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통계청(CBS)의 자료를 보자. 지난해 4월 현재, 이스라엘의 인구는 788만1천여 명이다. 이 가운데 유대인 수는 593만1천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75.3%에 이른다. 이스라엘 시민권 또는 국적을 획득한 아랍인도 인구의 20.6%가량인 162만3천여 명에 이른다.
이스라엘 선거법은 만 18살 이상의 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한다. 아랍계 주민들에게도 마찬가지일까? 아니다. 1948년 건국 당시 이스라엘이 ‘영토’로 선포한 지역에 살던 아랍계 주민들에겐 시민권과 투표권이 자동으로 부여됐지만,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한 땅에 살던 주민과 그 후손에겐 투표권이 없다. 이를테면 1967년 이른바 ‘6일 전쟁’(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실질적 ‘통치’ 아래 있는 요르단강 서안의 일부 지역과 골란고원 일대에 사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처지가 그렇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운동가들이 중심이 돼 1월22일 치른 총선에서 ‘투표권 기부운동’이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투표권 없는 아랍계에 투표권 기부
‘하이테크 불복종 운동’. 이번 총선을 앞두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유대계 주민들이 투표권을 아랍계 주민들에게 ‘기부’하겠다고 나선 것을 두고 <afp>은 1월20일 이렇게 표현했다. 유대인 평화운동가 심리 자메레트(28)가 ‘진정한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주도한 ‘투표권 기부운동’에는 2천 명 가까운 이들이 참여하는 등 제법 열기가 달아올랐단다. 통신의 보도를 좀더 살펴보자.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 사는 아랍계 주민 무사 마리아는 투표권이 없다. 사실, 크게 관심도 없었다. 투표권이 있는 아랍계 주민들도 ‘저항의 표시’로 기권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러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통해 유대계 주민 샤하프 웨이스베인을 알게 됐다. 웨이스베인은 지난 1월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 결정이 수백만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그들에겐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며 “그들에게도 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적었다. 그는 무사 마리아의 선택에 따라 1월22일 아랍계 정당 ‘발라드’에 표를 던졌단다.
아랍계 주민들과는 정반대 상황에 놓인 이들도 있다. ‘하레디’로 불리는 극단적 유대 근본주의자들이다. 주로 동유럽 일대에 흩어져 살아온 유대인 공동체에 그 뿌리를 둔 이들은 나치의 유대인 말살 정책(홀로코스트)의 대표적 희생자다. 건국 초기 하레디 유대인들은 워낙 그 수가 적었다.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총리 정부가 이들에게 병역 면제와 생계보조금 지급 등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준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의 ‘보호 대상’이던 하레디 유대인은 이후 급격히 머릿수를 늘렸다. 율법에 따른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출산율이 이스라엘 평균치의 서너 배를 웃돌았기 때문이다. 하레디 유대인 인구는 이미 100만 명을 넘어섰단다. 유대계 주민 6명에 1명꼴인 셈이다. 1984년 이들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아 창당된 극우 정당 ‘샤스’는 2009년에 이어 이번 선거에서도 전체 120석 가운데 11석을 얻으며 원내 제5당의 지위를 이어갔다.
‘61 대 59.’ 가 집계한 1월22일 총선 결과, 차기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를 구성할 우파와 중도·좌파 정당의 의석 비율이다. 선거 결과는 1월30일에 공식 발표되지만, 이미 개표는 사실상 마감됐다. 지금까지의 개표 결과만 놓고 보면, 이번 선거는 이스라엘 민심이 4년여 만에 조금 더 ‘왼쪽’으로 움직였음을 보여준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66.4%, 1999년 총선 이후 최고치란다. ‘변화’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선거 결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끈 ‘리쿠드-베이테누’ 연합은 모두 31석을 얻었다. 기존보다 11석이 줄어들긴 했지만, 원내 제1당의 지위는 유지해 연립정부 구성을 주도할 수 있게 됐다. 선거를 앞두고 전격적인 가자지구 침공을 단행하는 등 ‘우경몰이’에 나섰던 네타냐후 총리가, 선거 직후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 거국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고 몸을 낮춘 것도 이 때문이다.
제3당 노동당 연정 참여 거부
전통의 중도좌파 정당인 노동당은 기존보다 2석을 늘린 15석을 얻었다. 인터넷 매체 는 1월24일 “네타냐후 총리가 노동당도 연정에 참여할 것을 요청했지만, 셸리 야치모비치 노동당 대표는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한 이념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이유를 들어 야당으로 남을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노동당은 원내 제3당이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이스라엘에선 선거 결과가 곧 집권을 뜻하지 않는다. 2009년 총선에서도 중도 성향의 카디마당이 28석을 얻으며 원내 제1당이 됐지만, 연정 구성 협상에 실패해 원내 제2당인 리쿠드당의 집권을 지켜봐야 했다. 총선 직후부터 네타냐후 총리가 바삐 움직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다. 이번 선거의 ‘승자’는 따로 있는 듯 보인다.
“우리 당을 연정에 참여시키려면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협상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또 유대 근본주의자(하레디)에 부여했던 군 면제 혜택 등 특권을 박탈해야 한다.” 이스라엘 일간 는 1월23일 이번 선거에서 일약 ‘원내 제2당’으로 떠오른 ‘예시 아티드’(미래당) 고위 당직자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방송사 앵커 출신인 정치 신인 야이르 라피드가 ‘중산층을 위한 중도정당’을 표방하고 꼭 1년 전인 2012년 1월 창당한 이 정당은 이번 선거에서 모두 19석을 얻었다.
이미 원내 제3당인 노동당은 연정 참여를 거부했다. 원내 제2당의 참여 없이는 연정 구성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네타냐후 총리의 재집권으로 가는 ‘열쇠’는 미래당이 쥐고 있는 셈이다. 미래당의 연정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네타냐후 총리가 기존 강경몰이를 지속하지는 못하리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변수’가 하나 더 있다는 점이다.
미래당과 함께 이번 선거에서 두각을 나타낸 정당이 또 있다. 사업가 출신인 나프탈리 베네트가 이끈 극우 정당 ‘베이트 예후디’(유대인의 조국)도 기존 3석보다 4배나 많은 12석을 차지하며 원내 제4당의 자리를 꿰찼다. 베네트 당 대표는 2006년 네타냐후 총리의 비서실장에 임명되며 주류 정치권에 입문했다. 하지만 1년6개월 남짓 만에 해임된 이후, 네타냐후 총리의 ‘정적’으로 떠올랐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지 는 1월23일 인터넷판에서 “베네트 대표는 (강경파인) 네타냐후 총리마저 무르다고 비판하는 극단적 성향”이라며 “네타냐후 총리가 이끈 리쿠드-베이테누가 쇠락의 길로 접어든 것은 베네트 대표가 전통적 보수층의 표심을 잠식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권력 장악력 약화될 듯
연정 구성에 성공하려면 ‘예시 아티드’와 ‘베이트 예후디’ 두 정당이 모두 필요하다. 두 정당의 이념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세번째 집권을 앞두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로선 상황이 좋지 않다. 현지 언론인 바라크 라비드는 1월22일 저녁 출구조사 결과 발표 직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내다봤다. “차기 정부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권력 장악력은 이전보다 크게 떨어질 것이다. 그나마 구성될 연립정부도 상당히 불안정한 구조일 수밖에 없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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