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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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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속에도 삶은 계속된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 재일동포의 삶과 역사 담은 수천점 자료 전시
등록 2011-09-29 16:37 수정 2020-05-03 04:26
1949년 10월19일 제2차 조선학교 폐쇄령에 따라 아이들을 조선학교에서 끌어내는 아이치현 경찰들. 재일한인역사자료관

1949년 10월19일 제2차 조선학교 폐쇄령에 따라 아이들을 조선학교에서 끌어내는 아이치현 경찰들. 재일한인역사자료관

제2차 조선학교 폐쇄령이 공포된 1949년 10월19일, 아이치현 경찰들이 조선학교에서 아이들을 끌어내고 있다. 곤봉을 든 경찰들이 건물 안쪽을 가리키며 소리치고 있고, 아이들은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이다. 학교에서 쫓겨난 그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 흑백사진은 자이니치(재일동포)의 한 많은 역사를 압축적으로 상징한다. ‘난민과 국민 사이’에 자리했던 재일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슬픔이 한 장 사진에 고스란하다.

억압과 배제 증언하는 자료들

사진이 전시된 곳은 도쿄 미나토구 한국중앙회관 별관에 위치한 ‘재일한인역사자료관’(관장 강덕상·이하 자료관)이다. 재일동포의 삶과 역사를 보여주려고 2005년 11월에 문을 열었다. 한국인·조선인 모두의 역사를 담으려는 뜻이 ‘한인’이라는 용어에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실제로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계 동포들뿐 아니라 중립적 동포와 귀화 동포, 일본인 연구자 등 다양한 이들에게서 귀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다. 자료관에는 도서 6천여 권을 비롯해, 문서·포스터·사진·영상·생활용구 등 재일동포의 형성사부터 운동사, 생활사까지 자이니치의 역사 전반을 보여줄 자료 수천 점이 소장돼 있다. 일본 패전 뒤 B·C급 전범으로 몰렸던 조선인들이 기증한 40상자 분량의 전범 자료도 보관돼 있다.

1946년 오사카부가 발행한 조선인등록증과 1949년 교토시가 발행한 외국인등록증명서는 재일동포에 대한 일본 사회의 차별과 배제의 시선을 말없이 증언한다. 특히 우에노경찰방범협력회가 1949년 10월에 만든 도난방지 포스터는 한가운데에 태극 문양을 넣어 ‘조선인을 조심하라’는 의미까지 아울러 담기도 했다. 억압과 차별 속에도 삶은 이어진다. 자료관에는 당시 재일동포가 쓰던 놋그릇과 놋수저, 각종 공구, 재봉틀, 요강 등 생활용품들도 나란히 전시돼 있다. 일본 각지에서 발품을 팔며 기증받은 물건들이다. 이 가운데 요강은 수소문 끝에 어렵게 구했다. 상하수도 시설이 드문 불량 주거지구에 살던 동포들에게 요강은 없어서는 안 될 귀한 것이었다.

재일동포 박물관 건립 구상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세들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의 삶을 증언과 자서전 형태로 남기자는 운동이 벌어졌고, 이후 역사학자 박경식씨를 중심으로 자료관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설립 비용 문제로 진척을 보지 못하다 21세기 들어 동포사회의 갈 길을 고민하던 민단이 2002년 재정 지원을 약속해 속도가 붙었다. 2003년 7월, 재일동포와 일본인 연구자 13명으로 ‘재일코리안 역사자료관 조사위원회’가 구성돼 설립에 이르게 됐다.

1946년 오사카부가 발행한 조선인등록증과 1949년 교토시가 발행한 외국인등록증명서. 1949년 10월 우에노경찰방범협력회가 만든 도난 방지 포스터. 태극무늬가 보인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

1946년 오사카부가 발행한 조선인등록증과 1949년 교토시가 발행한 외국인등록증명서. 1949년 10월 우에노경찰방범협력회가 만든 도난 방지 포스터. 태극무늬가 보인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

재일동포와 일본의 가교 역할

옥외테라스·도서영상실·세미나실도 갖추고 있는 자료관의 방문자는 일본인이 절반에 달한다. 자료관이 재일동포와 일본 사회의 가교 구실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자료관의 이미애 연구원은 “경기가 안 좋은 탓에 민단의 재정 지원이 해마다 줄고 있다”며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귀한 자료들을 일별해 내년에는 한국 전시회를 열 계획도 하고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 http://j-koreans.org

도쿄(일본)=글·사진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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