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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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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열대 질환의 탄식

탄자니아 므완자 지역 주민 호흡 끊는 주혈흡충 합병증…

식수 개선·치료제 제공된다면 완전 예방 가능해
등록 2011-03-31 16:59 수정 2020-05-03 04:26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북서쪽 므완자 지역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빅토리아 호수가 자리하고 있다. 아름다워만 보이는 빅토리아 호수는 이 지역 1200만 명의 생명수 역할을 하지만, 치명적인 장기 손상을 가져와 생명을 위협하는 기생충을 옮기는 또 다른 얼굴을 가졌다.

지난 3월13일 탄자니아 므완자 지역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 굿네이버스가 설치한 간이 진료소에서 기생충전문병원(NTD 클리닉) 소속 현지 의료진이 기생충에 감염된 아이들에게 치료약을 나눠주고 있다.박찬학 제공

지난 3월13일 탄자니아 므완자 지역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 굿네이버스가 설치한 간이 진료소에서 기생충전문병원(NTD 클리닉) 소속 현지 의료진이 기생충에 감염된 아이들에게 치료약을 나눠주고 있다.박찬학 제공

20년간 몸에 기생하며 목숨 앗아가

최근 다시 방문한 빅토리아 호수의 코메섬. 두 번 배를 갈아타고 도착한 코메섬 항구에서는 고기잡이를 마치고 만선으로 도착한 어부의 함박웃음,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즐기며 물장구를 치는 꼬마 녀석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옆에는 어머니 일을 돕는 소녀가 호수에 발을 담근 채 설거지와 빨래를 하고 있다. 너무나 평화로운 한적한 시골 풍경이다.

그러나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한 가지는 이들이 모두 주혈흡충이라는 기생충에 무방비로 노출됐고, 평화롭고 고요한 이 모습은 10년 혹은 20년 뒤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남기는 위험한 장면이라는 사실이다. 주혈흡충은 호수에 사는 달팽이 몸에서 나와 호수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피부를 뚫고 들어간 뒤, 혈관 속에 하루 수백 개씩 알을 낳고 20여 년 살다가 간과 방광 등을 망가뜨리는 무시무시한 기생충이다. 환자는 결국 배에 복수가 차고 피를 토하며 호흡곤란으로 숨지게 된다.

코메섬 주민 5만 명을 위한 의료시설이라곤 보건소 1곳과 약 배급소 2곳이 전부다. 주민들의 주혈흡충 감염률은 60~70%를 웃돈다. 검사 때 누락되는 비율을 고려하면 80~90%에 육박한다는 전문가도 있다. 우리가 코메섬을 방문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인데, 주혈흡충으로 인한 합병증의 심각성을 알고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2년 전 코메섬에서 벤자민을 만났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40대 중반인 벤자민의 배는 무섭게 부풀어 터져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벤자민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면서 만삭의 임신부처럼 부풀어오른 배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했다. 앙상하게 마른 팔을 붙들어보지만 힘이 없어 다시 누워버리기를 반복했다. 옆에 서 있던 벤자민의 아내가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이 빅토리아 호수에서 어부 일을 하느라 이렇게 됐어요. 저 혼자 아이를 키우고 농사일을 해야 해요.” 벤자민의 눈빛엔 절망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같이 방문한 임한종 기생충학 박사는 “너무 오랫동안 방치돼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로 간이 손상됐다. 약을 주어 고통을 줄여주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인 것 같다”고 힘없이 말했다. 결국 벤자민은 며칠 뒤 숨지고 말았다. ‘좀더 일찍 코메섬에 들어가 약을 전해줬더라면….’ 피를 토하는 벤자민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머리에 맴돌아 잠을 이루지 못했다.

탄자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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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원 남짓 기생충약만 먹을 수 있어도…

심각한 주혈흡충 감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므완자 지역 소외열대질환 관리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소외열대질환(NTD·Neglected Tropical Diseases)은 말라리아나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와 같이 관심받을 만한 전염성 질환이 아닌, 말 그대로 국제사회 혹은 굴지의 제약회사, 심지어 자국 정부로부터도 소외된 질병을 뜻한다. 말라리아나 HIV는 선진국 사람들에게도 감염 위험이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천문학적 기금을 매년 아프리카 대륙에 쏟아붓지만, 주혈흡충 감염 등 소외열대질환은 아프리카·남아메리카·아시아 저개발국의 빈곤 지역처럼 위생이 열악한 곳에서 주로 발생하는 질병이어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약 1억2천만 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소외열대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쉽게 예방할 수 있고 만성이 되기 전에 발견되기만 하면 100% 완치돼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데도 선진국의 지원에서 소외됐다는 건 마치 ‘빈익빈 부익부’의 경제적 논리가 생명을 외면한 채 이어지는 것 같아 원망스럽다.

지난 3월10일, 드디어 이런 소외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세계 최초 ‘기생충전문병원’(NTD 클리닉)을 므완자에서 개원하는 감격스러운 아침을 맞이했다. NTD 클리닉은 소외열대질환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에 필요한 의료장비 및 약품을 구비했다. 임상교수들이 3~6개월씩 운영 전반에 대해 지도하고 감염자에 대한 진단 및 치료는 물론, 가장 중요한 현지 의료진 교육을 해나갈 계획이다.

얼마 전 코메섬 인근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의 기생충 전문가들과 비포장도로를 지나 ‘루메지’라는 지역으로 향했다. 지역 주민과 아이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지어 있었다. 그중 배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여성 마르코(35)가 눈에 들어왔다. 겉으로 봐도 분명 주혈흡충에 의한 합병증이다. ‘얼마나 아팠을까? 여기까지 그 무거운 몸과 마음을 어떻게 끌고 나왔을까?’ 살고 싶다는 마르코의 바람이 내 뼛속까지 들어왔다.

검사 결과, 이미 간은 기능을 상실했고 배는 복수로 가득 차 생명이 위험한 상황였다. 남편도 주혈흡충에 감염돼 몇 년 전에 숨졌다. 어릴 때 호숫물에서 설거지하다가 감염된 주혈흡충은 25년 뒤인 오늘, 그의 삶 전체를 삼켜버렸다. 이미 때는 늦어버렸지만, 병원에서 검사를 받게 한 뒤 기생충 및 합병증과 관련된 약을 손에 쥐어줬다. 말을 떼기 힘든 기력이지만 마르코는 “정말 고맙습니다. 약을 먹으면 나아지는 거겠죠?”라고 말했다. 아들 3명은 엄마의 건강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지 못했고, 아이들의 덤덤한 표정을 마주할 때마다 참았던 눈물이 내 눈에서 흘러내렸다.

NTD 클리닉 개원식과 더불어 코메섬에서 치러진 작은 기념식에서 한국과 탄자니아 정부는 코메섬만큼은 주혈흡충에서 자유로운 ‘청정지역’으로 만들자는 의지를 다졌다. 앞으로 주혈흡충의 위험성을 알리고 2012년까지 코메섬 주민의 주혈흡충 감염률을 5% 미만으로 줄일 계획이다.

인근 주민의 생활을 이어가게 하는 근원이며 모든 것을 베푸는 빅토리아 호수. 그리고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주혈흡충.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생충에 잃은 아이는 또다시 부모가 걸었던 길을 무방비 상태에서 따라가고 있다. 주혈흡충 감염을 귀신이 몸을 망친 것이라고 생각하던 주민들에게 그저 질병일 뿐이라고 말해주는 적절한 교육이 있었다면, 호수에 있는 물 대신 마실 우물이 충분했다면…. 무엇보다 1년에 한 번 3알 정도, 우리 돈으론 500원 남짓한 기생충약을 사 먹을 수만 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허무하게 삶을 마감하지 않아도 되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공평하게 안전한 물을 꿈꾸며

지난 3월22일은 유엔이 정한 ‘물의 날’이다. 좋은 물을 골라 마시는 잘사는 나라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이곳 탄자니아와 인근 국가들에서 일상이 돼 있다. 한국에 들어가 콸콸 쏟아져나오는 물을 보면 탄자니아 사람들이 생각나서 가슴이 시리다. 물은 코메섬 사람들에게도 그 어떤 표현으로 대신할 수 없는 ‘생명’이다. 우리 모두가 누리는 것을 사치라 여길 필요까지는 없지만, 안전한 물이 없어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가진 것을 나누는 일 또한 우리가 누려야 할 기쁨이 아닌가 생각한다.

*빈곤국가의 식수 개선 및 의료보건 사업을 후원하고 싶은 독자는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 굿네이버스(1599-0300)로 문의하면 됩니다.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5-400-955814

므완자(탄자니아)=장수영 굿네이버스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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