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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IS’, 머지않았다?

아프간-탈레반 간 평화협상 중 터진 ‘금요일 트리플 폭탄’… 탈레반 분열이 IS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어 “아프간 IS는 현실보다 언론에서 존재감 커”
등록 2015-08-20 16:16 수정 2020-05-03 04:28
8월7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시내에서는 24시간 동안 세 번의 폭탄이 터졌다. 민간인 사상자도 많았다. 탈레반은 ‘성공적 공격’이라 자찬했지만 주택가에 터진 트럭폭탄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REUTERS

8월7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시내에서는 24시간 동안 세 번의 폭탄이 터졌다. 민간인 사상자도 많았다. 탈레반은 ‘성공적 공격’이라 자찬했지만 주택가에 터진 트럭폭탄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REUTERS

8월7일 새벽 1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시 남동부 ‘샤 샤히드’ 주택가를 지나던 트럭 한 대가 폭발했다. 사망 15명, 부상자 298명. 잠을 자다가 피해를 당한 이들의 대부분은 민간인이다. 그로부터 만 24시간 동안 카불은 두 번 더 폭탄을 만났다. 경찰학교 사관생 28명이 목숨을 잃었고, 공항 북쪽에 위치한 ‘캠프 인테그리티’(미특수부대 캠프) 근처에서 폭탄이 터져 미군 1명과 아프간 사설 경비원 8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날 하루 카불에서만 50여 명이 죽고, 부상자는 300명을 웃돌았다, 유엔은 단일 사상자 최고치를 기록한 날이라 말했다. 폭탄 없는 카불의 고요는 한 달여 만에 깨졌다.

민간인 희생의 70%가 탈레반 공격

다음날 탈레반 대변인 자비훌라 무자히드는 트위터 게시물을 통해 “파라 지방 출신 압둘 라힘이 아프간 이슬람에미리트(탈레반 자칭 국가명)의 순교자를 자처해 경찰학교를 공격했다”고 밝혔다. 미군 캠프를 공격한 ‘순교자’ 4명의 이름도 출신 지방과 함께 밝히며 ‘성공적 공격’이라 자찬했다. 그러나 주택가에 터진 트럭폭탄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카불 베이스의 싱크탱크 그룹인 아프간분석네트워크(AAN) 케이트 클락은 “탈레반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해 자기 명분에 해가 될 때는 침묵하는 경향을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24시간 연쇄 공격(과시)”을 꾀했을 거라는 게 케이트의 분석이다. 탈레반 ‘행동강령’(Code of Conduct)은 이를 뒷받침한다. 제7조 57항 ‘순교작전’ 항목에는 민간인 피해를 최대한 피하라고 적어놨다. 탈레반은 2006년 이래 최소 세 차례 행동강령을 보완했고 2009년부터 ‘미성년자 공격 금지’ ‘전쟁포로나 체포자 고문 금지’ 그리고 ‘돈과 포로 교환 금지’ 조항을 담았다.

그러나 행동강령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8월5일 발표된 유엔(UNAWA) 보고서는 2015년 상반기 민간인 희생 발생 원인의 70%가 탈레반의 자살공격과 사제폭발물(IED)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성년자 공격금지를 강령에 명시한 탈레반이 수많은 소년들에게 자살폭탄 조끼를 입힌 것도 아이러니다. 유엔 보고서는 또한 올 상반기 민간인 사상자 수치를 사망 1592명, 부상 3329명으로 발표하며 2009년 체계적으로 사상자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최악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발표 이틀 뒤인 8월7일 단일 사건으로는 최고치의 사상자를 기록한 ‘금요일의 트리플 폭탄’이 터진 것이다.

“지난 7월7일 탈레반과 협상에 앞서 아프간 정부가 내건 조건 중 하나가 카불 공격 중단이었다. 카불이 한 달여간 조용했던 건 탈레반이 선의의 제스처를 보인 것으로 이해한다.”

AAN 국장 토머스 루티그의 말이다. 그러나 토머스 국장은 지방 사정은 다르다고 말한다. 지방에선 거의 매일 사상자가 발생해왔다. 해마다 봄이 오면 탈레반의 ‘봄 작전’(Spring Operation)이 시작된다. 올해 봄 작전은 4월 24일, 작전명 ‘아즘(Azm, 결정타)’이라는 이름으로 개시됐다. 그날 이래 거의 매일 발표하는 현황을 보면 작전은 동서남북 전방위적이다.

올해 상황이 주목받은 건 아프간군이 외국 군대의 도움 없이 대탈레반 전쟁을 벌인 첫 해이기 때문이다. 한때 10만 명을 웃돌던 아프간 주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군은 지난해 12월28일 대부분 철수했다. 미 특수부대원 일부와 아프간군 훈련을 담당한 약 1만 명 정도만이 남았다. 10여 년간 몸집을 불려온 아프간군은 현재 35만 명 규모다. 그러나 지난 12월 아프간 정부는 장병들에게 줄 월급이 없다며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했다. 아프간 분쟁의 정치적 타결에 더욱 발동을 걸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카타르 정치사무국과 ‘퀘타슈라’ 갈등

카불이 고요했던 지난 7월 아프간은 안팎으로 평화협상 분위기를 탔다. 그러나 탈레반의 ‘선의’가 8월7일 ‘트리플 폭탄’으로 돌변한 뒤 평화는 꽁꽁 얼어붙었다. ‘선의’는 왜 깨졌을까? 탈레반의 ‘맏형’ 노릇을 해온 파키스탄이 중재를 주도할 때부터 협상이 위태로워질 위험이 내재되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4년 전쟁에 지친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쪽이 협상을 희망해온 건 사실이다. 7월7일 파키스탄 리조트 도시 ‘무리’에서 첫 ‘공식’ 만남을 갖기 전에도 양쪽은 비공개 만남을 가진 바 있다. 지난 5월 탈레반 정치국 사무소가 있는 카타르에서 유엔 대표가 배석한 가운데 가진 비공식 회담은 그중 하나다. 아프간 평화협상에 관심을 보여온 중국도 같은 달 탈레반 대표단을 신장 우루무치로 초대하기도 했다. 그리고 파키스탄이 주도한 7월7일 ‘무리 협상’.

이 협상은 탈레반의 요청에 따라 파키스탄이 ‘비공개’를 약속한 만남이었다. 그러나 협상이 시작되기 불과 몇 시간 전 파키스탄·아프간 정부 모두 언론에 공개해버렸다. 회담장에는 미국·중국·파키스탄 정부 관계자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정보국 ISI(Inter-Service Intelligence) 간부 4명도 ‘옵서버’로 동석했다는 후문이다.

ISI는 약자에서 연상되는 바인 수니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는 전혀 관계 없다. ISI는 탈레반의 ‘빅브러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탈레반은 그동안 ISI의 탈레반 지원설이 불거질 때마다 부인해왔다. 결국 탈레반이 파키스탄의 압력에 못 이겨 참석한 것으로 보이는 무리 협상장에 ISI 간부까지 동석하면서 강압적 분위기를 더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아프간 아슈라프 가니 정부 역시 취임 직후부터 파키스탄의 중재와 협력을 공개적으로 거듭 강조해왔다. 탈레반이 파키스탄 휘하에 있다는 인식을 돌출한 거나 다름없었다. 이 또한 탈레반을 불편하게 했다. 가니 정부는 파키스탄의 협조를 구하며 인도와 예정된 무기 거래를 유보했을 정도다. 지난 2월에는 아프간 장교 후보생 6명을 파키스탄 군사학교에 유학 보내는 등 파키스탄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해온 전임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의 노선을 뒤집기도 했다.

이 와중에 탈레반 지도자 물라 오마르 사망이라는 대변수가 떠올랐다. 7월 말 2년간 숨겨온 오마르의 죽음이 공식화되고 물라 만수르가 새 지도자로 선출되자 물라 오마르 가족을 비롯해 탈레반 내 일부 ‘물라들’(물라는 ‘종교지도자’라는 뜻)의 반발이 일었다. 이뿐만 아니라 카타르 정치사무국과 ‘퀘타슈라’(Quetta Shura·파키스탄 남서부 발로치스탄주 퀘타시는 탈레반 지도부의 사실상 베이스로 알려져 있다. 탈레반 최고평의회를 ‘퀘타슈라’라고 부르는 이유다) 간에 ‘어느 쪽이 탈레반 대외업무 창구인가’를 두고도 갈등이 불거졌다. 8월4일 카타르 사무소 정치국장 사이드 테이얍 아가(Sayed Tayyap Agha)는 결국 사임했다.

만수르 “평화협상은 적들 프로파간다”
쉬쉬해오던 물라 오마르의 사망이 공식화된 뒤 새 지도자로 뽑힌 물라 만수르. “평화협상은 적들의 프로파간다”라는 그의 오디오 메시지 이후 카불 공격이 일어났다. REUTERS

쉬쉬해오던 물라 오마르의 사망이 공식화된 뒤 새 지도자로 뽑힌 물라 만수르. “평화협상은 적들의 프로파간다”라는 그의 오디오 메시지 이후 카불 공격이 일어났다. REUTERS

탈레반 지도부의 면면을 파악하고 있는 AAN 토머스 국장은 사이드 아가가 탈레반 조직 내 매우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의 사임이 탈레반 내분에 큰 영향을 미치진 않을 거라고 전망했다.

“카타르 사무소는 2013년 탈레반 지도부 승인하에 개소됐다. 이번에 새 지도자가 된 물라 만수르는 그 당시부터 사실상 지도자였다. 그러므로 양쪽에 의사소통이 부족했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다만 사이드 아가가 화가 났던 건 물라 오마르의 죽음에 대해서다. 2013년 오마르 사망이 카타르 사무소 쪽에 전달되지 않아 오마르의 이름으로 활동해온 정치국이 우스워졌다고 여긴 게다.”

토머스는 사이드 아가가 사임하면서 “어느 편도 들지 않겠다”고 말한 건 “탈레반 운동에 손상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라며 양쪽에 정치적 이견이 있는 건 아니라고 봤다.

내분을 딛고 새 지도자에 오른 물라 만수르는 8월1일 오디오 메시지를 통해 “평화협상은 적들의 프로파간다”라는 강경 메시지를 날렸고 7일 ‘트리플 공격’이 발생했다. 공격은 두 가지 효과를 노렸다. 평화협상 과정에서 파키스탄이 보인 배신에 대한 응답이 그 하나이고, 내분 국면에서 강력한 지도자상을 보이기 위한 게 또 다른 배경이다. 이미 올해 탈레반 ‘봄 작전’은 2001년 이래 최대 규모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언론에서는 탈레반의 분열이 IS 확산으로 이어질 거라고 전망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7월 초 IS가 아프간 내 거점 세 곳을 확보했다는 보도를 곁들여서였다. 거점 중 한 곳으로 거론된 곳은 아프간 군벌 굴부딘 헤크마티아르의 조직이다. 헤크마티아르는 수십 년간 아프간 전쟁의 한가운데를 헤쳐온 악명 높은 군벌로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히즈베 이슬라미’의 수장이다. 보도가 나간 일주일 뒤 헤크마티아르는 ‘IS 지지설’을 부인했지만 후속 보도한 언론은 거의 없다. 확인 결과 아프간 (복수의) 정보원들이 설명하는 오보의 정황은 이렇다.

“헤크마티아르가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IS 지지가) 공식 입장이었던 적도 없다. 그의 아들 중 한 명이 사석에서 IS 지지는 어떨까를 ‘제안’(suggestion)처럼 입에 올린 게 확대해석된 것 같다.”

파키스탄-아프간 국경 소수민족 지대(FATA·Federally Administered Tribal Areas) 무장세력을 집중 연구해온 FATA 리서치센터 사이풀라 마흐수드 국장은 영향력이 쇠퇴해가는 굴부딘이 언론플레이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 자신 파슈툰(탈레반 주류 종족)인 사이풀라는 다른 종족의 리더십을 받아들이지 않는 파슈툰 전통을 거론하며 “이 일대 파슈툰족에게 탈레반은 명분 있는 정치세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간 IS는 현실보다 언론에서 존재감이 크다”

아프간 내에서 IS의 영향력 확산이 쉽지 않으리라는 건 ‘탈레반’ 권위자로 통하는 아흐메드 라시드 기자도, 아프간 정세 분석 깊이와 정보량이 월등한 AAN 토머스 국장도 모두 동의하는 바다. 이들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탈레반의 파슈툰 민족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외세’에 정복당하기를 한사코 거부해온 아프간이 중동발 IS에 자리를 쉽게 내주겠느냐는 게다.

둘째, 현재의 IS 보도가 과열됐다는 지적이다. 사이풀라 국장은 “IS가 요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사이에) 유행이니 너도나도 선언”하는 거라 봤다. 토머스 국장도 “아프간 IS는 현실보다 언론 보도에서 더 존재감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아프간에 IS가 없다는 게 아니다. 여러 해에 걸쳐 탈레반을 떠나거나 쫓겨난 자잘한 그룹들 중 일부가 헬만드(남부), 낭가르하르(동부)에서 IS에 대한 충성을 선포하는 식이다. 자체 선언, 그게 다다.”

실제로 10일 아프간 동부 낭가르하르 지방에서는 IS를 자칭한 그룹의 4분짜리 비디오가 등장했다. 다음날 탈레반은 즉각 성명을 냈다. “자칭 다에시(DAESH·ISIS의 아랍어 약어로 무슬림권에서 주로 사용하는 명칭)라고 주장하는 납치범들이 하얀 수염의 원로들을 잔혹하게 순교시켰다. 이슬람 에미레이트(탈레반)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무고한 민간인을 잔혹하게 살해한 그자들을 가려내 샤리아 법에 따라 처벌하도록 에미레이트(탈레반) 지역 대표에게 지시했다.”

그러나 파키스탄 영토로 넘어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파키스탄은 도심 젊은이들 사이에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더욱 확산돼 있고 IS 프로파간다에 훨씬 많이 노출돼 있다. IS가 종파(수니) 극단주의 단체이고 파키스탄이 종파 극단주의 단체들의 천국이라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파키스탄 탈레반에서 분파한 준달라(Jundallah)나 시아파 하자라족 학살에 오랜 이력을 쌓아온 라슈카레 장비(Lashkar e Jhanvi) 같은 단체가 파키스탄 내 IS 지지 단체들이다. 사이풀라 국장은 “아직까지는 이데올로기적 연대”라면서도 “최근 라슈카레 장비 진영에 중동 IS로부터 물자가 지원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와 체크 중”이라고 말했다.

수니-시아 종파 갈등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이라크·시리아에 IS가 무서운 속도로 확장된 배경에는 부시 전쟁이 낳은 종파주의와 취약한 정부가 역동적으로 작용했다. 아프간 상황에 대비시켜보자. 현재 아프간에는 시아-수니 간 종파 갈등이나 종파 폭력은 거의 없다. (2011년 시아파 종교행사인 아슈라(Ashura) 현장을 공격해 50여 명의 시아파 목숨을 앗아간 사건은 포스트 9·11 시대 유일한 종파 폭력 사례다. 파키스탄에서 넘어온 수니 극단주의 조직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프간 탈레반은 집권 기간(1996~2001) 시아파를 겨냥해 학살을 자행하던 수니 극단주의자들이었다. 그러나 2001년 이후 ‘외세 저항 반란기’에 들어선 탈레반은 종파 폭력에 연루된 적이 없다. 심지어 탈레반 행동강령은 부족과 고향으로 차별하지 않는다는 조항까지 담았다. 그러나 사병 월급 줄 돈이 없는 아프간 정부의 취약성은 잠재적 위험 요소다.

알카에다 지도자, 탈레반에 충성 서약 

탈레반이 탄생한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 토박이이자 한 외신의 현지 통신원으로 일하고 있는 아크타르(가명)는 외국 군대 철수 이후 치안 상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전해왔다.

“치안 공백이 크고 (지역) 정부는 너무 약하다. 약할 뿐만 아니라 (아편 등) 온갖 불법 사업을 하시느라 바쁘다. 탈레반 대신 다에시가 점점 더 힘을 얻어가는 분위기다. 지역 경제는 거의 멈췄다. 일자리, 치안 모두 공백이라 보면 된다.”

탈레반과 IS, 지하디스트들의 공동전장이었던 아프가니스탄이 그들의 각축장으로 변모하는 건 아닌지 조금더 두고 볼 일이다. 13일 알카에다 지도자 알 자와히리(Al Zawahiri)가 탈레반 새 지도자 물라 만수르에 충성을 서약한 건 지하디 각축장의 전선을 선명케했다. 자와히리는 이날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스스로 ‘칼리페’를 선언한 IS지도자 바그다디를 겨냥했다. “칼리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탈레반에 충성하라.”

이유경 기자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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