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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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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뭘 하다 이제 와 전쟁인가

오바마 정부 ‘시리아 전쟁 결의안’ 미 상원 외교관계위 통과
최강 로비단체 ‘미국-이스라엘 홍보위’ 지지로 전쟁론 탄력
등록 2013-09-07 16:12 수정 2020-05-02 19:27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한 번도,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다. 그 어떤 나라도 전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 그런 말을 한 일이 없다.”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이 기자들 앞에 섰다. 국방장관 지명자 시절 미국 시민사회로부터 ‘그들 중 가장 나은 자’로 평가받았던 그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정치 전문 인터넷 매체 는 9월2일 헤이글 장관의 말을 이렇게 옮겨놓았다.
 “인류가, 전쟁을 벌이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서로의 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그건 우리가 그리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쟁을 벌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건 분명하다. 한 국가는,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았을 때 스스로를 보호할 권리가 있다. 이런 걸 ‘정당방위’라고 부른다. 그리고 또 하나, (모두가 분노할 만한) 인도주의적 이유도 있을 수 있다.”
 

시리아에서 화학무기로 많은 사람이 희생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미국의 시리아 공격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미국이야말로 수많은 불법 전쟁을 통해 많은 시민의 목숨을 앗아왔다. 지난 8월21일 다마스쿠스 인근 두마 지역에서 시리아 정부군이 사용한 화학무기에 의해 여성과 아이를 포함해 최소 213명이 숨졌다. 뉴스1

시리아에서 화학무기로 많은 사람이 희생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미국의 시리아 공격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미국이야말로 수많은 불법 전쟁을 통해 많은 시민의 목숨을 앗아왔다. 지난 8월21일 다마스쿠스 인근 두마 지역에서 시리아 정부군이 사용한 화학무기에 의해 여성과 아이를 포함해 최소 213명이 숨졌다. 뉴스1

 워싱턴서 울려퍼지는 진군의 북소리 

 그렇다. 그렇게, 워싱턴에서 ‘진군의 북소리’가 울려퍼진다. 2년을 훌쩍 넘긴 내전으로 갈가리 찢긴 땅, 시리아에 드리운 전쟁의 먹구름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2001년 10월 아프가니스탄, 2003년 3월 이라크에 이어, 미국이 2013년 9월 시리아에서 다시 전쟁을 벌일 모양새다. ‘테러’란 유령과 12년째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아니 인류는, 대체 그간 무엇을 배운 것인가?

 이 9월1일 전한바, 미 해군 항공모함 ‘USS 니미츠’가 홍해로 들어섰단다. 이날 에 출연한 미 국방부 당국자는, 이를 두고 ‘신중한 움직임’이라고 했다. “언제든 ‘행동’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고도 했다. 무슨 ‘행동’을 말하는가? 니미츠호는 아직 ‘작전명령’을 하달받지 못했단다. 그간 니미츠호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군사작전을 후방에서 지원하기 위해 아라비아반도 해역에 머물러왔다. 그래, 지중해 동부 연안에 크루즈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미 해군 구축함 5대가 배치돼 있다. 지척이, 시리아다.
 지난 8월21일 시리아에서 ‘화학무기 공격’ 정황이 포착된 이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시리아에 대한 ‘군사행동’에 나설 뜻임을 노골적으로 밝혀왔다. 애초 오바마 행정부는 유엔을 통한 공식적인 ‘개입’을 추진했지만, 중국·러시아 등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의 반발로 무위에 그친 터다. 어떻게 할까? 의회를 통해 ‘적법절차’를 거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른바 ‘전쟁결의안’쯤을 미 의회에 제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 의회는, 망설이고 있다. 이유? 여론 때문이다. 어떨까? 워싱턴의 의사당에서 ‘시리아 침공’ 문제를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진 지난 9월3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8월29일~9월1일 실시한 조사 결과를 내놨다. 내용을 들여다볼 만하다.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자국민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정황이 나오는데, 이 시점에서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을 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게 핵심 질문이었다. 응답자의 23%가 답을 내놓지 않았다. 찬성은? 29%에 그쳤다. 무려 48%가 ‘그럼에도’ 군사 개입은 안 된다고 답했다.
 같은 날 발표된 와 이 공동으로 실시해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도 엇비슷했다. ‘시리아 침공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36%에 그친 반면, 절반이 넘는 59%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게다.
 
 하원의원 435명 가운데 찬성자 44명뿐 
 그럼에도, 미 상원 외교관계위원회는 9월4일 오바마 행정부가 제출한 ‘전쟁결의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0 대 반대 7로 통과시켰다. 공화당 쪽은 반대표가 많았고, 민주당 쪽은 찬성표가 많았다. 위원회를 통과한 결의안 원문을 보면, 오바마 행정부는 결의안이 상하 양원을 통과한 날로부터 30일 안에 구체적인 ‘전쟁계획’을 마련해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또 계획안 마련 이후 90일 안에 시리아에서 모든 군사작전을 종료해야 한다.
 상원 논의 과정에서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민주당 크리스 쿤스 상원의원이 제안한 수정안도 결의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내용은, 대충 이런 식이다. “시리아 전장의 상황을 바꿔내는 것이 미국의 정책 기조다. 이를 통해 협상을 통한 상황 종결을 위한 유리한 조건을 조성해 무력 분쟁을 끝내고, 시리아에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원은 어떨까? 이미 해당 상임위원회를 통과해 전체 표결을 앞두고 있다. 상황은? 가 9월6일 집계해 내놓은 자료를 보면, 하원의원 가운데 결의안에 찬성하는 의원은 단 44명에 그친다. 반대의 뜻을 명확히 한 의원은 217명에 이른다. 나머지는 아직 결심을 굳히지 못했단다. 미 하원의원은 모두 435명, 결의안 통과를 위해선 찬성표가 절반을 넘어야 한다. 현재로선, 결심을 굳히지 못한 의원이 모두 나서야 가까스로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다. ‘위기감’을 느꼈을까? 전미총기협회(NRA)·전미은퇴자협회(AARP) 등과 함께 미국 최강의 로비단체로 통하는 ‘미국·이스라엘 홍보위원회’(AIPAC)가, 이례적으로 전면에 나섰다. 은 9월3일 “그간의 침묵을 깨고, AIPAC가 시리아 공격을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제출한 결의안을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미 의회에 촉구했다”고 전했다.
 실제 AIPAC는 이날 내놓은 성명에서 “의회는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을 지키고, 시리아 정권이 다시는 화학무기 등 비재래식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대통령이 요청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며 “문명사회라면 어린이를 포함한 무고한 민간인을 상대로 야만적인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해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의회 전문지 은 “AIPAC의 명시적인 지지로 오바마 대통령의 표심 공략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평화단체들 “전쟁으로 인명 구한다는 건 착각”  
 ‘탄력’ 정도가 아니었다. AIPAC의 성명이 나온 직후 는 인터넷판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은 백악관 관계자의 말을 따 “그야말로 몸무게가 몇백kg이나 나가는 거대한 몸집의 고릴라가 갑자기 방 한가운데로 뛰어든 모양새”라고 전했다. 미 정치권에 대한 AIPAC의 영향력을 빗대 표현한 게다. 이 단체 총회에는 대대로 민주·공화 양당의 유력 대선 후보가 제 발로 찾아와 연설을 하곤 한다. 그래선가?
 는 ‘고릴라’를 언급한 부분을 이날 밤 인터넷판 기사에서 들어냈다. 이튿날 독자와 만난 종이 지면에서도 이 표현을 찾아볼 수 없었다. ‘고릴라’란 검색어로 신문의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도, 해당 기사가 검색될 뿐 내용은 없는 채였다. 그런데, 기사를 전재해 싣는 가 ‘엉뚱하게도’ 이를 그대로 게재했다. ‘소식’을 채 듣지 못했던 건가?
 “(삭제) 이유는 간단하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지지가 없으면, 전쟁결의안이 의회를 통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AIPAC로선, 이런 사실을 미국민이 알기를 절대 원치 않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는 9월4일 이렇게 전했다. 한 가지만 더 살펴보자.
 오바마 행정부 탄생의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진보·평화단체들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시절부터 이라크 침공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집권 2기를 맞은 오바마 대통령의 행보가 ‘갈지자’ 걸음을 했음에도, 이들 단체는 비판을 삼가왔다. 자기들이 만든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더는, 아니게 됐다.
 “시리아에서 참혹하고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 살육은 미국의 침공으로 훨씬 더 참혹해지고 훨씬 더 광범위하게 퍼질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시리아 국민에게 폭격을 퍼붓는 것 둘 중의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평화단체 ‘루츠액션’은 오바마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전쟁결의안’ 부결을 위한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무브온·코드핑크·전쟁없는승리(WWW) 등 진보·평화단체들도 의회 청문회 기간에 맞춰 대대적인 반전운동에 나섰다.
 900만 회원을 확보한 무브온 쪽은 오바마 대통령과 상하 양원 의원들에게 “전쟁이 인명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착각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의회 청문회장에서 숱한 피켓시위로 ‘악명’이 높은 코드핑크 쪽은 “지금은 군사공격이 아니라, 적극적인 외교 노력과 인도 지원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오바마 대통령의 생각은 어떨까?
 
 유엔 안보리 결의 없는 공격은 국제법 위반  
 “(시리아는) 이라크가 아니다. 아프간도 아니다.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시리아에 대한 군사행동은 분명 ‘제한적’ 수준에 그칠 것이다. (작전의 범위도) 적절한 수준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번 군사행동은 비단 아사드 정권만을 겨냥한 게 아니다. (화학무기 사용을 금지한) 국제규범에 도전장을 던지려는 어떤 국가에 대해서도 단연코 ‘반드시 그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하는 메시지를 전해줄 필요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9월3일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팀을 모두 소집한 가운데 의회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공화당 존 베이너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 민주당 원내총무,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총무 등 의회 지도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의회가 (결의안을) 통과시켜줄 것을 자신한다”며 신속히 표결 절차를 마무리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이날 “시리아 정부군이 무차별적으로 화학무기를 사용해, 어린이 400명을 포함해 1천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며 “이에 대한 정보의 정확성에 ‘높은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표현했다.
 불과 지난봄까지만 해도, 오바마 행정부의 고위 인사들조차 “시리아 정부가 보유한 화학무기의 보관 장소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 위치를 모른다면, 아사드 정부가 이를 사용했다는 점에 대해 갖고 있는 ‘자신감의 높이’는 얼마나 될까? 시리아의 화학무기가 테러조직 등 ‘제3자’에게 넘어가는 걸 철저히 막을 것이라던 오바마 행정부의 ‘공언’도 의문이긴 마찬가지다. 군사 개입으로 그 가능성이 낮아지는 건가, 아니면 되레 높아지는 건가?
 오바마 대통령은 ‘메시지’를 특히 강조했다. “다시는 화학무기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시리아에 대한) 군사행동을 단행한다”는 게다. 물어보자. 90일로 제한된 미국의 ‘군사행동’이 끝난 뒤, 아사드 정권이 살아남아 다시 화학무기를 사용한다면, 그땐 어쩔 텐가? 다시 ‘행동’에 나설 것인가?
 질문은 끝이 없다. 유엔헌장은 남의 나라에 대한 무력 공격을 ‘정방방위’와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가 있은 때’에 한해 허용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불과 10여 일 전까지도 “(대시리아 군사행동을 위해선) 안보리 결의안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무엇이 달라진 걸까? 그는 자국 의회의 승인만 얻으면 된다는 쪽으로 철저히 방향을 틀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린다 해도, 전쟁은 폭력일 뿐이다. ‘군사행동’의 범위에 제한을 둔다고? 전쟁은, 일단 시작하면, 통제가 불가능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전임자가 ‘임무 완수’를 선언한 뒤,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기까지 걸린 기간이 대체 얼마였던가? 이라크는 지금도 저강도 전쟁 중이다. 그래서다. 오바마 대통령의 ‘선한 의도’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다.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미국의 군사행동이 가져올 결과가 중요할 뿐이다.
 
 난민 규모 이미 700만명 넘어서 
 ‘국경을 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표어’다. 국경 안에 머무르는 데는, 용기 그 이상이 필요하다. 그 참혹한 비극의 현장을 두 눈 부릅뜨고 목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UNHCR는 9월2일 자료를 내어, 시리아 내전 사태로 인한 국내외 난민이 700만 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국경을 넘어 이웃 나라로 피란길에 오른 이가 200만 명, 나라 안에서 터전을 잃고 떠도는 이가 500만 명을 헤아린다는 게다. 존 케리 국무장관의 표현을 빌려보자. 이쯤되면 ‘도덕적 외설’의 수준을 넘어선다.
 시리아 내전의 사망자가 공식적으로 10만 명을 넘어선 것도 이미 오래다. 그래도, 그래서, 그예 전쟁을 벌이겠단다. 물어야 한다. ‘그간, 너희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니?’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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