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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절벽’에서 ‘오바마케어’ 반대를

세금 인상·긴축 재정 맞물려 6천억달러 ‘재정폭탄’ 터지면 2013년 미국 경제 마이너스성장 위기…경제학자들은 ‘실업의 장기화’ 침체 원인으로 지적하지만, 공화당은 ‘오바마 케어’ 폐기에만 매달려
등록 2012-11-30 16:36 수정 2020-05-03 04:27

먼 길 에둘러, 다시 돌아왔다. 미국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11월6일 치러진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음에도, 여전히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선거 결과가 딱 그랬다. 백악관의 주인도, 의회 상원과 하원의 주인도 바뀌지 않았다. 2010년 중간선거로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한 직후부터 이어져온 교착상태가, 2012년 다시 선거를 치르고도 고스란히 되풀이되고 있는 게다. 고약한 상황이다.
11월16일 백악관에서 심상찮은 모임이 열렸다. 오바마 대통령을 중심으로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등 행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회의탁에 둘러앉은 사람은 존 베이너 하원의장을 비롯한 상·하원의 민주·공화 양당 지도부다. 이른바 ‘재정절벽’이라는 파국을 막기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마련하려는 자리였다. 12월31일까지 미 정부와 의회가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면, 세금 인상과 재정지출 감축이 맞물려 무려 6천억달러 규모의 ‘재정폭탄’이 미 경제를 날려버릴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 터다.
‘재정절벽’은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지난 2월 말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처음 사용한 ‘신조어’다. 사연이 조금 긴데, 미국의 현 경제 상황을 이해하려면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미 의회 예산처, 2013년 상반기 -2.9% 전망
미 의회는 2010년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1년과 2003년 각각 도입한 ‘부자감세’ 조처를 2년 연장했다. 한 해 약 3천억달러 규모에 이르는 이 감세 조처는 2012년 12월31일 자동 종료된다. 공화당 지도부는 이 조처를 1년 더 연장하겠다고 공언해온 반면,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지난 2년여 동안 계속돼온 논쟁이다.
12월31일 시한이 끝나는 건 부자감세뿐이 아니다. 한 해 1200억달러 규모의 근로소득세를 포함한 연수입 25만달러 이하 중산층과 서민을 대상으로 한 각종 감세 조처도 종료를 앞두고 있다. 여기에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재정적자를 줄이려고 2011년 8월 미 의회가 통과시킨 예산적자 삭감 방안이 2013년 1월1일 시행에 들어간다. 이에 따라 국방 예산을 필두로 의료·사회복지 등 한 해 1천억달러 규모의 연방정부 예산이 자동으로 삭감된다.
천문학적 규모의 증세와 긴축이 한꺼번에 몰리면, 이제 막 바닥을 치고 회복세로 돌아선 미 경제는 다시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는 11월15일치에서 “6천억달러 규모의 ‘재정절벽’ 상황이 닥친다면, 미 경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가량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미 의회예산처(CBO)도 대선 직후 내놓은 보고서에서 “(‘재정절벽’이 현실화하면) 2013년 상반기 중 미 경제가 2.9% 마이너스성장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지구촌이 다시 한번 ‘미국발 경제위기’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공화당이 고집 꺾지 않는 이유
“긴축이 아니라 일자리가 필요하다.” 11월14일 미 전역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저명한 경제학자 350여 명이 공동성명을 내놓고 정치권을 압박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들은 성명에서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미국인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범은 재정적자 확대나 국가채무 문제가 아니다. 정작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실업의 장기화”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주장을 좀더 들어보자.
“워싱턴 정가의 논쟁을 보면, 재정 균형을 맞추려고 공공 지출을 줄이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회복을 위해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설명하는 경제학 교과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위기 속에 재정적자 감축은 유동적인 목표가 돼야 한다. 취약한 경제 상황에서 섣불리 긴축재정 정책을 도입하면 경기침체가 더욱 가속화해 재정적자 감축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끝내 도달할 수 없는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이치는 자명하다. 금융위기로 민간부문의 구매력이 극도로 떨어졌을 때, 이를 메꿀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공공부문의 투자를 늘리는 게다. 이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경기가 회복되면, 자연스레 재정수입이 늘고 적자 폭도 줄일 수 있다. 반대로 재정지출을 줄이면, 기왕에 위축된 민간소비가 더욱 줄어 경기 위축을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스페인·그리스 등 유럽의 상황이 딱 그렇다. 그럼에도 공화당 쪽이 고집을 꺾지 않는 이유는 뭘까? 답은 뻔해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지만, 그가 추진하는 건강보험법으로 인한 비용 증가로 중소기업이 고용을 늘리기 어렵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상황은, 선거 이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오바마케어’는 폐기돼야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선거는 왜 했을까?
공화당 소속의 베이너 하원의장은 11월21일 자신의 지역구인 오하이오주 현지 신문 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이어 “지난 2년간 (공화당은) ‘오바마케어’ 폐기를 위해 법원과 선거, 그리고 의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 등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대법원의 합헌 결정과 대선 패배로) 앞의 두 가지 노력이 무위에 그친 지금, 의회의 감시·견제 기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오바마케어’는 지난 대선의 최대 쟁점 중 하나였다. 유권자들의 판단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공화당 지도부는 ‘재정절벽’ 타개를 위한 초당적 협상 의제로 이를 다시 꺼내들었다. 이럴 거면, 선거는 왜 했을까?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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