회주의자

미 민주당 경선서 10선 의원 꺾은 바텐더 출신 28살 라틴계 여성…

반트럼프 바람 타고 ‘바꿔야 한다’ 열망 확산
등록 2018-07-10 17:15 수정 2020-05-03 04:28
지난 6월26일 미국 연방 하원의원 뉴욕주 제14번 선거구에서 10선의 조 크롤리 의원을 꺾고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테즈 후보(가운데)가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26일 미국 연방 하원의원 뉴욕주 제14번 선거구에서 10선의 조 크롤리 의원을 꺾고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테즈 후보(가운데)가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4년 중임제 국가인 미국에선 이른바 ‘중간선거’를 치른다. 현직 대통령 임기 2년째인 11월 첫 번째 화요일(올해는 11월6일)에 연방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 1을 비롯해 주지사와 주의회 선거 등이 한꺼번에 치러진다. 사실상 현역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다.

지난해 1월 취임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35~45% 수준을 오락가락하고 있다. 지난 7월1일 공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의 평균 지지율은 약 42%다. 집권 1기 중간선거를 앞둔 1994년 7월 평균 지지율이 43%에 그쳤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그해 11월 공화당에 상하 양원을 내주었다.

민주당 상하 양원 탈환 가능성

현재 미 연방의회는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 435명 정원인 하원에선 공화당이 236석으로, 민주당보다 43석 많다. 100명 정원인 상원은 공화당이 51석, 민주당이 49석(민주당 성향 무소속 2명 포함)으로 박빙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비교적 낮은 지지율을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좌충우돌’을 지속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탈환할 가능성을 점쳐볼 만도 하다. 다만 한 가지 눈여겨봐야 할 게 있다.

통신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입소스에 맡겨 7월3일 내놓은 최신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38%)과 공화당(30%)의 지지율 격차는 8%포인트다. 흥미로운 점은 의회의 직무능력에 대한 지지율 조사 결과다. 의회가 일을 ‘잘하고 있다’(25%)는 응답보다 ‘못하고 있다’(61%)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다. 공화당 지지자의 39%가 의회에 후한 점수를 줬지만, 민주당 지지자는 단 16%만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바꿔야 한다’는 열망이 민주당 지지자층에서 훨씬 강하다는 얘기다. 지난 6월26일 치른 연방 하원의원 뉴욕주 제14번 선거구 민주당 후보 경선 결과를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론조사가 항상 정확한 건 아니다. 여론조사 때는 적극 투표층을 가상해서 설문을 진행한다. 우리는 적극 투표층 자체를 바꿨다. 그게 모든 걸 변화시켰다. … 투표 당일 마감을 8분 정도 앞두고 나는 브롱크스의 내 집 근처에 있었다. 10대로 보이는 친구 2명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방금 당신을 찍고 왔어요.’ 내가 ‘몇 살이세요?’ 물었더니, ‘19살이요’라고 하더라. 대선도 아닌 중간선거 기간에, 그것도 본선도 아닌 당내 경선에 19살 유권자가 참여했다면 말 다한 것 아닌가?”

뉴욕주 14번 선거구 경선에서 승리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테즈(28) 후보는 6월29일 《CBS》 방송 심야 토크쇼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경선 3주 전까지만 해도 그는 여론조사에서 경쟁 상대인 조 크롤리(56) 후보에게 36%포인트나 뒤처져 있었다. 하지만 최종 개표 결과는 전혀 달랐다. 오카시오 코테즈가 57.48%를 얻어, 크롤리(42.52%)를 15%포인트쯤 앞질렀다. 기적 같은 역전승이었다.

오카시오 코테즈는 1989년 10월13일 뉴욕시 브롱크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게르지오 오카시오는 브롱크스 태생의 건축가였고, 어머니 블랑카 코테즈는 푸에르토리코에서 태어났다. 그가 어릴 때 가족은 맨해튼 교외 중산층 거주지역인 요크타운 하이츠로 이사했지만, 그는 친척이 몰려 사는 브롱크스를 자주 드나들며 성장기를 보냈다.

2007년 요크타운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보스턴대학교에 진학해 경제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보스턴대는 미 동부 지역 사립 명문 가운데 하나다. 올해 평균 수업료는 5만2082달러(약 5800만원), 여기에 주거비(1만5270달러)와 책값 등 기타 비용까지 더해 대학 쪽이 추산한 1년 학비는 7만302달러(약 7900만원)에 이른다. 보스턴대는 비싼 학교다.

오카시오 코테즈가 대학 2학년 때인 2008년 아버지가 폐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집안 형편이 곤두박질쳤다. 그해 미국은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파동 속에 전세계적 금융위기의 진앙이 됐다. 금융권의 눈먼 탐욕에 성난 시위대가 뉴욕의 주코티 공원을 점령한 동안에도 미국 전역에서 제때 대출금을 갚지 못한 이들이 집을 압류당하는 사태가 속출했다. 오카시오 코테즈의 어머니가 집을 지키기 위해, 청소미화원과 스쿨버스 운전기사로 ‘투잡’을 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 이다. 오카시오 코테즈는 여전히 갚지 못한 학자금 대출이 상당할 게다.

2011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고향인 브롱크스로 돌아왔다. 맨해튼 이스트 16번가에 자리한 테킬라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한편, 라틴계 교육단체에서 자원활동을 했다. 2012년엔 시 정부의 벤처기업 지원제도에 응모해 어린이책 전문출판사를 창업하기도 했다. 젊은 그는 활기차게 삶을 개척해나갔다.

바텐더 출신의 샌더스 지지자
2016년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2018년 중간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후보 지원유세를 하고있다. 연합뉴스

2016년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2018년 중간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후보 지원유세를 하고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선거의 해가 다가왔다. 오카시오 코테즈는 민주당 경선 참여를 선언한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주)의 뉴욕주 선거대책본부에 자원활동가로 참여했다. 금융위기와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을 경험한 젊은이들이 미국 전역에서 ‘버니 열풍’을 만들어냈다. 기득권은 완강했다. 주류는 흔들릴 줄 몰랐다. 치열한 접전 끝에 2016년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결정됐다.

오카시오 코테즈는 ‘여행’을 떠났다. 예산을 아끼기 위해 주민들이 먹는 식수가 오염된 것을 방치해 전국적인 문제로 떠오른 미시간주 플랜트를 둘러봤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송유관 공사를 막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온 활동가들이 캠프를 차린 노스다코타주 ‘스탠딩 록’에서 밤을 지새웠다. 샌더스 후보 뉴욕주 선거대책본부 참여자들이 대선 뒤 설립한 정치단체 ‘완전 새로운 의회’(BNC)가 연방 하원의원 출마를 권유했을 때, 그가 망설이지 않은 이유다. 그는 6개월여 전 바텐더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저 같은 여성은, 공직에 출마해선 안 되는 부류입니다. 저는 부유하거나 권력이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엄마는 푸에르토리코에서 왔고, 아빠는 사우스 브롱크스 출신입니다. 저는 사는 곳이 어딘지에 따라 한 사람의 미래가 달라지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이름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테즈입니다. 저는 교육운동가이자 활동가이자 노동계급에 속하는 뉴욕 사람입니다.”

오카시오 코테즈는 ‘변화를 위한 용기’란 제목의 홍보 동영상에서 자신이 민주당 경선에 나선 이유를 “노동자 가정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는 “거대 기업에서 정치자금을 받는 정치인은 우리 동네에 살지도 않고, 자녀를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보내지도 않는다. 우리가 마시는 식수, 우리가 마시는 공기도 공유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우리 중 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하원 서열 4위의 몰락

젊은 유색인종 여성 노동자가, 나이가 두 배나 많은 백인 남성 현역 의원과 맞섰다. 어려운 싸움일 수밖에 없었다. 경쟁 상대인 크롤리 후보는 불과 24살 때인 1986년 뉴욕주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승승장구한, 민주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1998년 뉴욕주 7번 선거구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2004년 이후 단 한 차례도 당내 경선을 치르지 않았다. 경쟁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크롤리 의원은 2012년 선거구 재획정으로 14번 선거구로 옮겨온 뒤에도 선거 때마다 70~80%를 넘나드는 득표율을 올리며 10선 고지에 올랐다. 그는 낸시 펠로시(캘리포니아주·78) 원내대표, 스테니 호이어(메릴랜드주·79) 원내총무, 제임스 클라이번(사우스캐롤라이나주·77) 원내 부대표 등 ‘70대 3인방’에 이어 민주당 하원의원 서열 4위다. 민주당이 올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탈환하면, 그가 하원 의장이 될 것이란 전망이 유력했다. 크롤리 의원의 경선 탈락이 민주당 주류 세력에 던진 파문이 클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애초 경선 초기만 해도 민주당 주류의 ‘힘’은 막강해 보였다. 미국 최대 노조인 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AFL-CIO) 뉴욕지부를 포함해 24개 노동단체를 비롯해 수많은 시민사회단체가 크롤리 의원 지지를 선언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와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을 비롯해 주의회와 시의회 현역 의원도 대거 지지 대열에 합류했다. 반면 오카시오 코테즈를 지지한 것은 풀뿌리 정치단체 무브온과 미국 민주사회주의자(DSA) 등 11개 진보 단체와 뉴욕주지사 민주당 경선에 도전장을 낸 배우 출신 신시아 닉슨 정도였다.

선거자금 모금 역시 10배쯤 차이가 났다. 통신사 는 6월27일 “지난 6월6일 현재 연방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보면, 크롤리 의원은 선거자금으로 약 330만달러(약 36억8800만원)를 모금했다. 오카시오 코테즈는 31만2천달러(3억5천만원)를 모금했다”고 전했다. 크롤리 의원은 2016년 선거 당시에도 298만달러를 모금했다. 부동산(32만5천달러), 보험(28만5천달러), 금융·투자(23만2천달러), 법률(17만9천달러) 업계 쪽에서 기부금이 집중됐다. 민주당 주류 정치인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오카시오 코테즈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택했다. “그들에게 돈이 있다면, 우리에겐 사람이 있다”는 구호를 내걸었다. 수많은 자원활동가가 브롱크스와 퀸스 일대 지역구를 돌았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선거 홍보물을 전달했다. 홍보물에는 공약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전 국민 의료보장 도입, 주거권은 인권, 연방정부 고용안정 보장, 최저임금 시급 15달러 실현, 공립대학·직업학교 무상교육, 정치자금법 개혁, 금융권 규제법령 부활, 군축을 통한 평화경제 실현, 강력한 총기 규제, 이민 단속 전담기구인 이민세관단속국(ICE) 폐지, 기후변화 적극 대응….’

미국 전역으로 번지는 ‘오카시오 현상’

지역구의 달라진 인구 특성도 오카시오 코테즈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미 인구통계국이 2016년 시행한 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뉴욕주 14번 선거구의 인종 구성은 △라틴계(49.8%) △백인(45.3%) △아시아계(16.2%) △아프리카계(11.3%) 순이다. 같은 자료를 보면 이 지역의 실업률은 9.1%, 가구당 평균 소득은 4만6990달러(약5250만원)다. 저소득 유색인종 노동자 가구가 많다는 뜻이다.

그것뿐일까? 오카시오 코테즈는 선거구 전역에서 고른 지지율을 기록했다. 크롤리 의원의 지지 기반이자, 라틴계 주민이 상대적으로 적은 퀸스 북서부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을 경험했고, 학자금 대출에 허덕이면서도 ‘버니 샌더스 현상’을 공유했던 백인 청년들도 대거 지지 대열에 합류했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인터넷 매체 는 7월1일 “생김이 비슷하고 같은 언어(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후보에게 표를 준 사람들도 있지만, 생각과 처지가 같고 추구하는 바를 공유하는 후보에게 표를 준 사람도 있다”고 표현했다. ‘오카시오 코테즈 현상’이 미국 전역에서 감지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앞서 지난 5월12일 치러진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지역 민주당 경선에서 ‘민주적사회주의자’(DSA) 소속 서머 리(30) 후보와 새라 이나모라토(32) 후보가 각각 승리했다. 같은 주 필라델피아에서도 역시 2명이 후보 자격을 얻었다. 이 가운데 3명은 공화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지역이어서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다.

“단 한 사람도 가난에 찌들어선 안 된다”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선 진보적 사회운동가 카라 이스트먼(45)이 역시 현역 하원의원인 브래드 애슈퍼드(68)를 누르고 후보로 선출됐다. 대표적 인권단체인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 회장 출신 벤저민 젤러스 후보가 메릴랜드주 주지사 후보 경선에서 승리했고, 20년째 공화당이 장악한 아이다호주 주지사에 민주당 후보로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 여성인 폴렛 조던(38)이 선출됐다. 칼럼니스트 미셸 골드버그는 지난 6월30일 일간지 에 기고한 칼럼에서 “밀레니얼(1980~90년대 태어난 사람) 사회주의자가 등장했다”고 표현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인터넷 매체 는 6월28일 “트럼프 시대를 맞아 민주사회주의자 회원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며 “2016년 11월 5천 명가량이던 회원수가 현재 전국적으로 4만 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뉴욕주 14번 선거구는 대표적인 ‘민주당 텃밭’이다. 2016년 선거에서 크롤리 의원은 82.9%를 득표했다. 같이 치른 대선에서도 클린턴 후보 지지율이 77%에 이르렀다. 크롤리 의원에 앞서선 민주당 캐럴린 멀로니 의원이 거푸 5선을 한 바 있다. 경선 없이 공화당 후보가 된 앤서니 파파스 뉴욕 세인트존스대 교수(경제학)는 지역 정치권에서 거의 알려진 게 없는 인물이다. 오카시오 코테즈 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와 함께 의회에 입성할 ‘동지’는 얼마나 될까? 오카시오 코테즈 후보는 6월29일 《CBS》 방송에 출연해 ‘민주 적 사회주의’를 이렇게 풀었다.

“현대적이고, 도덕적이며, 부유한 미국 같은 사회에선 단 한 사람도 가난에 찌들어 살아가선 안 된다고 믿는다. 전 국민 의료보장은 인권 문제이며,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든 모든 아이가 대학이나 직업 교육을 원한다면 (무상으로) 교육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제도나 정책을 통해 주거와 음식을 제공한다면 아무도 노숙인으로 떠돌지 않을 것이며, 모두가 좀더 존엄한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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