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동쪽으로 브라질, 남쪽으로는 파라과이·아르헨티나와 맞닿아 있다. 남서쪽으로 칠레가, 서쪽으론 페루가 자리를 잡고 있다. 안데스의 드높은 산자락을 무대로 찬란한 문명을 이룬 잉카제국의 후예가 사는 곳, 파라과이와 함께 라틴아메리카에서 단 2개뿐인 내륙국가 볼리비아다.
16세기 중반 스페인 병사들이 지금의 볼리비아 땅을 장악한 것은 ‘은’ 때문이었다. 해발 4천m가 넘는 남부 포토시 지역을 중심으로 개발된 은광은 한때 스페인이 세계경제를 장악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화수분’이었다. 20세기 들어선 주석이 은을 대체했다. 2011년을 기준으로 볼리비아는 세계 6위의 주석 생산국이다. 휴대전화와 컴퓨터,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에 쓰이는 2차전지의 주원료로 ‘백색황금’이라 불리는 리튬도 540만t이나 매장돼 있다. 지리적으로 개발이 어려운 조건이긴 하지만, 매장량만 놓고 보면 세계 1위다.
1993년 데로사다 정부 때 본격적 민영화
원유와 천연가스도 풍부하다. 원유는 확인된 매장량만 4억4100만 배럴로, 남아메리카에서 5위 규모다. 지속적으로 추정치가 늘고 있는 천연가스는 볼리비아 정부가 공식 확인한 매장량만 약 27조세제곱피트에 이른다. 남아메리카 최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에 이어, 지역에서 두 번째로 많다. 볼리비아는 자원 부국이다.
그럼에도 볼리비아는 가난한 나라다. 평균수명과 교육·소득 수준 등을 따져 유엔개발계획(UNDP)이 해마다 내놓는 ‘인간개발지수’(HDI)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볼리비아의 HDI는 0.663으로 세계 108위를 기록했다. 세계은행(WB)이 추정한 2011년 볼리비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421달러, 세계 131위에 불과하다. 그나마 지난 10년여 동안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그 사이에 볼리비아에선 아주 특별한 일이 벌어졌다.
볼리비아의 현대사는 여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다. 1960년대 초반부터 군부 쿠데타가 잇따라, 20여 년 동안 군사독재가 이어졌다. 볼리비아에 문민정부가 들어선 건 1982년이다. 하지만 극심한 경기침체가 이어지자, 1985년 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모의하기에 이른다. 쿠데타 시도가 실패한 뒤 집권한 파스 에스텐소로 정부는 국가 주도형 경제체제를 시장 중심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이어 1989년 집권한 하이메 파스 사모라 정부는 외국 자본 유치를 위해 국영기업 민영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본격적인 민영화는 1993년 집권한 곤살로 산체스 데로사다 정부 때 이뤄졌다. 1994년 전력 부문을 시작으로 통신(1995)·에너지(1996) 부문 등 대부분의 기간산업이 외국 자본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이를 통해 볼리비아 정부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GDP의 약 30%에 이르는 20억달러 규모의 외국 자본을 유치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넘실대던 때였다.
경제의 근간을 외국 자본에 내줬다. 사회적 비용이 없을 수 없었다. 가뜩이나 심각했던 빈부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2003년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문민정부 출범 이후 20여 년에 걸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볼리비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되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적 분노가 쌓이는 것은 당연했다.
산체스 데로사다 대통령은 2002년 8월 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성난 민심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볼리비아 인구의 약 62%를 차지하는 원주민들을 중심으로 원유산업 재국유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그칠 줄 몰랐다. 일부 지역에 계엄령까지 내리며 버티던 데로사다 대통령은 결국 이듬해 10월16일 스스로 물러나, 미국으로 사실상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부유층 많은 지역서 ‘분리독립’ 움직임도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카를로스 메사 부통령도 오래 버텨내지 못했다. 대통령이 바뀐 뒤에도 시위 사태는 끝없이 이어졌다. 곳곳에서 시위대와 진압 경찰이 충돌하며 유혈 사태가 끊이지 않았다. 정국은 말 그대로 마비됐다. 결국 메사 대통령도 2005년 6월6일 의회에 사임서를 제출했다. 이 일련의 과정을 흔히 ‘볼리비아 가스 분쟁’이라 부른다. 2005년 12월18일 열린 대통령 선거에선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의 후보로 나선 에보 모랄레스가 53.7%의 지지율로 당선됐다. 그는 사상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었다.
“지구촌에는 큰 나라도 있고, 작은 나라도 있다. 부유한 나라도 있고, 가난한 나라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점에선 모두 똑같다. 존엄할 권리, 독립적으로 살아갈 권리 말이다.” 2006년 1월22일 의회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취임 100일이 채 안 된 그해 5월1일, 노동절 116돌을 맞아 볼리비아 최대 규모인 산알베르토 가스전을 방문한 그는 이렇게 외쳤다. “그토록 기다려온 날이 마침내 왔다. 오늘은 볼리비아가 천연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확보하는 역사적인 날이다. …약탈의 시대는 갔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날 볼리비아 에너지산업 재국유화를 선언했다. 원유·가스 부문을 장악해온 외국 업체들은 180일 안에 투자 계약을 갱신하도록 했다. 이를 어기면 ‘추방’이었다. 외국 자본이 장악하고 있던 56개 유전과 가스전에는 국영 에너지기업(YPFB) 소속 기술인력이 파견됐다. 이미 병사들이 관련 시설을 ‘접수’한 뒤였다. 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원유산업 국유화에 이어 2009년 통신 부문이, 2010년엔 발전 부문이 잇따라 국유화됐다. 막대한 매장량을 자랑하는 광산 부문도 2007년부터 탄광별로 꾸준히 국유화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6월엔 다국적 원자재 업체인 ‘글렌코어’가 보유하고 있던 아연·주석 광산을 국가에 귀속시켰다.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었다.
특히 2008년엔 동부 최대 도시인 산타크루스를 중심으로 천연가스 매장량이 풍부해 부유층이 많은 지역에서 ‘분리독립’ 움직임까지 일었다. 결국 그해 8월 신임투표를 실시해 임기를 보장받은 모랄레스 대통령은 개헌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천연자원은 볼리비아 국민이 독점적으로 소유하며, 국가가 이를 관리한다”는 조항이 명문화된 볼리비아 새 헌법은 2009년 1월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무난히 통과됐다. 그해 말 실시된 대선에서 모랄레스 대통령은 초선 때보다 10%포인트가량 높아진 64%의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전력 공급에 차별이 있어선 안 된다. 산간벽지에서도 도시처럼 전력을 공평하게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지난해 12월29일 모랄레스 대통령이 다시 국유화를 위한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이날 볼리비아 정부에 귀속된 것은 신자유주의 바람이 거셌던 1990년대 일찌감치 볼리비아에 진출한 스페인계 다국적 전력회사 ‘이베르드롤라’가 투자한 엘렉트로파스와 엘페오 등 2개 송전업체다. 엘렉트로파스는 행정수도 격인 라파스 일대에서 47만 가구에, 엘페오는 서부 산간지역인 오루로에서 8만여 가구에 각각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볼리비아군이 접수한 스페인계 전력회사
은 이날 “모랄레스 대통령의 발표와 함께 라파스의 이베르드롤라 본사와 회사에 딸린 송전시설에 볼리비아 병사들이 배치됐다”며 “이들은 건물 꼭대기에 ‘국가에 귀속됨’이라고 적힌 큼지막한 펼침막을 내걸었다”고 전했다. 앞서 모랄레스 대통령은 노동절 122돌을 맞은 지난해 5월1일, 역시 스페인계 전력회사인 ‘레드엘렉트리카’의 국유화를 선언한 바 있다. 이 업체는 볼리비아 전체 전력 공급망의 74%를 점하고 있었다. 집권 7년 남짓 만에 이룬 성과다. 남은 것은 뭔가?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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