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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찬성, 미국 반대, 한국 기권

핵무기 근절운동의 결실인 ‘핵무기금지협약’에 미국, 북한, 한국이 각각 다른 표결하는 이유
등록 2012-03-23 10:22 수정 2020-05-03 04:26

‘구글’에 다 있다. 검색창에 ‘핵폭탄 만드는 법’(how to construct a nuclear bomb)이라 치면, 0.22초 만에 2090만 건의 정보가 검색된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는 핵반응에 대한 정의부터 탄두 설계도까지 29쪽 분량의 정보가 빼곡하다. 실행에 옮길 의지와 능력, 만들어진 폭탄의 파괴력 따위는 논외로 해두자. 확실한 건 이렇다. 우리는 지금 ‘아무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성공적이지 못한 핵무기 ‘비확산’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을 목격한 인류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음이 입증됐다.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지구촌이 이념의 동과 서로 나뉘어 다투던 와중에 인류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도 ‘상호확증파괴’(MAD)라는 극한의 공포 때문이다.
1970년 3월 발효된 NPT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핵무기와 관련된 기술과 물질의 ‘확산’을 막는 것이고, 둘째는 핵군축 협상을 시작해 궁극적으로 지구에서 핵무기를 뿌리 뽑는 게다. ‘비확산’이 주로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의 의무였다면, 조약 제6조가 규정한 ‘핵군축’은 핵무기 보유 국가의 의무였다.
‘비확산’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조약의 바깥에 있던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이 핵무장을 해버렸다. 조약의 안에 있던 북한은 밖으로 뛰쳐나가 핵무장을 선언했다. 핵군축의 성적표는 더욱 초라하다. 조약 발효 42년째를 맞은 지금, 인류는 여전히 1만9천여 기의 핵무기를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
NPT가 규정한 핵군축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평화운동 단체를 중심으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다국적 캠페인이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대표적인 성과가 1996년 7월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내놓은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국제법에 위배된다”는 권고의견이다.
그해를 시작으로 해마다 12월이면 유엔 총회장에서 ‘ICJ 권고의견 이행 결의안’이 제출돼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된다. 제66차 총회가 열린 지난해 12월2일에도 같은 내용의 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졌다. 결과는 찬성 130개국, 반대 26개국, 기권 23개국으로 예년과 엇비슷했다. 중국과 북한·인도·파키스탄, 그리고 핵무기 개발 의혹을 사고 있는 이란 등이 찬성표를 던졌다. 미국·프랑스·영국·러시아와 이스라엘은 반대했다. 한국은 일본 등과 함께 기권을 선택했다.

» ‘핵안보가 아니라 핵 없는 세상!’ 참여연대 등 시민·평화단체와 진보신당 등 야당 인사들이 지난 2월15일 오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3월26~27일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 반대하는 대항행동에 나설 뜻을 밝히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 ‘핵안보가 아니라 핵 없는 세상!’ 참여연대 등 시민·평화단체와 진보신당 등 야당 인사들이 지난 2월15일 오후 서울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3월26~27일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 반대하는 대항행동에 나설 뜻을 밝히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실질적 핵군축 이행방안 ‘핵무기금지협약’

결의안을 더 구체화한 게 이른바 ‘핵무기금지협약’(NWC)이다. 생물무기·화학무기·대인지뢰 등과 마찬가지로 핵무기를 뿌리 뽑기 위한 국제협약을 체결하자는 게다. 2007년 말레이시아·코스타리카 두 나라가 유엔 총회에 제출한 초안의 뼈대를 보면, 협정 비준국은 보유하고 있는 모든 핵무기와 핵물질, 핵 관련 시설과 핵무기 발사체 등을 신고해야 한다. 이어 핵군축을 △핵무기 경계(발사 준비 단계) 해제 △발사대에서 핵무기 이동 △발사체에서 핵탄두 제거 △제거한 핵탄두 불능화 △해체한 핵물질 국제적 관리·통제 등 다섯 단계로 세분화했다. 실질적인 핵군축 이행 방안인 셈이다.

‘핵무기 폐기를 위한 국제 캠페인’(ICAN)이 지난 1월 내놓은 자료를 보면, 유엔 회원국과 ‘NPT 회원국’ 지위를 가진 바티칸을 포함한 세계 194개국 가운데 146개국이 NWC에 찬성한다. 반대는 26개국, 기권은 22개국으로 분류됐다. 해마다 유엔 총회장에서 ‘ICJ 권고의견 이행 결의안’에 표결하는 행태와 대체로 일치한다. 미국은 “단기간 안에 체결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한단다. 북한은 ‘찬성’, 한국은 ‘기권’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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