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 시절, 스탈린은 정치적 반대자 등을 강제노동 수용소로 보내고 남은 아이들은 보육원(고아원)으로 보냈다. 아르헨티나는 군정 기간(1976~83년)에 ‘더러운 전쟁’이라 불리는 인권탄압을 저지르며 정치범 자녀를 납치하거나 수감된 여성 정치범의 아이를 빼앗아 군 장교 등에게 강제로 입양시켰다.
아이 엄마를 협박한 비밀경찰
1991년 소련에서 독립한 벨라루스 정부가 지금 야당 지도자의 아들을 상대로 비슷한 탄압을 시도하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 등이 최근 보도했다. 소련에서 독립한 지 20년 가까이 되지만, 벨라루스에서는 아직도 KGB, 소련 시절 악명 높던 ‘국가보안위원회’의 이름이 떠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해 12월19일 치러진 대선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4선에 성공했다. 벨라루스 정부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80%의 압도적 지지율로 4선에 성공했다고 밝혔지만 대규모 항의시위가 이어졌다. 선거가 치러진 당일 약 4만 명이 시위에 나섰고, 대선 후보 9명 등 600명 이상이 검거됐다. 그 가운데 2명이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 10명 가운데 1명으로 출마했던 안드레이 산니코프와 그의 부인 이리나 칼리프 기자다. 이들은 수도 민스크에 있는 구금시설에 갇힌 채 변호사와 가족의 접근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산니코프는 이번 대선에서 야당 후보 가운데 최다인 2.6%를 득표했다. 또 다른 야당 후보로 1.8%를 얻은 블라디미르 네클랴예프는 선거 당일 경찰에 폭행당한데다 고혈압이 악화돼 위중한 상태로 전해졌다. 선거 당일 검거된 대다수는 풀려났지만 아직 대통령 후보 4명 등 20명이 수감된 상태며, 이들은 정치적 불안을 조장한 혐의로 최고 15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가장 악질적 탄압은 벨라루스 당국이 산니코프의 3살 난 아들 다닐을 ‘보호’라는 명분으로 가족에게서 빼앗아가려는 시도다. 정부 당국은 아이의 할머니를 상대로 보호자 자격이 되는지 건강검진을 벌였다. 당국은 할머니의 건강이 정상으로 판정되자, 아이가 머물고 있는 집이 주거에 적합한지 판단한 뒤 그 결과를 이달 말까지 통보해주겠다고 밝혔다. 당국은 부모가 검거된 뒤 할머니를 찾아와 “재정적·육체적 상황이 안 돼도 걱정하지 마라. 아이를 혼자 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이런 발언이 반정부 인사 탄압의 하나로 아이를 빼앗아가려는 시도라고 여기고 있다. 비밀경찰이 선거 과정에서 아이의 엄마에게 “당신 자신이 아니라 당신의 아들을 생각하라”는 전자우편을 보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벨라루스에서는 아이의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 등을 든 시민들이 “아이를 할머니 곁에 두라”며 정부를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선거 때마다 부정 시비 일어루카셴코는 흔히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린다. 소련 시절 집단농장주 출신인 그는 1994년 이후 16년째 장기 집권하며 철권정치를 휘두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벨라루스 정부는 대선 항의시위를 보도한 언론사의 컴퓨터 등을 압수하기도 했다. 벨라루스 인권단체인 ‘스프링 96’은 “외국 정치인들이 찾아와서 벨라루스 정부 당국에 정치범을 석방하도록 압력을 행사해줄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2001년과 2006년 대선도 국제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부정선거라는 논란이 많았고, 2006년 대선 뒤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으나 강경 진압됐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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