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타글랄, 아자디, 좀후리예 에슬라미!’(독립, 자유, 이슬람공화국)
1979년 옛 페르시아 땅에서 이슬람이 혁명을 만나 공화국을 세웠다. ‘좀후리예 에슬라미예 이란’, 이란 이슬람공화국의 탄생이다. 삶을 규정하는 이슬람과 정치를 규정하는 공화국이 어우러졌다. 강요된 서구적 방식이 아니라, 전통에 뿌리를 둔 자생적 근대화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슬람권을 휘감은 아랍 민족주의와 아랍식 사회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모델이 나온 게다. 그로부터 34년이 흘렀다. 이슬람과 공화국의 기이한 동거는 안녕한가?
오는 6월14일 이란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이란 헌법은 대통령의 임기를 ‘4년 연임’으로 제한하고 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지난 5월7~11일 대선 후보 등록 기간에 출사표를 던진 이는 모두 686명이다. 이란에서 태어나, 이란 국적을 지닌 성인이라면 누구나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할 수 있다.
물론, 이들 모두가 공식 후보로 출마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대선 후보의 출마 자격을 ‘검증’하는 건 이슬람 고위 성직자 6명과 율법학자 6명 등 모두 12명으로 구성된 헌법수호위원회의 몫이다. 2009년 대선 때는 476명이 예비후보로 등록해, 이 가운데 4명의 이름이 기표용지에 인쇄됐다. 헌법수호위원회가 지난 5월21일 선정·발표한 2013년 이란 대선 후보는 모두 8명이다. 그 면면을 들여다보자.
후보 4명 늘었지만 정치적 다양성 줄어
‘모하마드 가라지 전 정보통신부 장관, 혁명수비대 사령관 출신인 모센 레자에이 국정조정회의 위원장, 역시 혁명수비대 사령관 출신인 모하마드 바케르 칼리바프 테헤란 시장, 골람 알리 하다드 아델 전 마즐리스(국회) 의장, 모하마드 레자 아레프 전 부통령, 사이드 잘릴리 핵협상 대표 겸 최고국가안보위원회 사무총장, 정보국장을 지낸 하산 로하니 전 핵협상 대표, 알리 악바르 벨라야티 최고지도자 외교정책 고문.’
앞선 대선에 견줘 후보는 4명 더 늘었지만, 정치적 다양성은 훨씬 줄었다. 2009년 대선에선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레자에이 후보가 보수 진영을 대표해 출마했다. 미르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와 메디 카루비 전 마즐리스 의장은 개혁파를 대변했다. 보수와 개혁파가 동수로 맞섰던 게다. 이번엔 상황이 사뭇 다르다. 개혁파인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을 거쳐 부통령까지 지냈던 아레프 후보를 제외하곤 온통 ‘원리·원칙주의자’로 채워져 있다.
혁명 직후의 혼란기를 지난 이후 선출된 이란 대통령은 모두 연임을 했다. ‘혁명의 아버지’ 그랜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뒤를 이어 1989년 최고지도자에 오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1981~89)를 시작으로, 온건보수파인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1989~97), 개혁파인 하타미(1997~2005), 강경 보수파인 아마디네자드(2005~현재)에 이르기까지 예외는 없었다.
역대 대통령의 정치적 성향을 살피면, 이란 정치의 단면이 드러난다. 이른바 ‘강경보수-온건보수-개혁-강경보수’가 차례로 집권한 터다. 굳이 전례를 따지자면, 이번엔 개혁파까진 아니어도 적어도 ‘온건보수’ 성향의 정치세력이 집권해야 할 차례였다. 후보 등록 기간 막판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전격 출사표를 던졌을 때만 해도, 이런 전망에 힘이 실리는 듯했다.
현 대통령 집권 이후 종교 지도자와 갈등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로 선정되지 못했다. 헌법수호위원회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이란 정치권 안팎에선 ‘고령’이 빌미였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나이가 많기는 하다. 1934년생이니 올해 79살, 대통령에 당선돼 임기를 마치면 83살이 될 터다.
그럼에도 ‘나이가 많아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없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5년 임기의 국정조정회의 위원장에 임명됐다. 국정조정회의는 마즐리스와 헌법수호위원회 간 이견을 조정하고, 최고지도자를 자문하는 헌법기관이다. 그가 대선에서 배제된 진짜 이유로 그의 ‘정치 성향’을 눈여겨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하타미 전 대통령을 비롯한 개혁파 진영에선, 그가 출마를 선언한 직후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출마가 좌절된 또 다른 인물이 있다. 역시 이번 대선에서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과 자웅을 겨룰 만한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에스판디아르 라힘 마샤이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는 마샤이의 집권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3선’이나 마찬가지일 터다. 마샤이가 예비후보로 등록할 때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팔짱을 끼고 동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마샤이의 출마 불허 사유 역시 공개되지 않았다. 헌법수호위원회는 한번 내린 결정에 대해 설명할 의무도, 필요도 없다. 다만 추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전임자는 예외 없이 이슬람 성직자 출신이다. 2005년 6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주로 농촌과 도시 빈민 지역의 폭넓은 지지를 바탕으로 1차 투표의 열세를 결선에서 뒤집은 그의 집권이 특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집권 이후 아야톨라 하메네이를 정점으로 하는 종교 지도자들과 관계가 매끄럽지 못했다. 특히 집권 2기엔 핵협상 등 외교정책은 물론 경제정책 등 국정 전반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고위 성직자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다.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이슬람에 바탕한 ‘원조 보수’라면,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애국심을 강조하는 ‘신보수’를 대표한다. 두 보수 진영이 세력다툼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다.
“현행 선거법은 헌법수호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재심을 요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후보자 확정 발표와 함께 이미 공식 선거운동이 개시됐다. 재심을 할 시간도 없다는 얘기다.” 아바스 알리 카드호다에이 헌법수호위원회 대변인은 5월21일 등 국영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잘라 말했다.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과 마샤이 비서실장의 출마 불허 결정이 ‘완료형’임을 강조하기 위한 게다.
하지만 반발이 없을 수 없다.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딸인 자라 모스타파비 호메이니는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에게 후보 자격을 부여하라고 촉구하는 공개 서한을 아야톨라 하메네이에게 보냈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도 5월22일 “아야톨라 하메네이에게 직접 마샤이의 출마 불허 조치에 대한 재심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의 최고지도자는 칙령을 통해 헌법수호위원회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최종 결정권(벨라야트 에 파키)을 갖고 있다. 물론,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두 후보의 출마를 허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선거 승자는 아야톨라 하메네이”
“아야톨라 하메네이를 정점으로 하는 이란 보수 진영 입장에서 보면, 이번 대선 과정에서 예견 가능한 최악의 상황은 2009년과 같은 대규모 시위 사태가 재연되는 것이다. (두 유력 후보의 출마를 좌절시킴으로써) 그 가능성의 싹을 아예 잘라냈다. 이번 선거의 승자는, 이미 아야톨라 하메네이로 정해진 셈이다.”
인터넷 매체 는 5월22일 이렇게 지적했다. 2009년 6월 대선 당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무사비 전 총리와 선거운동 기간 막판까지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모두들 두 후보가 결선에서 진검승부를 펼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1차 투표에서 무려 62.63%의 득표율을 올리며, 33.75%를 득표하는 데 그친 무사비 전 총리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개표는 유례없이 신속했고, 결과 발표와 추인 과정도 숨가쁠 정도도 빠르게 진행됐다. 부정선거 논란이 불거진 이유다.
2009년은 이슬람 혁명이 30주년을 맞은 해였다. 혁명의 기운이 테헤란의 거리에 번졌다. 이듬해 초까지 이어진 이른바 ‘녹색혁명’은 바시즈 민병대를 동원한 정권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사그라지고 말았지만, 이후 튀니지·이집트·리비아 등지로 번져간 ‘아랍의 봄’의 서막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혁명 이후 지금껏 치밀하게 권력의 철옹성을 쌓아온 아야톨라 하메네이로선 몸서리를 칠 만하다. 세월을 되돌려보자.
1979년 이슬람 혁명 직후 만들어진 이란 헌법은 총리제를 두고 있었다. ‘신적 존재’인 최고지도자의 지휘 아래 대통령은 외치를, 총리는 내정을 맡는 방식이었다. 1980년 1월 혁명 이후 첫 대통령으로 당선된 아볼하산 바니사드르는 ‘성직자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당했다. 그의 후임인 모하마드 알리 라자이는 암살됐다. 이어 1981년 10월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아야톨라 하메네이였다.
투표가 일종의 ‘강제 사항’인 이란
집권 직후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자신의 측근인 알리 악바르 벨라야티를 총리로 지명하고 친정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혁명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때였다. 진보적 색채가 강했던 마즐리스는 이를 두고 보지 않았다. 결국 벨라야티 총리 지명은 좌절됐고,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마즐리스의 반발을 달래기 위해 무사비를 총리로 기용했다. 당시 무사비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고 있었다.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대통령을 지낸 기간은 고스란히 이란-이라크 전쟁 기간과 겹쳐져 있다. 전쟁의 참상으로 점철된 그 8년 기간에 무사비는 생필품마저 부족한 ‘전시경제’를 공평하고 효율적인 배급체제로 무난하게 관리했다. 국민적 신망이 쌓인 것은 당연했다. 1989년 최고지도자에 오른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총리제를 폐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무사비 전 총리는 2009년 개혁파를 대표해 대선에 출마할 때까지 정치권에서 철저히 사라졌다.
무사비 전 총리가 마지막으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랍의 봄’ 기운이 테헤란의 거리를 배회한 2011년 2월이다. 이후 그는 부인 자라 라나바르드와 함께 지금껏 가택연금 상태다. 무사비 전 총리와 함께 ‘녹색혁명’을 지휘했던 메디 카루비 전 마즐리스 의장 역시 마찬가지다. 2009년 부정선거 시위 당시 투옥된 개혁파 활동가 수백 명은 여전히 수감 중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개혁파 세력은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그의 출마 불허 조치는 개혁파 세력에 대한 철저한 배제다.
핵 프로그램 추진으로 인한 경제봉쇄로 민생경제가 파탄난 상태임에도,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농민과 빈민층을 중심으로 여전히 민심을 얻고 있다. 특히 물가 폭등에 맞서기 위해 2011년 12월부터 생필품과 에너지 보조금을 아예 현금으로 지급하면서 지지세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마샤이 비서실장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아바타’다. 그의 출마 불허 조치는 신보수 세력에 대한 배제다.
오는 6월 이란 대선은 사상 처음으로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다. 투표율을 조금이라도 높이려고 짜낸 ‘꼼수’일 게다. 이란에선 투표가 일종의 ‘강제 사항’이다. 투표에 참여하면 신분증에 도장을 찍어준다. 그 도장이 찍힌 신분증은 공무원이 되거나, 공기업에 취직하는 데 전제조건이 된다. 이 때문에 상당수 젊은이들은 투표소에 가서 도장을 받은 뒤 기표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투표율을 높이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의 투표율이 얼마나 높게 나올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이슬람공화국 수립 이후 1980년 7월부터 사용하고 있는 지금의 이란 국기는 ‘삼색기’다. 위부터 초록색·흰색·붉은색이 나란히 배열돼 있다. 전통적으로 ‘다산’의 상징이던 초록색은 혁명 이후 ‘이슬람에 대한 국민의 신념’을 뜻하게 됐다. 초록은 이슬람의 상징색이다. 가운데 흰색은 순수함과 평화를 상징한다. 맨 아래 붉은색은 혁명을 위해 스러진 순교자의 피를 뜻한다.
두 기둥 가운데 하나가 무너져
2009년 여름을 달군 개혁파 시위대는 머리와 손목에 초록 띠를 둘렀다. 공화국의 복원을 원하는 이들도 이슬람에 대한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던 게다. 4년이 흐른 지금, 상황은 많이 달라져 있다. 성직자를 주축으로 하고 최고지도자를 정점으로 하는 이란의 기득권층에 맞서는 두 세력, 개혁파와 신보수 세력은 주류 정치무대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공화국은 저만치 더 멀어졌고, 34주년을 맞은 ‘혁명’은 박제된 기억이 돼버렸다. 이란을 떠받치고 있는 두 기둥 가운데 하나가 무너져내리는 모양새다. 무릇 한쪽 기둥이 무너지면, 나머지 기둥도 오래 버티지 못하는 법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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