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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다 더 미친 대학 등록금은 없다 ③ 중국

등록 2011-06-22 15:15 수정 2020-05-03 04:26

③ 중국 - ‘사회주의적’ 대학은 없다

1998년 ‘대학의 시장화’ 뒤 등록금 대폭 오른 중국…
학업을 포기하거나 학자금 대출 상환 부담에 허덕

베이징(중국)=박현숙 통신원

21살 리만은 중국 후난성에 있는 국립 후난민족대학 3학년생이다. 또래 친구들은 한창 외모에 멋부리며 황금 같은 청춘을 보내고 있지만, 그는 그런 것들을 먼 미래의 일로 ‘계획만’ 하고 있다. 지금 눈앞 청춘의 길이 멀고 가파르기 때문이다. 여행학이 전공인 그의 꿈은 졸업 뒤 번듯한 여행사에 취직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는 방학이나 수업이 없는 주말 등을 이용해 여행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용돈이라도 벌어 부모님 부담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다행히 오빠가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 한숨 돌리긴 했지만, 2년 정도 남은 자신의 대학 학비와 중학교 2학년인 여동생의 등록금을 대려면 부모님의 허리는 앞으로도 몇 번은 더 휘어져야 한다.

매년 7~9월 등록금 자살 기간
리만(중국 후난성 국립후난민족대학 3학년). 박현숙 통신원 제공

리만(중국 후난성 국립후난민족대학 3학년). 박현숙 통신원 제공

리만의 1년 학비는 4800위안(약 80만원)이다. 한국 대학의 등록금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지만 리만네 가족처럼 오빠·여동생 등 줄줄이 등록금을 대야 할 형편이라면 만만찮은 부담이다. 특히 어머니가 얼마 전 실직한 탓에 전기공인 아버지의 외벌이 수입만으로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처지라 자식들의 학비는 그야말로 천근만근 같은 무게다. 이런 가정환경 때문에 리만은 대학 입학 뒤부터 줄곧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으려고 학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리만네 학과는 전체 학생의 30% 정도가 성적에 따라 장학금을 받는다. 등록금 부담이 큰 중하층 빈곤 가정을 위해 지역마다 다르긴 하지만 낮은 이자로 학자금 대출을 해준다. 졸업 전 대출 이자는 해당 지역 정부가 부담하고 졸업 뒤 대출 이자는 본인이 부담한다. 하지만 이자를 갚지 않거나 원금조차 회수되지 않는 상황이 많다는 이유를 들어, 재학 중 이자 부담을 본인에게 지우거나 대출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때문에 리만은 학자금 대출이 오히려 족쇄로 작용할까봐 아르바이트와 장학금 등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에요. 전공이 여행학이라 짬짬이 가이드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지만 다른 친구들 중에는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거나 방학 내내 상점 등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학교를 그만두는 친구도 많아요. 드물지만 자살하는 경우도 있고요. 매년 7~9월에 등록금 때문에 학생이 많아 이 기간을 등록금 자살 기간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중국 정부는 1999년부터 대학 입학 정원 확대 정책을 실시했다. 정원 확대 정책 전까지 대학 진학률은 해당 적령기 청소년의 약 8~9%여서 대학생이라고 하면 거의 ‘금배지’를 단 수준이었다. 하지만 정원 확대 이후 진학률이 20% 이상을 넘어서서 더 이상 대학생이 대접받는 사회 분위기는 아니다. 그 뒤 10년 동안 중국 대학의 학비도 거의 10배 이상 올랐다. 그전까지만 해도 대학 등록금은 공짜나 다를 바 없었다. 졸업 뒤 직장도 정부에서 모두 일률적으로 안배해줘서 구직을 걱정하는 일도 없었다.

예체능 계열 1년 200만원이나
자료 : CIA

자료 : CIA

이 모든 것은 1998년 이후 이른바 교육개혁에 따라 대학 문제를 ‘시장의 손’에 맡긴 뒤부터 달라졌다. 직장도 직접 구해야 했고, 등록금도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했다. 정원 확대 정책에 따라 부족한 기숙사 시설과 교원 확충 등 기초설비 확대 비용 등을 이유로 매년 등록금을 대폭 인상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중국 대학 대부분이 국립대학의 성격이라 등록금이 한국보다 저렴하지만, 각 지역마다 2배 이상 등록금 차이가 나는 비싼 사립대학이 늘어나고 있고 예체능 계열은 등록금이 한국 돈으로 1년에 200만원을 넘어선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 더 이상 ‘사회주의적’ 대학은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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