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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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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스미스씨 워싱턴으로 가나, 고향으로 가나

정치운동으로 진화한 ‘의회를 되찾자’, 풀뿌리운동으로 분화하는 ‘압류주택 점거운동’…‘월가 점령시위’ 이후에 새 단계에 접어든 ‘아큐파이’ 운동은 어디로 가나
등록 2011-12-15 19:31 수정 2020-05-03 04:26

‘내셔널몰.’ 미국의 수도 워싱턴DC 중심가에 자리한 거대한 공원이다. 1791년 신생 합중국의 수도를 계획할 때부터, 공원은 그 중심부에 자리를 틀었다. 미 국립공원사무소(NPS)가 누리집에 올린 자료를 보면, 공원의 상징성과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다. “의회 건물에서 링컨 기념비까지 길이 약 3km, 워싱턴 기념비에서부터 따져 너비 약 1.8km, 율리시스 그랜드 기념비부터 링컨 기념비까지 넓이 125.13ha….”
공원은 미국 ‘대중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부를 만하다. 두 세기도 전인 1894년 4월 제이컵 콕시가 이끄는 실직 노동자들이 사상 첫 행진을 벌인 이래, 미 정치사를 뒤흔든 대중집회는 대부분 이곳에서 열렸다. 1963년 8월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25만여 시위대 앞에서 ‘내겐 꿈이 있습니다’란 제목의 기념비적 연설을 한 것도 바로 이곳이다.

준비된 워싱턴 점령시위
‘의회를 되찾자’(Take Back the Capitol). 지난 12월5일 ‘내셔널몰’로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미 전역에서 몰려온 실직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학생과 시민단체·노동조합 활동가들이다. 야영장비를 든든히 갖춘 그들은 의회가 바라다보이는 공원의 동쪽 끝자락에 하나둘 천막을 쳤다. 이른바 ‘인민의 캠프’다. 1%의 부유층에 장악된 미 의회가 다시 99%의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게 시위대가 워싱턴을 찾은 이유다. <ap> 등 외신들은 이를 두고 “월가 점령운동이 워싱턴에 상륙했다”고 전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부터 미 의회는 인파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시카고·위스콘신·보스턴·세인트루이스 등지에서 ‘상경투쟁’에 나선 지역 대표단이 해당 지역구 의원 사무실을 찾아 면담을 요구한 탓이다. 일부는 아예 의사당 복도에 자리를 틀고 앉아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셋쨋날인 12월7일엔 미 정치권 로비의 상징인 워싱턴의 ‘케이스트리트’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간간이 빗살이 날리는 가운데 차도를 점거한 1천여 시위대는 “탐욕스런 기업이 정치를 장악했다”고 외쳤다.
천막과 점거, 농성과 행진, ‘99% 대 1%’란 구호에 이르기까지. 12월5일부터 9일까지 닷새간 워싱턴 정가를 휘저은 시위는 ‘월가 점령운동’(OWS)과 닮아 보인다.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지난 9월17일 뉴욕 주코티 공원(자유 공원)에서 시작된 월가 점령운동은 ‘자연발생적’이었다. 시위를 주도한 조직이 없으니, 시위대를 이끄는 지도자도 있을 리 없다. 반면 ‘의회를 되찾자’는 구호로 모여든 이들의 4박5일 시위는 기실 한 달여 전부터 몇몇 단체가 주도면밀하게 기획·준비한 행사다.
“지금까지의 월가 점령운동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 공원 점거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분노에서 응답으로, 문제제기에서 해법제시 쪽으로 진화해나갈 시점이 됐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의 ‘산파’ 구실을 했던 미국진보센터(CAP)의 밴 존스 선임연구원은 지난 11월17일 <cnn>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어 “2010년 중간선거에서 (보수 성향의) 티파티 운동 진영이 정치권에 진출한 것처럼, (월가 점령운동도) 제2단계로 나아가고 있다”며 “월가 점령운동의 대의에 공감하는 정치 신인 2천 명을 발굴해 내년 선거에 출마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존스 연구원은 오바마 대통령의 ‘녹색 일자리’ 담당 특별보좌관으로 임명된 지 6개월여 만인 2009년 9월 보수 진영의 집중 포화로 물러난 바 있다. 그가 이끌고 있는 ‘미국의 꿈 재건운동’은 이번 워싱턴 시위를 주도한 단체 가운데 하나다. 100여 개 업종에 걸쳐 조합원만도 180만 명을 웃도는 전미서비스노조(SEIU)도 이번 시위의 ‘배후’로 꼽힌다. 이 단체는 “1%의 부유층에 맞서 99%의 요구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며 지난 11월 중순 일찌감치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도전을 지지하고 나선 바 있다.

시위대와 대통령의 오비이락
그래서다. 이들이 말하는 ‘점령운동의 진화’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이를테면, 워싱턴 시위대는 행사 기간 내내 미 의회가 거센 논쟁을 벌이고 있는 실업급여 연장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낸시 펠로시, 해리 리드 등 민주당 지도부는 현행처럼 실직 이후 99주까지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조처를 1년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공화당 쪽에선 “중국에서 돈을 빌려다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실업급여로) 주느니, 차라리 그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게 낫다”고 버티고 있다. 상황은 다급하다. 의회가 12월31일까지 실업급여 연장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당장 내년 1월부터 약 180만 명이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게 된다. 때맞춰 워싱턴으로 달려온 시위대는 ‘민주당의 우군’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중산층이 위기에 처했다.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미국의 약속이 거짓말이 돼가고 있다.” 우연이라면 시점이 절묘하다. 워싱턴에서 ‘의회를 되찾자’는 외침이 나오던 날, 오바마 대통령은 인구가 4400명에 불과한 캔자스주 마이애미 카운티의 작은 도시 오사와토미에서 아연 목소리를 높였다. 미 본토의 정중앙에 자리한 캔자스주는 오바마 대통령에겐 외가 쪽 고향이지만, 주지사부터 연방 상·하원의원에 이르기까지 공화당이 장악한 전통적인 보수의 표밭으로 꼽힌다.
“노동자가 충분히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 저축을 하고, 주택을 구입하고, 은퇴 이후를 대비할 수 있는 나라로 유지될 수 있느냐가 달려 있다. 중산층과 중산층 편입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에게 결정적인 국면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연설문을 떠올리게 하는 문구를 자주 등장시켰다. 일부 내용은 직접 따오기도 했다. 미 26대 대통령을 지낸 테드 루스벨트는 오사와토미에서 유명한 연설을 남겼다. 공화당 출신임에도 ‘과격파’로 불렸던 그는 1910년 8월31일 그곳에서 인권과 복지를 위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는 이른바 ‘신국가주의’를 주창했다. 특히 △하루 8시간 노동 △최저임금제 확대 △실업급여 △누진소득세 등을 내걸었다가, 공화당 주류로부터 ‘사회주의자’란 비난을 사기도 했다.
비슷한 기억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상원의원 시절이던 2007년 2월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의 옛 주의회 의사당 앞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1858년 6월16일 에이브러햄 링컨이 공화당 연방 상원의원 후보로 지명된 뒤, 노예제 폐지 문제로 갈라선 미국 사회를 겨냥해 단합을 호소하는 연설을 남긴 곳도 바로 거기다. 오사와토미 연설을 두고 진보적 시사주간지 이 이렇게 지적한 것도 무리는 아닌 게다.
“석 달 전만 해도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 주제는 온통 재정적자를 줄이는 문제에 집중돼 있었다. 오늘 그는 소득 불평등과 경제정의, 일자리 창출과 월가 점령운동을 언급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운동이 공식 개막된 셈이다.”

“사람이 아니라 은행을 압류하라”
앞서 은 지난 11월22일치에서 오바마 행정부와 미 진보 진영의 관계를 ‘이혼을 앞둔 부부’로 묘사한 바 있다. 이 매체는 “오랫동안 가정을 팽개친 남편(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기대를 버린 시민사회가 마침내 이혼을 결심한 뒤 행동에 나선 게 월가 점령운동”이라며 “참아내던 부인이 더 이상 무책임한 남편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겠다고 나선 순간, 배우자의 노동과 세금·생산성에 기대 살아온 것은 부인이 아니라 남편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표현했다.
“주거권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의 하나다. 어느 누구도 주거의 권리를 빼앗아갈 수 없다.”
점령운동의 ‘진화’를 원하는 이들이 의회에서 분주하던 12월6일, 뉴욕·샌프란시스코 등 미 전역 25개 도시에선 점령운동의 ‘분화’가 본격화했다. 이른바 ‘압류주택 점거운동’(Occupy Our Homes)이다. 경기침체에 따른 실직으로 주택담보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했거나 대출사기를 당해 거리로 나앉게 된 이들이 ‘직접행동’에 나선 게다. 은행이 압류해 경매에 내놓은 빈집으로, 압류주택 경매 현장으로 노숙인 가족과 점령운동 활동가들이 들이닥쳤다. 도처에서 “사람이 아니라 은행을 압류하라”는 외침이 울려퍼졌다.
주택 압류가 늘면 시장에 공급이 많아진다. 공급이 많을수록 가격은 떨어진다. 주택값이 떨어지면,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은 가계의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빠져버린 악순환의 늪이다. 압류물건 중개 전문매체인 ‘리얼티트랙’이 지난 10월13일 내놓은 자료를 보면, 올 3분기에만 미 전역에서 경매에 나온 압류주택은 모두 61만여 채에 이른다. 2006년부터 따지면 줄잡아 400만 채의 주택이 은행에 압류됐다.
이날 오후 뉴욕 브루클린의 이스트뉴욕 지역에선 100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압류한 집 한 채의 문을 열었다. 2층짜리 낡은 주택은 이날부터 자원활동가들이 나서 청소와 보수를 시작했다. 영국 은 월가 점령운동 활동가 넬니 스탬프의 말을 따 “보수작업이 마무리되면 장기간 노숙인 센터를 전전해온 4인 가족이 입주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정치권으로 눈을 돌리는 대신, 직접행동의 전선을 넓히는 쪽을 택한 셈이다.

역사에서 찾은 시사점
세계를 뒤흔든 ‘월가 점령운동’은 변하고 있다. 늦여름 시작돼 흩어지고 모이기를 되풀이하며 겨울을 넘기고 있는 ‘99%’의 외침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음은 틀림없다.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원하는 쪽으로 ‘진화’하는 것인지, 풀뿌리 운동의 전선을 넓히는 쪽으로 ‘분화’해가는 것인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다만 역사에서 시사점을 얻을 뿐이다.
1912년 치러진 미 대선에는 모두 4명의 후보가 나섰다. 재선 이후 4년의 휴지기를 지나 3선 도전에 나선 테드 루스벨트는 공화당 공천을 얻지 못하자, 독자정당(진보당)을 창당해 출마를 강행했다. 하지만 27.4%의 득표율로 민주당 우드로 윌슨(41.8%)에 참패했다. 반독점법·아동노동금지법 등을 밀어붙인 윌슨은 ‘뉴딜에 앞서 미 진보 진영의 기초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루스벨트의 진보당은 1916년 대선을 앞두고 주요 인사 대부분이 공화당으로 복귀하며 사실상 소멸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cnn></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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