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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독재, 다른 개입

리비아처럼 민주화 시위 유혈 진압하는 시리아… 이스라엘 맞서는 아랍 군사강국 등 이유로 군사개입 고려 않는 서방
등록 2011-09-02 17:21 수정 2020-05-03 04:26

리비아의 카다피 체제가 무너지는 데 서방의 군사개입이 큰 구실을 했으니, 시리아에도 군사개입을 할 수 있을까? 시리아 정부는 함정까지 동원해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하고 있다. 지난 3월 중순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래 22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군사개입, 화약고 중동의 도화선?

하지만 국제사회는 군사개입 대신 비난 ‘성명’만 내놓고 있다. 리비아 군사개입을 결의했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등 23명과 5개 기업에 대한 자산 동결과 여행 금지 및 무력 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제재결의안 초안을 회람하고 있지만, 러시아 등이 반대해 그마저 채택이 불투명하다. 앞서 안보리는 8월3일 유혈진압과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했을 뿐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8월18일 “시리아 국민을 위해 알아사드 대통령은 물러날 때가 왔다”고 알아사드의 퇴진을 처음으로 공식 요구했지만, 미국 내 시리아 자산의 동결 및 시리아산 석유의 수입 전면 금지 등 추가 제재에 머물렀다.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은 리비아와 달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카다피는 아랍연맹이 유엔의 군사개입에 동의할 만큼 고립됐던 반면, 시리아는 이스라엘에 맞서는 아랍의 중심국가다. 시리아는 아랍 민족주의와 서방 제국주의에 맞선 수호자를 자처해왔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은 물론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하마스 등과 돈독한 관계여서, 섣부른 군사 개입의 불러올 파장이 만만찮다. 이스라엘, 레바논, 터키와 국경을 접한 시리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은 이란을 자극해 이스라엘과의 분쟁 등으로 번지면 화약고인 중동 정세를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당연히 아랍연맹의 지지를 받기 힘들다. 또 시리아는 정규군 32만5천 명과 준군사 병력 10만 명을 둔 중동의 군사강국으로 리비아와 비교가 안 된다. 군사개입의 비용과 피해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막내동생이 정예부대인 제4사단과 공화국 수비대를 이끄는 등 군의 충성도도 높다. 바트당 1당 독재체제가 확고해 알아사드 정권에 맞선 반대세력도 조직화되지 못했다. 알아사드 정권이 무너지면 다수파인 수니파와 알아사드가 속한 시아파 소수세력인 알라위파 사이에 내전이 벌어질 수 있고, 그 불통이 튈 것을 주변국이 우려하고 있다고 이 8월24일 전했다. 석유를 놓고 봐도, 리비아와 달리 매장량이 많지 않아 국제사회 개입의 이해가 크지 않다.

시리아 사태, 결국 민중의 손에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빅토리아 눌런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8월24일 군사개입은 “시리아인, 아랍, 유럽, 미국 등 국제사회 구성원 누구도 선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도 8월1일 “리비아 군사작전은 유엔의 분명한 위임과 역내 국가들의 지지에 근거한 것”이라며 “시리아는 이 두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살람 카와키비 아랍개혁이니셔티브 연구소장은 “군사적 수단과 외국의 힘으로 얻은 첫 아랍 혁명은 다른 아랍권 시위의 모델이 될 수 없다”며 시리아와 예멘의 민주화 시위대는 비무장을 고수하고 외국의 개입을 피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에드 후사인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위원은 서방의 사퇴 요구마저 “시리아에서 알아사드를 거대한 사탄에 맞서는 지도자로 비치게 하고, 분열된 반정부 운동은 미국의 꼭두각시로 여겨지게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버지에 이어 41년째 통치하고 있는 알아사드는 8월21일 “시리아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에게 사임을 요구하는 것은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제사회의 군사개입은 “감당할 수 없는 역풍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랜 갈등으로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비군사적 지렛대도 제한적이다. 결국 시리아 사태는 국제사회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대학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적어도 한동안은 시리아 민중의 손에 달려 있을 수밖에 없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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