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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건강보험 도박, 가까스로 이겼지만…

등록 2012-07-11 16:06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 이정용

한겨레 이정용

“대법원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 알다시피.” 지난 6월28일 오후, 밋 롬니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 의회 의사당이 바라다보이는 워싱턴 중심가에서 열린 이날 회견 내내 롬니 후보는 단호한 표정과 목소리로 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질문은 받지 않았다. 롬니 후보의 등장부터 퇴장까지 걸린 시간은 꼭 4분16초였다. 회견에 사용된 연단에 쓰인 글귀도 간결했다. ‘오바마 케어를 폐기·대체하라, 롬니.’

“의회는 세금 신설·부과 권한이 있다”

앞서 이날 오전 미 대법원은 이른바 ‘전미자영업자연맹(NAIB) 대 시벨리어스’ 사건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원고인 NAIB는 공화당 우파를 대표하는 티파티 성향의 중상공인 로비단체, 피고는 캐슬린 시벨리어스 연방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사안의 핵심은 2010년 3월24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서명한 ‘환자 보호와 적정수준 의료보장에 관한 법률’(이른바 오바마 케어)에 명시된 건강보험 미가입자에 대한 벌금 부과 조항(의무가입 조항)이다. 원고 쪽은 “건강보험 가입을 강제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미 대법원은 보수 성향의 대법관 5명과 진보 성향 대법관 4명으로 갈라져 있다. 특히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 임명된 보수 색채가 강한 인물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 상원의원 시절이던 2005년 7월 열린 로버츠 대법관 인준청문회에서 공개적으로 반대표를 던진 바 있다. ‘분위기’가 썩 좋을 리 없다는 얘기다.

예상대로였다. 대법관들은 평소의 ‘정치적 소신’에 따른 판단을 내렸다. 결과는 4 대 4. 예상을 벗어난 것은, ‘캐스팅보트’를 쥔 로버츠 대법원장이었다. 진보 성향의 대법관들과 뜻을 같이해, ‘합헌’ 결정에 동참한 게다. 논리는? 비교적 간단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다수 의견에서 이렇게 밝혀 적었다. “의회는 세금을 신설·부과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보험 미가입자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것은, 유류세나 소득세처럼 특정 사안에 정부가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를 법으로 보험 가입을 강제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눈여겨볼 대목은 두 가지다. 첫째,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내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정책이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사실상 ‘도박’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가장 민감한 정책이 전면에 내세워지는 것을 바라는 정치인은 많지 않다. 자칫 ‘헌법을 어긴 대통령’이란 비난을 살 수도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대법원의 판단에 가슴을 쓸어내렸을 터다. 언론도 앞다퉈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라는 보도를 쏟아냈다. 물론, 한 가지 단서가 있었다. ‘단기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둘째, 미 대법원이 ‘보수 본색’을 유감없이 드러냈다는 점이다. ‘전국민건강보험 가입 시대’가 열리게 됐는데, 대체 무슨 소리냐고? 역시, 논리는 간단하다. 대법원은 의무가입 규정을 일종의 ‘조세’로 해석했다. 이로써 대다수 복지국가에서 ‘기본권’으로 규정하는 ‘건강권’이, 미국에선 시민의 법적 ‘의무’가 되고 만 게다.

“세금인상 없다는 거짓말 했다”

‘기본권’은 침해될 수 없다. ‘의무’는 다르다. 세금은 때로 오르기도, 때로 내리기도 한다. 정책 방향에 따라 언제든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대법원은 193쪽에 이르는 방대한 결정문에서 “(의무가입 조항은) 투표로 선출된 정치 지도자들이 결정한 사항”이라며 “정치적 선택의 결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법원의 의무가 아니다”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이 ‘변심’한 이유를 미뤄 짐작할 만하다.

건강보험 가입 의무를 개인에게 지우는 정책 방향은 애초 공화당의 아이디어였다. 는 지난 6월25일 인터넷판에 올린 기사에서 “개인의 건강보험 의무 가입 조항은 1989년 공화당 성향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이 펴낸 연구보고서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전했다. 당시 스튜어트 버틀러 헤리티지재단 수석연구위원이 “안전띠 착용이나 자동차보험 가입 의무화처럼, 건강보험 역시 가입 의무를 개인에게 지울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는 게다.

실제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가 사업자에게 직원의 건강보험 가입 의무를 지우는 것을 뼈대로 한 건강보험 개혁 법안을 추진할 때, 공화당은 버틀러 연구위원의 논리를 차용해 공격했다. “사업자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줘 경영을 위축시킬 게 아니라, 개인에게 건강보험 가입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게 뼈대였다. 당시 건강보험 개혁에 실패한 클린턴 행정부는 1994년 중간선거에서 상하 양원을 공화당에 내줬다.

“대법의 결정이 나온 이후 보수 진영이 새롭게 활기를 띠고 있다.” 극우 성향 인터넷 매체 는 지난 7월2일 여론조사 전문가 스콧 라스무센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라스무센은 이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오바마 케어를 폐기하자면 공화당 출신 대통령을 내야 한다는 점이 명확해져, 온건·개혁 성향의 유권자보다 보수 성향의 유권자가 결집해야 할 이유가 훨씬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실제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정치전문 인터넷 매체 는 지난 6월29일 “티파티 성향의 ‘번영을 위한 미국인’이란 단체는 대선 격전지로 분류되는 아이오와 등 12개 주에서 7월4일부터 대대적인 ‘선거광고 전쟁’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준비한 예산만 900만달러란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건강보험 의무 가입은 세금이다. 이를 추진한 건 오바마 대통령이다. 그는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거짓말이다.’

대법원 결정이 나온 직후 공화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트위터를 통해 쏟아낸 내용도 한결같다. 2008년 대선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는 “세금이 아니라더니, 오바마가 국민에게 또 거짓말을 했다”며 “오바마의 거짓말로, 자유가 죽어간다”고 썼다. 올 당내 경선에서 롬니 후보와 막판까지 경쟁을 펼쳤던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은 “대법의 결정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자, 항구적인 세금 인상”이라며 “선거가 중요하다”고 썼다.

초박빙 여론조사, 대선전 예고편

여론은 어떨까? 6월28일~7월1일 <abc>과 가 실시한 공동 여론조사 결과, 대법원의 결정에 찬성한다는 응답(43%)과 반대한다는 응답(42%)이 박빙을 이뤘다. 같은 기간 <usa>와 갤럽이 실시한 조사에선 찬반 의견이 46%로 동률을 이뤘고,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 조사에선 찬성(36%)보다 반대(40%)가 높게 나왔다.
대선 판세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매체 가 7개 여론조사 전문기관의 조사 결과를 종합해 7월4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오바마 대통령(47.0%)이 롬니 후보(44.4%)를 2.6%포인트 앞서고 있다. 현직이란 이점을 고려할 때, 초박빙이란 얘기다. 6월28일 회견에서 롬니 후보는 “오바마 케어를 폐기하려면 오바마 대통령을 갈아치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11월 대선까지 넉 달여, 남은 기간 미 대선전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고해준 발언인 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usa></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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