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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군·경의 살인 축구

경기장 철문 열지 않아 74명 사망 조장한 이집트 경찰, 군부는 시위대 탓하며 강경 진압 빌미 삼아
등록 2012-02-17 15:05 수정 2020-05-03 04:26

지난 2월1일이다. 홍해에서 수에즈운하를 통과해 지중해가 가닿으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이집트의 항구도시 포트사이드에서 프로축구 경기가 열렸다. 홈팀 마스리와 원정팀 아흘리의 경기였다.
1920년 창단한 마스리는 2010~2011년 이집트 프리미어리그에서 10승13무7패로 7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마스리는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포트사이드에서 사상 최초로 탄생한 이집트 축구단이란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마스리’란 단어 자체가 아랍어로 ‘이집트인’을 뜻한단다.

유혈 사태 뻔한데 경찰은 딴청 피워
1907년 카이로를 연고지로 창단한 아흘리는 ‘아프리카 최고의 클럽’으로 통한다. 지난 시즌에도 16승13무1패로 리그 우승을 차지한 강팀이다. 그럼에도 두 팀 간의 승부는 언제는 박진감이 넘친단다. 이집트 프리미어리그 16개 팀 가운데 관중 동원력에서 상위 5위권에 있는 두 팀은 ‘라이벌’ 관계다.
이날 경기도 마찬가지다. 치열한 승부가 90분 내내 이어졌다. 결과는 3 대 1, 홈팀 마스리의 승리였다. 심판이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를 부는 순간, 흥분한 일부 홈 팬들이 경기장으로 난입했다. 마스리의 홈경기장은 약 2만 석 규모란다. 쉽게 이해가 안 되는 일은 이때부터 벌어졌다. 난입한 홈 팬들의 ‘목표물’이 된 것은 패배한 원정팀 선수단과 팬들이었다. 아흘리 팬들은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가려 했다. 한꺼번에 출입구로 인파가 몰렸다. 철문은 굳게 닫힌 채였다. 주변에 있던 경찰은 딴청을 했다. 결과는 뻔했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이들이 인파에 깔렸다. 비명이 들려왔다. 아비규환이었다. 이집트 당국의 공식 집계 결과, 이날 경기장에서 모두 74명이 숨지고 중상자 200여 명을 포함해 1천여 명이 다쳤다고 한다. 이튿날 이집트 과도의회는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주가는 4.6%나 폭락했다. 7주 만에 최악의 낙폭이었다. 파장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치안 당국이 내놓은 변명이 ‘걸작’이다. 현지 일간 은 2월2일치에서 현지 경찰 관계자의 말을 따 “섣불리 나섰다가 경찰의 과잉 대응이란 비난을 들을까 두려웠다”고 전했다. 사고 발생 직후 이집트 최고군사위(SACF)는 즉각 사흘 간의 추모 기간을 설정했다. 사망자와 부상자들은 군용 수송기편으로 카이로로 옮겨졌다.
마누엘 호세 아흘리 감독은 이집트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마스리팀의 호삼 하산 감독과 구단주 카멜 아부 알리는 사임 의사를 밝혔다. 포트사이드 주지사와 경찰청장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현지 치안 책임은 군이 맡게 됐다. 최고군사위를 호령하는 후세인 탄타위 장군은 즉각 “이집트가 혼란으로 빠져드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국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 높이는 군부

사고 발생 다음날인 지난 2월2일, 성난 아흘리 팬들과 카이로 시민들이 타흐리르 광장으로 몰렸다. “치안 당국이 무책임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은 이내 출동한 경찰에 진압당했다. 이 과정에서 줄잡아 600명이 다쳤다고 이집트 일간 은 전했다.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흥분한 아흘리 팬들이 ‘반무바라크’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랍 위성방송 는 2월7일 이렇게 전했다. 반면 포트사이드 사건이 벌어진 직후부터, 옛 무바라크 진영을 포함한 군부 지지세력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단다. “이런 혼란이 다 ‘경찰 폭력’ 운운하는 시위대 때문에 생긴 치안 부재 탓이야.” 이집트에서, 축구가 정치를 하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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