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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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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올드보이들의 귀환

중의원 선거 43% 득표로 79% 의석 확보한 자민당, 계파 갈등의 화신 중진 의원들도 대거 돌아와…경제 해법 ‘올드’한 방식 답습에 평화헌법 9조 개정 추진 등으로 외교 마찰 가능성 커
등록 2012-12-25 20:23 수정 2020-05-03 04:27

자민당이 돌아왔다. 2009년 총선에서 하토야마 유키오가 이끈 민주당에 대패한 뒤 절치부심해온 자민당이 12월16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두 배 가까이 늘리며 집권여당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는 모양새다.
‘55년 체제’란 말이 있다. 현대 일본 정치사를 반세기 가까이 규정해온 틀이다. 1955년 2월27일 치러진 총선이 발단이었다. 하토야마 이치로가 이끈 보수 성향의 일본민주당은 당시 선거에서 36.6%의 득표율로 원내 제1당에 올랐다. 전체 467석 가운데 185석을 확보했다. 원내 제2당은 요시다 시게루가 이끈 역시 보수 성향의 자유당이었다. 26.8%의 득표율을 기록한 자유당은 모두 114석을 얻었다.
2012년에 부활한 ‘55년 체제’
두 당은 그해 11월15일 합당을 선언했다. 사회당 등 진보 성향 정당의 약진에 맞선 보수 세력의 총결집이었다. 그렇게 태어난 게 자유민주당(자민당)이다. 부패 추문으로 얼룩졌던 1993년 총선에서 호소카와 모리히로(일본신당)를 중심으로 한 ‘비자민 연정’에 정권을 내주기 전까지, 자민당은 줄곧 집권여당 자리를 유지했다. 자민당은 1996년 10월 총선으로 재집권에 성공한 뒤, 이후 치러진 세 차례 선거에서 내리 승승장구했다.
자민당이 다시 ‘정권 교체’의 마파람 앞에 무너진 것은 2009년이다. 그해 8월 치러진 총선 결과 하토야마 유키오가 이끈 민주당은 종전보다 무려 195석이나 늘어난 308석을 거머쥐며 일약 집권당으로 등극했다. 자민당은 당시 선거에서 119석을 얻는 데 그쳤다. 종전보다 177석을 잃은 게다. 당시 선거의 투표율은 69.27%,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뼈대로 한 현행 선거제도가 도입된 1996년 이후 최고치였다. 이번엔 어땠을까? 다다노 마사히토 히토쓰바시대 교수(헌법학)는 12월17일 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풀었다.
“지난 3년여 민주당의 실망스런 국정 운영에 대해 유권자가 거부 의사를 분명하게 보여준 선거였다. 하지만 그 대안을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특정 정치세력(민주당)을 거부하는 것은 쉽지만, 그 대안을 사려 깊게 선택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민주당을 거부한 것이지 자민당을 지지한 게 아니다.”
선거 결과를 보자.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자민당은 중의원 480석 가운데 지역구 237석과 비례대표 57석을 합쳐 단독 절반을 훌쩍 넘긴 294석을 확보했다. 지역구와 비례에서 각각 9석과 22석으로 모두 31석을 확보한 전통의 연정 파트너 공명당과 합하면, 참의원에서 부결시킨 법안을 재가결할 수 있는 ‘3분의 2’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 반면 민주당은 지역구 27석과 비례 30석을 합쳐 단 57석을 얻는 데 그쳤다. 참담한 패배였다.
이 12월16일 전한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2009년 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다는 유권자의 35%만이 지역구 또는 비례대표 선거에서 민주당에 다시 표를 줬다. 나머지 65%의 표심은 아예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거나, 자민·민주 두 당을 뺀 나머지 10개 군소 정당으로 분산됐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59.32%, 1996년 이후 최저치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일본 선거관리위원회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역구 300석 가운데 극우 성향의 일본유신회를 비롯해 이른바 ‘제3세력’이 합세해 5자 구도로 치러진 12개 선거구에서 자민당은 모두 승리했다. 또 4자 구도로 치러진 69개 선거구에선 의석의 90%인 62석을 얻었다. 반면 3자 구도로 치러진 127개 선거구에선 전체의 76%인 97석을 얻었다. 출마한 후보가 많을수록 자민당의 승률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실제 자민당은 지역구에서 평균 43%의 득표율을 올렸지만 전체 의석의 79%를 거머쥐었다.
자민당 의석수에 대한 우려
눈여겨볼 대목이 하나 더 있다. 이 12월19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52%가 ‘자민당의 의석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민당 지지자의 28%도 지나치게 거대한 여당의 탄생에 우려를 표했단다. ‘경험’ 때문이다. 2006년 중의원 의석 3분의 2를 확보한 상태에서 집권했던 아베 신조 현 자민당 총재는 독단적인 정국 운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끝에 1년 남짓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흥미로운 것은 차기 자민당 정부 최대의 난적이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자민당 소속 의원은 중의원과 참의원을 합해 200명 선에 그친다. 하지만 이번 중의원 선거 압승으로 소속 의원을 두 배 가까이 불렸다. 2009년 선거에서 패했던 중진 의원들이 대거 의사당으로 돌아오게 됐다는 얘기다. 자민당의 몰락을 부채질했던 당내 계파들의 영향력도 커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당내 갈등이 촉발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게다가 상원 구실을 하는 참의원에선 여전히 민주당이 다수당이다. 차기 정부가 제출할 각종 법안을 부결시킬 수도, 내각 인선에 딴죽을 걸 수도 있다. 참의원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압도적 다수’(3분의 2 의석)를 중의원에서 점하고는 있지만, 과정은 복잡하고 정치적 파장도 만만찮다. 자민당으로선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서라도, 내년 7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아베 신조 총재는 선거운동 기간에 군대 보유와 전쟁 포기를 규정한 헌법 9조를 개정하고,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격상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과 관련해서도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또 총리 자격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실행에 옮긴다면,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어렵다. 국내 정치용으로 어느 정도 활용이 가능할 테지만, 상황이 급박해지면 역으로 정권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한번 토건파는 영원한 토건파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경제’다. 2000년 이후 네 번째 침체기에서 허덕이고 있는 일본 경제를 살리려는 자민당의 처방은 재정지출 확대다. 아베 총재는 12월18일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와 연립정부 구성 회담에서도 “경기부양을 위해 10조엔(약 127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직접 나서 방재 대책을 위한 공공사업을 벌이겠다는 뜻도 밝혔다. 대형 토목공사를 벌여 막대한 돈을 풀겠다는 뜻이다. 아베 총재는 선거 기간에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일본은행의 윤전기를 무제한으로 돌려서라도 돈을 찍어내겠다”고 말한 바 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 경쟁력이 살아날 것이란 얘기다. 일본 경제의 고도성장기를 이끌었던 자민당의 옛 방식 그대로다. 효과가 있을까?
2011년 초를 기준으로, 일본의 국가부채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28%를 기록했다. 선진개발국 가운데 최고치다. 더구나 도호쿠 지방의 강진과 지진해일 피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 악재가 이어져 막대한 재정지출이 불가피했다. 경제지표가 나아진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마냥 재정지출을 늘리기 어렵다는 얘기다. 아베 총재가 2007년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 일본에선 총리가 다섯 번 바뀌었다. 1년에 한 번꼴이다. 돌아온 아베는 얼마나 버틸까?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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