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미얀마) 동남부 다웨이 지역 차칸 부락 주민들은 지난해 ‘정부 땅’에서 떠나기를 거부한 죄로 소송에 휘말렸다. 이 부락은 버마와 타이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다웨이경제특구(DSEZ·Dawei Special Economic Zone)에 속해 있다. 2010년 3월 프로젝트의 주 개발권을 따낸 타이 건설회사 이탈리안타이개발(ITD·Italian Thai Develoment)이 부락에 불도저를 들이민 건 2013년 1월, 두 달 뒤 차칸 부락이 속한 테인기 마을 당국은 공문을 통해 ‘불법체류 중’인 해안가 15개 가구에 3일 이내에 퇴거하라고 명령했다.
퇴거 명령에 따라 바와르 마을로 이주해온 에슈웨(48)·마 레이(45) 부부는 유일한 재정착민으로 남아 있다. 재정착을 위해 지은 가옥 지붕이 강풍에 날아가는 등 심각한 결함을 보이자 몇 안 되는 재정착 가구가 모두 떠났다. 차칸 부락에 살 때는 고기잡이로 하루 5천~1만차트(1미얀마차트는 약 1.07원)를 벌어 그럭저럭 먹고살았다. 바와르 마을은 물과 교통시설이 부족하고 자녀들 학교가 없어 어려움투성이다. 결국 7살·9살 아이들은 끼니와 배움이 동시에 해결되는 사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13살 큰딸은 어촌에 남아 한 달 9만차트를 벌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ITD가 프로젝트 공사를 중단한 뒤로는 바와르 마을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사는 인구가 73%고 1달러 미만으로 사는 인구는 47%나 되는 다웨이의 지난 4년간의 풍경은 심란하기 그지없다.
발전소·골프장·리조트까지 204.51㎦ 면적다웨이 프로젝트는 2008년 5월 타이의 친탁신계 정당인 인민당(PPP) 소속 사막 순타라 총리(2009년 11월 사망)와 당시 버마 군정의 테인 세인 총리(현 대통령)가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서막을 열었다. 한 달 뒤 버마 정부와 타이 건설회사 ITD는 다웨이 현장실사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2010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타이 쪽 깐짜나부리에서 버마 다웨이까지 약 160km 구간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비롯해 심해항구, 석유화학단지, 제철소, 정유소 그리고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소에 골프장과 리조트까지 500억달러를 웃도는 투자로 204.51㎦ 면적을 차지할 다웨이 프로젝트는 동남아 최대의 경제특구를 꿈꾸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방콕 무역관은 2013년 7월13일 해외 비즈니스 정보 사이트에 ‘인도차이나판 실크로드, 다웨이 프로젝트를 주목하라’는 ‘장밋빛’ 보고서를 올렸다. KOTRA는 ITD가 파트너 투자자를 적극 물색 중이던 2012년 2월에 ITD 서울 설명회를 주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프라 공사가 진행된 지난 3년여 동안 다웨이의 생계와 생태계는 뒤집어졌고 절차와 보상은 불량과 부패로 얼룩졌다.
프로젝트를 모니터링해온 다웨이개발협회(DDA·Dawei Development Association)가 10월 말 발표한 ‘민심 보고서’(‘Voices from the Ground: Concerns Over the Dawei Special Economic Zone and Related Projects’)는 앞서 언급한 에슈웨 부부 사례를 포함해 20~36개 마을, 4384~7807가구, 약 2만2천~4만3천 명의 주민들이 직면한 고약한 현실을 담았다. 인권침해는 물론 밑도 끝도 없는 토지 수탈로 74%의 주민들이 전면 혹은 부분적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겼다는 게 보고서의 출발이다.
“2년간 랑군에 머물다 재작년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ITD가 주민들과 아무런 상의 없이 비틀넛 나무를 불도저로 밀어놨더라.”
클러부 마을 주민 노무코포는 10월21일 방콕 기자회견장에서 “권력과 결탁한” 불도저 앞에 주민들이 속수무책이었다고 말했다.
“길이 좋아지니 너도나도 와서 금광석도 캐고 목재 나르기에 바쁘다.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다.”
노무코포가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이들 중에는 버마의 대부호 테 자의 투그룹(Htoo Group)도 있고, 군이 운영하는 미얀마이코노믹홀딩스주식회사(Myanmar Economic Holdings Ltd.)도 있다.
땅부터 파헤치고는 환경영향평가선주민 네트워크인 TRIP NET(Tenass-erim River and Indigenous People’s Network) 국장 소 프랑키는 “주민들이 정보를 얻는 방식은 인터넷이나 입소문 그리고 타이 쪽 (환경)운동가들을 통해서”라고 말했다. 개발 당국이 주선한 ‘모임’도 있었으나 질문권이나 발언권을 갖지 못해 공청회가 아닌 ‘독단적’ 설명회였다는 것.
“그 자리에서 우리가 들은 말은 개발자들이 이 지역에 들어올 텐데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 다물고 있으라는 것뿐이다.”
민심 보고서가 인용한 신 퓨 틴 마을 주민의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에너지’라 불리는 석탄화력발전소나 석유화학단지 등이 사업 항목에 들어가는 걸 아는 주민은 6%에 불과했다. 4천MW의 전기를 뽑겠다는 석탄화력발전소 계획에 대해 버마 전기부 장관 킨 마웅 소는 2012년 1월 ‘환경문제’를 이유로 취소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2013년 11월 타이 영자지 은 일본의 미쓰비시가 타이 전력청(EGAT)의 자회사인 일렉트리시티제너레이팅(Electricity Generating), ITD 등과의 합작으로 다웨이 지역에 석탄발전소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그리고 올해 4월, (다웨이가 속한) 따뉜따뤼 디비전 지역정부가 5개의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기로 했다는 윈 쉐 전기산업부 장관의 말이 버마 언론에 보도됐다. 이처럼 중대한 변경 사항도 주민들에게 전혀 공지되지 않았다. 타이의 이스터컴퍼니와 버마의 베이플라워마이닝사가 2011년 이래 이미 소리소문 없이 짓고 있는 것도 바로 석탄화력발전소다.
최소한의 정보도 공유하지 않은 프로젝트가 상식적 절차를 지켰을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ITD는 건강영향평가(HIA)는 물론 환경영향평가(EIA)도 하지 않은 채 땅부터 파헤쳤다. 해안가 공사를 시작한 게 2010년이고 도로 공사를 시작한 건 2011년, 환경영향평가를 위한 컨설턴트를 고용한 것도 2011년이다. 타이 쭐랄롱꼰대학 환경리서치연구소(Environmental Research Institute of Chulalongkorn University) 연구진으로 구성된 ITD ‘환경평가’(EA)팀이 2012년 말부터 “조만간 발표한다”던 보고서는 여태껏 세상에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타이 내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라면 (환경영향평가 등이) 의무 사항인데 이웃 나라에서 진행하니 (타이) 정부도, 개발자들도 신경 쓰지 않았다. 평가서가 나오기 전에 개발 내용도 너무 많이 바뀌었다.”
까셋사트대학 공공보건정책파운데이션 데차랏 수깜늣 교수의 지적엔 개발시장에서 착취자로 나선 자국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타이 헌법과 환경법은 개발 프로젝트 시작 전에 공청회를 포함한 환경영향평가와 건강영향평가 실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타이 중부 라용 지방에 위치한 맙따풋경제특구(Map Ta Phut SEZ)로부터 쓰라린 경험을 한 탓이다. 2000년 3월 맙따풋특구에서는 포스겐 가스 유출 사고로 1명이 사망하고 90여 명이 병원 신세를 지는 산업재해가 있었다. 타이 국립암센터의 2003년 자료에 따르면, 1985년 맙따풋 가동 이래 20년간 2천 명 이상이 암으로 사망한 라용은 암 발생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집단적’ 암 발생의 원인을 맙따풋 공장이 뿜어내는 오염물질이라 보고 2007년 프로젝트 중단 소송을 냈다. 그리고 2년 뒤 타이 고등법원은 맙따풋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 79개를 중단하라고 판결했다.
테인 세인, 재활성화에 합의“다웨이는 맙따풋보다 8배나 큰 규모고 수질오염·공기오염 문제는 맙따풋에 비할 바가 아니다.”
맙따풋 사례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데차랏 교수의 쓴소리다.
타이 원로 사회운동가 술락 시바락사 박사는 아예 다웨이 프로젝트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이 나라의 독재자가 나라를 개혁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탁신(계 정권)이 벌여놓은 이 프로젝트부터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술락이 ‘독재자’라 표현한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프로젝트 재개 의사를 분명히 했다. 10월9일 첫 해외 순방국으로 버마를 선택한 그는 테인 세인 대통령과 다웨이 프로젝트 재활성화에 합의했다. 양국 정부가 일본의 투자를 유도해온 지는 이미 여러 해다. 쁘라윳 총리의 행보는 투자자 물색에 애먹던 ITD가 ‘특수목적회사’(SPV·Special Purpose Vehicle)인 DSEZ개발회사(DSEZ Development Co.Ltd)에 개발권을 양도하고 공사를 중단한 지 1년 만이다. 이미 9월4일 는 다웨이 프로젝트 의장인 우 한 세인 교통부 장관의 말을 인용해 “ITD와 일본 기업 하나를 비공개 ‘셀렉티드 텐더’(Selected Tender) 과정에 참여하도록 초청해놓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지명경쟁입찰’로 보이는 이 과정에서 7개의 세부 프로젝트 발주가 이루어진다는 게 우 한 세인 장관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인권침해·보상 문제와 함께 프로젝트 재개 가능성을 묻는 의 전자우편에 대해 ITD는 “새로운 계약과 협상 절차가 진행 중이므로 어떠한 정보도 알려줄 수 없다”고 답해왔다.
12월 초 현재, 불투명한 절차를 고집하는 다웨이 프로젝트의 미래는 그 자체로 불투명하다. 11월26일 버마 기획경제부 장관 칸 쪼유가 ‘프로젝트가 너무 방대하다’는 점을 들어 “일본과 타이 쪽이 주저하고 있다”고 털어놓은 건 한 신호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ANU) ‘경제사회개발을 위한 미얀마개발연구센터’(MDRI-CESD)의 조슈우드 연구원은 “다웨이는 처음부터 경제특구로 선정되지 말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ANU의 동남아 지역학 블로그인 ‘뉴만달라’(New Mandala) 기고문을 통해 “다웨이는 고립된 위치에 있고 인프라가 아주 원시적인 수준”이며 버마의 여느 시골과 마찬가지로 고급 인력 부재에 현지 노동력은 이미 가까운 타이로 이주노동을 떠났다고 지적했다.
빈약한 사회간접자본, 주먹구구식 절차와 이미 치명타를 입혀놓은 환경문제까지 다웨이 프로젝트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리스크’투성이다. 영국의 비즈니스 분석가인 매플크로푸트는 최근, 해외투자자들에게도 버마는 기니·소말리아 등과 함께 ‘극단위험군’(Extreme Risk)이라 분류했다. 이 모든 리스크의 가장 큰 피해자는 두말할 것 없이 현지 주민들이다. 현재 버마 의회에서 논의 중인 ‘투자법안’(Investment Law)만 해도 투자자들의 이익은 법적으로 보장받는 반면 주민들은 사법정의가 없는 개발도상국 수준의 법률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투자자 이익은 보장하면서 주민들은 어떻게
“물길이 바뀌면서 우린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고 논도 다 망가졌다. 댐이 건설되면 물을 대주겠다고 해놓고 책임지라고 했더니 책임질 사람은 없단다. 벌써부터 생계를 이어가기 어렵다면 다음 세대는 정말 심각해질 것이다.”
‘다음 세대’를 염려하는 다웨이 노인의 이 말은 ‘아시아의 노다지’ 버마로 가는 투자자들을 향한 절박한 당부이기도 하다.
방콕(타이)=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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