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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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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바꾼 노다지의 꿈

버마 북부 파칸 폐광석 잇따른 붕괴 사고 사상자 수백 명, 옥광산 개발 정부 반군의 배후는 ‘마약왕’… 20~30대 광부 60~70% 마약에 빠져
등록 2016-02-26 02:19 수정 2020-05-03 04:28

지난 1월15일, 버마 북부 카친주의 옥광산으로 유명한 지역 파칸에 내무부 산하 ‘특별조사단’ 15명이 도착했다. 조사단은 옥광산에 이용되는 덤프트럭 다수가 중국 국경을 통해 불법으로 들어왔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제보’에 따라 밀수 트럭을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11월21일 파칸에서 폐광석 더미 붕괴 사고로 200여 명의 사상자가 나자 불법장비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조사단은 환경부 감독 아래 있었다. 환경부에서 내무부로 ‘윗선’이 바뀌었다는 건 트럭이든 옥이든 불법으로 국경을 들고 나는 물건을 조사할 의지가 ‘사실상 없음’을 표명한 것과 다름없었다. ‘2008 헌법’에 따라 내무부는 국방부, 국경부와 함께 군의 명령체계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 ‘군’이란 건 파칸의 옥을 대부분 몰래 내다 팔아 수익을 챙겨온 버마 최대 자본가 집단 중 하나다.
전세계 옥 90%가 생산되는 곳
파칸은 전세계 옥의 90%가 생산되는 곳이다. 세계 최고가의 옥, 제다이트(Jadite)가 이곳에서 나온다. 자원개발 투명성 문제를 조사해온 ‘글로벌 위트니스’가 지난해 발표한 탐사보고서는, 2014년 파칸 옥이 창출한 가치가 31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버마 국내총생산(GDP)의 약 54% 수준이고(세계은행 2014년 10월 발표 GDP 568억달러 기준), 정부 의료예산(2014년 3월 발표 680억달러 기준)보다 46배나 많다. 2014년 버마 수도 네피도에서 열린 ‘보석 엠포리엄’에서 가장 비싸게 팔린 옥은 1kg에 289만달러였다. 10만 명 이상이 국내피란민(IDPs·Internally Displaced Persons)으로 떠도는 카친주에서 이 돈은 병원 147개를 지원할 수 있는 규모다.
파칸의 옥이 처음부터 이런 규모의 이윤을 낸 건 아니었다. 군이 옥광산 개발에 참여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1989년 무장 반군 버마공산당(CPB)이 붕괴되면서 4개로 쪼개진 조직들은 정부군과 휴전을 맺기 시작했다. 와주군(UWSA·United Wa State Army)도 그중 하나다. 이것을 시작으로 1990년대 초반 총 17개 반군이 정부군과 휴전했다. 파칸에서 활동하던 카친독립군(KIA)도 1994년 2월 정부군과 휴전을 맺었다. 그 결과 파칸이 정부군 통치로 넘어갔다. 그리고 군은 옥, 금광, 목재 등 카친의 자원을 급격하게 개발하기 시작했다.
“(1994년) 휴전 이전에는 주민들이 손으로 ‘돌’(옥)을 주웠고 그걸로 먹고살았다. 누구는 부자가 되었고, 부자가 안 돼도 ‘돌’을 시장에 내다 팔면 다들 먹고살 만했다. 지금은 불가능한 얘기다.” 11월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 파칸 후보로 당선된 우틴소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말했다. 1994년 휴전 뒤 군부는 옥 채굴을 ‘기업화’하고 군과 친·인척, 휴전 그룹 그리고 버마판 재벌로 통하는 ‘크로니’(Crony)들에게 채굴권을 안겨줬다. 옥을 값진 돌로 떠받드는 중국은 거대 시장이 됐다.
이후 손으로 줍던 돌은 굴착기와 다이너마이트가 동원돼 파헤쳐졌고 호랑이까지 출몰했다던 정글은 다 벗겨졌다. 그리고 덤프트럭이 폐광석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그 폐광석 더미 속에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돌’을 향해 광부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예마제’(Yemase) 또는 ‘프리랜서’라고 불리는 이들은 전국에서 온 이주노동자인데 옥 채굴이 기업화되면서 몰려들게 됐다. 폐광석 더미는 종종 이들의 무덤이 됐다. 지난해 11월21일 새벽 3~4시께 60m 높이 폐광석 더미가 60~70개의 텐트 숙소를 덮치며 114명이 사망했고 100여 명이 실종됐다. 탐욕이 불러온 인재였고, 이건 20여 년간 파칸이 목격해온 일상이기도 하다.
유가족, 감히 보상 요구 못해
“붕괴 사고의 원인이 되는 폐광석을 쌓는 업체 가운데 와주군이 소유한 ‘야자타니’라는 업체가 있다.” 우틴소 의원은 버마 최대 반군 와주군 소유 기업에 대해 말했다. 옥광산 문제를 꾸준히 모니터해온 카친개발네트워킹그룹(KDNG)의 활동가 스티븐도 기자와 나눈 전화 및 전자우편 교신에서 야자타니를 우선 거론했다.
야자타니의 중심 배후 세력 가운데는 웨이 성 쾅이라는 ‘마약왕’이 있다. 2006~2007년 와주군 재정부장을 지낸 그는 미 국무부가 ‘마약 거래’ 혐의로 200만달러 현상금을 걸고 타이 정부가 1999년 10월 ‘부재 중 사형’을 선고한 국제적 마약왕이다. 최근에 그는 와주군의 궁전급 저택에서 두문불출하며 지내고 있다. 대신 1998년 세운 홍팡그룹을 통해 마약, 보석, 석유, 건축, 전자, 백화점 등 문어발식 사업을 탈 없이 펼치고 있다. ‘글로벌 위트니스’에 따르면 파칸의 주요 광산업체인 ‘미얀마 타 카웅 컴퍼니’를 비롯한 5개의 회사가 홍팡그룹의 ‘프런트 회사’다. 나머지 4개 회사 중 하나가 11월 붕괴 참사를 낳은 야자타니다.
폐광석 붕괴 사고 뒤 석 달이 지났다. 우틴소 의원은 확인된 사망자 114명 중 20~30명만이 45만~60만차트(약 43만~57만원)의 보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신원이 확인된 가족들도 감히 보상 요구를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강조했다. 잇따른 사고에 책임이 있는 업체들이 ‘무소불위’의 군인이다보니 감히 피해자들이 권리 주장을 못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짓눌려온 파칸 주민들의 ‘을의 위치’를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11월 붕괴 사고 뒤에도 같은 지역에서 사고가 잇따랐다. 성탄절에는 사고가 일어난 곳 바로 옆에서 광석 더미가 무너져 4명이 깔려 죽었다. 1월25일에는 하루에 두 번이나 붕괴 사고가 났고 발견된 주검은 6구이지만 30여 명이 실종됐다. 그리고 1월26일 5명이 또 추락해 숨졌다. 지난 3개월 동안 파칸의 폐광석 더미는 알려진 것만 다섯 번 이상 무너졌다. 사고가 잦은 롱킨 마을은 지난해 중반 정부군과 카친독립군이 광산 문제를 두고 충돌한 이래 정부군 병력이 늘어난 지역이다. 우틴소 의원은 이 마을 주민들이 정부에 옥 채굴 중단을 꾸준히 요구해왔다고 말했다.
이런 사고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광부들은 ‘노다지 꿈’을 못 버린 채 폐광석 더미로 달려든다. 그들의 꿈을 파괴하는 건 사고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마약이다. 파칸 광부 60∼70%는 마약중독자로 알려져 있다. ‘마약카페’에 흩어진 주삿바늘들, 바늘 자국으로 뒤덮인 마른 몸 위로 다시 헤로인 주사를 꽂는 광부의 모습, 그건 아마도 파칸이 세상에 내놓은 가장 슬픈 장면일 것이다. 헤로인 주사 한 대 2달러, 야바(알약 형태의 분홍빛 마약) 한 알 1∼3달러. 지난해 9월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버마의 일일 최저임금 2.8달러와 비슷한 가격이다. 그리고 파칸에서 가장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옥의 가격이 2달러다. 우틴소 의원은 “20∼25살 창창한 젊은이들이 일하러 가기 전에 마약하고 일하고 와서 마약하고. 돈을 많이 벌면 그만큼 더 많이 마약을 소비한다”며 한탄했다.
파칸 광부들이 마약에 중독되는 구조적 원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버마 북부 와주와 카친주에선 광범위하게 아편이 재배되고 마약이 생산된다. 고된 노동을 하는 광부들이 그 보상으로 마약을 찾기도 하고 이를 판매하는 누군가는 부추기기도 하겠지만, 외국인 출입 금지 구역이면서 내국인 통제도 엄격한 ‘정보의 블랙홀’ 파칸에서 마약 문제의 온상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이윤을 챙기는 정치인, 군, 재벌
20대 청춘들이 마약에 취한 힘으로 옥을 캐다 폐광석 더미에 묻히는 동안 이윤을 챙기는 이들은 누구일까. 우선, 버마의 ‘막말 정치인’으로 유명한 온뮌 전 장관이 있다. 그는 2005년 북부지역 총사령관을 맡을 때부터 옥광산에서 이익을 챙겨왔다. 또 다른 인물 마웅마웅테인은 ‘사회복지구호부’ 장관을 했다. 그가 소유한 회사 뮈앗야몬(Myat Yamon)은 안전사고로 악명 높은 파칸의 카타이 마을에서 채굴하는 업체다. 이 업체는 지난해 4월 30~6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붕괴 사고에 책임이 있다. 그리고 1991년부터 2010년까지 독재자로 군림한 탄슈웨 장군 일가를 빼놓을 수 없다. 탄슈웨의 두 아들 키아잉산슈웨와 툰나잉슈웨가 각각 소유한 ‘키아잉인터내셔널’과 ‘미얀마나잉그룹’은 파칸에 6개 업체를 소유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다시 와주군과 연계된 회사들과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글로벌 위트니스’의 고발이다.
군기업도 있다. 미얀마이코노믹홀딩스가 대표적이다. 미얀마이코노믹홀딩스는 1994년 휴전 이후 파칸 옥광산에 가장 먼저 뛰어든 군기업이다. 버마 중북부 만달레이 지방 라파다웅 구리광산 개발에 중국 기업 완바오와 합작해 참여한 기업이기도 하다. 라파다웅 광산은 2012년 11월 주민들의 반대시위가 폭력적으로 진압당하면서 악명을 얻었다. 당시 진압에는 황린탄으로 추정되는 화학물질까지 사용됐고, 100명 가까운 부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정부 주도 진상조사위 의장을 맡았던 아웅산 수치가 라파다웅 주민들에게 했던 말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법치를 존중할 것”, 그리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주민들의) 땅을 희생할 것”.
마지막으로 버마판 재벌 ‘크로니’를 빼놓을 수 없다. 코캉족(버마 거주 중국 한족) 지역 마양왕 로싱한 가문의 ‘아시아월드’와 퇴역 장교의 아들 테자의 ‘투트레이딩컴퍼니’(Htoo Trading Company) 등이 대표적이다. 테자의 투(Htoo)그룹은 라이선스 없는 광산 장비나 대형 트럭을 아무런 문제 없이 사용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투그룹이 운영하는 ‘아시안윙에어웨이’는 2013년 6월 아웅산 수치에게 평생 플래티넘급 무료 탑승권을 선물한 적이 있다. “가슴속에서 우러나는 존경과, 감탄과 모든 것에 감사”의 메시지를 담았다.
버마 헌법, “천연자원은 정부의 소유”
버마 헌법 1장 37(a)항은 “모든 천연자원은 중앙정부 소유이며 현지 주민들의 것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버마의 지배권력은 그 ‘국유화된’ 자원을 사유물로 남용해왔다. 카친 시민사회가 헌법부터 뜯어고치고, 민주정부 이후 자원 개발의 투명성이 보장되기 전까지는 광산 채굴을 중단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출범을 코앞에 둔 아웅산 수치 ‘민주정부’가 군과 재벌 그리고 마약왕들의 철옹성 같은 경제권력을 털끝이라도 건드릴 수 있을지 모두의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
* 참고 문헌
Merchants of Madness-The Methamphetamine Explosion in the Golden Triangle, Bertil Lintner and Michael Black, Silkworm Books, 2009
Jade: Myanmar’s ‘Big State Secret’, Global Witness Octob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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