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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위기의 유로존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의 연쇄 구제금융 신청… 유로존 재정위기 타개할 거시 불균형, 경쟁력 격차 해소 방안 마련해야
등록 2011-06-29 16:10 수정 2020-05-03 04:26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 본부 앞에서 6월22일 한 남성이 “유로가 무너진다”고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 AFP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 본부 앞에서 6월22일 한 남성이 “유로가 무너진다”고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 AFP

지난해 5월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의 구제금융 지원으로 봉합될 듯 보였던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유로존을 넘어 이제는 전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고 나서 6개월 뒤에는 ‘켈틱 타이거’(Celtic Tiger)로 칭송받던 아일랜드가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지난 4월에는 장기간 저성장을 거듭한 포르투갈이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스페인으로 위기가 전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다소 진정세로 접어듦과 동시에, 이제는 그리스에 대한 채무 재조정설이 부각되기 시작해 유로존의 재정위기는 제2의 라운드로 접어드는 듯하다.

유로화 사용, 환율 조기경보 상실

EU의 운영 구조상 재정정책은 개별 국가의 소관이므로, 재정위기는 개별 회원국의 경제운영 미숙에 기인한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단적인 예로, 그리스는 지난 정부의 통계 조작과 함께 규모가 큰 지하경제로 인한 세수 기반 취약, 공공부문의 과도한 지출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유로존이 갖고 있는 근본적 문제점이 오늘날 재정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사실 유로화 사용은 유럽 국가들에 국경 간 거래 비용을 감소시켰다. 역내 교역 비중이 총교역의 60%를 넘는 유럽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각국 화폐 간 안정적인 환율을 선호해왔다. 유로화 도입은 안정적 무역환경을 조성하고 서로 다른 화폐라는 교역 장벽을 제거해 역내 단일시장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 특히 남유럽 국가들은 과거 환율 위기와 높은 인플레이션을 겪은 바 있어, 유로화가 가져온 환위험 비용의 감소와 저금리 자금 조달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출범 뒤 10년 동안 유로화 사용은 역내 경제활동을 활성화하고 금융안정을 가져와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유로화 사용의 문제점도 발생했는데, 환율이 갖는 조기경보 역할의 상실이 대표적이다. 개별 화폐를 사용할 경우 국가 채무, 경상수지 적자 증가와 같은 대외 불균형 확대는 통화가치 하락과 금리 상승을 동반하게 되며, 경제주체들의 행동에 반영돼 대외 불균형이 자동적으로 교정된다. 그러나 유로화를 사용함으로써 환율이 갖는 조기경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게 돼, 경제정책의 거버넌스가 취약한 남유럽 국가들이 지속적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갖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유로화 도입 이후 독일·네덜란드·오스트리아는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반면, 스페인·그리스·포르투갈은 GDP의 10%에 가까운 경상수지 적자를 지속적으로 기록해왔다. 여기에는 2003년 이후 지속된 유로화의 강세와 이로 인한 수출경쟁력의 악화에도 원인이 있으나, 지난 10년간 각국의 생산성 격차가 오히려 증가해 일부 국가들의 실질실효환율이 증가한 점에 기인한다. 남유럽 국가들은 만성적 경상수지 적자로 부족한 재원을 해외 차입을 통해 충당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어, 정부 부채와 민간 부채가 증가하는 현상이 반복된 것이다.

또 남유럽 국가들은 유로화 사용 이후 독일과 같은 안정적 경제에 편승해 낮은 인플레이션과 함께, 자국의 기초 여건을 넘어서는 저금리 자금 조달이 가능해졌다. 저금리 자금이 제조업 등 생산성 향상이 기대되는 산업에 투자될 경우, 경제성장과 경제의 선진화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저금리 자금은 부동산 부문으로 흘러 들어가 거품경제의 원인이 됐는데, 특히 스페인과 아일랜드에서 이런 현상이 심했다. 결국 유로화 사용은 많은 혜택 이면에 지속적인 무역수지 적자와 저금리로 인한 과대 채무 현상을 유발하는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EU 차원의 재정 감독 강화 노력

자료 : <슈피겔>

자료 : <슈피겔>

현재로서는 그리스에 대한 추가 지원과 채무 재조정 논의에 모든 관심이 집중돼 있으나, 장기적으로 유로화 체제가 살아남으려면 각국 간 거시 불균형, 특히 경쟁력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유로존 개혁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첫째는 재정 및 경상수지 적자 등 거시적 불균형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려는 노력이다. 현재 진행 중인 ‘유럽 학기’(European Semester)의 도입은 EU 차원의 재정 감독을 강화하려는 대표적인 조처다. EU는 1997년 이후 성장·안정협약(SGP)을 통해 회원국에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 수준을 GDP 대비 각각 3%와 60% 이내로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SGP는 회원국 공공재정에 대한 사후적 감독에 그쳐 실효성이 없는 탓에 현재의 재정위기를 방지하는 데 불충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올해 초부터 도입된 유럽 학기는 회원국 정부의 예산을 사전에 상호 평가함으로써 재정 감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또 EU가 ‘과대불균형절차’라는 제도를 신설해 회원국 간에 나타나는 거시적 불균형과 경쟁력 격차를 방지할 것임을 밝히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통화 통합의 잠재적 위험요소인 회원국 간 대외 불균형 격차 문제가 공식적으로 언급되면서, 이에 대한 교정 방안이 공론화된 것은 향후 경제 거버넌스의 큰 변화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민간 부문에서 발생하는 대외 불균형의 교정 방안, 교정 가능성, 제재 방안의 집행 가능성과 실효성 등은 아직 의문으로 남아 있다. 특히 단일통화 사용으로 각 회원국은 생산성 증가나 임금 삭감 등 생산비 절감을 통해서만 대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구조조정의 피해를 국내 경제주체가 다 떠안을 수밖에 없는데, 이 문제는 유로존의 장기 존립에 의문을 제기하는 지속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둘째는 재정위기 대응 체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대표적 예가 재정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기금의 규모를 증설하는 것이다. 각국의 출자금 증액을 전제함으로써 재정 통합을 강화하는 것과 같은 선상에 있다. 이런 논의 또한 공동의 통화기관을 통해 회원국의 재정정책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재정 통합의 주장과 같은 범주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재정 규율이 없다면 재정 통합은 있을 수 없다”는 독일의 태도에서 알 수 있듯이, 재정 통합에는 독일 정치권이 유보적 견해를 표명하고 비유로 회원국인 영국이 맞서고 있어 앞으로 회원국 사이에 첨예한 이견 조정 절차가 있을 것이다.

컵 작아 물 넘치는 주기적 현상

지금까지 유럽 통합의 역사를 살펴보면, 10~15년 주기로 통합과 관련된 위기가 찾아왔음을 알 수 있다. 유럽 통합의 제도적 틀을 ‘컵’으로 보고 실제적 통합의 결과물을 ‘물’이라고 본다면, 컵이 작아서 물이 넘치는 현상이 주기적으로 발생해온 것이다. 이런 위기 때마다 유럽 국가들은 작은 컵을 큰 컵으로 교체하는, 다시 말해 통합을 한층 심화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1970년대 유럽통화제도의 탄생과 1980년대 유럽 단일시장의 추진, 1990년대 유로화 도입, 2000년대 중·동구 유럽으로의 확대가 대표적인 예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표현이 회자되듯이, 이번 유로존의 재정위기는 지금까지의 위기와는 양상이 사뭇 다르게 보인다. 앞으로 통합이 더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할지, 축소되는 역진 현상이 발생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 추진해온 통화 통합을 점검하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강유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유럽팀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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