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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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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통해야 남북도 통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동선에서 드러난 북-러 전력·가스관·철도 연결사업 중요성… 남북 협력 지향하면 북핵 포기 대안 되고, 대륙경제권 가는 길 열려
등록 2011-09-01 16:15 수정 2020-05-03 04:26

북-러 정상회담이 열렸다. 6자회담 재개를 합의했다. 원론적이다. 북한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까지 6자회담 재개를 강조하고 있지만, 한-미 양국은 북한의 성의 있는 조처를 요구한다. 더 중요한 합의는 경제협력이다. 바로 철도, 전력, 그리고 가스관 연결 사업이다. 세 사업 모두 공통성이 있다. 바로 남-북-러 삼각 협력사업이다. 북한이라는 다리를 넘어, 한-러 양국이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진 사업들이다. 그중에서 이명박 정부는 가스관 연결 사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2008년 한-러 정상회담의 핵심 합의 사항이기도 하다. 가능할까?

러시아의 6자회담 참여 동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이번에도 기차를 타고 정상회담 장소인 바이칼호수 근처의 울란우데까지 갔다. 갈 때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탔고, 귀환 길엔 중국을 지나는 만주횡단철도(TMR)를 탔다. 동선 자체가 철도 연결 사업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부레야 수력발전소에 들렀다. 거대한 발전량을 자랑한다. 러시아는 극동의 전력 수요가 별로 없어, 이 잉여 전력을 수출하려 한다. 이미 일부 전력을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에 잉여 전력을 수출하고 싶어한다.
왜 그럴까? 러시아가 6자회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제적 동기가 여기에 숨어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관련국들은 대체에너지를 제공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 한국 정부는 200만kW 직접 송전을 제안했다. 북한은 부정적 태도였다. 1948년 두 개의 코리아가 분단을 향해 달려갈 때, 북한은 전력 송전을 중단한 바 있다.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전력 종속을 우려했다. 그 틈을 러시아가 파고들었다. 부레야 발전소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미 송전선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청진까지는 380km다. 러시아는 남쪽에서 송전할 때와 비교해서, 최소한 7배 정도 싸다는 가격경쟁력을 강조한다.
이 사업은 나도 잘 알고 있다. 2005년 내가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할 때, 러시아 극동전권대표부의 초청을 받은 적이 있다. 남-북-러 삼각 협력의 현장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당시 200만kW 송전 계획을 검토했기 때문에, 러시아의 송전 건설 비용이 왜 그렇게 싼지 궁금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두만강 철교까지 약 250km를 차로 달려보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그곳은 민가가 띄엄띄엄 있고, 대부분이 군사지역이다. 전기줄은 나무에 걸쳐 있고, 평지에서도 막대기 같은 것으로 연결돼 있었다. 우리처럼 전봇대를 일정 높이로 세우고, 송전탑을 산 위에 건설하는 방식이 아니다. 당연히 송전선 건설 비용에서 차이가 난다. 발전 비용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양주 화력발전소를 통해 북한에 전기를 공급할 계획이었다. 발전 비용이 kWh당 4센트가 든다. 그러나 부레야 수력발전소의 발전 비용은 kWh당 0.53센트에 불과하다.
물론 러시아는 2단계 사업으로 청진에서 한국까지 700km의 송전선을 건설해 전력을 수출하려 한다. 검토해야 할 변수가 적지 않다. 남-북-러 삼국의 전력 연계망을 조정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다. 전력 주파수와 전압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전력 계통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또한 한국은 전력 수입이 낯설다. 나아가 6자회담에서 대체에너지를 러시아의 송전으로 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관련국들의 협의가 필요하다. 과연 미국이나 중국, 일본이 비용 분담에 참여할지 미지수다. 다만 한국의 대북 송전 구상이 경의선을 따라 북한의 서부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러시아가 남북한의 동부권을 분담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는 있다. 한국의 경우, 강원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부권은 인구가 적고 산업시설이 별로 없어 발전 수요가 적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냉전이 해체되고 북방경제권 시대가 되면, 동해안도 달라질 수 있다. 장기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PNG 파이프가 한반도를 관통하려면

한국 처지에서 더 중요한 건 가스관 연결 사업이다. 한국은 현재까지 대부분의 천연가스를 액화 형태인 LNG로 수입하고 있다. LNG는 우선적으로 파이프라인을 통한 PNG보다 비싸다. 액화를 하는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시가스는 대부분 취사와 난방용인데, 우리나라 가스 소비는 계절적 특성으로 여름철은 적고 겨울철은 많은 동고하저(冬高夏低)를 보인다. 당연히 겨울철을 대비한 LNG 저장시설이 필요하다. 이에 비해 PNG는 수시 운송이 가능하기 때문에 계절적 소비량의 차이를 조절할 수 있다. 그래서 PNG 방식이 가스배관을 위한 초기 투자가 필요하지만, 배로 실어오는 LNG 방식보다 30~70% 비용절감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다.
물론 PNG는 북한을 통과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가스 파이프가 통과하는 국가들에는 통과료를 현물로 제공한다. 현재 한-러 양국이 협의하는 연간 100m³(700만t)의 통과료는 약 7m³(60만t)이며, 이는 현재 북한 발전량의 20%에 해당한다. 남북한이 호혜적인 협력을 할 수 있는 사업이 바로 가스관 연결 사업이다.
2017년부터 한국에 가스를 공급하려면 최소한 2012년 남-북-러 삼국 간에 가스 공급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다. 파이프라인에서 발생하는 사고, 가스 유출 등 리스크를 방지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정도 신뢰관계가 형성돼야 할까? 신뢰 수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러시아와 유럽의 배관망은 냉전시대부터 구축됐다. 1968년 러시아에서 오스트리아까지 가스 수출이 처음 시작됐다. 그리고 1969년 이탈리아, 1970년 독일, 1971년 핀란드와 프랑스까지 가스 수출이 확대됐다. 냉전시기 유럽과 러시아의 배관망이 평화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상반된 시각도 있다. 2007년 초 러시아와 벨라루스 사이에 발생한 송유관을 둘러싼 갈등관계가 시사점을 준다. 러시아가 원유 통과세 지급을 거부하자, 벨라루스는 유럽으로 가는 원유를 중간에서 가로챘다.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 수준으로는 협력이 힘들다. 여전히 북한의 선핵 폐기를 주장하는 이명박 정부에서 북핵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그리고 남북관계에서 개성공단으로 가는 길을 제외한 모든 길이 끊겼다. 이미 시험 운행을 마친 경의선과 동해선의 연결 구간은 잡초가 무성하고, ‘녹슨 기찻길’로 변해가고 있다. 금강산 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관광객이 끊기고, 이산가족들의 발길도 중단됐다. 이제 그나마 남아 있던 금강산의 관리 인력들도 쫓겨났다. 이미 닦아놓은 길조차 잡초가 무성한데, 그 길을 놓아두고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남북경제협력을 퍼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중소기업들의 위탁가공까지 중단시킨 정부에서, 철도와 가스관을 연결하는 공적 협력사업을 할 수 있겠는가? 또한 가스관 통과료를 북한에 줄 수 있겠는가? 북한이 조만간 경제위기로 붕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과연 북한에 에너지 위기를 해결할 기회를 주겠는가?

삼각협력 추진할 정부 기다려

남북협력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북-러와 한-러 간 가스관 연결 사업에 대한 협의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북한과 러시아는 왜 가스관 연결 사업에 합의했을까? 러시아는 손해볼 것이 없다. 가스시장은 전형적인 판매자 시장이다. 한국에 가스를 공급할 가능성이 커지면, 그만큼 중국이나 다른 국가들과의 가스 공급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동시에 전력이나 가스관 연결 사업은 6자회담을 포함한 동북아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북한도 여러 가지 계산이 있을 것이다. 이제 이명박 정부의 임기는 얼마 남지 않았다. 철도·전력·가스관 연결은 장기적인 사업이다. 북-러 양국이 먼저 합의하고, 한국에서 남-북-러 삼각 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정부의 등장을 기다리겠다는 전략이다. 북-중 경제협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 과거 블라디미르 푸틴 시절의 북-러 관계와 비교해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취임 이후 양국 관계는 다소 소원했다. 그러나 러시아도 극동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미 나진∼하산 철도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화물을 나진항에서 하역해 곧바로 시베리아횡단철도에 싣겠다는 구상이다. 최근 극동의 건설 현장에서 북한 노동자가 늘어나고 있다. 북-러 간 경협사업도 적지 않다.
남-북-러 삼각 협력은 이미 노무현 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북핵 문제 등으로 결실을 보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사업들은 한국의 미래 비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냉전시대 한국은 해양경제권에 편입돼 산업화를 이루었다. 이제 시대적 과제는 대륙경제권과의 연결이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낙후된 동북지역이 새로운 경제권으로 꿈틀거리고 있다. 러시아는 에너지 강국이다. 또한 유럽과 연결되는 시베리아횡단철도를 갖고 있다. 한국은 해양경제권과 대륙경제권을 연결하는 명실상부한 교량국가가 돼야 살 수 있다.

대륙으로 가는 다리, 북한

대륙경제권으로의 진출은 바로 북한이라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철도와 전력, 그리고 가스관은 하나의 패키지다. 철도가 지나는 길에 가스관을 묻고, 송전선을 세우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다. 인간관계에서 흔히 ‘전기가 통한다’는 말을 쓴다. 기차도 에너지도 서로 통해야 한다. 파탄 난 남북관계에서 무엇이 통하겠는가? 그래서 남-북-러의 3대 경제협력 사업은 차기 정부의 몫이다. 대륙을 향한 꿈과 상상력도 그때까지 유보다. 그날은 올 것이다. 철도와 가스, 그리고 전기가 북핵 문제를 해결할 날 말이다. 전기가 통할 정도면 당연히 외교관계가 정상화되고 평화체제가 만들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북한의 에너지 문제가 해결돼, 남북경제협력도 날개를 다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북한이라는 다리를 넘어 대륙으로 달려갈, 그날을 기다려본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통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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