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006699"> 2011년 7월1일 중국 공산당이 창당 90돌을 맞았다. 지난 세기 서구 열강의 침략과 수탈을 당했던 상처받은 용 중국은 이제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세계 초강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빈부격차와 부정부패는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다. 공산당 창당 90돌 축제로 흥청거리는 베이징의 뒷골목에서, 각박한 생존경쟁에 내몰려 한숨짓는 스물아홉 중국 청춘의 분투기를 콩트 형식으로 싣는다. 실존 인물의 삶에 중국 사회의 일반적 현실을 덧댔다. 등장인물의 이름 등은 가명이다. _편집자 </font>
월요일 아침 정례회의 시간. 이날만 되면 나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치솟는 느낌이다. 마치 주검 처리반원 같은 얼굴 표정을 한 직속 상사 딩 주임을 바로 코앞에서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노처녀 상사는 늘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사람 같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좋은 일자리 유력인사 자제들 꿰차</font></font>소문으로는 딩 주임은 확실한 낙하산 인사다. 부모가 모두 이 잡지판에서 영향력깨나 행사하는 ‘유력인사’라고 들었다. 캐나다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뒤 얼마 안 있어 이 잡지사로 ‘낙하’됐다고 한다. 전공이 국제무역이라고 들었는데, 공기관 기관지 편집주임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긴 주변 동료들을 돌아봐도 절반 이상이 캐나다·오스트리아·영국 등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유력가’의 자제들이다. 딩 주임도 그렇고 그들 유력가 출신은 잡지사가 평생직장이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쉼터 정도다. 모두들 더 빵빵한 직장에 줄을 대놓고 자신의 입사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다. 국유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잘나가는 사영기업은 죄다 ‘뒷문’으로 힘 있고 돈 있는 부모를 둔 이들을 통과시켜주고 있다. 아예 그들을 위해 비공식적으로 직장마다 얼마간의 자리 비율을 확보해두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암튼 이 잡지사는 나처럼 빽 없고 돈 없는 놈에게는 혹여라도 목이 날아갈까봐 전전긍긍하는 하늘 같은 직장이지만, 딩 주임 같은 부류에게는 언제라도 걷어차고 나갈 수 있는 일회용 밥그릇 같은 곳이다. 쥐꼬리보다 더 작은 월급으로 나는 겨우 목구멍에 풀칠만 하고 있는데, 딩 주임이나 나보다 더 직급이 낮은 유학파 동료들은 아우디나 벤츠 등을 아무 거리낌 없이 몰고 다니고 시내 중심가에 자신 명의의 아파트를 대부분 다 가지고 있다. 베이징 시내에서 집을 사려면 농민공(도시에서 일하는 농민노동자)들이 당나라 때부터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만 겨우 집 한 칸 마련할 수 있다는 통계도 나왔는데, 그들은 부모 잘 둔 덕에 앞으로도 한 3대는 더 족히 먹고살 것이다. 참 빌어먹을 세상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일회용 밥그릇 같은 이 직장에 들어오려고 나는 대학 졸업 당시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핑 돈다. 대학 졸업과 함께 호구(주민등록등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베이징 호구를 주는 직장을 잡는 게 지상 목표였다. 베이징에서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캠퍼스 커플로 3년여를 사귄 첫사랑 여자친구와도 헤어질 판이었기 때문이다. 베이징이 고향인 여자친구는 졸업을 앞두고 비교적 쉽게 최대 인터넷 포털 사이트 회사에 취직했다. 취업도 지방보호주의가 작용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베이징 출신이 유리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취업은 쉽지 않았다. 몇십 군데에 원서를 넣고 공무원 시험도 봤지만 결과는 모두 신통치 않았다. 여자친구의 눈빛이 시들해지고 나를 피하기 시작한 것도 졸업을 앞두고 직장을 잡으려고 피눈물을 말리던 그때였다. 지금 이 직장을 구하기 직전 여자친구는 아주 쿨하게 이별을 통보해왔다. ‘우리가 같이 베이징에 있을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때부터 나는 베이징 호구를 주는 번듯한 직장을 잡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지금의 이 공기관 기관지 편집기자 공고를 보자마자 지도교수에서부터 출신대학 총장까지 찾아가서 추천서를 써줄 것을 읍소했다. 월급은 비록 보잘것없지만 공무원에 준하는 기관이라 베이징 호구는 물론 여러 가지 사회보장 혜택이 괜찮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잡아야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6699">내 집 마련 불가능한 서민 현실 </font></font>
그렇게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듯 들어온 직장에서 나는 몇 년간 미친 듯이 일만 했다. 딩 주임이 직속 상사로 오기 전까지는 예전 상사와도 사이가 좋아서 고속 승진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딩 주임이 오고 그 뒤 매년 공채를 통하지 않고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알 수 없는 한 무리의 유학파 내지는 이력을 알 수 없는 동료들이 꾸준히 들락날락하면서 나는 그제야 세상살이가 ‘규정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비밀 규정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쨌든 나는 베이징에서 계속 ‘생존해야’ 한다. 그사이 결혼까지 생각하는 새로운 여자친구도 생겼다.
지금의 여자친구와는 사귄 지 3개월 만에 동거를 시작했다. 사영기업 비서실에 근무하는 여자친구도 고향이 다른 지방이었기 때문에 각자 따로 베이징에서 집을 세들어 산다는 건 심각한 경제적 손실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는 대부분의 연인들이 혼전 동거를 한다. 사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집세와 생활비를 절약하자는 ‘경제적’인 이유다. 나와 여자친구가 받는 몇 푼 안 되는 월급으로는 방 한 칸에 2천위안(약 34만원)이 넘는 직장 근처의 낡은 아파트에 세들어 사는 것도 큰 부담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집 없는 미혼 직장인들은 개미족처럼 도시 외곽의 빈민 집단거주촌에 세들어 산다. 아니면 직장 동료 몇 명과 공동으로 아파트를 얻어 살기도 한다. 여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한 뒤 나는 조금 무리를 해서 직장 근처의 아파트에 방 한 칸을 얻었다. 방 세 개짜리 아파트의 다른 두 칸에는 각각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래도 교외 빈민촌에 살 때보다는 삶의 질이 나아진 느낌이다.
나는 요즘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여자친구와의 결혼 문제다. 결혼을 하자면 집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모아둔 돈이나 부모님의 경제력으로는 베이징에서 초가집 한 칸도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여자친구의 부모님은 계속 결혼을 독촉하는 눈치다. 하긴 내일모레면 서른 고개를 넘는데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집도 절도 없는데 결혼은 미친 짓인 것 같다. 여자친구는 사돈의 팔촌까지 빚을 얻어서라도 집을 사서 결혼하자고 한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앞으로 베이징 집값이 더 오를 것을 생각하면 나중에 더 돈을 모아서 사는 건 영원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은근히 협박조로 말한다. 나도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빚을 낼 만큼 돈 가진 친척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은행을 털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1년치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은다 해도 고작해야 베이징 시내 아파트 1~2평을 살 수 있을 정도다. 일반 서민들의 월급 수준으로는 내 집 마련이란 절대 불가능한 현실이다. 그런데 베이징 집값은 뭘 믿고 저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것일까.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그 금싸라기 아파트마다 사람들이 다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대체 돈을 어디서 어떻게 벌었단 말인가. 베이징 사람들은 딩 주임처럼 다 고위 관료나 부호를 부모로 둔 ‘신의 자식’이거나 하늘에서 떨어진 금덩어리를 주운 행운아임이 틀림없다. 얼마 전 허베이에서 자동차 사고를 낸 놈이 사람을 치고도 “내 아버지는 (공안국장) 리캉이다!”라고 하며 유유히 달렸다는데, 지금 중국에는 리캉의 자식들이 차고 넘치는 것 같다. 생각할수록 열받고 울화가 치미는 세상이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참가비 1700만원짜리 부자 맞선</font></font>또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는 얼마 전 후베이 우한에서 열린 부자들의 맞선 뉴스가 올라와 있다. 최소 1천만위안(약 17억원) 이상의 자산을 가진 부자들만 참가할 수 있고 참가신청비만 거의 10만위안(약 1700만원)이라는데, 신청자가 쇄도하고 맞선을 희망하는 ‘쭉쭉빵빵’ 젊은 미녀들도 너무 많아서 예선까지 치러야 했을 정도란다. 그 미녀들이 부호와 맞선을 치르려면 예선에서 지능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고 본선에서는 비키니 수영복 심사를 통과해야 한단다. 뉴스를 같이 보던 여자친구는 농담으로 “저 정도 몸매면 나도 참가할 수 있겠네. 다음에 기회 있음 한번 신청해볼까?” 하며 은근슬쩍 나를 떠본다. 근데 그 말하는 눈빛이 진지하고 전혀 농담처럼만은 느껴지지 않는 건 지나친 자격지심일까?
난 정말 이미 인생을 다 살아버린 것 같다.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분노는 어디서 솟아나는 것일까. 내 이름이 펀누(분노)여서일까.
베이징(중국)=박현숙 중국 통신원 phschin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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