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부터 현재까지 스웨덴 사민당이 집권하는 데 민중의 집은 절대적 역할을 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민중의 집이 없었더라면 정치적 모임을 열 수 없었을 것이다. 민중의 집은 사민당의 성장과 집권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지역) 교육과 문화 활동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스웨덴의 사민당 중앙당사 내부를 꼼꼼하게 설명해주던 사민당 관계자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우리의 질문에 대답했다.
“사민당이 집권하는 데 절대적 역할을 했다”
스웨덴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사민당이 올해 9월 다시 집권했다. 44년 넘게 장기 집권을 한 것으로 유명한 사민당이 2006년, 2010년 선거에서 연이어 쓴맛을 본 끝에 다시 집권당이 된 것이다. 스웨덴 전역에 600여 개가 있는 민중의 집이 사민당의 집권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모임을 쉽게 열 수 있도록 민중의 집은 지금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고 있고 그런 지역에서 민중의 집은 필요하다.”
그의 말처럼 스웨덴 민중의 집 연합회는 올해에도 사회적 약자들이 밀집한 지역에 민중의 집 20개를 만들 계획이다. 이탈리아 민중의 집을 연구한 마거릿 콘 교수는 “이탈리아의 다양한 동맹체를 하나로 접속시킨 것은 공유된 언어가 아니라 공유된 공간”이라며 민중의 집이 창출하는 사회적 공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탈리아의 각 정파와 단체를 네트워크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민중의 집이란 공간이었다는 얘기다.
지난 10월13일 스웨덴 민중의 집 연합회의 초청을 받아 구로 민중의 집 강상구 대표, 마포 민중의 집 오현주 사무국장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스웨덴 민중의 집은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4년 전, 되돌아보면 무모한 계획 속에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민중의 집을 거쳐 스웨덴 민중의 집을 방문했다. 세 나라 모두 100년 전에 민중의 집을 만들었다.
동네에서 진보정당과 노동조합, 협동조합 등이 함께 공간을 창출하고 그 안에서 서로 만나고 이해하고 공동의 행동을 모색했던 곳으로 1층은 술집, 2층은 교육장, 3층은 각 단체의 사무실이 있었다. 민중의 집은 유럽의 진보적 지역운동의 산물 중 하나였다.
민중의 집 연합회의 전략기획 이사를 맡고 있는 비욘 가다르손은 아이슬란드 출신 이주민이다. 함께 술을 마실 때, 60살을 앞둔 나이가 걱정돼 그만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으면 자신은 바이킹의 후예라서 문제없다는 농담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이다. 2010년에는 스웨덴에서, 2013년에는 우리가 그를 국내에 초청해서 만났으니 이번이 벌써 세 번째 만남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번 스웨덴 방문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민중의 집은 단체와 단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곳이고 그런 만남을 주선하려면 당연히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치게 된다. 동창회를 주선하더라도 누군가의 노동이 투여돼야 하는데, 하물며.
혼자 공항에 마중을 나온 비욘은 우리 셋을 보자마자 “오, 나의 친구여”라고 소리를 쳤다. 1년 만에 만나는 우린 진하게 포옹을 했다. 비욘은 우리가 떠나는 날까지 전 일정을 통역과 함께 수행해주는 정성을 보여줬다.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은 둘쨋날부터 우린 강행군을 시작했다. 먼저 우리를 초청한 스웨덴 민중의 집 연합회 사무실에 방문해 40여 명의 상근활동가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스웨덴 민중의 집 연합회는 600여 개의 민중의 집과 120여 개의 민중공원(놀이공원과 동물원 포함), 200개의 영화관을 운영하고 있는 스웨덴 지역운동의 상징이다. 또한 민중의 집은 100년 전부터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산물이었다.
“스웨덴 민주주의는 스터디 서클 민주주의”우리는 스웨덴 방문 기간에 민중의 집을 포함해 많은 단체를 방문했는데 노동자교육협회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스웨덴의 최대 시민교육기관인 노동자교육협회는 사민당과 스웨덴 노총, 협동조합협의회가 공동으로 만든 단체이다. 전국적으로 약 3만5천 개의 스터디그룹을 운영하고 있는데, 다양한 시민 교육이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념 교육부터 시작해서 실생활에 필요한 실무 교육까지를 10여 명으로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학습하고 있다. 대규모 교육이 아니라 소규모 스터디 그룹을 만드는 것은 그들만의 철학이다. 소규모 그룹에서 토론하고 학습하는 과정을 민주주의의 기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전설적 총리인 올로프 팔메가 “스웨덴 민주주의는 스터디 서클 민주주의”라고 했던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올해 집권에 성공한 사민당의 당사에서 만난 한 의원은 “사민당은 노동운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주요한 대중 전략은 민중의 집, 협동조합, 노동자교육협회”라고 설명했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자면, 민주노총과 협동조합협의회, 진보정치 세력이 함께 교육기관을 만들었고, 민중의 집이란 공간에서 다양한 교육이 이뤄지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통합적인 사회운동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톡홀름 외곽에 위치한 락스베드 민중의 집 레이프 룽겐 대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는 환경미화원으로 시작해서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스톡홀름 부시장을 지내는 등 10년 동안 정치를 하다가 지금은 다시 민중의 집 대표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정치와 대중운동의 연결고리로 민중의 집은 그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전략인 것처럼 보였다.
스웨덴에서 우리는 두 차례 한국 민중의 집에 대해 발표할 기회를 가졌는데 구로 민중의 집 강상구 대표가 세미나에서 한국 민중의 집에 대해 발표하자, 한 사람이 내게 다가와 구글 번역기로 쓰인 한글을 보여줬다. “한국에서 수행하는 작업에 감동을 받았다.”
우린 일방적으로 그들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스웨덴 활동가들은 국내에서 힘겹게 이뤄지는 민중의 집 활동에 어떤 영감을 얻었으리라.
공식 일정 마지막 날. 스웨덴 전역에서 민중의 집 활동가들이 모였다. 사민당 기관지와 인터뷰를 마친 뒤 한국 민중의 집의 활동을 조금은 떨리는 심정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오현주 사무국장의 제안으로 이케아 문제를 마지막에 얘기하기로 했다.
“올 12월 스웨덴 기업인 이케아가 한국에서 매장을 열게 됩니다. 하지만 직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풀타임이 아닌 파트타임으로 직원을 채용하고, 정규직 지원자에게 비정규직 일자리를 권유하는 등 한국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한국 이케아의 노동 실태를 알리며국정감사장에 불려간 한국 이케아의 노동 실태에 대해 언급했을 때 많은 스웨덴 사람들이 놀라워했고, 스웨덴 민중의 집 연합회 칼레 나탄손 대표는 “만약 이케아가 계속 문제를 일으키면 스웨덴 총리와 이케아 노조에게 얘기해 이케아 본사를 움직일 방안을 마련해보겠다”고 말했다. 사민당이 선거에서 승리한 뒤, 민중의 집 연합회 칼레 대표에게 내각 구성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칼레 대표가 총리에게 얘기하겠다는 것이 과장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자본은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으며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 그에 맞서는 사회운동 세력들의 국제연대는 일상적이거나 체계적이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래서 우린 새로운 숙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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