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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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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이며 마비된 혼란의 도시

재일 한국인들이 전하는 일본 지진의 현실 같지 않은 공포,

“일본에 살고 싶지 않을 정도”
등록 2011-03-15 08:17 수정 2020-05-02 19:26
» 3월11일 일본 대지진 뒤 진앙지 인근 최대 도시인 센다이에 위치한 한 건물의 지붕에 대피한 사람들이 이불 등을 덮은 채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 AP

» 3월11일 일본 대지진 뒤 진앙지 인근 최대 도시인 센다이에 위치한 한 건물의 지붕에 대피한 사람들이 이불 등을 덮은 채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 AP

“땅이 눈앞에서 갈라지는 줄 알았다.”

이혁근(46) LG히다찌 일본 지사장은 3월11일 오후 일본 가와사키시에서 겪은 지진을 이렇게 설명했다. 가와사키시는 도쿄역에서 남쪽으로 18분 동안 지하철을 타면 이르는 도시다. 이 지사장은 이날 한 철로 건널목 앞에 서 있었다. 오후 3시에 고객사와 회의 약속이 있어서 걸어가던 참이었다. 땅이 흔들린 건 그때였다. 건널목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던 차들이 “파도타기를 하는 것처럼” 차례로 들썩거렸다. 멀리서 땅이 갈라져오는 것 같은 아찔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단지 공포의 현실감에서 차원이 달랐다. 그는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고객사의 사무실이 있는 31층 건물이 지척이었다. 시야에 들어온 두 동의 건물은 눈에 띄게 휘청거렸다. 두 건물은 서로 부딪칠 것만 같았다. 건널목 주변의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발을 떼지 못했다. 발밑의 땅은 마치 파도에 흔들리는 배처럼 출렁거렸다. 사람들의 입에서 짧은 비명 소리가 오갔다. 그의 입에서도 ‘우’ 하는 비명이 맴돌았다. 

차도 건물도 파도 타듯

지진은 일본에서 흔했지만, 이번에는 강도가 달랐다. 이 지사장은 지난 20년 동안 일본을 오갔다. 지난 4년 동안 아예 일본에서 살았지만, 이번과 같은 지진은 처음이었다. 느낌으로는 진동이 5분 이상 이어졌다. 그만큼 강한 진동이 오후에 두세 번 더 지축을 흔들었다. 그보다는 약하지만 기분 나쁠 정도의 여진도 간간이 계속됐다. 그는 “지진에 익숙한 일본인들도 패닉 상태”라고 말했다.

지진은 최은주(53) 통역사의 컴퓨터를 치던 손끝에도 미쳤다. 이날 그는 요코하마의 자택에서 번역 작업을 하고 있었다. 집은 목조건물이었다. 나무 구조물이 뒤흔들리면서 집안 곳곳에서 ‘찌그덕’거리는 비명을 질렀다. 대형 텔레비전이 아슬아슬하게 흔들렸다. 책상 위에 놓아둔 난 화분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일본 생활이 30년에 가깝지만 이렇게 큰 지진은 없었다. 보통 몇십 초면 끝나는 진동은 2분 넘게 이어졌다. 최 통역사는 “가슴이 벌렁벌렁했다”고 말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일찍 집에 왔다. 학교에서는 지진이 나자 학생들을 모두 운동장으로 불러냈다. 넓은 공터가 더 안전했다. 집에 부모님이 있는 학생들은 집으로 갔고, 다른 학생들은 학교에서 보호했다. 그는 “동네 사람들이 겁을 먹어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해, 길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라는 잡지에서 일하고 있는 김향청(34) 기자의 도쿄 사무실도 통째로 흔들렸다. 지진은 그가 일하는 도쿄의 26층 건물을 쥐고 흔들었다. 내진 설계된 건물은 충격을 완충하기 위해 충격에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됐다. 그는 이번 지진을 가장 가까이에서 맞은 센다이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원래 지진이 많은 곳이었다. 웬만한 지진에 익숙했지만 “이번 같은 지진은 진짜 처음”이었다. 진동이 이렇게 오래간 적도 없었다. 좌우로 흔드는 진동보다 위아래로 흔들리는 진동이 더 무섭다고 들었다. 이번 진동이 그랬다. 김 기자는 서둘러 책상 아래로 기어들어갔다. 책상에서 책이 차례로 떨어졌다. “엄청 무서웠다. 책상 밑에서 울 뻔했다.” 사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건물은 안전하니까 무리하게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작동을 멈췄고, 불을 다루는 구내식당은 문을 닫았다. 큰 빌딩은 지진에 대비해서 설계가 잘돼 있다. 건물의 안정성에 대해서는 신뢰가 있었다. 그래도 이번만은 불안했다. 진동이 워낙 세다 보니, 건물이 무너질까봐 무서웠다. “일본에 살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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