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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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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도남(까도 까도 나오는 스캔들의 남자) 이 사는 법

끊임없는 스캔들에도 건재한 이탈리아 총리 베를루스코니…

마초적인 사회 분위기와 포장된 보통 사람 이미지가 비결이었네
등록 2010-12-22 15:16 수정 2020-05-03 04:26

횡령, 탈세, 뇌물 공여, 권력 남용, 마피아 연루, 그리고 미성년 성매매 여성과의 섹스 파티….
이런 스캔들을 견뎌낼 수 있는 국가 최고지도자가 있을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다. 일본에서 지난 4년간 5명의 총리가 등장한 것에 비하면 놀랍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는 8개월 만에 물러났고, 지난 6월 취임한 간 나오토 총리도 벌써 사임설이 나돌고 있다. 반면 베를루스코니는 지난 16년간 세 번이나 총리에 선출됐다. 2008년 4월 세 번째로 총리에 올라 온갖 추문에도 불구하고 3년 가까이 버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탈리아 신문에서는 “다른 어떤 정상적인 국가에서도…”라는 식의 개탄조 사설이 나오기도 한다.

하원 신임투표 3표 차로 승리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온갖 추문에도 총리직에서 쫓겨나지 않고 있다. 그가 12월14일 하원에서 열린 신임투표에서 승리한 뒤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연합 AP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온갖 추문에도 총리직에서 쫓겨나지 않고 있다. 그가 12월14일 하원에서 열린 신임투표에서 승리한 뒤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연합 AP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지난 12월14일 상하 양원의 신임투표에서도 예상을 뒤엎고 승리하는 놀라운 생존력을 보였다. 그는 이날 하원 신임투표에서 314표를 얻어 3표 차이로 16년 정치 인생의 최대 위기를 넘겼다. 앞서 상원 신임투표에서는 162 대 135로 승리했다. 미스터리에 가까운 그의 생존 배경은 무엇일까? 흔히 그의 언론 장악과 막강한 재력 행사 등이 주로 꼽힌다. 이것을 빼놓을 수 없지만 다른 복잡한 요소들이 두루 엉켜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스캔들 피곤증’이다. 워낙 이탈리아 정치인들의 각종 스캔들이 끊이지 않다 보니, 베를루스코니가 일으키는 스캔들이 그의 이미지나 지지를 치명적으로 갉아먹는 요소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초적 사회 분위기는 나이 든 유부남이 10대 여성과 놀아나는 것에 너그럽고, 오히려 그런 남성에 대한 부러움까지 존재한다. 베를루스코니의 나이는 74살이다. 여성 문제 등을 ‘사생활’로 보호하는 유럽적 성향이 이탈리아에서는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고 영국 일간 는 분석했다.

게다가 베를루스코니는 적의를 낳지 않는 평범한 일반인, 곧 ‘우오모 쿠알룬케’(uomo qualunque)처럼 행동한다. 저명한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인 베페 세베르그니니는 그의 생존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우리처럼 보인다. 우리 가운데 하나다.” 베를루스코니가 “아이들을 사랑하고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축구를 알고 돈을 벌고 규칙을 싫어하고 농담과 욕설을 하고 여자와 파티를 좋아하고 잘못을 유쾌하게 대한다”는 것이다. 베를루스코니는 스캔들에 대해 “나는 성인(聖人)이 아니다”라고 당당히 맞선다. 그러다 보니 “많은 이탈리아인들은 베를루스코니가 자신은 꿈만 꿀 수 있는 것을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베를루스코니는 동질감을 낳으면서도, 성공한 사람이라는 신화의 후광효과를 누린다. 그가 재계 거물로 성공한 것은 능력이 있기 때문이며, 이는 국가를 경영할 능력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는 작은 건설회사에서 시작해 미디어·광고·보험·식품·건설 분야를 두루 장악한 이탈리아 3대 거부로 성공했다. 그와 가족의 재력은 약 90억유로(약 1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종법 서울대 유럽연합(EU)연구센터 연구교수는 “베를루스코니는 이데올로기 정치에서 자본주의 정치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그를 정점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자본가에 대한 암묵적 동의가 이탈리아 사회에 존재한다”며 “비록 정경유착을 통하기는 했지만, 성공한 사람에 대한 막연한 부러움과 누구나 그러고 싶어하는 사회동화적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의 막강한 재력은 역설적으로 ‘돈이 워낙 많으니 돈을 벌려고 부패를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낳는 측면도 있다고 현지 언론은 분석했다. 마치 칠레 최대 갑부인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이 거부감 대신 ‘돈이 많아 부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얻어 올해 초 대선에서 당선됐다는 해석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베를루스코니는 미디어를 철저히 장악하고 있다. 3대 민영방송은 베를루스코니가 소유하고 있고, 3대 공영방송은 그가 지명한 인물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는 이런 매체들을 통해 ‘단호하고 문제를 잘 처리하는 인물’처럼 그려진다. 베를루스코니가 스스로 후견자인 동시에 각 미디어의 피후견자가 되는 체제를 갖추고 ‘미디어 포퓰리즘’을 누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야당은 언론이 친베를루스코니적인 내용으로 ‘도배’를 하니 이겨낼 방법이 없다고 불평한다고 영국 은 전했다. 그가 뉴스 프로그램만 장악한 것도 아니다. 베를루스코니를 풍자한 한 코미디언은 다시는 방송에 등장하지 못했다.

우파 고정 지지층과 좌파 분열도 배경
그렇다고 그가 이탈리아 국민 모두의 지지를 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탈리에서 공부한 김 교수는 “국민 가운데 50%는 베를루스코니가 나오는 방송은 아이들에게 아예 안 보여줄 정도”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정치 현실은 그와 같은 인물이 살아남는 토대가 되고 있다. 무조건적으로 우파를 지지하는 30% 안팎의 계층이 존재하고, 다수당 체제에서 30% 남짓의 표를 얻은 최다석 정당이 총리를 배출하고 있다. 그가 ‘최선’이 아닌 ‘차악’으로서 지지를 받는 면도 있다. 철저한 보스정치 체제를 구축한 베를루스코니를 대체할 만한 막강한 좌파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중도좌파 정당 등 야권은 분열돼 힘을 모으지 못하고,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비판을 파고들지 못했다. 이번 신임투표에서도 지난 7월 베를루스코니와 결별한 잔프랑코 피니 하원의장이 이끄는 ‘이탈리아 미래와 자유’(FLI) 그룹에서 당론과 다른 반란표가 나왔다.
베를루스코니가 신임투표에서 살아남았지만, 임기 종료 시점인 2013년까지 버티기는 힘들다는 전망을 유럽 언론은 내놓고 있다. 당장 그가 재신임된 뒤 정부의 교육예산 삭감 등에 반대하는 학생 등 수만 명의 격렬한 시위가 이어졌다. 재정 적자는 이탈리아의 한해 국내총생산(GDP)에 맞먹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 때문에 ‘피투성이 승리’에도 불구하고 내년에 조기총선이 실시될 것이라는 관측이 끊이지 않는다. 베를루스코니는 2013년 조르조 나폴리타노 대통령의 후임자가 되겠다는 꿈을 수차례 드러냈다. 그가 이 꿈조차 이룰지가 끈질긴 생존력의 한계를 보여줄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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