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의 태양신을 백인이 살해했다. 400년 뒤 태양의 나라(일장기) 일본에서 후지모리가 페루로 건너와 대통령이 되었다. 후지모리는 신이 페루에 내린 선물이다.’
잉카 문명의 후예인 페루 원주민들은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재임 기간 1990년 7월~2000년 11월)을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다. 일본계 이민 2세가 어떻게 낯선 페루에서 대통령에 당선됐을까라는 궁금증을 풀 실마리다. 지금 페루에서 다시 후지모리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그의 딸 게이코 후지모리(36) 상원의원이다. 게이코 후지모리는 6월5일 대선 결선투표를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근소한 차이지만 좌파 오얀타 우말라(48) 후보를 앞서고 있다. 5월 여론조사에서 그는 41% 대 39%, 40.6% 대 37.9% 등을 기록했다. 페루인들은 게이코 후지모리를 또 한 명의 태양신 부활로 여기는 것일까?
‘가난한 자의 혁명’ 신화한국의 지하철 등에서 안데스 지역 전통의상을 입고 공연하는 모습이 가끔 보인다. 전통악기 삼포냐를 불며 등 전래민요를 연주한다. 짙은 황색 피부의 그들이 전형적인 페루인이다. 하지만 페루의 정치·경제를 장악한 이들은 전체 인구의 45%에 이르는 원주민도, 37%의 메스티소(백인과 원주민 혼혈)도 아니다. 15%의 백인이다. 일본계 등 소수민족은 중국계와 흑인 등을 다 합쳐 3%밖에 안 된다.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그렇듯, 페루에서도 원주민은 스페인 식민 정복 이래 오랫동안 소외받았다. 페루는 2002~2010년 평균 6.5%의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라틴아메리카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혜택은 수도 리마와 태평양 연안의 중산층 이상에게만 돌아갔다. 페루의 피지배 계층인 안데스와 아마존 지역의 원주민은 그 혜택에서 제외됐다. 페루의 원주민 비율은 중남미에서 볼리비아(55%) 다음으로 높다. 빈곤층은 줄어들었다지만 아직도 34%에 이른다. 절대다수는 원주민이다. 5가구 가운데 1가구는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다. 어린이는 20%가 영양실조에 시달린다. 수도 리마 주변에는 범죄가 들끓는 슬럼가가 넘친다. 2009년 6월 벌어진 사건은 사회 모순을 잘 보여준다. 아마존 지역인 바구아주에서 석유만 채굴하고 자신들은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했다며 원주민들의 항의시위가 벌어져 30여 명이 숨진 사건이다. 이들은 “선조가 물려준 땅과 자원만 빼앗기고 오랫동안 2등 국민 취급을 받았다”고 반발했다. 이런 뿌리 깊은 인종 갈등과 빈부·지역 격차는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대통령에 당선된 사회적 배경이다. 1990년 대선에서 우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전형적 백인 엘리트답게 전용 비행기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대선 유세를 벌였다. 반면에 후지모리는 낡은 트럭과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당신 같은 대통령’을 내걸어 소외 계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후지모리가 원주민과 같은 피부색을 가졌다는 점이 큰 무기였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에게 따라붙는 이름표다. 자식이 아비의 꼬리표를 떼기 어렵기는 게이코 후지모리도 마찬가지다.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한국의 많은 노년층이 박 전 대표를 차기 대선 주자로 지지한다. 게이코 후지모리도 마찬가지다. 빈곤층은 아버지 후지모리 시절을 그리워하며 딸 후지모리를 지지하고 있다. 아버지 후지모리를 되짚어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어떤 지도자였나? 농대 학장 출신의 후지모리는 ‘변화 90’(Cambio 90)당을 만들어 ‘정직·근면·기술’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가난한 자의 혁명’을 외치며 백인 중심의 기득권 세력에 도전했다. 그리고 연 7천%에 이르는 인플레이션을 진정시켰고, ‘빛나는 길’ ‘투팍 아마루’ 등 반정부 무장게릴라를 소탕해 고질적인 치안 불안을 안정시켰다. -4.2%였던 경제성장률은 경제개방 등의 전략을 통해 최대 12.9%(1994년)로 끌어올렸다. 여기까지가 많은 논란 속에서도 열렬한 아버지 후지모리 지지자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하지만 후지모리는 또 하나의 얼굴이 있다. 이른바 ‘신독재’다. 그는 1992년 4월5일 친위 쿠데타를 성공시킨 뒤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 기능을 정지시켰다. 대법원과 사법부도 해체하고 제왕적 대통령 1인 통치 구조를 구축했다. 1995년 4월 재선된 후지모리는 3선 출마 위헌 및 부정선거 논란 속에 2000년 4월 51.2%를 얻어 3선에 성공했다. 오래가지는 못했다. 반정부 시위가 두 달 넘게 이어지던 2000년 9월 한 비디오테이프가 방송됐다. 최측근인 국가정보국장이 야당 의원을 매수하려고 뇌물을 주는 내용이었다. 후지모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그는 같은 해 11월13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브루나이로 출국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사임장을 팩스로 보냈다. 이후 일본 등에서 도피 생활을 하던 후지모리는 2007년 9월 페루로 송환됐고, 2010년 1월 부패와 인권침해 혐의로 25년형이 확정돼 결국 수감됐다. 아버지 후지모리 정부의 장관 8명과 대법원장 등 고위 관료 1500명이 부패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국제투명성기구는 아버지 후지모리를 역대 7번째로 부패한 지도자로 꼽았다. 후지모리는 6억달러를 빼돌린 것으로 추정된다.
게이코 후지모리는 “나는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아니다. 자식은 부모의 책임을 넘겨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딸 후지모리의 선거캠프를 지휘하는 하이메 요시야마는 아버지 후지모리가 1992년 친위쿠데타를 일으킨 뒤 헌법을 새로 쓴 장본인이다. 또 아버지 후지모리 정부에서 보건장관을 지낸 알레한드로 아귀나 역시 딸 후지모리의 선거 참모로 활동하고 있다. 아버지가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땅에 묻힌 것도 아니다. 최근에는 딸 후지모리의 유세 차량이 아버지 후지모리가 수감된 곳을 출입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페루의 최고 대통령”이라고 평가해왔다. 사실 아버지가 이혼한 뒤 19살 때인 1994년부터 2000년까지 영부인 생활을 한 게이코 후지모리에게 아버지는 최대 정치적 자산이다. 2007년 5월 조사에서 아버지 후지모리의 지지도는 49.5%를 기록할 만큼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영부인 시절 어린이 심장병 재단 등을 이끌었던 게이코 후지모리는 2006년 의회에 진출했지만 의회 법안 발의는 6건밖에 안 된다.
공약도 아버지와 닮았다. 미국 보스턴대학 경영학과 출신의 그는 최소 7%의 경제성장과 범죄 추방 및 빈곤 문제 해결 등을 내걸고, 학생들에게 점심과 교복을 제공하겠다는 등 물품 공세가 아버지 시절 공약과 비슷하다. 성실하고 단호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도 아버지와 비슷하다. 다비드 술몬트 페루 가톨릭대학 교수는 <afp>과의 인터뷰에서 “게이코 후지모리가 페루의 현 상황을 유지할 가장 안전한 후보로 보는 거대 언론그룹과 경제집단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손잡았다”고 중·상류층의 지지 배경을 분석했다. 이것이 4월10일 대선 1차 투표에서 게이코 후지모리가 23.5%로 2위를 하고도 31.69%로 1위를 차지했던 우말라에 역전극을 펼치는 배경이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전문 싱크탱크인 ‘미주간 대화’(Inter-American Dialogue)의 마이클 시프터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아버지 후지모리 정부는 페루에 트라우마를 남기고 끝났고 그것을 되살리는 데 대한 상당한 저항이 있다”고 말했다. 딸 후지모리는 아버지를 사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당선 뒤 사면하고 아버지 후지모리가 배후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의심은 끊이지 않는다. 딸 후지모리의 최대 걸림돌은 자신의 최대 자산이기도 한 아버지의 그림자를 어떻게 벗어나느냐에 달렸다는 얘기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과 꼭 빼닮은 대목이다.
우말라를 괴롭히는 ‘차베스 효과’
후지모리의 선전에는 육군 중령 출신인 좌파 성향의 우말라 후보에 대한 중산층 이상의 두려움도 작용한다. 이른바 ‘차베스 효과’다. ‘부의 공정한 분배’를 내건 우말라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처럼 급진적 사회주의 모델을 추구할 것이라는 우려다. 광산업 국유화와 증세 등을 두려워하고 있다. 우말라는 2000년 후지모리 대통령을 반대하는 쿠데타 시도를 이끈 바 있어, 군인 출신으로 실패한 쿠데타를 주도한 점이 차베스와 똑같다. 2006년 첫 대선 도전 때 차베스가 지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중산층 이상은 그를 차베스와 연결지어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의 동생이 2005년 알레한드로 톨레도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반란을 이끈 혐의로 25년형을 선고받고 재판이 진행 중이고, 그의 아버지가 변호를 맡고 있는 점도 우말라 반대파에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2006년 대선에서 과격한 이미지 탓 등으로 알란 가르시아 대통령에게 져 2위에 그친 우말라는 이 때문에 차베스와 거리를 두고 있다. 우말라는 “페루도 변했고 나도 변했다”며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물가 안정과 중앙은행 독립, 자유무역협정(FTA) 준수 등을 내세우는 배경이다. 하지만 게이코 후지모리는 우말라를 “양의 탈을 쓴 늑대”라며 유권자의 불안감을 자극하고 있다.
우파 게이코 후지모리와 좌파 우말라의 대결은 톨레도 전 대통령,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총리와 같은 기술관료형 중도파가 쪼개지며 빚어졌다. 이를 두고 소설가 바르가스 요사는 “말기 암과 에이즈 사이의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어느 경우든 최악의 선택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두 후보는 아버지 후지모리식 개발독재형 모델도 차베스식 급진 권위주의 모델도 아닌,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브라질식 모델을 내세우고 있다. 우말라 캠프는 “브라질과 베네수엘라를 보면 브라질이 훨씬 더 성공적이다. 우리는 외국인 투자자를 몰아내기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미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게이코 후지모리 진영도 룰라를 모델로 제시한다. 이런 상황을 놓고 는 5월16일 “카리스마적 지도력과 민주주의를 존중하면서도 시장경제 성장과 빈곤층을 위한 사회개혁 등 라틴아메리카에서 상호 배타적이라고 간주됐던 것을 하나로 묶는 게 가능함을 룰라가 보여줬기 때문이다”라고 풀이했다. 사실 페루 의회는 대통령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기 어려운 구조다. 우말라의 ‘가나 페루’ 연합은 130석 가운데 47석, 후지모리의 ‘푸에르자 2011’은 37석을 갖고 있다. 중도파가 나머지를 갖고 있다. 후지모리나 우말라 모두 중도세력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급격한 변화는 어렵다.
페루의 첫 여성 대통령이자, 아시아계 두 번째 대통령에 바짝 다가선 게이코 후지모리. 그는 룰라의 브라질 모델을 따르며 페루인에게 진정한 태양의 신이 될까? 6월5일 결선투표에서 당선되느냐가 첫 관문이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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