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초 프랑스 일간 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프랑스 정가를 온통 뒤흔들어 놓고 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당대표가 내년 4월 실시될 대선 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우파 집권여당의 니콜라 사르코지 현 대통령보다 더 많은 지지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좌·우파 진영의 유력한 대선 후보군과의 3자 가상대결에서 르펜이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인종주의 기반으로 한 전형적 극우정당
마린 르펜은 2012년 대선에서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사회당(PS) 소속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사르코지 현 대통령과의 3자 가상대결에서 24%:23%:21%로 1위를 차지했다. 이 결과를 두고 사회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진영과 대중운동연합(UMP)을 중심으로 한 우파 진영 모두 충격에 휩싸였지만, 양쪽 모두 이 조사가 온라인 여론조사라는 이유로 의미를 평가절하했다.
그로부터 몇 주 뒤 실시된 프랑스 지방의회 선거 결과는 이런 여론 변화가 현실임을 보여줬다. 지난 3월20일 실시된 지방의회 선거 1차 투표에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전선이 15%를 얻어, 25%를 득표한 사회당과 17%를 얻은 집권여당인 대중운동연합을 바짝 추격한 것이다. 지난 3월27일 실시된 지방의회 선거 2차 투표에서는 이보다 낮은 12%를 얻었지만,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부상을 여론조사가 아닌 선거에서도 실제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국민전선은 1972년 마린 르펜 현 당대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이 창당한 프랑스의 대표적 극우정당이다. 올해 초 당권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고 2012년 대선 출마까지 공식 선언한 마린 르펜은, 국민전선의 정체성은 좌파도 우파도 아니라며 오직 ‘국가와 민족에 대한 애정’이 자신들의 정체성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다수 정치학자는, 국민전선이 주장하는 내용에 근거를 두고 볼 때 이 정당이 인종주의에 기반을 둔 배타적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를 내세우는 전형적 극우정당이라는 데 의견을 함께한다. 반이민, 반유럽통합 주장이 국민전선의 대표적 정책이다.
지난 40여 년간 국민전선을 이끈 장마리 르펜의 여러 발언은 이 정당의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모든 인종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며 공공연하게 인종 간 우열을 주장했고, “나치의 가스실은 사소한 일에 불과하다”며 나치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야스쿠니신사는 파리 개선문의 무명용사의 묘와 다르지 않다”며 일본 극우 인사들과 함께 신사참배를 했다. 그는 그동안 문제성 발언들 탓에 20여 개 송사에 얽혀 수십 차례 법정에 섰다.
그런데 지난 1월 마린 르펜이 당대표에 취임한 뒤 국민전선의 부정적 이미지가 프랑스 국민 사이에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화법은 아버지 장마리 르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제돼 있고, 덜 직설적이어서 거부감을 덜었다. 그는 가족 담론과 여성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 감성을 자극한다. 이를 두고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인간의 얼굴을 한 극우의 탈악마화”라고 표현했다.
집권여당에 대한 실망이 국민전선 지지 불러국민전선이 급부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마린 르펜의 새로운 대중전략에 있지만, 사르코지 대통령이 기여한 바도 적지 않다. 사르코지는 국민 다수가 반대한 연금 개혁안을 무리하게 추진해 지지율이 하락하며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국가 정체성’ 논란에 불을 붙이며 우파 지지층의 결속을 도모하려 했다. 그런데 오히려 우파 여당의 일부 지지층이 국가 정체성 논란 이후 더 색깔이 확실한 국민전선 지지 쪽으로 옮아가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국민전선으로의 동요 현상은 이례적으로 좌파 쪽에서도 일부 감지되고 있다. 지난 3월 지방선거에서 프랑스 내 좌파 성향 최대 노총인 노동총동맹(CGT)의 지역 간부인 파비앙 앵겔만이 국민전선 후보로 전격 출마 선언을 한 것이다. 그의 선택을 두고 노동총동맹 내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었으나, 그는 “국민전선은 인종주의적·반이민적이지 않다”며 “노동총동맹과 국민전선이 충분히 함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지난 지방선거에서 극좌 성향의 노동운동가 몇 명이 국민전선 후보로 출마했다.
일각에서는 국민전선의 부상에 대한 세간의 우려가 과장됐다고 지적한다. 지난 3월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국민전선의 득표율만 보면 약진한 게 사실이지만, 의석수로 따지면 지방의회 전체 2026개 의석 가운데 획득한 의석은 불과 2석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당 820석, 대중운동연합 369석에 비하면 미미하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때 최고 득표자 2명을 두고 2차 결선 투표를 치르는데, 국민전선 후보의 당선을 막으려고 좌파 및 우파 지지자들이 암묵적으로 반국민전선 연대의 전략적 투표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극우정당의 부상을 경계하는 좌파 및 우파 지지자들의 전략적 투표 행위가 1년 뒤로 닥친 차기 대선에서도 가능할 것이냐는 점이다. 실제 2002년 대선에서는 2차 결선 투표에 우파의 자크 시라크와 극우파의 장마리 르펜이 진출하고 좌파의 리오넬 조스팽이 탈락하자, 좌파 지지자들은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극우파의 집권을 막으려고 우파인 자크 시라크에게 표를 모아주었다. 2012년 대선에서 우파 집권여당 후보의 지지율이 지금처럼 저조할 경우, 2차 결선 투표에서 좌파 후보와 극우파 후보 간 일대일 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이때 우파 진영을 지지한 유권자들의 향배를 좀처럼 가늠할 수 없다.
반국민전선 연대 전략적 투표 성공할까실제로 지난 3월 지방선거 2차 결선 투표에서 극우정당에 맞서는 반국민전선 연대의 공식화는 “좌파보다는 차라리 극우가 낫다”라는 일부 우파 지지자들에 의해 성사되지 못했다. 선거 전문가인 파스칼 페리노는 “국민전선 후보가 대선 입후보를 하는 데 필요한 지방 선출직 공직자 500여 명의 추천을 받는 것만 성공한다면, 2012년 대선에서 마린 르펜은 2002년 대선의 장마리 르펜보다 훨씬 더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때맞춰 지난 4월17일 핀란드 총선에서 극우정당인 ‘진짜 핀란드인’이 급부상해 제3당으로 약진했다는 소식은 국민전선 마린 르펜의 ‘위험한 꿈’에 한층 힘을 실어주고 있다.
파리(프랑스)=윤석준 통신원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유럽학연구소 박사과정 연구원 semi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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