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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길목 하나로 국경을 가르는 버마 북부 카친주의 소도시 마이자양은 카친족 반군인 카친독립기구(KIO) 통치 구역이다. KIO 군사부 카친독립군(KIA) 3여단 본부가 이곳에 있고, 반군 세력의 수도 라이자와 함께 대표적인 KIO 영토로 꼽힌다. 최근 정부군과 충돌이 잦은 남부 지역 ‘만시 타운십’ 역시 3여단 관할이다. KIO, 비정부기구(NGO) 할 것 없이 마이자양 내 모든 조직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지난 11월17일, 마이자양은 또다시 들썩거렸다.
피란민 캠프로 밀어닥친 정부군“아침 6시, KIA 동부사단 셍리 장교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어제(11월16일) 오후부터 (만시 타운십) 남림파 구역을 탈출한 피란민들에게 긴급구호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마이자양 피란민 캠프의 자력갱생을 위해 유기농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브리지(BRIDGE) 대표 코르위살랑(40)이 회의를 마치자마자 다급하게 연락해왔다. 남림파에서의 무력 충돌 조짐은 이틀 전부터 있었다. 11월15일 오후 3시께, 기자와 인터뷰 중이던 3여단장 통라 대령의 전화선을 타고 “10분 전부터 정부군이 포탄을 쏘고 있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얄궂게도, ‘남부 상황’을 묻는 기자에게 “당장은 별일 없다”는 대령의 답이 있은 직후였다.
다음날(11월16일) 오전에 다시 만난 통라 대령은 전날의 정부군 공격이 ‘겁주기용’이라고 일축했다. 실은 2천~3천 명으로 추정되는 민간인들이 남림파 일대에 거주하고 있어 카친군 입장에서는 섣부르게 대응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었다. 남림파 구역은 1천여 명의 마을 주민(가옥 200채)은 물론 10월22일 옆동네 뭉딩파 구역에서의 교전으로 발생한 피란민 1960명이 거주하는 피란민 캠프이기도 하다. 뭉딩파와 남림파는 도보로 1시간 거리에 있다. 정부군은 뭉딩파에 이어 남림파에서도 피란민 캠프를 공격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통라 대령의 일축에도 불구하고 11월16일 오후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기자가 만난 피란민들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께 정부군 1천여 명이 남림파 마을과 피란민 캠프, 그리고 기숙학교까지 치고 들어왔다. 기숙학교에는 초등생 200명과 중등생 100명이 있었다. 대부분 피란민 자녀들이다.
“오후 4시께 50명가량의 버마 군인들이 반바지 차림으로 나타나 KIA 군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총으로 위협하며 ‘조금 머물다 갈 테니 움직이지 말라’고 말해 정부군임을 알았다. 이어 아주 많은 무장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당시 학교 안에 있던 8학년생 라파이쿤링(17)의 말이다. 겁에 질린 학생들 일부가 울음을 터트리는 어수선한 상황에도 아랑곳없이 군인들은 학생들의 소지품을 뒤지고 금전과 물품을 갈취했다. 카친군 정보는 이들이 슈웨구 여단 소속이라 밝히고 있다.
정부군의 이번 공격은 남림파 캠프로 구호물자를 전하러 가던 NGO를 교묘히 이용했다. 학생들과 함께 학교 안에 갇혔던 교사 셍요(22)는 “NGO들이 구호물자를 가지고 올 거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정부군이 들이닥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남림파 캠프 교육을 관할해온 노통(40대)에 따르면, 이날 가톨릭계 구호단체 ‘카루나미얀마소셜서비스’(KMSS) 차량 10대가 남림파로 통하는 길에 있는 대부분의 검문소에서 ‘일단 멈춤’을 당한 뒤 한꺼번에 남림파로 밀려들었다. 그 구호차량 뒤꽁무니에 정부군 차량이 따라붙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NGO 관계자들은 이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단다.
학교 난입은 정부군이 마을과 피란민 캠프에 들이닥친 뒤 발생했다. 이 때문에 겁에 질린 주민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피란을 떠나는 동안에도 학생들은 4시간 남짓 학교 안에 갇혀 있었다. 교사 셍요는 학생들과 함께 감금된 이들 중에는 군이 학교 침입 당시 학생들 틈에 내쳐놓은 마을 노인 5명도 있었다고 했다. 신부·목사 등 종교 지도자들이 군인들을 설득한 뒤에야 학생들은 풀려났다. 다음날인 11월17일, 민간인들이 거의 떠나고 난 아침 7시께 양쪽은 본격적인 무력 충돌에 돌입했다.
실종되고, 짐꾼으로 끌려가고이번 남림파 공격으로 2천~3천 명의 피란민이 발생한 것은 물론, 인명 실종과 강제 징용 등 다양한 인권침해가 벌어졌다. 남림파 마을 ‘블록2’에 살던 주민 라파이자노우(39)가 정부군 포터(군용물자를 나르는 짐꾼)로 끌려갔다. 그의 아내 파우다우보크콘(40)은 11월18일 공유양 마을에 도착했다. 지역 NGO인 WPN에 따르면, ‘라파이제라’라는 이름의 남매를 비롯해 아이 5명과 성인 2명이 실종됐다. 사라진 아이들 가운데 자셍로우(8)와 쿤쿵(6)은 정부군 공격 당시 다른 마을로 연수를 갔던 교사의 아이들이다. WPN은 지난 몇 주간 지속된 만시 타운십에서의 무력 사태로 200명 이상의 마을 주민들이 연락 두절 상태라고 밝혔다.
11월17일 오전 10시, 담요와 가재도구를 싣고 마이자양을 출발하는 첫 구호차량에 올랐다. 차량은 중국과 카친주 국경을 두어 번 들락날락하며 오후 2시께 타코강가에 이르렀다. 뱃삯 500차트(약 500원)를 주고 강을 건너면 다시 카친주다. ‘국경 통과증’을 가진 카친족들은 매끈하게 뻗은 중국 도로를 이용해 ‘합법적으로’ 들락거리며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그 통과증을 지닐 수 없는 기자 때문에 구호차량은 멀고 좁은 숲길로 우회해야 했다.
오후 2시30분쯤 국경과 가까운 라카양 캠프에 닿았다. 피란민 1690명이 1년 넘게 머무르고 있는 캠프 공터에서는 여전히 정글에서 헤매고 있을 남림파 피란민들을 위한 임시 거처 마련 작업이 한창이었다. 피란민을 맞기 위한 움직임은 놀라우리만치 일사불란했다. 유엔이나 국제 NGO의 접근이 좀처럼 허용되지 않는 반군 지역은 모두 카친족 NGO들과 KIO의 재난구호부인 피란민구호위원회(IRRC·IDPs and Refugee Relief Committee) 몫이다.
오후 4시쯤 구호차량은 담요를 내려놓고 식량을 실은 뒤 라카양 캠프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공유양 마을로 향했다. 라카양 캠프에서 3km쯤 떨어진 곳에는 ‘파잇렛롬’이라는 정부군 초소가 있고, 초소 부근 마르윈 마을은 정부군 통치 구역이다. 몇 차례 피란민 캠프를 공격했던 정부군의 전력을 감안하면, 초소와 가까운 라카양 캠프 역시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숙지한 뒤 차에 올랐다.
오후 4시30분 공유양 마을에 닿았다. 공유양은 정글을 벗어난 피란민들이 도착해 끼니를 해결한 뒤 라카양 캠프로 이동하는 중간 기착지다. 북부 샨주와의 경계선이 코앞에 있는 공유양 주변 마을들은 구호차량이 지나온 동쪽 방향이 아닌 한 거의 비어 있었다. 2011년 6월, 17년 동안의 휴전이 깨지고 재개된 카친주 분쟁은 지난해 12월을 지나며 격화됐고, 자연환경이 수려한 이 지역 주민들을 모두 피란민으로 만들어버렸다. 400명가량 되는 공유양 마을 주민들도 지난해 12월 버마군이 마을로 들이닥치면서 모조리 정글로 피신한 적이 있다. 이후 일부는 피란민 캠프로, 일부는 마을로 되돌아왔다.
암흑의 정글 속으로 떠난 이륜차들“나는 쌀을, 이웃은 다른 식량이나 용품을 들고 정글로 피신해서 같이 밥을 해먹으며 지냈다.” 시실리아라방루(48)의 말이다. 그는 정부군이 빈집에서 물건을 훔쳐가는 것도 봤다고 했다. “무려 트럭 2대 분량이었다.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다 가져갔다고 보면 된다.”
또 다른 주민 라파이랑방(46)이 말을 보탰다. “살림살이 하나라도 더 챙길 요량으로 집에 잠시 들렀더니 군인 80여 명이 집 안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날 보더니 ‘이리 와서 앉으라’며 사진을 막 찍어댔는데, 겁이 나서 바로 도망쳤다.” 라파이랑방은 별 탈 없이 상황을 모면했지만, 이웃한 모쉐 마을 주민 한 명은 살림살이를 가지러 집에 들렀다가 군인들에게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30대 후반의 남성인데 얼굴과 머리가 피범벅이 돼서 돌아왔더라.” 토이복(45)의 말이다.
밤 10시가 되자 마을 청년들과 오토바이 32대가 모였다. 그들은 요란한 시동 소리와 함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마을을 떠나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정글 어디쯤에서 걸어오고 있을 피란민들을 태워오는 게 이들의 임무다. 피란민 수송 작전은 밤낮이 없었다. 앞서 오후 2시30분 트럭 7대가 1차로 떠났다. 트럭에는 중국인 운전자 외에는 아무도 탑승하지 않았다. IRRC 마이자양 총무 라통은 “KIO 지역에서 벌목 노동자로 일하는 중국인들이 연료만 제공받고 우릴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럭 1대당 50~60명을 태울 수 있다니 트럭 7대가 서너 번은 이 길을 왕복해야 한다. 만만치 않은 작전이다. 트럭이 어디쯤에 이르렀는지, 뿔뿔이 흩어졌다는 피란민들이 어디쯤 걸어오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주파수가 잡히지 않을 때가 많은 구형 무전기만이 유일한 통신 수단이다.
11월18일 아침이 밝았다. 5일장까지 열려 북적이는 동네에는 기다렸던 피란민 중 누구도 도착하지 않았다. 간밤에 떠난 오토바이들이 연료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피란민들이 여전히 깊숙한 정글 속을 헤매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번엔 옆마을 젊은이들의 오토바이가 요란하게 시동을 걸었다. 공유양 마을에 비축해둔 연료가 모두 동난 탓에 옆마을에서 연료를 빌려와야 했다.
“길이 보통 나쁜 게 아니다. 6km쯤 떨어진 곳에 버마군 초소가 있고, 그다음 만답 마을에는 악명 높은 144·560 보병대까지 있어 위험하다.” 전날부터 오토바이든 트럭이든 타겠노라 간청해온 기자를 이렇게 만류하던 총무 라통과 공유양 마을 이장 브랑옹(33)은 아침 9시가 넘자 고집을 꺾었다. 내 발로 더 들어가지 않는 한 난민 취재를 허탕칠지 모른다는 다급함에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랐다. 산길은 깨진 바위와 진흙으로 미끄러웠고, 이따금 나타나는 낭떠러지 길은 앞서간 트럭과 밤길을 오갔을 오토바이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주행을 했을지 짐작하게 했다. 피란민들의 탑승지인 만가우 마을까지의 거리는 48km다.
1시간쯤 달리자 오토바이 등에 매달린 피란민들이 하나둘 지나갔다. 좀더 이동하자 트럭들이 나타났다. 어린이들로 빼곡한 1대를 제외하고는 칸막이도 없이 밧줄로 ‘안전장치’를 한 고물 트럭이었다. 피란민의 절대다수는 아이들이었고, 이따금씩 성인 여성과 남성들도 눈에 띄었다.
풀잎을 씹는 굶주린 아이들오후 1시, 아이들로 가득한 트럭 1대에 올랐다. 나를 태우기 위해 아이 2명이 기자가 타고 온 오토바이로 갈아타야 했다. 뭉딩파 출신 레이복(15)은 벌써 세 번째 피란 중이라고 했다. 남림파에서 온 토이복(36)은 덜컹거리는 트럭 위에서 아이를 재우느라 애썼다. 아이들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다. 고물 트럭이 뿜어내는 매연의 독성 때문임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됐다.
오후 2시30분. 트럭에 탄 아이들이 일제히 탄식을 하며 건너편 봉우리를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연기가 치솟는 봉우리에서 늦은 폭발음이 들려왔다. 남림파 방향이라는 감만 잡힐 뿐 정확히 어느 봉우리인지는 알 수 없다. 간헐적으로 구멍가게가 나타났다. 마음씨 좋은 중년 여자가 한 무더기 건네준 크림과자에도, 산길에 떨어져 있는 이름 모를 과일에도 아이들은 열광했다. 어떤 아이들은 풀잎을 따서 씹었고, 그 옆의 아이는 그 풀잎을 ‘나도 달라’며 졸랐다. 휴식을 위해 잠시 멈춰선 차량에서 아이 하나가 떨어졌다.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흙을 털고 일어났다. 산전수전 다 겪은 아이의 조숙함이 느껴졌다.
오후 6시. 가물거리는 마을 불빛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들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나 빛은 곧 사라지고 하늘엔 붉은 달이 내걸렸다. 달빛을 받으며 트럭은 1시간30분을 더 기었다. 17년 만에 깨진 평화를 살리는 일도, 반세기를 쌓아온 자치를 다시 일궈내는 것도 고물 트럭의 엔진음만큼이나 거친 버마의 개혁 로드에서 쉽지 않아 보인다. 카친의 수확철인 11월의 밤이 저물어갔다.
마이자양·만시 타운십(버마 카친주)=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Lee@penseur21.com취재지원 리영희재단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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