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장막이 조금씩 걷히고 있다. 오랜 세월 감춰왔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내부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의 제보로 미 정보기관의 불법행위가 잇따라 드러난 데 이어, 철저히 베일에 싸여왔던 이들 기관의 예산 규모도 구체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다. 이른바 ‘검은 예산’ 말이다.
는 지난 8월29일치에서 “2013 회계연도 미국의 각급 정보기관에 배정된 예산 총액은 모두 526억달러(약 57조4655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이번에도 스노든이 입수해 넘겨준 178쪽 분량의 ‘일급비밀’ 문서에서 나온 정보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CIA 포함, 정부 산하에 16개 정보기관 운영
잘 알려진 것처럼, 이른바 ‘정보 커뮤니티’(IC)로 불리는 미 연방정부에 딸린 정보기관은 모두 16개에 이른다. 독립기구인 중앙정보국(CIA)을 중심으로 국방부·에너지부·국토안보부·법무부·국무부·재무부 등이 산하에 정보기관을 두고 있다. 특히 국방부는 국방정보국(DIA)·국가안보국(NSA)은 물론 육·해·공군과 해병대에 딸린 자체 기관까지 모두 8개의 정보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인 1981년 12월4일 작성된 ‘행정명령 제12333호’는 이들 16개 기관을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총괄·지휘하도록 정해놓고 있다. 현재 16개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연방요원은 모두 10만7035명에 이른단다. 앞서 는 2010년 7월19일치 기사에서 “16개 정보기관과 연계된 연방정부 기관이 무려 1271개에 이르며, 관련 업무를 대행하는 민간 업체도 1931개나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미 의회와 행정부는 예산 적자 감축 폭을 놓고 극한 대치를 벌였지만,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이에 따라 올 들어 적용이 시작된 이른바 ‘예산 자동 삭감’(시퀘스트레이션) 규정에 따라 대부분의 연방정부 기관이 허리띠를 단단히 졸라맸다. 정보기관만은 예외였다. ‘검은 예산’은 지난해에 견줘 단 2.3% 줄어드는 데 그쳤단다.
미 정보기관의 예산이 최고점을 찍은 것은 냉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80년대로 알려져 있다. 는 “현재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당시 미국의 정보 예산은 약 710억달러에 이른다”고 전했다. 9·11 동시테러 이후 미 정보 당국이 사용한 예산은 이미 5천억달러를 넘어섰다. 현재의 정보 예산 규모는 2001년 예산의 2배를 넘는다. ‘테러와의 전쟁’이 5주년을 맞았던 2006년을 기준으로 해도, 정보 예산 규모는 25%가량 늘었다.
올해 가장 많은 예산을 챙긴 정보기관은 어디일까? 단연 CIA다. CIA는 전체 526억달러 가운데 약 28%에 이르는 147억달러를 배정받았다. 은 “냉전이 막을 내린 이후 연간 30억달러 수준을 유지하던 CIA의 예산은 2001년 9·11 동시테러 직후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며 “최근 몇 년 새 군사작전까지 직접 집행하게 되면서, 예산 규모가 1990년대의 5배까지 치솟았다”고 전했다.
실제 CIA는 지난 10년여 동안 ‘테러와의 전쟁’을 최전선에서 수행해왔다. 아프가니스탄 등지에 비밀 구금시설을 설치·운영했으며, 물고문을 포함한 이른바 ‘강화된 심문기업’을 활용해 ‘인간정보’(휴민트)를 수집했다. 무인항공기(드론)를 이용한 표적 암살작전을 비롯해 직접 병력을 투입해 전투까지 치르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대테러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예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게다. 9·11 테러 당시 1만7천 명 수준이던 CIA 인력은 현재 2만1573명까지 늘었단다.
39%는 ‘전략정보 수집 및 조기경보’에 사용
CIA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예산을 받아 챙긴 건 NSA다. 이 기관의 올 예산은 105억달러에 이른다. CIA와 NSA는 ‘검은 예산’과 별도로 이른바 ‘미군 직접 지원 업무’에 필요한 경비 230억달러를 추가로 사용하고 있단다.
항목별로 나눠 살펴보자. 전체 정보 예산 가운데 약 39%는 이른바 ‘전략정보 수집 및 조기경보’ 업무에 쓰인다. 이 항목의 예산 가운데 3분의 1은 정보기관이 직접 테러범 소탕작전을 벌이는 데 사용된단다. ‘무기 확산 방지’ 업무 예산도 전체의 13%를 차지했다. 이 밖에 ‘사이버 안보’와 ‘정보 유출 차단’ 등에도 각각 8%와 7%의 예산이 배정됐다.
예산 집행의 우선순위도 눈길을 끈다. 목록의 맨 윗자리에 버티고 있는 항목은 ‘공세적 사이버 작전’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는 “CIA·NSA를 중심으로 각급 정보기관이 예년보다 한층 강화된 ‘공세적 사이버 작전’에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해커이자 시민단체 활동가인 제러미 해먼드가 러시아 영문 매체 <rt>과 한 인터뷰에서 “미 정보기관은 지구촌 최대의 해커 조직”이라고 지적했다. 뉴욕주 경찰청 등 연방기관의 내부 통신망을 해킹한 혐의로 기소돼 현재 뉴욕시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그는 최근 공개 서한을 통해 “미 정보 당국이 어나니머스·룰즈섹 등 해커 집단에 요원을 침투시켜, 자기들이 원하는 해킹 목표물을 공격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공격 대상에는 외국 정부 사이트도 포함돼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공세적 사이버 작전’의 실체를 가늠해볼 만하다.
흥미로운 점은 NSA가 지난해 무려 4천 건에 이르는 ‘내부 정부 유출 사건’을 조사할 계획을 세웠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36억4천만달러 규모의 예산까지 배정해놨단다. 는 “스노든이 제보한 내부 문건을 보면, NSA 쪽은 이른바 ‘비정상적 행태’를 보이는 소속 일급비밀 취급 인가자 전원을 대상으로 보안감사를 실시할 계획이었다. 이는 NSA에서 근무하는 인원 10명 가운데 1명꼴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신문이 공개한 문건에는 보안감사 대상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다. “위험은 높지만, 업무능력이 탁월한 내부자와 외부 업체 직원. … NSA가 필요로 하는 젊고 창의적인 업무능력을 갖춘 인재.” 스노든도 여기에 해당될 터다. NSA가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면 내부고발도 불가능했을 거란 얘기다.
“미 정보기관은 지구촌 최대의 해커조직”
“정보기관의 예산 자체가 기밀이다.” 제임스 클래퍼 DNI 국장은 8월30일 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그는 이어 “예산의 구체적인 항목이 공개되면, 우리 활동의 최우선 순위가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를 외국 정보기관들이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위협에 맞서는 우리의 능력과 자원, 동원 가능한 작전 및 정보 수집 방법에는 뭐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어렵잖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신문이 공개한 정보 예산 문서는 전체 178쪽 가운데 17쪽에 불과하다. ‘검은 예산’의 실체는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을까?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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