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주간지 에 대한 테러 이후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프랑스 무슬림들은 이슬람 혐오의 기운이 번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상황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경기도 수원에서 벌어진 두 건의 살인사건 이후에 강화된 편견이 유령처럼 한국 사회를 떠돌고 있다. 수원에 근거를 둔 인권단체 다산인권센터 박진 활동가는 “재중동포에 대한 혐오감이 정말 심해졌다”며 “돌출적 사건이 일상을 압도해버렸다”고 말했다. 하필이면 수원시 한 지역에서 2012년 오원춘, 2014년 박춘봉이 저지른 잔인한 살인사건 이후의 일이다. 그 지역은 중국동포가 많이 거주하는 동네다.
염태영 수원시장이 유령의 실체를 드러내버렸다. 그는 1월7일 수원 영통구청에서 진행된 ‘수원시민과 열린대화’ 자리에서 ‘안전한 도시’에 대한 설명을 하는 도중에 외국인 폄훼 발언을 했다. “불법체류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외국인(중국인)이 많이 사는 동네에 쓰레기가 제일 엉망으로 버려져요.” 사건이 벌어진 동네를 염두에 둔 말로 들렸다. 이어 그는 “화이트칼라 위주의 외국인이 사는 영통구는 데이터로 보면 훨씬 안전한 동네”라고 했다. 이주노동자, 인권단체의 항의를 받은 그는 지난 1월12일 공개 사과를 했다. 박진 활동가는 “당시 시장의 말을 듣던 이들이 문제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놀랐다”고 전했다.
파리의 19구에서 자란 청년들이 저지른 테러다. 사이드·셰리프 쿠아치 형제와 아메디 쿨리발리는 파리의 무슬림 밀집 지역에서 성장했다. 쿠아치 형제는 알제리계, 쿨리발리는 세네갈계 부모를 뒀지만 이들은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명백한 프랑스인이다. 이들은 에 난입해 총질을 하면서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라고 외쳤다. 사건이 벌어진 뒤 이주민 청년들을 소외시키고 테러의 토양을 방치한 프랑스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이들이 무슬림이란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프랑스인 청년을 그렇게 되도록 방치한 사회가 문제란 것이다.
는 이들의 타깃이 되었다. 이슬람에서 신성시해 형상화를 금기하는 무함마드를 풍자하는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리는 정도를 넘어서 무함마드가 엉덩이를 드러낸 만평도 있다. 의 표현의 자유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는가? 테러가 벌어진 뒤 나온 논란의 일부다. 68혁명의 후예로 태어나 모든 권위에 저항하는 만평을 그려온 를 보는 시선은 하나가 아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에 가장 훌륭한 언론상을 주기는 어려워도, 표현의 자유를 남용했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가톨릭, 개신교 등 종교를 가리지 않고 비판해온 맥락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조롱이 사회적 약자를 향한 백인 남성의 권력이었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반면 성폭력을 당한 여성에게 성폭력을 당한 책임을 묻는 것과 같다는 비판이 맞선다.
한국에서도 논란은 벌어졌다. 물론 테러는 용납할 수 없지만, 의 표현에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인터넷 게시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타고 번졌다. 일부 언론 보도에서도 이런 분석이 드러났다. 임근준 미술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는 만평을 지면에 싣지 않았다. 이를 근거로 ‘386 아저씨’들이 의 만평이 마치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넘은 것처럼 말한다. 정론지를 지향하는 기준에 맞지 않아서 싣지 않은 것이지, 선을 넘었기 때문이 아니다.”
를 이해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만화가 해온 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임근준 평론가는 “풍자만화는 프랑스혁명 이후 오랜 전통”이라며 “프랑스에서 풍자만화가가 언론인 대접을 받는 이유”라고 말했다. 페미니스트인 손희정 땡땡책협동조합 조합원은 “왕을 단두대에 올린 프랑스혁명기에 왕과 왕비를 풍자하고 희롱하는 ‘포르노적’ 만화가 민중의 인식 전환에 큰 기여를 했다”며 “이런 전통에서 의 풍자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거대한 혁명에 여성도 참여했지만, 결국엔 여성은 지워지고 남성혁명으로 남게 됐다”며 “섬세한 감수성을 지니지 않으면 이렇게 귀결된다”고 말했다. 오늘의 만평도 예외가 아니란 것이다. 손 조합원은 “여성과 소수자를 깎아내리는 만평이 과연 무슨 효과를 가져오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는 9·11 테러 이후 이슬람 권력을 풍자하는 만화를 실었다.
는 한국 사회에서 허용되는 것 이상의 표현의 자유를 누려왔다. 그러나 프랑스에 이슬람 인구가 늘면서 상황은 변했다. 이들이 누리는 표현의 자유가 평범한 무슬림에게 불쾌감을 주는 상황도 생겼다. 더구나 이들은 사회적 약자다. 박경신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표현의 자유는 어떤 집단이나 사람들이 새로 사회에 들어온다고 변하는 원칙이 아니다. 타인에게 명백히 현존하는 차별과 폭력이 된다면 그것은 금지돼야 한다. 의 만평은 그렇지 않았다. 프랑스 바깥의 원리주의자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내부의 무슬림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봐야 한다.” 박 교수는 덧붙였다.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 부상한 배경에 프랑스의 외교·군사 정책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는 그런 정책을 힐난했던 매체다.” 표현의 자유는 때로 누군가에게 불쾌함을 유발한다. 임근준 평론가는 “ 만평에 당연히 실패한 풍자도 있다”며 “그것에 대해선 비판하거나 불매운동을 벌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법적 규제의 영역에 속하는 혐오는 아니란 것이다. 이렇게 프랑스 테러는 혐오와 불쾌의 경계를 묻는다.
테러에 대한 규탄은 이슬람 혐오로 쉽게 변질된다. 이미 한국에서도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런 위험이 이슬람의 여성 차별, 동성애 혐오 등에 침묵하는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는 반박도 있다. 임근준 평론가의 견해다. “종교 간 문화적 차이에 대한 존중은 이슬람 사원에 가서 복장에 유의하거나 남녀가 손을 잡지 않는 등의 정도면 된다. 무함마드를 그리면 안 된다는 금기를 따르는 것은 아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이렇게 금지된 것들이 세속주의 전통에 바탕해 극복됐다. 이슬람 문화가 이것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이런 금기를 용인하는 건 명백한 퇴보다.” 팽배한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이슬람에 대해 말할 자유까지 뺏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것인가혐오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복잡하다. 남성동성애자 김윤호씨는 “성소수자로서 사회적 약자들의 불안과 공포를 알기에 무슬림의 감정이 이해된다”며 “그러나 원리주의자들만이 아니라 이슬람 문화 전반이 가진 동성애 혐오와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알기에 의 비판도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그에게 종교와 사회를 구분하는 세속주의는 목숨 같은 원칙이지만, 가 누려온 무한에 가까운 표현의 자유 앞에서 멈칫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그는 “어떤 세력이든 그들이 여성과 동성애자에게 한 짓이 그들이 한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동성애 공격 앞에서 생존의 위협을 느낀 이들에게 이런 사건과 논란은 남의 일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가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자유냐는 논란도 있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는 환상에 가깝다. 자유주의적 관용은 항상 타자를 필요로 하고, 지금 이슬람은 대표적 타자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종북, 게이, 이주민이 그런 존재다. 종북의 딱지가 붙은 신은미씨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고 추방됐고, 황선씨는 구속됐다. 반면 이들에게 가해진 백색테러는 사태의 심각성만큼 문제되지 않았다. 권력을 비판하는 이들의 권리였던 표현의 자유가 ‘일베’ 등에 의해 왜곡되는 사태를 지금 우리는 겪고 있다. 손희정 조합원은 “표현의 자유를 자유주의 통치성의 일부라고 단정하기엔 너무나 많은 이들이 그 권리를 얻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급진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사고하고, 적극적으로 정치적으로 올바름(Politically Correct)을 끌어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더욱 강화된 치안국가가 되었다. 프랑스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될 조짐이 있다. 수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이후에 나온 치안 강화 조처와 발언도 이런 맥락과 다르지 않다. 박진 활동가는 “범죄가 발생하면 범죄를 도려내는 방식으로 대처한다”며 “절망을 도려내면 치유가 되냐”고 물었다. 그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충격적 사건 이후에 나온 범죄 대책은 지금도 인권 원칙을 위협하고 있다. 그는 최근 2012년 오원춘 사건 이후에 나온 대책을 곱씹어보았다. 범죄가 발생한 그 동네에 화단을 만들어달라는 주민의 요청이 생각났다. 그는 “내가 사는 곳이 살 만한 곳이 되기를 요청하는 간절함이 새삼 느껴졌다”고 말했다. 배제가 아니라 희망이 평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신윤동욱기자 syuk@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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