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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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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5년, 탐욕의 종말

마야 달력 5125년 되는 종말의 날, 지구촌 곳곳에서 소동 벌어져… 마야 후예들은 “새 세상 열렸다” 믿어
등록 2013-01-01 17:35 수정 2020-05-03 04:27

한바탕 소란이었다. 2012년 12월21일을 앞두고 지구촌 곳곳에서 크고 작은 소동이 끊이지 않았다. 찬란한 고대의 문명이 예언해놓은 ‘인류 종말의 날’이었단다, 그날이.
마야문명의 달력은 주기가 길다. 1일은 ‘킨’이란 단위를 쓴다. 20일, 그러니까 20킨이 모여 ‘우이날’을 이룬다. 20개의 우이날이 모이면, 얼추 1년에 가까운 ‘툰’(360일)이 된다. 20개의 툰이 쌓여 ‘카툰’(7200일)이 되고, 20개의 카툰은 다시 ‘박툰’(14만4천 일)을 이룬다. 그 박툰이 13번(187만2천 일) 지나면 한 시대가 마침표를 찍는다.
 
피레네 산골에 몰린 취재진마야인들은 ‘13박툰’ 전, 그러니까 5125년 전을 ‘세상의 시작’으로 믿었단다. 현대식으로 적으면, 기원전 3114년 8월11일이다. 그 세상이 2012년 12월21일 동짓날 막을 내리게 돼 있었다. 가슴이 허한 이들이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소동을 벌이기 딱 좋은 때였다.
무슨 근거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언제부턴가 ‘멸망의 날’에도 안전한 피난처로 알려진 피레네 산맥 자락의 프랑스 산골마을 부가라시는 때아닌 취재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주민이라고 해야 176명에 불과한 그 마을을 찾은 취재진만 250여 명에 이른단다. 중국에선 종말론 신도 1천여 명이 체포됐고, 러시아에선 냉전 시절 만들어진 지하 깊숙한 방공호에서 값비싼 ‘종말의 날’ 기념식이 열리기도 했다. 멕시코·과테말라 등 마야문명의 흔적을 찾아나선 10만여 명의 ‘종말론 관광객’은 그나마 점잖은 축이었던 게다.
“당신이 이 자료를 보고 있다면,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세상은 어제 멸망하지 않았다.” 소동이 가라앉은 12월22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4분21초 분량의 동영상과 함께 내놓은 자료에서 이렇게 썼다. NASA 쪽은 존 칼슨 천문고고학센터장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고대 마야인을 현재로 데려올 수 있다면, 2012년 12월21일을 분명 대단히 중요한 날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마야인들은 5125년 전 세계를 창조한 신이 (세상의 마지막 날) 재림할 것이라고 믿었다. 재림한 신들이 고대의 통과의례를 치른 뒤, 우주와 시간의 질서를 바로잡아 새 세상을 열 것이라고 말이다.”
‘마야의 신들’이 귀환을 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마야의 후예들은 “새 세상이 열리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싶다. 안데스 아이마라 원주민 출신인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12월21일 갈대로 엮은 배를 타고 티티카카 호수 한가운데 있는 ‘태양의 섬’에서 동짓날 축제를 즐겼다. 영국 일간지 은 “마야문명이 남긴 달력을 거론하곤 있지만, ‘인류 멸망의 날’을 운운하는 것은 남미 원주민의 역사와 전통에 무지한 서구인들의 주장일 뿐”이라고 비판한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모랄레스가 해석한 ‘새 시대’
“마야문명의 달력이 기록한 2012년 12월21일은 마차(탐욕)의 시대가 가고, 파차(형제애)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날이다. 증오의 시대가 가고 사랑의 시대가, 거짓의 시대가 가고 진실의 시대가 왔다. …이제 이기적인 개인주의의 시대를 청산하고, 평화와 연대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할 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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