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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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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되지 않는 일상의 행복

일본 대지진 참사 이와테현의 복구 현장…
생활용품과 샤위시설 부족 뒤로 여전한 상처와 공포
등록 2011-04-14 14:56 수정 2020-05-03 04:26
일본 자위대원들이 4월6일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으 지진 해일 피해 현장에서 희생자들을 찾고 있다. 연합AP

일본 자위대원들이 4월6일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으 지진 해일 피해 현장에서 희생자들을 찾고 있다. 연합AP

“자네 살아 있었어?!” “정말 반갑구먼! 살아 있었다니!”

4월2일에도 실종 가족을 찾는 단서가 될 물건을 모아놓은 표류물 보관소 앞에서는 감격스런 상봉이 이어졌다. 일본어를 모두 알아듣진 못했지만 보관소 앞에 서 있으면 이렇게 대지진 뒤 생사를 몰랐던 사람들의 만남이 종종 목격된다. 서로 부둥켜안는 사람도 있고 손을 잡고 한참을 흔들어 절박하고 반가운 감정을 전한다.

잎채소를 먹지 않는 사람들

제한 급유는 아직도 이뤄지고 있다. 오가다 보면 빨간 기름통을 들고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동차 기름은 그렇다 치고 당장 난방시설에 사용할 기름이 없어 추위에 떨고 있지만 크게 투덜대진 않는다. “지금 모두 힘든데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담담히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제한 급유는 도로를 지나며 여러 번 볼 수 있는데 도로가 차츰 복구되며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도로는 3월21일 현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와 비교하면 빠른 속도로 정비되고 있다. 해안가와 가까운 곳은 아직 폐차장처럼 차체들이 쌓여 있지만, 시내에는 쓰나미에 휩쓸려 길을 막았던 자동차와 건물 잔해 등을 치워내 이동이 자유로울 만큼 도로가 뚫리고 있다.

피해 지역 중 외부의 손길이 닿지 못한 곳이 많다.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가 긴급구호 활동을 하고 있는 이와테현은 아직 거리가 깜깜하고 상점은 문을 닫았고 진열대는 텅텅 비어 있다.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물질 누출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대피소 방송에서는 깨끗이 씻으면 채소는 먹어도 되고 물도 문제가 없다지만 사람들은 불안해 보였다.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고 있고, 잎채소가 들어간 음식은 먹으려 하지 않았다.

대지진 진원지에서 약 900km 떨어진 이와테현 가마이시시의 구리바야시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 강당에 마련된 대피소. 툭하면 발생하는 여진으로 공포와 추위를 한꺼번에 느껴야 하는 350여명의 이재민이 수용돼 있다. 대부분 연약한 노인과 아이들이고, 젊은이들은 낮에는 자리를 비운다. 참 무섭게도 조용하고 싸늘한 긴장감이 도는 대피소 한켠, 털모자를 눌러쓴 노인 한 명이 앉은 채로 얼굴을 담요에 묻고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잠을 자려면 눕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노인은 잠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미동도 없었다. 한참 동안 노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치 삶을 포기한, 아니 삶이 끝나서 죽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노인은 분명 앉은 채로 멍하니 있다가 담요에 얼굴을 묻어버렸으리라. 대피소에서 빽빽하게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이들의 생명과 직결된 담요와 식료품이 빈틈없이 쌓여 있다. 무엇보다 물통을 확보해 하나씩 가방 속에 넣어놓느라 바쁜 노인들의 손놀림이 눈에 띈다. “이렇게 확보해놓지 않으면 언제 또 마실 물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임시 주택 4월 중순께 입주 예정

일본 이와테현 가마이시시의 구리바야시 소학교 강당에 마련된 대피소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굿네이버스 제공

일본 이와테현 가마이시시의 구리바야시 소학교 강당에 마련된 대피소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굿네이버스 제공

대피소에 처음 갔을 때부터 며칠째 씻지도 못한 채 속옷과 양말을 그대로 쓰고 있는 사람을 수없이 많이 만났다. 대피소에 있는 대부분의 여성은 생리대 등 위생용품을 반겼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어둡다며 손전등을 받아가는 사람도 많았다. 대피소 한쪽에 설치된 TV에서 한국의 와 같은 어린이 프로그램을 멍하니 보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띈다. 아이들에게 다가가 스케치북을 꺼내놓았다. 아이들은 쓰나미로 문구를 몽땅 잃어버리고 컴컴한 이곳에서 꼼짝을 못하고 있던 터라 우리가 건네준 문구가 무척이나 반가운 듯 했다. 스케치북과 크레용을 풀어놓자 대피소에 있는 아이들이 하나둘 모였다. 아이들이 오랜만에 크레용을 손에 쥐었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 대피소 한켠에 어느새 작은 교실이 만들어졌다.

대피소에는 샤워시설이 없어 대지진 이후 거의 한 달이 되도록 피해 지역 주민들이 제대로 씻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게 샤워시설과 안전하게 거주할 임시주택이 절실해 보였다. 우리 긴급구호팀은 샤워부스를 제작해서 공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4월1일 향후 긴급구호 활동 방향에 대한 회의에서, 재난으로 충격에 잠겼을 아이들을 대상으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 치료를 진행하기로 했다. 우리는 속옷, 양말, 가스버너와 손세정제, 마스크, 칫솔 등 2t 트럭을 가득 채웠던 물품을 모두 지원했다. 물품 배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들에겐 도움의 손길이 여전히 필요하며 이런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갈 것 같았다. 집을 잃고 임시 거주지에서 생활해야 할 사람들의 얼굴에는 말할 수 없는 힘겨움과 생존을 위한 치열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 달 가까이 대피소에 머물고 있는 이재민들은 임시주택이 지어져야 대피소를 벗어날 수 있다. 임시주택은 이와테 지역 일부에서 건설이 시작되었고 4월 중순께면 이재민 입주가 시작된다.

3월 말 야마다 지역의 표류물 보관소를 찾았을 때다. 자원봉사자 한 명이 쪼그리고 앉아 진흙이 잔뜩 묻은 앨범을 일일이 행주로 닦아내고 있었다. 파도가 휩쓸고 간 자리에 덩그러니 남은 다이어리와 앨범에 묻은 흙을 닦아내며 손으로 만지고 유심히 쳐다보고 잘 진열했다. 남아 있는 물건들을 보니 이 자리에서 3월11일 지진·해일 당시 벌어졌을 광경이 상상이 되었다. 저 멀리 보이는, 이제는 형체가 거의 남지 않은 집 문 밖으로 허겁지겁 달려나갔을 남자 혹은 여자와 아이들…. 그들이 아늑한 그 집에서 누렸을 여유와 행복이 찰나에 사라져버렸고 가족과 친구를 잃었다. 우리가 처음 표류물 보관소를 방문한 3월21일, 야마다 현장책임자는 그제야 휴대전화가 일부 복구됐고 그동안은 외부와 연락도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쓰나미 직후 이재민들이 잃어버린 가족의 생사를 알기 위해 임시로 설치된 공동 전화를 쓰려고 몰려들었다고 전했다. 그래도 이 지역은 자위대의 도움을 받아 그동안 안전하게 지낼 수 있었고, 이제 도로도 어느 정도 복구되고 외부의 손길이 차츰 들어오고 있으니 희망이 조금씩 보인다고 했다.

아직도 가시지 않은 지진의 공포

하지만 아직 지진의 공포는 가시지 않았다. 스르륵 잠이 들려고 하는데 갑자기 ‘우당탕’ 모든 것이 부서질 것만 같은 강한 느낌에 눈을 번쩍 떴다. 건물이 당장 무너져내릴 것 같은 공포가 순식간에 몰려왔다. 잠옷을 입은 채 필사적으로 복도로 뛰어나왔다. 아차 하는 마음에 다시 방으로 들어가 긴급 상황 때 쓰려고 가져온 헬멧을 얼른 꺼내 쓰고 밖으로 나왔다. 내가 있는 곳은 9층. 뛰어내리면 생명이 위험하고 계단으로 내려가도 중간에 건물이 폭삭 주저앉을 것만 같아 짧은 시간이나마 죽음을 넘나드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다행히 지진은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있고 나서 지진의 강도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스마트폰 앱을 보니 규모 6.5 이상을 왔다 갔다 하는 큰 지진이었다. 3월29일이었는데, 구호활동을 하려고 3월21일 일본에 도착한 이후 이런 강도의 지진을 두 번째 겪었다.

4월2일 표류물 보관소에 들렀다가 이와테현 기타카미 지역에 있는 구호활동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는 길에 일본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었다. 아침을 칼로리바로 떼우고 점심도 거른 채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어느덧 오후 5시가 되었다. 긴급구호요원들이 모두 식당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아까부터 가만히 지켜보던 식당 주인 아주머니가 손을 올려 “간바레!”(파이팅!)라고 외쳤다. 우리가 자신들을 도우러 온 구호팀인 것을 알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단다. 마음이 울컥해지면 이들이 긴급구호를 통해 물질적 도움도 받지만 마음의 위로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정부는 지원을 거절하고 일본인들은 침착한 듯 보여 이제 도움이 필요 없어 보인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피해 현장의 모습은 도울 필요가 ‘있다’ ‘없다’를 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진해일의 재앙을 맞은 이재민들은 하루하루 생존을 위한 전쟁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계속되는 여진 속에서 쓰나미가 들이닥친 그날의 공포를 느끼며 날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한-일 관계의 역사도 중요하고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망언에 분노를 감출 수 없지만,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그저 ‘사람들’이었다.

* 일본 대지진 피해자를 도우려면 전화 (국번없이)1599-0300, 문자후원 #8004(한 통에 5천원), 계좌번호 우리은행 1005-301-611036(굿네이버스 인터내셔날)을 활용하면 된다.

이와테현(일본)=노장우 굿네이버스 긴급구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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