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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쫓아낸 R2P의 내일은?

유엔 보호책임(R2P), 제한적 군사개입과 결합 첫 성과내… 재건 둘러싼 국제적 각축, 부족 갈등 증폭 우려 등 리비아의 불안한 미래
등록 2011-09-02 17:19 수정 2020-05-03 04:26

아랍권을 휩쓴 재스민 혁명 뒤 독재자 3명이 권좌에서 쫓겨났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 최고지도자는 반군에 수도 트리폴리를 내줬다.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도 시민혁명에 일찌감치 물러났다. 3명 모두 쫓겨났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리비아는 국제사회가 군사개입을 했다는 사실이다. 유엔은 지난 3월17일 채택한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973호에서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필요한 수단을 동원한다’고 밝혀 군사개입을 승인했다. 결과적으로 42년간 1인 독재를 해온 카다피 체제의 붕괴로 이어졌다. 반군의 트리폴리 점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군사개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영국 일간 은 8월24일 나토군이 지난 5개월간 2만121회 출격했으며, 그 가운데 7587회는 폭격을 실행했다고 전했다. 미군은 비행금지구역 설정 뒤 사흘 만에 리비아 공군을 무력화했다. 나토는 반군의 트리폴리 진격에 맞춰 8월20일 트리폴리 주변의 카다피 부대 장악 지역에서 수천 개 목표물을 대상으로 대규모 공격을 퍼부어, 전세가 급속하게 반군 쪽으로 기울었다. 반군의 트리폴리 점령은 나토가 공군력으로 지상군 전투의 힘의 균형을 깨뜨린 게 결정적이었다.

반군 승리, 나토 군사개입 정당화?

미국·영국·프랑스 등 군사개입을 주도한 쪽은 ‘성공’을 자축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8월21일 성명에서 “리비아 개입은 우리가 하나로 뭉치면 국제사회가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엘리제궁은 8월23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 군사작전을 계속 수행해야 한다는 데 뜻을 함께했다고 밝혔고, 8월24일 반군 대표를 파리 엘리제궁으로 초청했다. 프랑스의 보수 일간지 는 ‘프랑스는 리비아에서 옳았다’는 사설에서 “리비아 반군의 승리는 또한 나토의 승리다”라며 프랑스 외교의 승리라고 치켜세웠다. 데이비드 오언 전 영국 외무장관은 영국 일간 8월23일 기고에서 “개입이 성과를 낼 수 있고, 성과를 낸다는 전례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샤디 하미드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도하센터장은 월간 기고에서 “리비아는 외부의 역할이 아랍의 자유투쟁에 여전히 결정적일 수 있다는 현실을 확인해준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벵가지와 반군 저항 지역에서 비극적 유혈 학살로 이어졌을 게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반군의 트리폴리 점령이라는 ‘성공’은 나토 군사개입의 정당화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는 군사개입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웠다. 내정불간섭 원칙을 외면한 주권침해는 물론 선제공격의 정당성, 서방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선별적 개입, 민간인 희생 등의 논란이 불거졌다. 군사개입은 과연 ‘최후의 수단’이었나라는 논란도 더해졌다. 140여 부족으로 나뉜 갈등 상황에서 한쪽 편을 드는 게 옳으냐는 지적도 나왔다. 서방의 개입 논리가 과거 서구 제국주의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리비아가 수렁에 빠진 ‘또 하나의 이라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이런 논란 속에 안보리 결의 1973호 채택 당시 중국·독일·인도·브라질·러시아가 기권했다. 적극적 개입을 촉구하는 쪽에서는 지상군 투입 없이 공습만 하는 ‘제한적 개입’이 비효율적이고 유혈사태를 장기화할 것이라는 비판도 일었다. 프랑스와 함께 군사개입을 이끈 영국의 여론만 봐도, 7월 중순 당시 국민의 37%가 군사개입에 반대하고 36%가 찬성했다. 영국인의 64%가 카다피가 제거되기를 원했지만, 이들 중 절반이 연합군이 리비아 국민에게 적으로 간주될 것을 우려했다. 이 때문에 나토 28개 회원국 가운데서도 3분의 1이 안 되는 8개국 공군만 실제 작전에 참여했다. 그마저 영국과 프랑스가 주로 맡았고, 이탈리아는 공군기지 활용 및 포괄적 지원을 했다. 독일은 개입 자체에 반대했고, 터키와 스페인은 폭격 임무 수행을 거부했다. 무엇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군사개입이 실패로 드러나고 있는 데 따른 ‘학습효과’가 컸다.
군사개입의 ‘단기적 성공’이 주목받는 것은 반군의 트리폴리 점령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냈을 뿐 아니라, 학습효과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과는 개입의 절차와 수준이 달랐기 때문이다. 나토는 지상군 투입 없이 공습으로 반군 지원에 주력했다. 미국은 ‘배후에서 이끌기’(leading from behind) 전략을 유지했다. ‘제한적 개입’이다. 과거 부시 행정부 시절 이라크에 대량파괴무기(WMD)가 있다는 거짓 정보를 갖고 유엔 동의도 없이 전면 침공했던 것과 크게 다르다. 나토는 리비아 군사개입에 앞서 안보리 결의를 거치고 아랍연맹(AL)의 지지도 끌어냈다.

제한적 개입, 어려운 형편에 맞춘 선택

세계적 국제안보전문가인 파리드 자카리아의 분석이 눈에 띈다. 그는 미국 블로그에서 “리비아 개입은 전통적 미국 주도의 개입 형태를 따르지 않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며 “과거의 포괄적 고비용 모델보다 상당히 개선됐다. 미래에 나쁘지 않은 모델이다”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리비아전에 지출한 비용은 10억달러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전을 합쳐 들어간 1조3천억달러의 1천분의 1도 안 된다. 자카리아는 “모든 결정을 내리고 모든 책임을 지고 모든 비용을 치르고 모든 영광을 차지하는 미국의 낡은 리더십 모델은 변해야 한다”며 “미래에도 이런 제한적 개입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의 공저자 제랄드 크노스도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경험을 돌아볼 때 제한적 개입이 향후 국민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고, 제한적이지만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미군은 군사개입 첫 사흘간 공습을 주도했을 뿐, 이후 프랑스와 영국을 앞세우고 뒤로 물러나 필요할 때만 개입했다. 미국은 토마호크미사일 등을 앞세워 카다피의 지대공미사일과 전투기 등 리비아군 무력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나토는 일부 특수부대를 파견해 반군을 훈련시키고 정보를 공유하고 폭격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공식적으로 지상군을 파견하지 않음으로써 아랍권 여론을 들끓게 만들 구실도 차단했다.
이런 제한적 개입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각국 정부의 재정위기와도 연결된다. 미국은 재정 악화로 국가부채 한도 증액을 놓고 합의를 못해 국가 디폴트 위기에까지 내몰렸다. 미국의 국가채무는 14조3천억달러에 이른다. 역시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영국은 국방예산 8% 삭감이 계획돼 있다. 이 때문에 ‘똑같은 상황이 몇 년 뒤 벌어지면 이번처럼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나올 정도다. 그만큼 이번 제한적 개입은 어려운 형편에 ‘걸맞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군사개입의 배경이 된 국제사회 규범은 보호책임(R2P·Responsibility to Protect)이다. 오언 전 장관은 이번 리비아 사태가 “2005년 유엔헌장에 반영된 보호책임을 실행할 수 있는 명확한 메커니즘의 첫 사례를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집단학살 및 인종청소가 자행된 르완다와 코소보 사태 뒤 인도적 개입에 대한 국제사회의 고민에서 싹틔운 보호책임 개념의 실질적 첫 성과라는 것이다. 유엔의 군사개입 결정 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국제사회가 보호책임 개념을 적용해 나선 첫 사례”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사태는 국제사회가 생성중인 개념인 보호책임을 다시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샤디 하미드 브루킹스연구소 도하센터장이 월간 기고에서 “보호책임은 반대자들이 그동안 신뢰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 유용성, 필요성, 도덕성을 주장할 때가 됐다”고 지적한 게 그 하나다. ‘개입과 국가주권에 관한 국제위원회’(ICISS)를 구성해 2001년 ‘개입’이라는 표현 대신 개별 국가가 인권 보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국제사회가 개입해야 한다는 보호책임의 개념을 고안하게 도왔던 캐나다의 의견도 보인다. 로이드 액스워디 전 캐나다 외무장관은 캐나다 일간 8월23일 기고에서 “보호책임 적용이 진정으로 막 시작됐다”며 “어려운 일이지만, 리비아가 민주적이고 안정적인 토대 위에서 재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찌됐든 나토의 제한적 군사개입은 아랍 혁명에 또 한 번의 열기를 불어넣었다. 관건은 군사개입이 장기적 성공으로 이어지느냐다. 은 8월23일 사설에서 “리비아에서 나토의 개입이 말 그대로 성공했다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며 “반군을 돕기 위한 무력 사용 결정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제대로 평가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진정한 성공의 가늠자는 리비아의 안정과 성공적 민주주의 정착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분열과 갈등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

반군 지도부는 8월26일 거점을 동부 벵가지에서 트리폴리로 옮겨 “트리폴리에서의 업무 개시를 공식 선포한다”며 ‘포스트 카다피 시대’ 준비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지금의 리비아 상황을 보면 전망이 밝지 않다. 과도국가위원회(NTC) 분파 간 갈등이 심각하다. 지난 7월 압둘 파타 유네스 반군 최고사령관이 반군 내부 세력에게 피살된 사건은 그 난맥상을 드러낸다. 반군은 카다피 축출이라는 공통의 목표 아래 뭉쳤지만, 이제는 어느 부족이 얼마만큼의 권력을 차지하느냐는 문제에 맞닥뜨렸다. 인남식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8월24일 ‘최근 리비아 사태의 현황과 의미’라는 논평에서 “리비아는 종족과 부족 및 소수 유목 집단이 정치적으로 복잡하게 연계돼 있어서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며 국가를 건설하기 쉽지 않은 정치적 배경과 역사를 갖고 있다”며 “분열과 갈등이라는 역사적 퇴행의 길에 설 가능성이 불행히도 더 높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지금 트리폴리에 나부끼는 적·흑·녹 삼색기는 각 사막 지역, 동부 벵가지 지역, 서부 트리폴리 지역을 상징하는데, 향후 억눌렸던 지역 간 갈등이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140개 부족의 갈등으로 리비아가 세 나라로 쪼개질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식량 위기로 인도주의적 위기도 우려되고 있다. 미국이 제대로 전후 계획을 세우지 못했던 이라크에서는 치안과 기초 서비스 제공 등에서 심각한 상황을 맞았다. 체제 이행 과정을 뒷받침할 든든한 중산층도 없다. 제임스 피어론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정치학)는 “튀니지나 이집트에 비해 카다피 이후 리비아는 향후 행정 및 체제 이행 과정을 도와줄 시민사회와 국가기관이 공백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미국 가 8월22일 리비아 상황이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이 최소한 부분적으로 성공했음을 시사한다”면서도 “리비아에서 새 정부로의 이행이 유동적인 상태에서 지나치게 일찍 승리를 선언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밝힌 배경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개입에 대한 ‘보상’을 둘러싼 각축전도 예상된다. 리비아의 원유 매장량은 약 440억 배럴로 아프리카 최대인데다 유황 함유량이 낮은 고품질이고 유럽에서 지리적으로 가깝다. 아랍개혁이니셔티브 살람 카와키비 연구소장은 8월23일 인터뷰에서 “리비아에 군사적으로 개입한 나라들은 인도주의적 이유를 내세웠지만 향후 석유가 풍부한 리비아의 시장과 재건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며 “리비아가 정치적 대가, 곧 서방 정책에 상당히 가까워졌다는 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NTC는 “우리를 도와준 국가에 특히 재건사업과 관련한 특혜를 약속한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유엔이나 중동의 다른 국제기구가 체제 이양 과정에 개입할 가능성이 높으며, 사태가 악화되면 지상군이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NTC는 8월25일 “리비아 군과 경찰을 재건하는 데 유엔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고, 미국 등도 수용할 수 있다고 화답했다. 지금은 NTC가 “외국 지상군의 리비아 주둔을 요청하지는 않을 것”이라지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호언하기는 어렵다. 지상군 파견을 우려한 미국 는 8월23일 “만약 외국군이 리비아에서 필요해지면 첫 선택은 아랍이나 이슬람 국가에서 하고 첨단기술과 엄격한 조정이 필요하면 미군보다는 유럽군이 필요할 수 있다”며 “미국이 리비아 공습을 전면에서 이끌지 않은 것처럼 또 다른 이슬람 국가에 빠져드는 것을 피하는 게 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미 불길한 징조는 나오고 있다. 카다피의 고향 시르테 등에서 반군과 친카다피 세력의 전투가 계속되자 사태가 이라크처럼 장기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나마 안보리가 8월25일 그동안 동결됐던 미국 내 리비아 자산 가운데 15억달러를 우선 해제해, 반군이 식량구입 등 긴급 구호에 쓸 수 있게 된 게 희소식이다.

승리 선언 아직 일러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3년 이라크 침공 43일 뒤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에 승리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라크의 혼란은 그로부터 8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보호책임은 예방·대응·재건의 3단계로 나뉜다. 대응 뒤 재건이 뒤따라줘야 하는 것이다. 결국 리비아의 체제 이행 과정에서 혼란이 벌어진다면 제한적 군사개입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이다. 진정한 승리를 선언하기는 아직 너무 이르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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