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정부가 운영하고 있는 비밀 정보 수집 프로그램 때문에 적잖은 우려를 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그에 대해 설명드리고자,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로즈가든에 마련된 연단 앞에서 연설에 나섰다. 그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특유의 손짓을 섞어가며, 잔잔한 논리로 ‘설득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부시 행정부 시절이라면 걱정이 될 수 있겠죠. 그 시절엔 저 스스로도 크게 우려했으니까요. 하지만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조지 부시는 좋은 대통령이 아니었지만, 저는 아주 좋은 대통령입니다. 차이를 아시겠죠? 말하자면, 조지 부시가 비밀리에 여러분의 사생활에 관한 정보를 끌어모으는 것은 신뢰할 수 없겠지만, 제가 그러는 것은 믿으셔도 된다는 겁니다. 저는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부시 행정부와 지금을 비교하면 차이점은 얼마든지 있는데, 예를 들어….”
물론, ‘실제 상황’은 아니다. 국가안보국(NSA)이 미국인을 상대로 무차별적 사찰을 벌이고 있다고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내부고발 직후인 지난 6월7일, 오바마 대통령이 내놓은 대국민 연설을 패러디한 풍자 애니메이션의 일부다. 인터넷 대안매체 는 7월16일, 4분47초 분량으로 만들어진 이 동영상이 최근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6월23일 홍콩을 출발한 이후 러시아 모스크바의 셰레메티예보 공항 국제선 환승구역에 머물러온 스노든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7월12일 오후 5시엔 공항 내 ‘터미널 F’ 부근에서 앰네스티·휴먼라이츠워치 등 인권단체의 현지 지부 활동가들과 만나, “옳다고 믿는 일을 했을 뿐”이라며 “러시아 쪽에 망명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스노든의) 인권단체 대표단 면담은 선동술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면담을 허용한 러시아 정부 쪽에 유감을 표한다”며 “러시아 정부는 인권단체의 활동 영역을 공항 환승구역에 국한시킬 게 아니라, 나라 전체로 확대하기를 바란다”고 비꼬았다. 정치전문 인터넷 매체 의 보도를 보면, 카니 대변인의 ‘여유’와 달리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스노든의 망명 요청을 거부해달라고 요청했단다.
“미국 정부의 집요한 탄압을 받고 있다. 생명과 안전에도 위협을 느끼고 있다. 체포되면 고문을 당하거나 사형에 처해질 우려도 있으며….” 7월15일 스노든이 다시 움직였다. 그는 이날 공항 환승구역에서 만난 현지 변호사를 통해 러시아 이민 당국에 ‘임시 망명 신청서’를 제출했다. 정치적 망명은 유엔인권선언 제14조가 보장한 인류 보편의 권리다.
애초 푸틴 대통령은 “스노든이 더 이상 미국의 국익을 해치는 폭로를 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cnn>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망명 신청서 접수 뒤엔 슬쩍 말이 바뀌었다. “스노든은 초청장도 없이 러시아에 도착했다. 애초 러시아에 오려던 게 아니다. 비행기만 갈아탈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미국이 그의 향후 여행 계획을 차단해버렸다. 그러곤 다른 나라에 겁을 주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신청서 접수 이후 3개월 안에 망명 허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망명이 허용되면, 스노든은 합법적으로 러시아를 떠날 수 있다. 이미 베네수엘라·니카라과·볼리비아가 스노든에게 망명을 제안한 바 있다. 스노든의 ‘러시아 탈출’은 가능할까? ‘좋은 사람’을 자처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달렸다. 전자프런티어재단(EFF)을 비롯한 19개 미 인권·사회 단체들은 7월16일 NSA가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을 통해 수정헌법 제1조(표현의 자유), 4조(영장주의), 5조(적법절차)가 규정한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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