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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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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정부’로 가던 길 폭동을 만난 스웨덴

1985~2010년 OECD 회원국 중 소득 불평등 확대 폭 가장 크지만 여전히 복지 예산 GDP 대비 20% 선 유지… “스웨덴에서조차 이 정도라면 다른 나라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등록 2013-06-18 19:08 수정 2020-05-02 04:27

복지국가의 상징으로 흔히 노르딕 국가를 떠올린다. 북대서양과 만나는 스칸디나비아반도 일대에 자리한 덴마크·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 등지의 나라들 말이다. 평균 소득수준이 높고, 계층 간 격차는 낮다. 소득 최상위층에게서 거둔 막대한 세금으로 넉넉한 복지 혜택이 고루 돌아간다. 이민자에게 관대하고, 난민을 보듬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노르딕 복지국가의 맏형 격인 스웨덴에서 폭동 사태가 벌어졌다.
연례 행복지수, 간만의 차로 2위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폭동이 촉발된 것은 지난 5월19일이다. 스톡홀름 중심가에서 북서쪽으로 약 14km 떨어진 후스비 지역에서 한 남성이 흉기를 휘두르며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이 출동하자 그는 한 건물로 숨어들었다. 흉기를 빼앗으려는 경찰과 이를 휘두르는 문제의 남성 사이에 공방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총성이 울렸다. 포르투갈계 이민자로 알려진 이 남성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올해 69살의 노인이었다.
소식이 전해지자, 후스비 일대 젊은이 수백 명이 해질 녘부터 거리로 몰려나왔다. 이날 밤에만 약 100대의 차량이 불길에 휩싸였다. 한 건물의 주차장에서도 불길이 치솟으면서,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폭도로 변한 젊은이들은 인근 쇼핑센터를 유린했다. 이날 밤 10시께 현장에 출동한 경찰특공대에 맞서 젊은이들은 투석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 3명이 돌에 맞아 다쳤다. 밤새 이어진 폭동은 이튿날 새벽 5시30분께야 진정됐다.
후스비 지역의 인구는 약 1만2천 명으로 알려졌다. 그중 80%가량이 이민자란다. 끝난 줄 알았던 소요 사태는 5월20일 밤에도 이어졌다. 다시 차량이 불탔고, 학교와 경찰서 유리창으로 벽돌이 날아들었다. 5월21일부터는 스톡홀름 남부 일대로까지 폭동의 범위가 넓어졌다. 스톡홀름 경찰 당국이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갔다”고 밝힌 것은 폭동 발생 9일 만인 지난 5월28일이다.
그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4개 회원국과 브라질·러시아 등 모두 36개국을 대상으로 한 연례 행복지수(BLI) 평가 결과를 내놨다. 주거·소득·교육·환경 등 모두 11개 영역으로 나눠 실시한 평가 결과, 조사 대상국의 영역별 평균점수는 10점 만점에 6.28점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평균 5.25점으로 조사 대상국 가운데 27위를 기록했다. 1위는 평균 7.91점을 받은 오스트레일리아였다. 스웨덴은, 간발의 차이로 2위였다.
스웨덴의 평균 가구당 가처분소득은 한 해 2만6242달러로 OECD 회원국 평균인 2만3047달러보다 3천달러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15~64살 인구의 74%가 한 해 평균 1644시간을 일했다. OECD 평균 고용률은 66%, 평균 노동시간은 1776시간이다. 고용률은 8%포인트 높고, 노동시간은 132시간 짧다는 얘기다. 이만하면 살 만해 보인다. 폭동이 벌어질 상황은 아닌 게다. 아니 그런가?
‘반이민’을 내세운 스웨덴민주당 급부상
영국 는 지난 2월2일치에서 스웨덴의 경제정책을 집중 해부한 특집 기사를 실었다. 스웨덴이 유럽 경제의 새로운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는 게다. 후한 복지정책을 바탕으로 한 ‘노르딕 스타일’을 칭송한 게 아니었다. 정반대였다. 이 매체는 “1993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67%였던 스웨덴 정부의 재정지출 규모가 2012년 말까지 GDP 대비 49%까지 줄었다. 이른바 ‘작은 정부’가 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씀씀이를 줄이면서, 빚도 덩달아 줄었다. 1993년 GDP 대비 70% 수준이던 공공부채는 2010년 37%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만성적 적자에 허덕이던 정부 재정은 흑자로 돌아섰단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간에 스웨덴 정부가 조세정책에 손대면서 재정수입도 급격히 줄었다는 점이다.
1983년 무려 87%였던 고소득자에 대한 한계소득세율은 57%까지 떨어졌다. 부동산보유세와 상속세, 증여세·부유세 등 고소득층을 겨냥한 각종 세금이 아예 폐지됐다. 올해 들어선 기업소득세율을 26.6%에서 22%로 추가 인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세금을 줄이고, 재정지출마저 줄였다. 결과는 하나, 복지예산 축소로 모아질 수밖에 없다.
교육·의료 등 복지정책은 사회적 차원에서 소득을 재분배하는 역할을 한다. 복지정책이 힘을 잃으면, 빈부 격차는 커지기 마련이다. OECD가 2011년 펴낸 보고서를 보면, 스웨덴은 1985∼2010년 회원국 가운데 소득 불평등 확대 폭이 가장 심했다. 2008년을 기준으로 상위 10%의 연평균 소득(51만3천크로나)은, 하위 10%의 평균 소득(8만1천크로나)의 6배를 넘어섰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 격차는 5배가량이었고, 1990년대 초반까지도 4 대 1 수준에 그쳤단다. OECD는 5월28일 발표한 BLI 평가 보고서에서도 “스웨덴의 빈부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0년 스웨덴 경제는 6.1%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1년엔 성장률이 3.9%로 떨어지더니, 지난해엔 단 0.8%에 그쳤다. 유로존 각국이 경기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수출이 급감한 탓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희생양’을 찾게 되는 법이다. 약 950만 명인 스웨덴 인구 가운데 약 15%는 스웨덴 이외 지역에서 태어난 이민자다. 2010년 총선에서 ‘반이민’을 내세운 스웨덴민주당(SD)이 급부상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극우 성향인 SD는 당시 선거에서 5.7%를 득표해, 1988년 창당 이래 처음으로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SD는 지난 5월 초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9.9%까지 지지율이 치솟으며 일약 제3정당의 반열에 올랐다. 폭동 사태 이후엔 지지율 반등세가 더욱 뚜렷해질 기세다. 이제 스웨덴은, 더 이상 ‘스웨덴’답지 않아 보인다.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2010년 ‘세이브더칠드런’이 펴낸 스웨덴 빈곤층 어린이 현황 보고서다. 이 단체는 스웨덴에서 의식주를 적절히 제공받지 못하는 어린이가 전체의 11.5%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특히 스웨덴 태생의 부모가 양육하는 어린이의 2.3%가 빈곤층인 반면, 이민자 출신 한부모 가정의 어린이 빈곤율은 무려 49%에 이른단다.
2013년 5만4천 명 망명 허용 계획
그럼에도 스웨덴은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지속적으로 줄어들곤 있지만, 스웨덴의 복지예산은 GDP 대비 20% 선을 유지하고 있다. OECD 평균치는 13%에 그친다. 극우정당의 부상으로 집권 중도우파 정부도 이민정책 강화를 말하고는 있지만, 아예 문을 닫아걸진 않았다. 지난해에만 난민 4만4천여 명을 포함해 모두 8만2천 명이 스웨덴 국적을 취득했다. 스웨덴 이민 당국은 2013년에도 소말리아 난민 2만여 명을 포함해 모두 5만4천 명에게 망명을 허용할 계획이란다. 스웨덴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공평하고, 또 정의로운 땅이란 얘기다. 그래서다. 영국 일간지 은 5월27일치 칼럼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도 폭동이 벌어졌다. 분명 놀랄 만한 일이다. 궁금한 것은, 스웨덴에서 폭동이 벌어진 이유가 아니다. 정작 캐물어야 할 점은 따로 있다. 스웨덴에서조차 상황이 이 정도라면, 다른 나라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따져봐야 할 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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