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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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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0년, 저강도 전쟁은 계속된다

이라크전쟁 10주년, 미군 철수 뒤에도 끝없는 충돌로 이라크 단체는 지난해 민간인 사망자 수 4471명 추정… 해방군 자처한 미군은 방해꾼 노릇만 하다 갔지만, ‘전략적 오판’ 한 이들은 단죄는커녕 당당해
등록 2013-03-23 08:06 수정 2020-05-03 04:27

마지막 미군이 이라크를 떠난 것은 2011년 12월18일이었다. 2003년 3월20일 이라크 땅을 때려대기 시작한 이래 정확히 8년, 8개월, 그리고 3주 만의 일이다. 그로부터 다시 1년3개월여가 흘렀다. 미국 침공 10주년을 맞은 오늘의 이라크는 어떤 모습일까?
‘그린존’ 점령, 미군 주둔은 계속돼
메소포타미아를 가르는 티그리스강의 푸른 물줄기를 가로질러 들어선 아르바타시 타무즈 다리의 서쪽, 알킨디 거리와 맞닿은 바그다드 한복판은 10년째 ‘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다. 미군이 물러간 뒤에도 거대한 콘크리트로 장막을 둘러친 채 버티고 있는 ‘그린존’(안전지대). 바티칸 면적과 비슷한 약 42ha의 땅덩어리에 21동의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관이다.
미군이 철수를 마친 지 두 달 남짓 만인 지난해 2월7일 는 미 국무부 관계자들의 말을 따 “철군이 마무리된 만큼 상주 인력을 많게는 현재의 절반 수준까지 줄여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따로 있다. 그때까지 바그다드의 미 대사관에 상주하고 있던 인력의 규모다. 신문은 “외교관 등 공무원 2천 명과 민간 협력업체 직원 등 모두 1만6천 명이 대사관 부지에 딸린 건물에서 상주하고 있다”며 “한 해 운용하는 예산만도 60억달러(약 6조6600억원)에 이른다”고 전했다. 미국은, 이라크를 떠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벌써 몇 년째, 은 매월 초 전월 이라크에서 숨진 이들의 수치를 집계해 발표한다. 지난 3월2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 2월 한 달 동안 이라크 전역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유혈 사건으로 민간인 88명, 군인 26명, 경찰 26명 등 모두 136명이 목숨을 잃었다. 177명이 숨진 지난 1월에 견줘 그나마 줄어든 수치란다. 통신은 “북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시리아에서 (시아파 정부와 수니파 저항세력으로 갈린)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이라크에서도 종족 간 긴장감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실이다. 지난 3월14일 정오 무렵 바그다드 중심가 알라위 지역에 자리한 이라크 법무부 청사 부근에서 차량폭탄이 터졌다. 혼란 속에 경찰복 차림을 한 괴한 6명이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이내 총격전이 시작됐다. 1시간 남짓 이어진 격렬한 교전은 경찰특공대가 투입되면서 막을 내렸다. 폭탄조끼를 입고 있던 괴한들은 자살폭탄 공격을 감행했다. 이 사건으로, 범인을 빼고도 경찰 7명을 포함해 모두 2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라크 법무부 청사는 2009년 10월24일에도 괴한의 습격을 당한 일이 있다. 당시엔 대형 차량폭탄 2발이 동시에 터지면서 무려 16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으로 청사 건물이 심하게 파손됐고 법무부는 청사를 옮겨야 했다. 유혈극이 벌어진 새 청사는 ‘그린존’과 불과 1km 남짓 떨어져 있다.
인터넷 대안매체 은 이라크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기록’을 하루도 빠짐없이 모아놓고 있다. 법무부 청사가 아비규환에 휩싸이던 날,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30km가량 떨어진 라티피야에선 군 검문소가 공격당해 병사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날 하루에만 이라크 전역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유혈 충돌로 모두 33명이 숨지고 72명이 다쳤단다.
앞서 3월13일엔 10살 어린이를 포함해 2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3월12일에도 2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고, 3월11일엔 북부의 관문이자 유전지대인 키르쿠크에서 차량폭탄 공격으로 8명이 숨지는 등 모두 27명이 목숨을 잃고 166명이 다쳤다. 3월10일에도 6명이 숨지고 166명이 다쳤다. 다만 강도가 약해졌을 뿐,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라크는 지금, 저강도 전쟁터다.
점령 병력에 대한 우려와 거짓
거짓에 기댄 ‘전쟁의 북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한 것은 2002년 10월2일이다. 그날 조지 부시 행정부는 미 의회에 이른바 ‘전쟁 결의안’을 제출했다. 모두들 한목소리로 ‘진군’을 외쳤다. 언론에서도 “더 이상 논의할 만한 것도 없다”고 거들었다. 그해 10월10일 미 하원은 찬성 296표, 반대 133표, 기권 3표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튿날엔 상원에서도 찬성 77표, 반대 23표로 통과됐다. 표결 결과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무에 그리 급했을까? 부시 행정부는 이내 전쟁 준비에 몰두했다. ‘경고의 목소리’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개전이 초읽기에 들어간 2003년 2월25일 미 상원 국방위원회는 각군 참모총장을 출석시켜 전쟁 준비 상황과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에 대한 전망을 물었다. 민주당 중진인 칼 레빈 의원은 에릭 신세키 당시 육군참모총장에게 전투가 아닌 ‘점령’에 필요한 병력 규모를 물었다. 즉답을 피하던 신세키 총장은 거듭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금까지의 상황에 비춰 적어도 몇십만 명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전 상황이 종료된 이후까지 상정한다면, 지리적으로 광대한 곳에서 종족 간 긴장까지 있으니 미리 예견하지 못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치안을 유지하고, 주민들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유할 수 있도록 물자를 공급하면서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가려면 대규모 지상군 병력 주둔이 필요하다.”
그로부터 이틀 뒤,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이 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했다. 그는 의원들의 관련 질의가 없었음에도 “짚고 넘어갈 게 있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누가 봐도 신세키 총장을 겨냥한 발언이었는데, 결국 그는 그해 6월 군복을 벗었다.
“최근 일부에서 교전 상황 종료 이후 필요한 병력 규모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라크 국민이 미군을 해방군으로 여길지에 대해선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라크군을 궤멸시키는 데 필요한 병력보다 이후 안정화 과정에 더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전쟁은 쉬웠다.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 후세인의 공화국수비대는 이렇다 할 저항을 하지 못했다. 바그다드는 함락됐고, 독재자의 동상은 끌어내려졌다. 절대권력이 무너진 자리, 치안 공백을 틈타 약탈과 폭력이 이라크 전역에서 난무했다. 그해 4월11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정례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선 경제위기 부추겨
“(전쟁을 치르다보면) 별일이 다 있기 마련이다. 보기 좋지는 않지만, 자유란 게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자유로운 시민들은 때로 실수도 하고, 범죄도 저지른다. 또 자유롭게 살아가면서 훌륭한 일을 하기도 한다. 바로 그런 일이 앞으로 이라크에서 생기게 될 거다.”
2003년 5월1일 부시 대통령은 조종사 복장으로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에 올라 주요 전투 종료를 선언했다. 그날 항모에는 ‘임무 완수’라 쓴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다. 이라크에서 전사한 미군 장병은 모두 4488명, 이 가운데 90% 이상이 부시 행정부가 ‘전투 종료’를 입에 올린 뒤 목숨을 잃었다.
눈먼 전쟁이 만들어낸 가공할 현실을 무엇으로 가늠할까? 세계적 의학저널 은 3월15일 인터넷판에서 프레데릭 버클·리처드 가필드 하버드대학 교수 연구팀이 집계한 자료를 바탕으로 “2003년 3월20일 개전 시점부터 미군 철수가 마무리된 2011년 12월18일까지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 수는 적어도 11만6903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1월 인권단체 ‘이라크 보디카운트’는 미군 철수 ‘원년’인 지난 한 해 동안 이라크에서 숨진 민간인이 모두 4471명에 이른다고 집계한 바 있다.
전쟁비용은 어떨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2010년 9월5일치 에 보낸 기고문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애초 부시 행정부는 2003년 전쟁비용을 500억달러에서 600억달러로 예상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개인적으로 전쟁비용의 총액이 3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낮은 수치였다는 점이 이후 분명해졌다. 참전 장병에 대한 각종 지원과 보상, (3만1천여 명에 이르는) 상이군인에 대한 연금 지급과 치료에 들어갈 경비는 상정조차 하지 않은 액수였기 때문이다.”
천문학적 전쟁비용이 2008년 금융위기의 심각성을 더욱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전쟁비용 충당을 위해 재정적자가 산처럼 쌓이면서, 위기의 순간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재정 수단을 잃게 됐다는 게다. 는 지난 3월6일 린다 빌름스 하버드대학 교수의 말을 따 “이라크전쟁은 처음부터 빚을 내 전쟁비용을 조달한 사상 유례가 없는 전쟁”이라며 “같은 기간 부시 행정부가 막대한 규모의 세금 인하 조치까지 취하면서 미국 경제 전반에 엄청난 악영향을 끼쳤다”고 전했다.
앞서 미국 싱크탱크 ‘예산정책우선순위센터’(CBPP)는 지난 2월28일 내놓은 자료에서 “오는 2019년까지 이라크전쟁 비용과 부시 행정부의 부자 감세 조치로 인한 예산 적자는 전체 17조달러의 절반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단체는 이어 “최소한 3조달러 이상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직접적인 전쟁경비는 물론 이로 인해 삭감된 예산에 따른 기회비용까지 고려하면 이라크전쟁 비용은 계산조차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조지 테닛 중앙정보국장, 폴 브레머 다국적군 임시행정처(CPA) 최고행정관….’ 월간 은 지난 3월1일 인터넷판에서 이라크전쟁과 뒤이은 점령정책에 주도적으로 관여한 인물들의 면면을 새겨적었다. 이 매체는 이렇게 지적했다.
여전히 건재한 용서받지 못할 자들
“베트남전 종전 이후 그 ‘재난적 전쟁’을 주도했던 인물들은 하나같이 공식 무대에서 사라졌다. 어느 누구도, 더 이상 미국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감히 입에 올리지 못하게 됐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상 최악의 ‘전략적 오판’으로 꼽히는 이라크전쟁이 끝난 뒤에는 상황이 사뭇 다르기만 하다. 용서와 망각이 기이하게 교차하고 있다. 전쟁을 주도했던 이들은 여전히 건재하고, 책임은 그 누구도 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 그들이 공식 석상에서 발언을 할 때는, 의약품 광고에 등장하는 부작용에 대한 경고 문구라도 곁들여줘야 할 것 같다.”
칼럼니스트 아이아나 허핑턴은 지난 3월6일 에 올린 글에서 체코 출신 소설가 밀란 쿤데라가 에 쓴 문장을 되새겼다.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맞선 기억의 투쟁과 같다.” 지난 10년, 참극의 세월을 새삼 되새기는 이유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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