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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사찰하고 당당한 뉴욕 경찰

무슬림 학생단체 사찰 탄로난 뉴욕 경찰 “합법적” 주장, 1980년대 확립된 사찰금지 규정 9·11 이후 허물어져
등록 2012-03-02 12:35 수정 2020-05-03 04:26

지난 1971년 급진적 흑인 좌파운동 단체인 ‘블랙팬서’ 활동가 21명이 경찰서와 백화점 등을 폭파할 모의를 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재판을 둘러싼 논란은 첨예했지만, 결과는 싱거웠다. 배심원단은 불과 1시간30분여 만에 피고인 전원이 무죄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재판 과정에서 경찰의 ‘과잉수사’ 증거가 도드라졌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뉴욕 경찰 당국은 블랙팬서뿐 아니라 수많은 좌파단체와 반전단체, 성적 소수자 인권단체, 교육개혁 단체, 종교단체, 인권단체 등에 대한 폭넓은 ‘사찰’을 수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9·11 이후 느슨해진 ‘핸드슈 규정’
블랙팬서 활동가들에 대한 무죄판결 이후, 사찰 피해자들은 뉴욕 경찰 당국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했다. 인권변호사 바버라 핸드슈가 소송을 이끌었다. 법정 공방은 지루하게 이어졌다. 마침내 1985년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원고 쪽의 승소였다. 재판부는 “정치적 활동에 대한 경찰의 사찰은 언론·표현의 자유란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이른바 ‘핸드슈 규정’이다. 는 지난 2월23일치에서 규정의 핵심을 이렇게 요약했다.
“순수한 정치적 활동에 대한 수사는 뉴욕 경찰 정보국의 공안과에서 범죄활동이 벌어질 것이라는 ‘구체적인 정보’가 있을 때만 허용된다. 이런 때에도, 해당 단체에 대한 수사에 앞서 경찰 고위 간부 2명과 시장이 임명한 민간인 1명으로 구성된 ‘핸드슈 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불법행위가 실제 벌어질 때를 빼고는,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무차별적으로 촬영하는 행위도 금지됐다. ‘핸드슈 규정’에 따른 절차를 거치지 않은 다른 기관과는 정치활동과 관련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금지됐다. 또 뉴욕 경찰이 정치적 활동에 대한 수사·사찰을 위원회에 요청한 사례와 허가를 받고 실제 수사·사찰을 진행한 사례를 모아, 1년 단위로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했다. 경찰의 자의적인 정보수집 활동에 최고 한도의 재갈을 물린 게다.
‘공포’는 쉽게도 이성을 제약했다. 9·11 동시테러 이후 원안보다 대폭 느슨해진 ‘핸드슈 규정 개정안’이 등장했다. 시민사회단체의 정치적 활동에 대한 수사·사찰 개시 여부에 대한 판단은 뉴욕 경찰청 정보국장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범죄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란 문구는 ‘합리적으로 의심할 만한’이란 문구로 대체됐다.
<ap>은 2월20일 뉴욕 경찰 당국의 내부 비밀문서 내용을 따 “사복경찰이 미 북동부 일대에서 무슬림 학생단체를 장기간 사찰해왔다”고 폭로했다. 통신이 이날 공개한 뉴욕 경찰청 정보국 사이버정보팀 주례 보고서(2006년 11월22일치)를 보면, 뉴욕대·뉴욕주립대·럿거스대·시러큐스대 등 뉴욕주 일대 대학은 물론 예일대와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등 다른 주에 있는 대학의 무슬림 학생단체도 사찰했다. 무슬림 학생단체가 행사를 주최하면, 아예 사복경찰을 파견해 특정 학생들이 ‘하루에 몇 번씩 기도하느냐’에 이르기까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블룸버그 뉴욕시장도 경찰 옹호
보도 직후 시민인권단체를 중심으로 비난 여론이 거세졌지만, 뉴욕 경찰은 당당했다. 는 2월23일 폴 브라운 뉴욕 경찰청 대변인의 말을 따 “모든 활동은 합법적으로 이뤄졌다”며 “일상적인 정보수집 활동을 했을 뿐,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앞서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도 2월21일 등과 한 인터뷰에서 “경찰은 테러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책임이 있다”며 “의혹이 있으면 경찰이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뉴욕에서, 시계가 한참이나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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