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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아이의 ‘오랜 꿈’

[중국] 유수아동
등록 2015-07-04 14:22 수정 2020-05-03 04:28

“당신들의 호의에 감사합니다. 나는 당신들이 나에게 잘해줬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나는 가야 합니다. 예전에 나는 15살을 못 넘기고 죽을 거라고 맹세한 적이 있어요. 죽음은 나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오늘 떠납니다!” 14살 아이가 남긴 유서다. 그 아이는 맹세한 대로 ‘오랜 꿈’을 이루고 이승에서의 가난하고 고독했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각각 5살, 8살, 9살짜리 어린 동생들도 함께 죽었다.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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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9일 중국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인 구이저우성 비제시에서 4남매가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죽음이 뭔지도 잘 몰랐을 어린 그 아이들은 이른바 ‘유수아동’(留守兒童)이었다. 유수아동이란, 중국 농촌에서 부모가 모두 외지로 돈벌이를 나가서 집에 홀로 남겨진 아동을 지칭하는 사회적 용어다. 1980년대 후반부터 농촌에서 도시 등으로 돈벌이를 떠나는 농민공이 급증하면서 농촌에 홀로 남겨진 유수아동은 중국의 중요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번에 죽은 4남매의 부모도 아이들만 남기고 타지로 돈벌이를 떠났다. 게다가 부부 사이가 안 좋아 엄마는 가출한 상태였고, 부모는 1년 이상이나 아이들을 보러 오지 않았다. 늘 가난과 외로움에 허기졌던 그 아이들이 거의 매일 해먹은 음식이라곤 아버지가 심고 간 옥수수를 빻아서 만든 옥수수부침이 전부였다.

보도에 따르면, 구이저우성 비제시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유수아동과 관련된 비극이 반복해서 일어났다. 2012년 11월 말, 이 지역에 사는 유수아동 5명이 밤에 찬 비를 피하기 위해 쓰레기통에 들어가서 불을 피우다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 2013년 12월에는 5명의 유수아동들이 하굣길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2014년 4월에는 이 지역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최소 12명의 여자아이들을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가장 어린 피해아동이 8살이었고, 대부분 유수아동들이었다.

지난 6월18일 베이징에서 발표된 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는 약 6100만 명의 유수아동이 있다. 그중 약 15.1%인 1천만 명의 아이들이 1년 동안 단 한 번도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 1년에 한 번도 부모와 전화 통화를 하지 못하는 유수아동도 4.3%나 되었다.

1989년 유엔이 채택한 ‘아동권리협약’에는 “부모의 한쪽이나 양쪽 모두로부터 떨어진 아동이 정기적으로 부모와 관계를 갖고 만남을 유지할 권리를 존중해야 하며 (…) 가정으로부터 분리된 아동은 국가로부터 특별한 보호와 원조를 부여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다. 중국은 1992년 이 협약에 가입했다.

베이징(중국)=박현숙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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