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홈, 귀환을 환영한다. …이제 전쟁은 끝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2월14일(현지시각)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브래그 기지에 모인 3천여 명의 장병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컴벌랜드와 호크 카운티 사이, 파예트빌에 자리한 포트브래그는 미 육군의 심장부라 부를 만하다. 지난 8월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포트맥퍼슨 기지에서 옮겨온 미 육군 전력사령부(FORSCOM)와 특수전사령부, 82공수사단과 특전사 등 핵심 전력이 그곳에 주둔하고 있다. 힘있게 ‘종전’을 선언하기 맞춤한 곳이다.
‘천문학적’ 수식어도 모자라는 전쟁비용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2003년 3월20일이다. 그새 8년9개월여가 흘렀다. 무명의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던 정치 신예가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되고, 또 재선을 바라보게 된 세월이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오늘 이 자리에서 이라크전쟁이 끝났음을 여러분께 알리고 싶다”고 말하자, 행사장을 가득 메운 이라크전 생환 장병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울렸다고 <cnn>은 전했다.
그렇게, 전쟁은 끝났다. 아랍 위성방송 가 지난 12월14일치 기사에서 전한 것처럼, 지금 이라크에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미군 철수작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하루 최대 3천여 대에 이르는 각종 군용차량이 속속 모래벌판을 지나 쿠웨이트 국경을 넘고 있다.
이라크 전역 500여 곳에 산재해 있던 미군기지는 모두 폐쇄됐다. 남은 것은 성서 속 아브라함의 고향땅 ‘우르’가 지척인 남동부 나시리야에 자리한 캠프 아더 등 4곳이다. 이제는 이맘 알리 공군기지로 이름을 바꾼 캠프 아더에선 한때 한국군 서희·제마부대가 주둔했다. 17만 명을 헤아리던 주둔 병력도 5500명 남짓만 남아 있다. 바그다드 주재 미국대사관 경비병력 200여 명을 뺀 나머지는 이달 안에 모두 철수를 마치게 된다. 미군이, 마침내 이라크를 떠난다.
전쟁은 무엇을 남겼나? 수치가 말해준다. 미 국방부가 최근 밝힌 이라크 전쟁비용은 약 8천억달러(약 927조6천억원)에 이른다. 이것만으로도 ‘천문학적’이란 수식조차 버거운데, 국방·안보 전문가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다. 뉴스 신디케이트 는 지난 11월27일치 기사에서 “이라크전 최종 전비는 3조달러(약 3478조5천억원)를 족히 넘어설 것이란 게 대체적 평가”라고 전했다.
2003년 침공 이래 줄잡아 4500명의 미군이 이라크에서 목숨을 잃었다. 중상자도 3만2천여 명에 이른다. 미 보훈청의 자료를 보면, 이라크전 참전자 가운데 매달 평균 200명 이상이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 2009년 이후 자살예방 상담센터(1-800-273-8255)로 걸려온 참전군인의 상담전화만 50만 건이 넘는단다. 개전 초기 미국민의 70%대를 넘나들던 이라크전쟁 찬성률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것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지난 11월3일 와 <abc>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라크전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전체의 44%에 그쳤다.
하지만 이라크 국민이 감내해야 했던 세월에 견줄 수는 없다. 개전 초기부터 이라크 현지 상황을 모니터해온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이라크 인덱스’ 자료를 보면, 개전 이후 지난 4월까지 숨진 이라크인은 최소 11만5천 명에 이른다. <ap>은 지난 2월까지 13만328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집계한 바 있다. 하지만 의학전문지 이 이라크 전역에서 벌인 현지 조사 내용을 토대로 내린 결론은 사뭇 다르다. 이 매체는 개전 이후 2006년 6월까지 숨진 이라크인이 60만1027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한 바 있다. 어쩌면 이번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이라크인 수를 정확히 가늠하는 건 불가능할지 모른다.
끝내 찾지 못한 침공의 명분
용케 버텨낸 이들의 삶이라고 다를까. 유엔난민기구(UNHCR)가 지난 12월1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현재 이라크에선 바그다드 125개소를 비롯해 모두 382개소의 난민캠프가 운영되고 있다. 난민기구의 직접 지원을 받는 난민만 47만여 명에 이른단다. 이란·터키·팔레스타인 등지로 국외 망명길에 오른 이도 3만여 명을 헤아린다. 여기에 이라크 전역으로 흩어진 국내난민(IDPs)이 114만3천여 명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4월 내놓은 국가보고서에서 추산한 이라크 인구가 3280만 명이니, 인구의 5% 이상이 ‘난민’이란 얘기다.
경제는 어떤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의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이라크의 경제는 기실 미국의 침공 이전부터 엉망이었다. 1980년대 이란과 벌인 8년 전쟁으로 망가졌고, 1991년 쿠웨이트 침공 이후 13년여 경제봉쇄가 이어져 만신창이가 됐다. 이라크의 목줄을 죄던 경제봉쇄를 풀어낸 것은 또 다른 전쟁이었고, 장기간 이어진 군사점령으로 ‘가사 상태’로 내몰렸다.
이라크 정부가 최근 밝힌 공식 실업률만도 16%를 웃도는 수준이다. 하지만 실제 실업률은 최소한 그 2배를 넘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고용의 40%가량을 정부가 떠맡고 있는 터다. 툭하면 정전이고, 여전히 마실 물조차 구하기 어렵다. 인프라는 파괴된 채 방치돼 있고, 의료·복지를 포함한 사회적 서비스도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호샤르 제바리 이라크 외무장관이 최근 와 한 인터뷰에서 쓴소리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독재자를 몰아내고 이라크 국민에게 자유를 가져다줬다. 그게 유일한 성공이다. 그 점을 빼곤, 수없이 많은 실수와 실패를 남겼다. 점령은 저주였다. 이라크에 아무런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지난 12월12일 백악관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가 내놓은 발언을 선선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독립적인 주권국가이자, 안정적이고 민주적인 나라의 지도자”라고 말리키 총리를 추어올렸다. 말리키 총리는 “미군 전면 철수 자체가 이라크 치안이 안정화됐음을 입증해주는 것”이라며 “우리가 추구해온 목표를 이뤄냈다”고 강조했다.
말리키 총리가 입에 올린 ‘우리가 추구해온 목표’란 뭘까? 기억을 더듬어보자.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2003년 3월20일 새벽 5시33분 바그다드 폭격과 함께 시작됐다. 불과 23일 만인 그해 4월12일 바그다드가 함락돼, 사담 후세인 정권은 무너졌다. 하지만 침공의 명분이던 대량파괴무기(WMD)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미국은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이번엔 ‘민주주의 전파’였다. 점령은 계속됐다. 저항이 불을 뿜었다. 미군의 이라크 주둔 명분은 다시 “알카에다 등 테러리스트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로 바뀌었다. 후세인 정권 시절, 알카에다는 이라크에 발을 디디지 못했다.
폭격에 갈갈이 찢어진 이라크 민심
“이라크 치안 안정화라는 가장 중요한 목표를 완수했다. 이라크 안정화로 중동 지역 전체가 안정화됐다.” 제임스 제프리 이라크 주재 미 대사는 최근 등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6년과 2007년 절정으로 치닫던 유혈사태가 사그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긴장감은 여전히 팽팽하다. 셀 수 없이 많은 검문소 탓에 바그다드의 거리는 하루 종일 체증을 앓고 있다. 콘크리트 장벽과 산처럼 쌓아올린 철조망이 동네와 동네를, 사람과 사람을 가르고 있다. 암살과 자살폭탄 공격, 도로매설 폭탄과 로켓추진유탄발사기 공격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되풀이된다. 살풍경이 일상이 된 건 이미 오래다.
시아파 성인 이맘 후세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무하람을 맞아 이라크 중부 시아파 성지인 카르발라로 순례를 떠났던 이들을 겨냥한 테러공격이 이달 들어서도 속출했다. <ap>은 지난 12월5일 “카르발라 부근에서 무장집단이 시아파 순례 행렬에 무차별 총격을 가해 적어도 8명이 숨지고 49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같은 날 이라크 곳곳에서 벌어진 4건의 폭탄공격으로 순례길에 나선 시아파 주민 3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역시 시아파 성지로 꼽히는 힐라에서도 또 다른 폭탄공격이 벌어져 5명이 숨지고 33명이 다쳤다. 지난 11월에도 이라크 전역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유혈사태로 목숨을 잃은 게 187명이다. ‘안정’인가?
‘점령의 저주’는 쉬이 사라지지 않을 ‘유산’을 남겼다. 종족 갈등이 잠시 주춤한 상태이긴 하지만, 침공 이전까지 한데 어울려 살던 수니와 시아파 주민들은 이미 동네를 따로 하고 산다. 옛집으로 돌아가는 건 ‘목숨을 거는 짓’이 돼버렸다. 원유자원이 풍부한 남부의 시아파와 북부의 쿠르드족은 “원유 수입이 고루 분배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원유자원이 보잘것없는 중서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소수 수니파는 다수 시아파가 장악한 정치권에 노골적인 적개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3월7일 총선을 치른 직후 시작된 연립정부 구성 협상이 9개월여 뒤인 12월22일에야 막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다.
지난 10월 말, 후세인의 고향인 바그다드 북부 티크리트의 시의회는 표결을 거쳐 자기 지역을 ‘자치주’로 선포했다. 이라크에 자치주는 북부 쿠르드족 지역뿐이다. 수니파가 몰린 중서부의 다른 지역들도 가세할 분위기다. 바그다드 정부가 “(후세인의 정당인) 바트당 잔당 세력의 피난처가 될 것”이라고 거세게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말리키 총리가 워싱턴을 방문한 12월12일 는 “이라크에서 때아닌 바트당 잔당 소탕작전이 벌어져, 수백 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지난 8년9개월여 동안 숱하게 지켜봐온 모습이다.
“희망을 품어보고 싶지만”
명분 없이 시작된 전쟁은 이제야 끝났다. 승자 없는 전쟁이다. 점령도 막을 내린단다. 2009년 1월 문을 연 바그다드 중심가 ‘그린존’(안전지대)에 자리한 미 대사관은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104에이커(약 127만 평)의 넓은 대지에 건물만도 21개 동이 들어선 그곳을 미 <msnbc>은 “바티칸 시티와 비슷한 규모”라고 전한 바 있다. 수천 명의 ‘외교관’과 ‘민간업체’ 관계자들이 그곳에 남을 것이다. 는 12월14일 인터넷판에서 대학생 수하르 사드(19)의 말을 따 “희망을 품어보고 싶지만, 솔직히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바그다드의 민심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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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nbc></ap></ap></abc></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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