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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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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손으로 모리화를 꺾다

중국판 ‘재스민 혁명’이 무산된 이유…

유연성 통한 공산당의 강한 통치능력과 보수화한 지식인 사회 때문
등록 2011-03-16 07:00 수정 2020-05-02 19:26

중국판 ‘재스민 혁명’은 무산되었다. 외부의 큰 기대와 달리 중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평가된다. 1989년 이후 중국에서 민주화 운동이 재현되지 않은 이유가 중국 정부의 강력한 언론통제와 공안의 원천봉쇄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현상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최근 20여 년간 중국 사회 변화의 큰 흐름에서 보면 좀더 중요한 본질을 포착하지 못한 설명이다.

미시적 불안과 거시적 안정
중국 사회는 미시적으로는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높은 실업률과 물가, 관료 부패 등 현 체제의 유지 자체가 신기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상당히 안정된 체제다. 즉, ‘미시적 불안, 거시적 안정’이라는 오늘날 중국 사회의 특징을 종합적으로 이해해야 인식의 오류를 피할 수 있다. 많은 불안 요인에도 중국 사회가 거시적으로 안정된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중국공산당의 강한 통치능력과 지식인 등 비판적 사회세력의 미성숙 때문이다.

지난 2월27일 중국 상하이 시내에서 중국 공안들이 민주화를 촉구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을 해산시키고 있다.REUTERS/ CARLOS BARRIA

지난 2월27일 중국 상하이 시내에서 중국 공안들이 민주화를 촉구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을 해산시키고 있다.REUTERS/ CARLOS BARRIA

먼저 중국공산당의 강한 통치능력은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른 부단한 자기 변신과 적응 노력이 성공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지난 30여 년간 중국의 발전을 논할 때, “정치체제 개혁 없는 경제체제 전환의 성공”으로 평가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의미를 중국공산당 권력구조와 정치체제의 변화가 전무한 것으로 보는 오해는 피해야 한다. 정치체제 역시 시대적 변화에 맞춰 조금씩 변해왔고, 특히 중국공산당이 보여준 유연한 자기 변신 노력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공산당은 이념적으로 전통 사회주의에서 수용할 수 없었던 사영경제와 자본가를 당 체제 내부로 수용하기 위해 ‘3개 대표론’이라는 새로운 지도이념을 도입한 바 있다. 또한 후진타오 정권에서는 과거 성장 일변도 정책의 부작용을 해소하고 질적 성장 위주의 균형 발전을 추구하는 ‘과학적 발전관’과 ‘조화사회 건설론’을 새로운 지도이념으로 채택했다. 전인대에서 정부 정책의 기조로 ‘민생 안정’을 수년째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엘리트 정치와 권력구조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통치 시기와 달리, 최근 20여 년간 중국 지도부의 권력 승계는 ‘10년 주기 세대교체’와 ‘70살 이상 자동 은퇴’라는 원칙을 확고하게 정착시켰다. 또한 과거 중국 엘리트 정치의 중요한 특징이자 위험 요인으로 간주되었던 파벌 간 대립과 승자독식의 권력구조가 사라지고, 복수의 파벌이 권력을 분점하면서 ‘합의제’ 원칙을 중시하는 집단지도체제가 정착되었다.

중국에서 민주화 시위가 재현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비판적 사회세력의 미성숙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의 대학가와 지식인 사회에서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사건 때와 같은 비판정신을 찾아보기 어렵다. 1990년대 이후 중국의 대학생과 지식인 사회는 급격하게 보수화되고 체제 내부로 편입되는 과정이었다. 1980년대 지식인 사회에 풍미했던 자유주의 사조가 축소되고, 대신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이를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원주의 배제하되 ‘당내 민주’ 확대 가능성

중국 사회에 체제 저항적 지식인이 전무한 것은 아니지만, 극소수의 주변 세력에 불과하다. 지난해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이 중국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상황에서 밑으로부터의 저항운동에 의한 민주화가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현재 중국공산당이 주도하는 중국식 민주, 즉 서구적 다원주의를 배제하고 ‘당내 민주’ 확대를 통한 위로부터의 점진적 정치개혁의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문기 세종대 교수·중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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