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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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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1일 11년 만에 나타난 9·11 배후

등록 2012-09-18 20:07 수정 2020-05-03 04:26

예언자 무함마드를 조롱하는 아마추어 동영상 한 편으로 이슬람권 전역이 들끓고 있다. 중동에서 북아프리카까지, 무슬림들의 성난 외침이 메아리치고 있다. 이집트에서, 예멘에서, 이란과 이라크에서, 튀니지와 모로코 그리고 팔레스타인에서 연일 성조기가 불살라지고 있다. 쉽게 가라앉을 기세가 아니다. 이 모든 혼란 속에서도 유독 리비아가 도드라진다. 지난 9월11일 리비아 제2도시 벵가지에서 벌어진 유혈극은, 11년 전 9월11일 미국을 강타한 동시테러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대체 정체가 뭐야?’ 이슬람권 전역으로 번지고 있는 반미시위를 촉발한 영화 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사기꾼이자 어린이 성도착증 환자로 묘사했다. 유튜브 갈무리 화면

‘대체 정체가 뭐야?’ 이슬람권 전역으로 번지고 있는 반미시위를 촉발한 영화 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사기꾼이자 어린이 성도착증 환자로 묘사했다. 유튜브 갈무리 화면

즉흥적일 리 없는 공격

“총알 자국이 선명하다. 군데군데 포탄으로 날아간 벽면에는 유혈의 흔적이 낭자하다. 불에 그을린 채 난도질당한 건물 내부는 사건 당시의 혼돈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국 일간 이 9월14일치 벵가지발로 전한 르포 기사에서 이렇게 전했다. 이 매체는 현지 목격자들의 말을 따 “사전에 (병력을 동원해) 영사관 경비를 철저히 했더라도, 그날의 유혈사태를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체 무슨 말인가?

벵가지 중심가 알파와하트 지역에 자리한 미국 영사관 주변이 심상찮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은 9월11일 오후부터다. 영사관 정문이 자리한 비좁은 거리에서 막 시작된 반미시위가 격렬해질 무렵, 어딘가에서 총성이 울렸다. 누가 먼저 총질을 했는지는 아직까지 분명치 않다. 다만 이때까지는 유혈 충돌이 본격화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은 목격자의 말을 따 “영사관 쪽이 고용한 리비아인 경비원들이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먼저 공중에 대고 경고사격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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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 뒤에도 시위는 이어졌다. 이윽고 차량 2대에 나눠타고 현장에 도착한 중무장한 괴한들이 영사관 벽을 타고 넘었다. 곧이어 로켓추진유탄발사기(RPG)가 불을 뿜었다. 영사관 건물은 삽시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미 문화원 개관식에 참석하려고 벵가지를 찾았던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리비아 주재 미 대사가 건물 안에서 질식해 쓰러졌다. 그가 다리에 총상을 입은 통역과 함께 벵가지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것은 이튿날인 9월12일 새벽 2시께였다. 아랍 위성방송 는 현지 의료진의 말을 따 “(스티븐스 대사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고 전했다.

총격전은 밤새 이어졌다. 일부 영사관 직원들이 더는 견디지 못하고 방탄차량을 이용해 정문 돌파에 나섰다. 은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이들이 서둘러 향한 곳은 영사관에서 1km 남짓 떨어진 외교관들의 안전가옥”이라고 전했다. 이때가 9월12일 새벽 4시께였단다. 그로부터 1시간여 뒤, 괴한들이 안가로 들이닥쳤다. 다시 총격전이 불을 뿜었다. 9월11일 오후에 시작돼 9월12일 새벽까지 이어진 이날의 사건으로 희생된 미국인은 스티븐스 대사를 포함해 모두 4명이었다.

중화기가 등장했다. 외교관들의 안가까지 쫓아가 2차 공격을 가했다. 흥분한 시위대가 즉흥적으로 저지른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 사건 발생 직후 리비아 정부는 “시위 사태의 혼란을 틈타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잔존세력이 벌인 일”이라고 쉽게 단정지었다. 하지만 사건의 진상이 하나둘 밝혀지자,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되고 조직적으로 실행에 옮겨진 테러행위일 가능성에 점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11년 만에, 9·11 동시테러의 배후가 다시 전면에 등장하는 모양새다.

“셰이크 알리비의 피가 요구한다,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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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매체 는 9월13일 “벵가지 미 영사관 습격사건은 알카에다가 저지른 계획적인 보복 작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가 주목한 것은 알카에다의 2인자로 알려진 아부 야히야 알리비란 인물이다. 리비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직후 파키스탄에서 붙잡혀, 카불 외곽의 바그람기지에서 3년여 구금생활을 했다. 2005년 7월10일 극적으로 바그람기지에서 탈출한 그는 이후 알카에다 지휘부에서 승승장구하며, 한때 ‘오사마 빈라덴의 후계자’로 꼽히기도 했단다. 그는 지난 6월4일 미국의 무인항공기 공격으로 파키스탄 서부 와지리스탄의 미르알리에서 폭사한 것으로 알려져왔다.

벵가지 사건이 벌어지기 하루 전인 지난 9월10일 알카에다 지도자인 아이만 알자와히리는 42분 분량의 비디오 성명을 내놨다. 올 들어 벌써 13번째다. 9·11 동시테러 11년을 맞아 내놓은 이날 성명에서 자와히리는 그간 언급하지 않았던 리비의 사망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자와히리는 이어 “셰이크 알리비의 피가 요구한다. 촉구한다. 십자군과 맞서 싸워라. 그들을 죽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부 야히야 알리비는, 이름 그대로 리비아 태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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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가지 미 영사관 습격사건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리비아 내부 알카에다 연루세력이 벌인 아부 야히야 알리비의 복수극일 가능성이 높다.” 리비아 군부 출신 망명인사들이 주축이 돼 영국 런던에서 운영하고 있는 안보전문 싱크탱크 ‘퀼리엄재단’도 같은 날 내놓은 자료에서 비슷한 분석을 했다. 이 단체는 “영사관 공격에는 최소한 20명 이상의 중무장한 괴한이 가담한 것은 물론, 대피한 외교관들을 안가까지 쫓아가 추가 공격을 가하는 대담함을 보인 점으로 미뤄,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테러공격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건 발생 이틀 만인 9월13일 관련자 4명을 체포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곤 있지만, 리비아 정부는 여전히 ‘알카에다 연루설’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무스타파 아부 샤구르 리비아 총리는 이날 <afp>과 한 인터뷰에서 “벵가지 사건 배후를 밝히기 위한 수사에 큰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알카에다 조직이 리비아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극소수 젊은이들이 알카에다의 극단적인 주장에 동조해 움직이고 있지만, 그나마 100~150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정말 그럴까?
미국과의 껄끄러운 관계에도, 카다피 정권은 2000년대 중반부터 조지 부시 미 행정부의 ‘대테러 전쟁’을 적극 지원했다. 리비아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을 대대적으로 소탕하기도 했다. 이슬람주의 무장단체는 카다피 정권에도 위협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기 시작하자 카다피 정권이 “이슬람 테러단체가 배후에 있으며, 이들을 뿌리 뽑지 않으면 리비아는 지중해의 소말리아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소원해지기 시작한 카다피 정권과 미국은 이 무렵 다시 갈라섰다. 카다피 정권이 탱크와 전투기를 동원해 저항의 거점이던 벵가지를 유린하자,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과 함께 군사 개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난 5월 공식 부임한 스티븐스 대사는 이미 지난해 3~11월 반군 진영이 꾸린 국가과도위원회(NTI)에 특사로 파견돼, 반군 지원활동에 적극 나선 바 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
흥미로운 것은 아부 야히야 알리비도 비슷한 시기에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리고 리비아에 이슬람 정부를 세우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내놨다는 점이다. 실제 내전 당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은 반군 진영에 적극 가담했다. 사실상 벵가지의 치안을 떠맡았던 ‘리비아 이슬람 투쟁 그룹’(LIFG)이 대표적이다. 적과 동지가 고스란히 뒤바뀐 게다.
한동안 지속되던 리비아 내전은 지난해 8월 수도 트리폴리 함락과 함께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두 달여 뒤 붙잡힌 카다피는 반군 손에 무참히 살해됐다. 카다피 정권 붕괴 직후 정부 무기고가 약탈당해 중화기가 대거 사라졌지만, 신생 리비아 정부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내전 당시 반군 진영에 가담해 싸운 단체들의 무장을 해제시키고 조직을 해산한 뒤 정부군에 합류시키려던 계획도 일찌감치 접었다. 무장 해제 과정에서 반발이 거세질 것을 우려한 탓이다. 일부 무장단체 간 산발적인 교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 큰 혼란은 없었다. 지난 7월 총선까지 무난하게 치르며, 리비아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뉴스 신디케이트 는 9월12일 “총선 직후부터 리비아에서 우려스런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특히 최근 몇 주 동안은 정부 고위 인사를 겨냥한 암살 기도와 차량폭탄 공격,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 외교사절을 겨냥한 공세가 꼬리를 물고 이어져왔다”고 전했다. 지난 8월 말 미 국무부가 ‘필수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리비아 여행을 자제하라’고 자국민들에게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치비스 미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9월13일 외교안보 전문지 인터넷판에 기고한 글에서 올 하반기 들어 리비아에서 발생한 유혈사태의 특징을 세 가지로 나눠 분석했다.
첫째, 벵가지와 수도 트리폴리에서 리비아 정부 관료를 겨냥한 공격이 잇따랐다. 특히 차량폭탄 공격은 물론 소형화기로 무장한 괴한들이 정부 청사를 직접 공격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둘째, 과격 이슬람 세력의 공세가 급격히 늘어 불안감이 커졌다. 이슬람 소수파인 수피계 사원이 잇따라 폭탄공격을 받았지만, 리비아 정부는 별다른 손을 쓰지 못했다.
서방 외교사절을 겨냥한 공격도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수도 트리폴리 중심가에서 미 대사관 차량이 공격을 받는가 하면, 벵가지에선 영국 대사관 차량이 탈취될 뻔한 사건도 벌어졌다. 치비스 연구위원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모든 사건이 개별적으로 벌어지는 것으로 보였다”며 “하지만 벵가지 사건 이후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이 모든 사건이 긴밀히 연계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다. 그는 “최근 몇 달 새 리비아가 지옥으로 다가서고 있었지만, 미국은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개별적이던 사건이 하나로 모이다
벵가지 미 영사관 습격사건의 실체가 온전히 밝혀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사건 직후 등 일부 외신은 미 정부 당국자들의 말을 따 ‘안사르 알샤리아’(이슬람 율법 지지자)란 이슬람주의 무장단체를 배후로 꼽았다. “알카에다의 북아프리카 지부 격인 ‘이슬람 마그레브 지역의 알카에다’(AQIM)가 연루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아직은 안갯속이다.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지난해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싸움에 적극 가담했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이 여전히 리비아에 똬리를 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리비아 정부는 최근 동부지역 일대에서 AQIM 조직원 20여 명을 체포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시,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됐다. 그러고 보니, 1980년대 아프간에서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아 싸웠던 ‘자유의 전사들’이, 소련군 철수 뒤 탈레반과 알카에다로 진화해갔다. 오사마 빈라덴도 그중 하나다. 역사가, 기이하게 되풀이되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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