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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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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일상, 지워지지 않은 충격

오슬로의 부촌 울레른 시민들, “무슬림 차별 부인할 수 없지만 노르웨이인 전체가 테러범과 같다고 일반화해선 안 돼”
등록 2011-08-11 18:22 수정 2020-05-03 04:26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가장 부촌인 울레른. 8월3일 오후 찾아간 오슬로 서쪽 울레른은 자연과 어우러진 곳이었다.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마치 숲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울레른의 반대편 무슬림 집단 거주 지역인 프루세트에서 보이던 건물 벽의 낙서나 얼룩은 없었다. 자동차로 쇼핑하고 돌아오는 가족이 많았다. 영어가 더 잘 통했다. 프루세트처럼 대낮에 할 일 없이 벤치에 앉아 시간을 때우는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유치원 담장 너머로 보이는 놀이터에 10명 남짓한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모두 백인이었다. 테러의 흔적은 울레른의 맑은 공기에서 느껴지지 않았다. 100여 명의 추모객이 모여 있던 오슬로 성당 앞의 추모 분위기는 없었다. 평화로웠다.

무슬림 차별 부인 못해

하지만 주민들의 뇌리에서 테러의 악몽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 쉽게 잊겠나. 당시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울레른에서 20년째 사는 60대의 스테이나르 위크가 울레른 인근 지하철역 앞에서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통해 노르웨이 사회에 침투한 이슬람포비아(이슬람 혐오증)를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슬림들이 노르웨이에서 받았던 차별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딸을 데리러 유치원으로 가고 있던 요하네스 요한센(37)도 생각이 같았다.
울레른의 한 노인요양소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올레우 헬란(41)은 이번 테러를 종교적 문제로 보길 거부했다. 그는 “노르웨이 사회에서 무슬림 차별은 전혀 심각하지 않다”며 “테러범 브레이비크 같은 사람은 살면서 처음 본다. 그냥 미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지하철역에서 울레른의 집으로 가던 심리학자 울센(63·가명)은 “테러의 원인은 종교 광신이다. 기독교이든 무슬림이든 모든 테러와 근본주의자는 나쁘다. 그들은 종교인이 아니라 범죄자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크리스틴 오르스헤임(24)은 무슬림들이 폐쇄적이라며 불만을 터뜨렸다. “무슬림 중에 노르웨이 언어와 문화를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왜 노르웨이에 있는가. 괜히 이곳에 남아 여성을 성폭행하는 등 온갖 못된 범죄를 저지른다.”
드물긴 했지만, 울레른에서도 무슬림을 볼 수 있었다. 엔지니어인 남편과 이곳에 사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마리엠 사리(25)는 가득 찬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이번 테러 사태를 통해 울레른을 더 좋아하게 된 듯했다. “이 동네는 평화로운 곳이에요. 다른 곳에 가기 싫어요.” 2년 전 오슬로에 온 그는 프루세트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7월22일 테러가 벌어진 총리 집무실 인근에 있었던 브라질 이민자 페르난도 자비에(34)는 시내를 걸을 때마다 “혹시 무슨 일이 터지지 않을까 불안하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이 지역은 집 뒷문을 열어둬도 안전하다”고 말했다. 집의 문을 열어둔 여성에게 위험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어머니가 계신데 어떠냐. 안전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테러 뒤에도 노르웨이 시민들은 안전에는 자신하는 듯했다.

“노르웨이인과 테러범 동일화하지 않길”

오슬로 시내도 중앙역 근처에 철망으로 길을 막아놓은 곳이 있었지만, 삼엄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경찰들은 경계를 하기보다 친절했다. 오슬로 시내에서 ‘테러 때문에 노르웨이가 갑자기 위험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대답을 여러 번 들었다. 또 자주 들은 답변 중 하나가 “노르웨이인 전체가 테러범과 같은 생각을 한다고 일반화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오슬로(노르웨이)=이승환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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