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미트리스 흐리스툴라스가 방아쇠를 당긴 시각은 아침 9시가 채 되지 않아서였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의 중심가 신타그마 광장은 출근길을 서두르는 이들로 분주했다. 광장 잔디밭 한쪽 아름드리 나무 곁에 선 77살 노인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머리에 갖다댔다. 정확히 한 발이 발사됐고, 흐리스툴라스의 삶도 그것으로 끝이었다.
“쓰레기나 뒤지며 살 수 없다”
출동한 경찰이 현장을 봉쇄했다. 구급차도 달려왔다. 삽시간이었다. 흐리스툴라스의 주검을 실은 구급차가 시내 에발제리스모스 병원에 도착한 것은 이날 9시30분께였다. 현지 영자지 가 4월5일 인터넷판에 올린 흐리스툴라스의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촐라코글로우 정부는 내 삶을 송두리째 짓밟았다. 국가의 도움은 전혀 없었다. 오직 내 혼자 힘으로 착실하게 지난 35년간 부은 연금이 내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제 나는 나이가 많아 역동적인 대응을 할 수도 없다. (그래도 내 동포들이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을 손에 쥔다면, 기꺼이 그 뒤에 서 있을 게다.) 다른 해법은 없다. 여기서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짓겠다. 더 이상 주린 배를 채우려고 쓰레기통이나 뒤지고 다니지 않기 위해. 미래가 없는 젊은이들이 언젠가는 무장을 하고 조국의 반역자들을 신타그마 광장에서 교수형에 처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탈리아 국민이 1945년 무솔리니에게 했던 것처럼.”
이혼한 아내와의 사이에 딸 1명을 둔 흐리스툴라스는 약사 출신이다. 1994년 운영하던 약국을 처분한 뒤 지금껏 연금에 의존해 살아왔다. 3만 명에 이르는 공공부문 인력 감축, 공공서비스 축소와 함께 평균 20%에 이르는 연금 삭감은 구제금융의 대가로 그리스 정부가 받아안은 초긴축 재정의 핵심 정책이다. 게오르기오스 촐라코글로우는 나치가 그리스를 점령했을 때 부역한 친나치 정권의 첫 번째 총리였다. 그리스 정부에 구제금융을 내준 과정에서 초긴축 재정을 가장 강하게 압박한 것은 독일이었다. 말하자면, 루카스 파파데모스 총리가 이끄는 현 정부를 ‘나치 부역자’에 견준 게다.
그러니 그것은 절규였다. 극단으로 내몰린 이들을 대신한 절절한 외침이었다. 흐리스툴라스의 외동딸 에미 흐리스툴라스(43)는 4월5일 내놓은 성명에서 “평생을 사심 없이 좌파운동 지지자로 살아오신 아버지의 친필 유서를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며 “아버지의 마지막 행동은 의식적인 정치 행위였고, 평생 살아오며 믿고 행동하신 바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밝혔다.
흐리스툴라스의 죽음이 알려진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그리스 시민 1500여 명이 신타그마 광장으로 몰렸다. 고대 그리스어로 약속·협정을 뜻하는 ‘신타그마’는 현대 그리스인들에게 ‘헌법’을 뜻한다. 1843년 9월3일 민중봉기로 위기에 몰린 오토 국왕이 사상 첫 헌법안에 서명한 것을 기려 광장에 ‘헌법’이란 이름이 붙었단다. 광장의 맞은편에는 그리스 의회가 자리잡고 있다.
‘죽음에 익숙해지지 말자’
‘죽음에 익숙해지지 말자.’ 이날 신타그마 광장을 메운 이들이 외친 구호다. 흐리스툴라스의 죽음을 추모하는 행사는 임금과 연금 삭감, 공공서비스 축소에 저항하는 거리시위로 이어졌다.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진압했고, 시위대는 돌멩이로 무장을 했다. 은 4월5일 흐리스툴라스의 이웃 주민 일리아스 키라코스(60)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숨지기) 며칠 전 흐리스툴라스가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단다. 사람들이 이토록 무관심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어떻게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그저 앉아서 지켜보고만 있느냐고.”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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