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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배운다고 상상해보자. 교사 1명이 학생 30명을 모아놓고 자전거 타기 강의를 1시간 동안 진행한다. 제대로 배웠는지 시험을 치른다. 그리고 실습을 한다. 결과적으로 30명 가운데 10명은 지필시험과 실습에서 80점 이상을 받는다. 10명은 60∼80점이다. 10명은 60점 이하로, 낙제점을 받았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자, 이제 두발자전거는 모두 마쳤으니 한발자전거 타기로 진도를 나가자.”
교육의 미래- 교실의 해체? 새로운 교실?우습게 들리는가? 그런데 이것이 우리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하고 있는 교육과 비슷하지 않은가? 무료 온라인 교육 시스템 ‘칸아카데미’를 설립해 유명해진 살만 칸의 말을 빌리면 그렇다.
교실은 많은 학생들을 관리·감독하기 쉽도록 고안된 시스템이다. 구조상 학생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학교와 교사가 중심에 서 있게 된다. 학교 운영과 교사의 편의에 맞게 교육 시스템이 작동되도록 설계돼 있는 것이다.
물론 현대 교육이 이렇게 교실을 중심으로 설계된 데는 현실적인 자원의 한계 탓이 크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직접 대면해서 가르치고 지필시험을 통해 평가하는 것이었다. 물론 교사 1명당 학생 수가 적을수록 효과적인 학습교육이 되겠지만, 교육에만 무한정 예산과 인력을 투입할 수 없는 노릇이니 학급당 학생 수를 적정한 선에서 정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현재의 교실이 설계된 것이다. 교육과정은 수십 명의 학생을 앞에 두고 1명의 교사가 가르치는 현재의 교실에 맞게 고안됐다. 표준화된 교과서, 일정에 맞춘 진도, 학기제도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바뀌었다. 기술 발전으로 이제는 학습 내용에 따라 다양한 교수법을 활용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증거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동영상·게임·그룹토론·컴퓨터를 통한 맞춤형 평가 등이 가능해졌고, 갈수록 그 기법 또한 발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교육방법은 현재의 교실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 교실체제가 바뀌지 않다보니, 여전히 교육과정은 앞에서 든 ‘자전거 타기 강의’ 같은 식으로 진행된다. 한 단계를 완전히 마치지 못한 학생들도 강제로 다음 단계로 진도를 나가야 하고, 그러다보니 흥미가 떨어지고 학습 부진이 생기기도 한다.
문제의식은 많은 이들이 갖고 있다. 기술도 준비돼 있다. 그렇다면 변화는 가능하다. 애스펀 아이디어 페스티벌에 온 조엘 로스 ‘새로운 교실’ 대표는 뉴욕에서 그런 변화를 실험한 사례를 발표했다. 로스 대표는 뉴욕시 교육담당 공무원으로 일했다. 학교 행정을 맡던 그는 기술의 작은 변화로도 교육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란다. 그러고는 ‘하나를 위한 학교’(School of One)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기술을 통해 학생 한명 한명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온라인 학습과 교사의 수업을 적절하게 혼합해서 개인별 진도 관리를 하는 교육과정을 실험하는 내용이었다.
수학 과목으로 한정해 진행한 이 프로그램은, 학생 1500명게 제공돼 기존 교육과정보다 나은 학습 성과를 냈다. 특히 성적이 낮은 학생들의 학습 성과가 더 향상됐다. 조엘 로스 대표는 이 프로그램을 확산시키기 위해 ‘새로운 교실’이라는 비영리기관을 만들어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교육과정을 보급하는 데 나서고 있다.
‘새로운 교실’의 목표는 ‘서로 다른 학습 속도를 보이는 학생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학교 교육의 오래된 문제를 푸는 것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초등학교 고학년인 학생들이 수학을 좀더 고르게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이 프로그램이 적용된 뉴욕 브루클린의 한 교실을 보자. 교사 6명이 학생 106명과 함께 공부한다. 몇몇 학생은 전통적인 교실에서처럼 앞에 선 교사의 수업을 듣는다. 이 학생들은 수학 과목에서 이미 같은 수준의 학습 성취를 보였다. 다른 학생들은 컴퓨터 앞에서 동영상을 시청하거나 수학 게임을 하고 있다. 온라인 튜터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다.
수준 평가를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문제풀이를 자주 하지만, 전통적인 시험처럼 부담감을 주지는 않는다. 학생들을 비교하는 시험이 아니라, 수준에 맞춰 각자에게 맞는 교육방법을 제공하기 위한 시험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오히려 컴퓨터와 게임을 활용한다는 점 때문에 이 교육방법을 좋아한다. 아직 실험 중인 프로그램이지만, 최소한 학교의 진도에 맞춰 학생이 학습하는 게 아니라 학생의 진도에 맞춰 학교가 움직이는 게 미래의 교육 시스템이어야 한다는 정신은 미국에서 큰 공감을 얻고 있다.
교실이 해체되는 현상은 고등교육에서도 일어난다. 강의실이 해체되는 일이 실제 벌어지고 있다. 유수 대학의 교과목을 일반에 공개해 온라인 강의를 듣게 하는 ‘무크’(MOOC)가 그것이다. 이디엑스(edX), 코세라(coursera) 등이 무크를 제공하는 기관들이다.
무크의 열기는 대단하다. 하버드대학과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만든 비영리기관인 이디엑스에는 2012년 가을 처음 문을 열자마자 학생 37만 명이 등록했다. 같은 해 1월에 문을 연 코세라에는 170만 명이 등록했다. 또 다른 무크 사업자 ‘유대시티’(Udacity)의 서배스천 스런 박사의 ‘인공지능 입문’ 과목에는 15만 명이 등록해 수업을 듣기도 했다. 무크 사업을 시작한 앤드루 잉 스탠퍼드대학 교수는 애스펀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페이스북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교육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시도무크란 기존 온라인 강의가 진화한 형태라고 보면 된다. 전통적으로 온라인 교육은 수강료나 등록금을 받는다. 사이버대학도 온라인 기업교육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학점이나 수료증을 주는 반면 수강생 수를 제한한다. 따라서 학생과 강사 사이의 소통이 가능하다. 무크는 반대로 대체로 무료 교육이고, 학점이나 학위를 주지 않는다. 대신 수강생 수는 거의 제한하지 않는다.
무크는 몇 년 전부터 유수 대학의 화두인 ‘열린 교육 프로그램’(Open Courseware)의 후속편이기도 하다. 열린 교육 프로그램은 하버드대학이나 MIT 등 미국의 주요 대학에서 벌어지는 실제 강의의 커리큘럼과 자료와 영상을 모두 공개했다. 하버드대학이나 MIT의 강의실을 뒤에서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반면 무크는 아예 온라인 접속자를 위해 별도로 만든 프로그램이라는 차별점이 있다.
무크는 주로 8∼12분이 한 단위인 동영상 강의로 이뤄지는데, 강의 사이에 짧은 평가가 있다. 따라서 한 가지를 학습한 뒤에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게 돼 있다. 글쓰기든 객관식 평가든 소프트웨어 코딩이든, 평가와 피드백은 전자우편으로 받는다.
물론 무크의 시도에는 여러 가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수만 명이 등록한 수업의 시험이 객관식이 아니라 논술형일 때는 어떻게 평가를 진행할 수 있을까? 학생들이 서로 공부하게 만드는 오프라인 대학의 장점을 어떻게 도입할 수 있을까? 무크는 학생공동체를 활용하는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수강생 중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만나서 토론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플랫폼을 제공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서로 답안을 채점하도록 하기도 한다. 제대로 채점하지 못한 학생은 다음부터 채점이 제한되도록 평점을 주기도 한다.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이들의 시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교실’을 중심으로 묶여 있는 교육체제를 해체하려 한다는 점이다. 교실 하나에 강사 1명, 강사의 이야기를 듣는 다수의 학생, 그리고 똑같은 교과서라는 기존 틀을 일단 벗어나면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다. 기존 교육의 문제점에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변화가 더딘 이유는, 기존 교실 체제를 흔들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이다.
모든 학생의 진도가 다를 수 있다. 강사는 코치로 기능이 바뀔 수도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교육방법의 대부분은 기술로 구현 가능한 시대가 됐다. 그러니 상상하고 실험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제 남은 숙제는 ‘무엇이 가장 교육적이냐’는 근본적 질문이다. 이렇게 기존 교실 체제를 흔든 결과로 아이들이 참여할 교육을 더 인간적이고 공동체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TV의 미래- 스마트 텔레비전의 종말텔레비전으로 야구경기를 시청하다가 좋아하는 선수가 나오자 리모컨 버튼 하나를 누른다. 그러면 텔레비전이 인터넷을 통해 야구선수 데이터베이스(DB)에 접속되면서 화면에 그 선수의 기록이 주르륵 뜬다. 드라마를 시청하던 중에 주연 배우가 든 가방이 눈에 띌 때, 리모컨 버튼을 누르면 그 가방을 살 수 있는 쇼핑몰에 접속된다. 텔레비전 회사들이 우리에게 상상하라고 권하는 미래 텔레비전의 모습이다. 이름까지 스마트하게 붙여두었다. ‘스마트 텔레비전’이라고. 안타깝게도 그런 미래는 오기 어려울 것 같다. 최소한 애스펀 아이디어 페스티벌에 참석한 딕 코스톨로 트위터 최고경영자(CEO)가 보기에는 그렇다. 텔레비전은 화면을 보여주는 지금의 기능에 충실하고, 오히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스마트 텔레비전의 기능을 구현하게 되는 것이 미래 텔레비전의 모습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코스톨로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두 번째 화면’이라고 부른다. 이제 텔레비전 시청은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하는 게 아니라, 트위터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수많은 시청자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그 이야기에 참여하며 보는 활동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두 개의 화면을 통해 텔레비전을 보는 게 일반적인 거실의 모습이 된다는 이야기다.
실제 시청자 반응이 그렇다. 시장조사회사 NPD그룹의 최근 조사를 보면, 인터넷이 사용 가능한 ‘스마트 텔레비전’을 보유한 미국 가구의 40% 이상은 그 텔레비전을 통해 웹에 접속한 일이 한 번도 없다. 그러니 게임 등 다른 애플리케이션(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스마트 텔레비전이 텔레비전의 역사를 바꿀 것이라며 의기양양하게 뛰어들었던 인텔은 관련 사업을 포기하고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집중하기로 했다.
문제는 시청자다. 시청자가 텔레비전을 통해 하고 싶어 하는 일은 텔레비전, 즉 영상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텔레비전 생산자들은 끊임없이 텔레비전 시청과 관련 없는 ‘스마트’한 기능을 기기에 추가했다. 반응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텔레비전은 오히려 영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시청하는 기기로 바뀌고 있다. 애플 TV 등 텔레비전과 연결한 뒤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을 시청하게 해주는 기기들의 성장세는 빠르다. 인터넷이 연결된 고화질(HD)텔레비전을 가진 미국 시청자 10명 가운데 6명이 이런 보조적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텔레비전을 통해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사용하거나, 전자책 및 잡지를 읽거나, 쇼핑을 하거나, 게임을 하는 등의 활동을 하는 비중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대조적이다.
이런 경향을 파악한 미국 유료 방송사들은 눈길을 스마트 텔레비전에서 태블릿PC나 스마트폰 앱으로 돌리고 있다. 앱을 통해 현재 텔레비전에 방송 중인 것과 관련된 영화를 검색하거나, 친구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려주거나,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찾도록 해주는 서비스를 방송사들이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원래 스마트 텔레비전이 목표했던 야구선수 기록이나 주연 배우의 경력은 이제 앱을 통해 전달된다.
딕 코스톨로는 이렇게 말했다. “트위터 없이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볼륨을 끄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때가 곧 올 것입니다. 관중의 환호 소리가 없는 야구경기를 상상해보세요.” 그런 점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PC는 텔레비전이나 방송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이들을 보완하는 제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트위터를 그 보완을 더 잘하는 서비스로 만드는 게 코스톨로의 비전이다.
도시의 미래- 라스베이거스의 변신, 클리블랜드의 도전
“나이키 같은 분위기의 사옥을 만들지, 애플 같은 분위기의 사옥을 만들지 고민했다. 결론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다. 아무리 멋진 사옥이라도 지역 공동체와 격리된 공간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리고 나의 개인 자산 3억5천만달러(약 4천억원)를 들여 ‘다운타운 프로젝트’를 라스베이거스에서 시작하게 됐다.”
애스펀 아이디어 페스티벌 연단에 선 토니 셰이 자포스 CEO는 이런 이야기로 발표를 시작했다. 자포스는 1999년 그가 창업한 세계 최대 온라인 신발 쇼핑몰이다. 그는 2009년 회사를 아마존에 12억달러(약 1조4천억원)에 매각했다. 매각 뒤에도 여전히 회사 경영을 맡고 있는 그는 사옥을 라스베이거스 시청 건물로 옮기는 결정을 내렸다. 연말까지 1500명의 직원이 이곳에 입주한다. 그 과정에서 ‘다운타운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시작한 것이다.
우선 5천만달러는 지역의 자영업자들에게 투자한다. 투자 조건이 독특하다. 먼저 주인이 직영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사업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그다음은 독특하거나, 처음이거나, 최고인 사업이어야 한다. 이미 식당, 옷가게, 자전거 공유 서비스 등의 지역 사업자에게 투자했다.
우연적 교류에 의한 사회 변화5천만달러는 기술 벤처기업에 투자한다. ‘더 베이거스 테크펀드’(The Vegas Tech Fund)를 조성해 이미 20개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투자받은 벤처기업들은 속속 사무실을 라스베이거스로 옮기고 있다.
이 중 일부는 ‘벤처 포 아메리카’(Venture for America)에 기부했다. ‘벤처 포 아메리카’는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이 저개발 지역으로 가서 2년 동안 창업을 통해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프로젝트를 하도록 하는 비영리단체다. 저개발 지역 학교에 청년을 교사로 파견하는 ‘티치 포 아메리카’(Teach for America)와 유사한 모델이다. 이 단체를 통해 100여 명의 청년들이 라스베이거스 다운타운 프로젝트에 와서 일하게 됐다. 이뿐 아니라 교육과 문화예술에도 5천만달러를 쓰기로 했고, 부동산 매입 및 공간 구축에 2억달러를 쓰기로 했다.
토니 셰이는 ‘도시’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숨김없이 피력했다.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학 교수는 저서 에서 도시가 2배가 되면 주민 1인당 생산성과 혁신이 15%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이는 ‘우연적 교류’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의 많은 도시들은 이런 ‘우연적 교류’를 오히려 차단한다. 셰이는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도박과 유흥으로 유명한 라스베이거스를 ‘우연적 교류’가 빈번하게 일어나며 혁신을 이끄는 곳으로 변화시키려는 포부를 이야기했다.
자포스는 원래 사옥에 여러 개의 문이 있는데도 정문만 열었다고 한다. 조금 멀리 돌아오더라도, 우연히 다른 부서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짧은 대화를 나눌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라스베이거스 도심도 그렇게 만들자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콘퍼런스, 세미나, 문화예술축제 등이 여기저기서 열리도록 여러 시설과 행사를 마련 중이다. 2013년 가을에 열기 위해 준비 중인 ‘인생은 아름다워 축제’(Life is Beautiful Festival)도 그중 하나다. 이 축제는 음악인과 예술가와 음식전문가들이 여행객들과 어울려 다양한 행사를 도심 이곳저곳에서 여는 것이다.
벤처기업가들이 여러 카페에서 일하고 대화를 나눈다. 외지에서 온 전문가나 예술가들이 오랜 동문을 만나 인사를 나눈다. 그러다 처음 만난 벤처기업가와 전문가, 예술가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신다. 그러다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아이디어가 떠올라 당장 실행에 착수한다. 토니 셰이가 그리는 미래의 라스베이거스 도심은 이렇게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며 지식을 교류하다가 자연스레 사업을 의논하고 사회 변화에 뜻을 모으는 공간이다. ‘다운타운 프로젝트’는 어쩌면 그런 변화에 필요한 장치를 마련하는 작업이다.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는 조금 다른, 하지만 근본적인 도시의 변화를 꿈꾸는 또 다른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다. 스페인 몬드라곤의 협동조합 모델을 미국 도시에 접목하는 것이다. 클리블랜드 협동조합들의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을 맡고 있는 노스워터파트너스의 그레이엄 베이시 대표는 ‘클리블랜드 모델’의 가능성을 설파했다. 2008년 10월, 클리블랜드 지역재단인 클리블랜드재단은 지역 학자, 행정가, 컨설턴트, 시민운동가 등이 함께 스페인 몬드라곤으로 가는 여행을 후원한다. 이때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도시 중 연간 가구소득이 나라 전체 1인당 평균 국민소득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유니버시티 서클 지역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곳에 일자리와 협동을 중심에 놓은 노동자협동조합을 기본 축으로 하는 ‘클리블랜드 모델’을 만들자는 데로 의견을 모은다.
클리블랜드는 우선 세탁업 협동조합인 ‘에버그린 세탁협동조합’을 만든다. 8명의 초기 직원은 버는 돈을 모두 가져가는 대신, 일부를 떼어 재투자 여력을 만드는 데 동의한다. 그리고 오하이오 태양광협동조합이 만들어진다. 지역의 건물 지붕에 솔라패널(태양광 충전기)을 설치해주는 일을 하는 곳이다.
미국은 CEO와 직원 사이의 임금 격차가 지나치게 큰 나라다. 많은 곳은 한 회사 안에서 수백 배, 수천 배까지 차이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협동조합에서는 임금이 가장 낮은 신입사원과 CEO의 임금 차이를 5배 이내로 통제하도록 제한해두었다. 일반적으로 4~5배, 특수한 경우 9배까지의 격차를 허용하는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규칙을 따른 것이다.
미국 기업문화는 성과 보수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는데, 이런 이단은 오히려 비효율을 낳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조직이 돈을 얼마나 버는지,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등을 투명하게 아는 협동조합 직원들이 오히려 더 나은 문제 해결책을 내온다. 자발적으로 일하게 되니 효율성은 오히려 높아진다. 특히 미국 저임금 일자리에서 자주 경영 이슈로 떠오르는 안전 문제와 회사 물건 절도의 경우, 주인의식이 높은 협동조합에서는 큰 이슈가 되지 않는다.
몬드라곤에서 그랬던 것처럼, 클리블랜드도 협동조합에 맞는 금융 시스템을 구축했다. 에버그린 협동조합 발전기금을 조성해 운영 중이다. 이 기금은 지역 협동조합들에 장기 저리의 자금을 대출해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라스베이거스와 클리블랜드의 도시 혁신 시도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토니 셰이는 도시의 유연성과 개방성을 높여 많은 이들이 찾아와 들끓게 만든다. 여기서 나오는 ‘우연한 만남’이 새로운 지식의 순환을 만들어내고, 결국 혁신의 싹을 틔울 것이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클리블랜드는 소득이 낮고 무기력한 지역 주민들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주는 노동자협동조합으로 도시를 재조직하려고 한다.
기업의 사명에 대한 다른 생각어느 쪽이든, 대규모 공장이 들어오고 땅을 파헤쳐 개발하는 것으로는 미래의 도시를 만들어갈 수 없다는 데는 동의하는 듯하다. 각자 자기 진지 안에서 비밀리에 열심히 일한 뒤, 만들어진 물건을 시장에 내놓아 최대한의 이익을 벌어들여 주주에게 자랑하는 것으로 기업의 사명이 끝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다.
글·사진 애스펀(미국 콜로라도)=이원재 경제평론가 timelast@gmail.com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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